성철 스님의 '돈오점수설 비판에 대하여'에 대한 논평.
글/ 전 치수(동국대학교 강사)
이 글은 1990년 10월 14일 보조사상연구원이 주최한 전남 순천 송광사의 제4차 국제불교학술회의에서 발표 한 박성배 교수의 논문 성철 스님의 돈오점수설 비 판에 대하여 '에 대한 소장 학자 전 치수교수의 논평이다. 보조사상연구원이 발간한 '보조사상' 제4집에서 이 글을 전재한다. 한편 박 성배 교수의 '성철 스님...대하여'는 본지 제 1990년 12월호인 8호 ,그리고 9, 10호에 소개된 바 있다. <편집자 주>
박 교수의 논문은 8개의 절로서 구성되어 있다. 이중 제1절은 서론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성철 스님의 견해를 소개하고 있는 내용이다.
요약하면, 깨침(견성見性, 究竟覺) 은 마조, 임제, 대혜로 이어진 조계 정맥의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공안 참구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는 돈오돈수설을 참다운 선법(禪法)으로 보는 성철 스님이 하택, 규봉과 같은 지해 종도의 사상을 계승한 보조 스님의 돈오점수설을 똑바로 깨치지 못한 거짓 선지식들이 아무런 증처도 없이 지해(知解)로 조작 해낸 잘못된 수행론이라고 규정하고, 이러한 해오점수(解悟漸修)에 의해서는 깨칠 수 없다는 내용과 현재의 겉보기엔 임제식 실천이고 속은 종밀식 이론을 갖는 돈오점수 설을 따르는 이들에게 임제의 실천과 이론을 택하든지, 종밀의 이론과 실천과 어느 쪽인가를 결정하여 실천은 임제식이고 이론은 종밀식인 이도저도 아닌 혼란을 없애라는 성철 스님의 대안이 주요 내용이다.
나머지 항목은 성철 스님과 보조 스님을 비교하면서, 돈오돈수를 표방하는 성철 스님을 비판하고, 보조의 사상을 다각도로 조명하면서 돈오점수설을 선양하는 내용과 보조스님의 돈오점수설을 '돈오돈수적 점수설'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논지를 결론으로 끝맺는 것이다.
그러나 평자는 '열반경'의 ‘법 등명 자등명(法燈明 自燈明)’이란 구절이 부처님 사후의 성불의 길을 피력한 유훈으로 보고, 이를 육조 (六祖)의 "식심견성 자성불도(識心見性 自性佛道)"의 내용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보기 때문에, 성철 스님의 견해와 뜻을 같이함으로 논자의 주장에 비판적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음을 밝혀둔다.
지면의 제약상, 각 항목별로 박 교수의 취지를 요약, 발췌하여 소개 하면서 그 부분의 문제점에 대한 평자의 견해를 제시하겠다. 먼저 박 교수의 논문을 외형적 으로 볼 때 자료에 대한 인용이 논문의 양에 비해서 너무나 적은 것 같다. 실제로 대전제(주 5, 9)를 제외 하고 논증에 관련된 인용은 3개소 (주 6, 7, 8) 정도로서 학술 논문치고는 불충분하다는 느낌이다.
제2절은 보조 스님의 '절요' 첫 머리의 (牧牛子日 荷澤神會 是知解宗師, 雖未爲曹溪嫡子 然悟解高明決 擇了然…….以爲觀行龜鑑’이란
원문 중 수(雖)는 양보를, 연然은 주장을 나타내는 구절을 이끄는 것인데도 성철 스님이 이러한 '_雖..... 然.....’의 한문 문법의 규칙을 무시하고 그것 을 '비.非로 대체하여 "荷澤是知解宗師 非曹溪嫡子’라 해석함으로써 보조 스님의 본래의 의도를 왜곡했다고 주장하면서, 공정한 보조관을 알기 위해서는 보조 스님이 보는 하택관을 바로 보아야 한다며 '절요'의 다음 문장인 ‘여관금시수심인 予觀今時修心人, 不依文字指歸……..須依如實言敎………부왕용공이不枉用功爾 ‘중의 문자의 가리킴에 의지하지 않는 것은 병이고 ' 여실한 언교에 의지하는 것은 약인데 여기서의 ‘여실언교’란 전후문맥으로 보아 하택의 가르침이 분명하다면서 보조가 '절요'를 지은 목적은 하택의 가르침을 계승한 돈오점수설을 선양하기 위한 것이라는 취지의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수(雖)는 가정 조건, 확정 조건, 양보의 절을 이끄는 것이고, ‘연然’은 앞절에 순접 또는 역접의 접속사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석하든 하택은 지해 종사로서 조계 적자는 아니라는 내용은 불변이어서 성철 스님이 '수......연......을 非로 해석했다고 해도 문제는 없다.
오히려 문제로 삼아야 할 것은 오해(悟解)의 해석 문제와然의 용법을 순접과 역접 중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인데, 순접인 경우는 하택이 돈오돈수의 이론에 밝다는 뜻이고 역접의 경우는 해오에 밝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선문정로'에서 오해는 해오(解悟)와 같은 뜻이라고 하였으므로 연은 해오에 밝다는 역접의 용 법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박 교수는 제4절에서 문자, 언어, 교리, 지해'가 있기 때문에 부처님의 법문도 있을 수 있다고 하면서 보조 스님도 '문자.......지해’ 를 살리는 길이 불교를 살리는 길이 라 하여 문자를 중시했다는 내용에 따른다면 이는 ‘依文字’'를 이르는 것 이어서 앞의 ‘不依文字指歸’의 내용과는 모순된다.
한편 '如實言敎’를 범어로 환원 해보면 yathabhutam(如實), tathata眞如,真理,yathabhutavacana(如真言), yathabhutasalya(여실한 진실=四聖諦) 등으로서 여실언교는 진리, 진여의 말씀에 의한 가르침을 의미하기 때문에 부처님의 말씀과 그 가르침인 사성제를 가리키는 것이지, 하택의 가르침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제3절은 사상의 접근 방식으로서 '체적 접근'과 '용적 접근'을 예로들면서, 보조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철 스님이 타기했던 지해(知解)의 힘을 필요로 하는 용적 접근 이 요청된다면서 인물 이해, 시대 상황, 해석학 등의 설명에 의해 논리를 전개한다.
사상의 접근 방식에 관한 결정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는 하나, 하나의 사상에 대한 본질의 추구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쉽게 결정할 수도 있다.
따라서 평자는 체적 접근을 대상 (artha, 의미), 존재(bhava =dhama, 法), 자성(svabhava, 본질, 물자체)의 뜻으로 풀이되는 體의 해석에 의해' 본질론적 해석 방법'으로, 한편 용적 접근은 작용(krtya, 활동), 동기(prayojana)의 뜻을 갖는 用의 해석에 의해 '목적론적 해석 방법'으로 풀이하는데 이러한 분별에 의한다면 목적(용)은 본질(체)을 수용하는 행위라는 사실과 어느 한 행위에 대한 평가는 그 행위가 갖는 본질의 파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의 납득에 의해 양 방법간의 관계와 위치가 설정되리라 본다.
그렇다면 박 교수의 지적대로 화엄사상에 영향을 받은 보조의 돈오점수설은 화엄 사상의 본질에 의 한 이론을 정립시키고, 그 본질의 수용에 의한 목적이나 가치를 달성시키는 실천을 정립시켜야 하는 것이 본분임에도 불구하고, 본질을 달리하는 돈오돈수설을 주관에 따라 화엄 사상의 돈오점수설 속에 수용하려는 의도는 양자간의 본질적인 모순을 헤겔식의 변증법적 해석(평자는 이를 목적론적 해석으로 봄)에 유사한 和諍에 의해 보조가 합리화 시켰다고 해도 원래의 본질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성철 스님이 보조 스님의 돈오점수설을 너무 용적 접근이라고 비판했다는 박 교수의 지적은 잘못이다. 오히려 성철 스님의 뜻은 더욱 완전한 용적 접근을 택하여 그 본질도 뼈에서 찾지 말고 화엄선에서 찾으라는 것으로서, 이는 서론에서 제시한 완전 임제식을 택하든가 완전 종밀식을 택하든가 어느 하나를 결정하라는 대안에도 잘 나타나 있다.
제4절이 만약 앞에서도 일부 설명했듯이 '의문자'를 중시하는 내용으로서 박 교수가 문자와 반문자간 의 변증에 의해 문자의 의미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한 것이라고 본다면, 인도논쟁사 중 최대의 이슈였던 '미망사 학파'(Mīmāṃsā)의 '聲常住論'에 반대하여 '聲無常住論'을 펼친 불교학파의 논리를 현재의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방식으로 조명해야 할지 가 의문이다. ***성상주론(聲常住論): 미망사 학파는 경전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말소리(소리, 聲)가 영원히 변하지 않고 존재한다는 '소리 상주론'을 주장했습니다. 성무상주론(聲無常住論): 반면 불교 학파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제행무상'의 원리에 따라, 소리 역시 조건에 의해 생겼다 사라지는 일시적인 것(무상, 無常)이라고 반박했습니다. – 편집자주
제5절은 앞절들에 대한 종합과 박 교수 자신의 견해를 표명하는 내용으로서, 성철 스님은 현금의 비불교적인 시대 상황의 도전과 안으로 는 비선,비교(非禪 非敎)의 혼란을 고불고조, 조계적자, 임제정맥에 따른 화두선에 근거한 파사현정으로 대처하고, 반면 보조 스님은 선, 교 의 이자택일의 갈림길에서 초교파 적인 입장을 취해 화합과 화쟁으로 대처했다는 비교를 하면서 이러한 보조 사상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교육적인 측면에서는' 문자.....지해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고 보는 논지이다.
또한 이러한 시대의 병을 치유 하기 위하여 보조 스님은 知解의 힘 (依知)을 빌리고, 성철 스님은 知解를 버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박 교수의 설명을 평자 나름대로 해석한다면, 보조 스님은 정(해오점수), 반(돈오돈수)에 대한 헤겔식 변증법에 의한 결론인 (돈오점수)에 이르는 과정을 택한 것이며, 성철 스님은 주장 (돈오돈수)과 반주장(해오 접수) 중 반주장의 오류와 자기 모순을 부정 (단)함으로써 주장을 결론으로 하는 칸트식 변증법(prasanga)을 택한 것 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양자의 본질적 모순인 차이점을 버리고 공통점 만을 택한 보조 스님의 치유법과, 오류와 모순을 버리고 본질 자체에서 해결법을 구한 성철 스님의 치유 법 중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를 각 자에게 반문하고 싶다.
다음의 인용문 ‘부입도다문이요언지……시역선오후수지기야 夫入道多門 以要言之 …..是亦先悟後修之機也’ (수심결)을 근거로 교수는 '돈오돈수도 돈오점수와 같은 것(以實而論 是亦先悟後修)'이라고 말하면서 양자의 차이는 순전히 근거의 차이에 있다 고 말한다. 그러면서, 절요'의 다음 예문 ‘今刻意…..以謂非然也’를 인
용해서는 보조 스님이 돈오돈수를 부정하여 돈오점수를 선양하였다 고 한다. '수심결'에서는 양자가 같다고 하고, '절요'를 들어서는 돈오돈수를 부정하고 있다.
제6절은 돈오점수와 돈오돈수 가 무엇이 다른가를 논하면서 다음 과 같은 도표를 만들어 비교한다.
돈오점수 : (교리학습)….해오…..점수, 만행 겸수..... 증오(證悟)
돈오돈수 : (백일법문)••• 증오 •••간화, 삼관 돌파.·.구경각
박 교수는 양자의 차이를 도표로 만들고 이 도표를 통하여 전혀 다른 두 개의 수행 이론이 구조적으로 흡사하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러나 평자로서는 차이의 有가 차이의 無라는 논리적 모순이 납득되지 않는다. 차이가 있다면 차이를 설명하고 차이가 없다면 없음을 논증해야 할 학자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의 설명에 따른 평자의 해석에 의한 위 도표는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 야 한다고 본다.
돈오점수 : 해오•·점수, 만행 겸 수...증오 ; (단계적, 시간의 진행, 차별적)
돈오돈수 : (심)••간화, 삼관 돌파...구경각 ; (일시적, 시간의 초월, 무차별적)
이상과 같이 설명한다면 양자간 의 본질적인 차이가 드러날 것이다.
제7절의 성철 스님에 바라는 것'과 제8절의 '미해결의 과제'의 내용은 박 교수 자신의 사적 견해로 보이므로 평자는 논평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다만 교수가 보조 스님의 돈오점수설을 '돈오돈수적 점수설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결론은 그것이 돈오점수설의 내용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며, 본 논평에서 지적된 문 제점에 대한 본질적인 해명이 없이는 돈오점수의 특성마저도 밝힐 수 없다는 생각이다.<끝>
1991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