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 이병돈 박사 식량난 해법찾아 첫 탐사
지난 6일 한국 최초의 쇄빙선(얼음을 깨고 항해하는 선박) 아라온호가 남극 제2기지 후보 지역인 테라노바베이에 도착했다. 1988년 남극 최초의 한국 기지로 건설된 세종기지에 이어 두 번째 기지 건설을 위해 아라온호가 남극 곳곳을 누비고 있다. 작년 12월 18일에 인천항을 떠난 아라온호는 3차원 정밀 해저지형측정기 등 25가지의 첨단 장치를 갖춘 세계 최고의 쇄빙선이다.
한국의 남극 탐험은 반세기의 역사를 지녔다. 한국해양개발연구소(현 한국해양연구원)의 초대 소장을 역임한 이병돈(1928~95) 박사<사진·오른쪽 두번째>(이 박사가 1963년 2월 남극 탐사 출발 전 아르헨티나 데쉬보드 항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가 지난 1963년 남극 대륙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한국의 남극 탐사는 시작됐다. 당시 미국 텍사스 A&M대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던 그는 남극 학술 조사단의 일원으로 한국인 최초로 남극 땅을 밟았다.
-
이 박사는 부산 수산대(현 부경대)를 나와 모교 교수로 재직 중 1959년에 네 자녀와 부인을 남겨 둔 채 미화 50달러와 카메라 하나를 손에 들고 혼자 도미(渡美)했다. 돈이 없어서 필요하면 카메라라도 팔 요량이었다. 이 박사는 텍사스 A&M 대학에서 극지의 해양생태계를 연구했다. 그에게 해양생태계는 학문적 연구 대상을 넘어 식량난을 해소할 방편이었다. 6·25전쟁 후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렸던 대한민국의 현실을 겪으면서 내린 결론이었다.
한국해양연구원에 따르면 이 박사는 아르헨티나 정부의 남극 합동조사단 일원으로 남극의 아르헨티나 에스페란사(Esperanza) 기지에 1963년 3월 6일 상륙한 다음 남극 대륙의 기후와 생태계를 연구했다.
남극 조사 후 이 박사는 이런 요지의 글을 남겼다.
'고래 고기 10㎏을 얻기 위해서는 100㎏의 크릴(새우의 일종)이 있어야 하니 식량 공급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고래 고기를 소비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크릴을 직접 먹어 보니 맛도 괜찮아 사람이 바로 크릴을 먹는다면 세계의 식량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박사는 남극 해양 생물에 관한 논문으로 1966년 박사학위를 받았고 귀국해 수산대 교수를 거쳐 KIST에 창설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1974년에 KIST 부설 해양개발연구소의 초대 소장으로 부임한 그는 우리나라 극지와 해양 연구의 주춧돌을 놓았다.
이 박사 이후 우리나라 국가 차원의 극지 탐험은 1980년대 중반 본격화됐다. 1985년 한국해양연구원 소속 연구원 두 명이 남극 지역을 탐사했다. 또 한국해양소년단연맹이 파견한 국내 전문 산악인들이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1985년 11월 29일 남극 최고봉인 빈슨 매시프(Vinson Massif·4897m) 등정에 성공했다. 1986년에는 우리나라가 세계 33번째로 남극조약에 가입했다. 이후 대한민국의 극지 연구는 남극에서 북극으로 이어져 2002년에는 북극에도 다산기지가 건설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