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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 지조론
*【해설】
조지훈의 교훈적 중수필. 1960년 3월 [새벽]지에 발표. 1962년 같은 표제의 수필집이 발행되었다.
<지조론>은 1950년대 자유당 말기의 극도로 혼란하고 부패한 정치 현실 속에서 과거의 친일파들이 과거에 대한 뉘우침 없이 정치 일선에서 행세를 하고, 정치 지도자들 마저 어떤 신념이나 지조도 없이 시대상황에 따라 변절을 일삼는 세태를 냉철한 지성으로 비판한 글이다.
이 작품에서는 한국인의 정서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지조를 적절한 예시와 속담, 일화 등을 통해 적절하게 제시함으로써 1950년대의 부정과 부패로 일관한 독재 정권을 비판하고, 나아가 그 정권에 빌붙어 권세를 누리는 이들을 단죄함으로써 민족사의 새로운 자각과 지평을 열어 나가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나 있다.
*【개관】
▶작자 : 조지훈
▶갈래 : 중수필, 교훈적 수필
▶성격 : 논리적, 사회적, 공적(公的), 경세적(警世的), 교훈적, 설득적
▶문체 : 한문투의 강건체, 의고체(擬古體)
▶특징 : 비교와 대조 등의 표현 기법과 적절한 인용 및 예시 사용
▶구성 : 서론 본론 결론의 3단 구성
▶제재 : 지조(志操)
▶주제 :
- 정치인들에게 요구되는 지조 강조
- 지조를 지키는 삶의 중요성
▶출전 : [새벽](1960. 3)
*【표현상 특징】
다양한 일화를 제시하여 지조와 변절의 의미를 이해시킴. 정치인의 옳지 못한 행태를 준열하게 비판함. 변절을 고정적인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범한 범절이나 후에 자신의 행적을 반성한 경우는 그 변절이 용서될 수 있다는 열린 시각을 취함. 비교와 대조 등의 표현 기교와 적절한 인용 및 예시 사용했고, 단정적인 어투와 힘이 넘치는 문체로 독자의 공감을 유도하고 있다.
*【어휘·어구 풀이】
<확집(確執)> : 자기의 주장을 끝까지 지켜 나감
<위의(威儀)> : 위엄이 있는 엄숙한 차림새
<곤고(困苦)> : 곤란하고 고통스러움
<경성(警醒)> : 타일러 깨우침
<정상(政商)> : 정권을 이용하여 사사로운 이익을 꾀하는 무리들
<권모술수(權謀術數)> : 권모와 술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인정이나 도덕도 없이 권세와 중상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쓰는 술책.
<염결공정> : 청렴하고 결백하며 공평하고 정대함
<청백강의> : 청렴하고 결백하며 강직하고 씩씩함.
<타매> : 침을 뱉고 욕을 마구 퍼부음
<음부적(淫婦的)> : 음탕한 여인과 같은
<환부> : 홀아비
<속현> : 아내를 여읜 뒤 아내를 다시 맞음
<본능고> : 본능적 욕구에 의해 발생되는 고통
<분반> : 웃음을 참을 수가 없음
<자시> : 무슨 일이 그러려니 하고 저 혼자 속으로 믿고 겉에 드러냄
<교지(狡智)> : 간사한 재주와 지혜
<욕인> : 남을 욕함.
<황음> : 함부로 음탕한 짓을 함.
<화간> : 부부가 아닌 남녀가 합의하여 육체적으로 관계함
<만근> : 몇 해 전으로부터 지금까지. 근래
<동궤> : 같은 궤도. 같은 선상에 있음
<율하지> : 다스리지
<정부(貞婦)> : 현철하고 정조가 곧은 아내.
<지사시인> : 지사인 시인
<정탈(定奪)> : 임금의 재결. 옳고 그름을 가리어 결정함
<매천 필하 무완인> : 매천의 붓 아래에서는 온전한 사람이 없다.
<소인기(少忍飢)하라> : 배고픔을 좀 참으라
<난정> : 어지러운 정치
<적빈이 여세라> : 가난하기가 마치 물로 씻은 듯 심하여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음.
<지조의 매운∼지녔던 것이다> : 지조를 지닌 분들은 생활의 모습도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점을 말하여, 지조를 지키는 일이 범상(凡常)치 않음을 강조한 표현.
<이와 같이 생각하는∼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 이 글을 쓰는 이유, 즉 정치가들이 지조를 지키며 올바른 정치를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드러난 부분이다.
<변절자에게는 저마다 그럴 듯한∼변절의 낙인밖에 없을 것이다> : 변절자들은 나름대로의 핑계거리를 돌려대지만, 그 결과는 오욕(汚辱)을 자취(自取)하는 것이다.
<좌옹(佐翁), 씻을 수 없었다> : '국민 총력 연맹 조선어 학회 지부'라는 어용 단체로 전락할 수 밖에 없었던 '조선어학회'는 한글을 지킨다는 민족적인 일을 위한 방편이었으므로 비난받지 않는 것과는 달리, 민족을 위한 아무런 업적이 없이 변신(變身)만을 한 이들은 변절자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었다.
<매천 필하 무 완인> : 매천의 붓에 한 번 오르면, 이에 완전한 사람이 없다. 평생 의를 위해 지조를 지킨 황매천 시인의 모습이 잘 나타난 표현으로, 그의 필봉 또한 매우 날카롭고 비판적이어서 당시의 인물들에 대해 가혹한 비판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양가의 부녀가∼자위할지 모른다> : 현 세태의 보편적 분위기를 일러주고 있다. 지조를 지키기 어려운 세태를 비판하는 것이다.
*【전문】
『- 변절자를 위하여 -
지조란 것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 확고한 집념)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지조가 교양인의 위의(威儀,엄숙한 차림새)를 위하여 얼마나 값지고 그것이 국민의 교화에 미치는 힘이 얼마나 크며, 따라서 지조를 지키기 위한 괴로움이 얼마나 가혹한가를 헤아리는 사람들은 한 나라의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먼저 그 지조의 강도(强度)를 살피려 한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자는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명리(名利)만을 위하여 그 동지와 지지자와 추종자를 일조(一朝)에 함정에 빠뜨리고 달아나는 지조 없는 지도자와 무절제와 배신 앞에 우리는 얼마나 많이 실망하였는가. 지조를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아는 까닭에 우리는 지조 있는 지도자를 존경하고 그 곤고(困苦)를 이해할 뿐 아니라 안심하고 그를 믿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이 생각하는 자이기 때문에 배신하는 변절자를 개탄하고 연민하며, 그와 같은 변절의 위기의 직전에 있는 인사들에게 경성(警醒,깨우침의 각성)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다. 장사꾼에게 지조를 바라거나 창녀에게 정조를 바란다는 것은 옛날에는 없었던 일이지만, 선비와 교양인과 지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장사꾼과 창녀와 가릴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식견(識見)은 기술자와 장사꾼에게도 있을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지사(志士)와 정치가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독립운동을 할 때의 혁명가와 정치인은 모두다 지사였고 또 지사라야 했지만, 정당운동의 단계에 들어간 오늘의 정치가에게 선비의 삼엄한 지조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일인 줄은 안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정당운동을 통한 정치도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한 정책을 통해서의 정상(政商,정치가와 경제활동하는 상인의 결합)인 이상, 백성을 버리고 백성이 지지하는 공동전선을 무너뜨리고 개인의 구복(口腹)과 명리를 위한 부동(浮動,떠다님)은 무지조로 규탄되어 마땅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현실과 이 난국을 수습할 지도자의 자격으로 대망하는 정치가는 권모술수(權謀術數)에 능한 직업정치인보다 지사적 품격의 정치 지도자를 더 대망하는 것이 국민전체의 충정인 것이 속일 수 없는 사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염결(廉潔,청렴과 결백), 공정(公正), 청백(淸白), 강의(剛毅,굳고 의연함)한 지사정치만이 이 국운을 만회할 수 있다고 믿는 이상, 모든 정치 지도자에 대하여 지조의 깊이를 요청하고 변절의 악풍을 타매(唾罵,침뱉고 꾸짖음)하는 것은 백성의 눈물겨운 호소이기도 하다.
지조와 정조는 다같이 절개에 속한다. 지조는 정신적인 것이고, 정조는 육체적인 것이라고들 하지만, 알고 보면 지조의 변절도 육체생활의 이욕(利慾)에 매수된 것이요, 정조의 부정도 정신의 쾌락에 대한 방종에서 비롯된다. 오늘의 정치인의 무절제를 장사꾼의 이욕과 계교와 음부적 환락의 탐혹(眈惑)이 합쳐서 놀아난 것이라면 과연 극언(極言)이 될 것인가.
하기는 지조와 정조를 논한다는 것부터가 오늘에 와선 이미 시대착오의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사람이 있을는지 모른다. 하긴 그렇다. 왜 그러냐 하면 지조와 정조를 지킨다는 것은 부자연한 일이요, 시세를 거역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부나 홀아비가 개가(改嫁)하고 재취(再娶)하는 것은 생리적으로나 가정 생활로나 자연스러운 일이므로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고 또 그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개가와 재취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승인하면서도 어떤 과부(寡婦)나 환부(鰥夫,홀아비)가 사랑하는 옛짝을 위하여 또는 그 자녀를 위하여 개가나 속현(續絃,아내를 여읜 뒤 새 아내를 얻음)의 길을 버리고 일생을 마치는 그 절제에 대하여 찬탄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 능히 어려운 일을 했대서만이 아니라 자연으로서의 인간의 본능고(本能苦)를 이성과 의지로써 초극(超克)한 그 정신의 높이를 보기 때문이다.
정조와 고위성이 여기에 있다. 지조도 마찬가지이다. 자기의 사상과 신념과 양심과 주체는 일찌감치 집어던지고 시세에 따라 아무 권력이나 바꾸어 붙어서 구복의 걱정이나 덜고 명리의 세도에 참여하여 꺼떡거리는 것이 자연한 일이지 못나게 쪼를 뿌린다고 굶주리고 얻어 맞고 짓밟히는 것처럼 부자연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하면, 얼핏 들어 우선 말은 되는 것 같다.
여름에 아이스케이크 장사를 하다가 가을 바람만 불면 단팥죽 장사로 간판을 남 먼저 바꾸는 것을 누가 욕하겠는가. 장사꾼, 기술자, 사무원의 생활 방도는 이 길이 오히려 정도이기도 하다. 오늘의 변절자도 자기를 이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자처한다면 별문제이다. 그러나 더러운 변절의 정당화를 위한 엄청난 공언을 늘어 놓는 것은 분반(噴飯,웃음이 터져 나옴)할 일이다. 백성들이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먼 줄 알아서는 안 된다. 백주대로에 돌아앉아 볼기짝을 까고 대변을 보는 격이라면 점잖지 못한 표현이라 할 것인가.
지조를 지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자기의 신념에 어긋날 때면 목숨을 걸고 항거하여 타협하지 않고, 부정과 불의한 권력 앞에는 최저의 생활, 최악의 곤욕을 무릅 쓸 각오가 없으면 섣불리 지조를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 정신의 자존자시(自尊自恃)를 위해서는 자학과도 같은 생활을 견디는 힘이 없이는 지조는 지켜 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조의 매운 향기를 지닌 분들은 심한 고집과 기벽(奇癖,기이한 성벽)까지도 지녔던 것이다.
신 단재(신채호) 선생은 망명 생활 중 추운 겨울에 세수를 하는데 꼿꼿이 앉아서 두 손으로 물을 움켜다 얼굴을 씻기 때문에 찬물이 모두 소매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한다. 어떤 제자가 그 까닭을 물으매, 내 동서남북 어느 곳에도 머리 숙일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무서운 지조를 지킨 분의 한 분인 한용운 선생의 지조가 낳은 기벽의 일화도 마찬가지다.오늘 우리가 지도자와 정치인에게 바라는 지조는 이토록 삼엄한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신들 뒤에는 당신들을 주시하는 국민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자신의 위의와 정치적 생명을 위하여 좀더 어려운 것을 참고 견디라는 충고 정도이다. 한 때의 적막을 받을지언정 만고의 처량한 이름이 되지 말라는 [채근담(菜根譚)]의 구절을 보내고 싶은 심정이란 것이다. 끝까지 참고 견딜 힘도 없으면서 뜻있는 야당의 투사를 가장함으로써 권력의 미끼를 기다리다가 후딱 넘어가는 교지(狡智,교활한 슬기)를 버리라는 말이다. 욕인(辱人)으로 출세의 바탕을 삼고, 항거로써 최대의 아첨을 일삼는 본색을 탄로(綻露)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충언의 근원을 캐면 그 바닥에는 변절하지 말라, 지조의 힘을 기르라는 뜻이다.
변절이란 무엇인가? 절개를 바꾸는 것, 곧 자기가 심신으로 이미 신념하고 표방했던 자리에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철이 들어서 세워 놓은 주체의 자세를 뒤집는 것은 모두 다 넓은 의미의 변절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욕하는 변절은 개과천선(改過遷善)의 변절이 아니고 좋고 바른 데에서 나쁜 방향으로 바꾸는 변절을 변절(變節)이라 한다.
일제 때 경찰에 관계하다가 독립운동으로 바꾼 이가 있거니와 그런 분을 변절이라고 욕하진 않았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하다가 친일파로 전향한 이는 변절자로 욕하였다. 권력에 붙어 벼슬하다가 야당이 된 이도 있다. 지조에 있어 완전히 깨끗하다고는 못하겠지만 이들에게도 변절자의 비난은 돌아가지 않는다.
나머지 하나 협의의 변절자로서 불신의 대상이 되는 변절자는 야당전선에서 이탈하여 권력에 몸을 파는 변절자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의 이름을 역력히 기억할 수 있다.자기 신념으로 일관한 사람은 변절자가 아니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의 치욕에 김상헌이 찢은 항서(降書)를 도로 주워 모은 주화파(主和派) 최명길은 당시 민족 정기의 맹렬한 공격을 받았으나 심양의 감옥에 김상헌과 같이 갇히어 오해를 풀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진 얘기이다. 최명길은 변절의 사(士)가 아니요, 다른 신념이 한층 강했던 이였음을 알 수 있다. 또 누가 박중양, 문명기 등 허다한 친일파를 변절자라고 욕했는가. 그 사람들은 변절의 비난을 받기 이전의 더러운 친일파로 타기(唾棄,침을 뱉음)되기는 했지만 변절자는 아니다.
민족 전체의 일을 위하여 몸소 치욕을 무릅쓴 업적이 있을 때는 변절자로 욕하지 않는다. 앞에 든 최명길도 그런 범주에 들거니와, 일제 말기 말살되는 국어의 명맥을 붙들고 살렸을 뿐 아니라, 국내에서 민족 해방의 날을 위한 유일한 준비가 되었던 <맞춤법 통일안>, <표준말모음>, <큰 사전>을 편찬한 조선어학회가 국민총력연맹 조선어학회지부의 간판을 붙인 것을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런 하는 일도 없었다면 그 간판은 변절의 비난을 받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좌옹(佐翁), 고우(古愚), 육당, 춘원 등 잊을 수 없는 업적을 지닌 이들의 일제말의 대일 협력의 이름은 그 변신을 통한 아무런 성과도 없기 때문에 애석하나마 변절의 누명을 씻을 수 없었다. 그분들의 이름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실망이 컸던 것을 우리의 기억이 잘 알고 있다. 그 때문에 이분들은 반민특위에 불리었고, 거기서 그들의 허물을 벋겨주지 않았던가. 아무것도 못하고 누명만 쓸 바에는 무위(無爲)한 채로 민족정기의 사표가 됨만 같지 못한 것이다.변절자에게는 저마다 그럴 듯한 구실이 있다. 첫째 좀 크다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백이숙제는 나도 될 수 있다. 나만 깨끗이 굶어 죽으면 민족은 어쩌느냐가 그것이다. 범의 굴에 들어가야 범을 잡는다는 투의 이론이요, 그 다음이 바깥에선 아무 일도 안 되니 들어가 싸운다는 것이요, 가장 하치가 에라 권력에 붙어 이권이나 얻고 가족이나 고생시키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굶어 죽기가 쉽다거나, 들어가 싸운 다거나, 바람이 났거나간에 그 구실을 뒷받침할 만한 일을 획책(劃策)도 못해 봤다면 그건 변절의 낙인밖에 얻을 것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일찍이 어떤 선비도 변절하여 권력에 영합해서 들어갔다가 더러운 물을 뒤집어 쓰지 않고 깨끗이 물러나온 예를 역사상에서 보지 못했다. 연산주의 황음(荒淫)에 어떤 고관의 부인이 궁중에 불리어 갈 때 온몸을 명주로 동여매고 들어 가면서, 만일 욕을 보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고 해 놓고, 밀실에 들어가서는 그 황홀한 장치와 향기에 취하여 제 손으로 그 명주를 풀고 눕더라는 야담이 있다. 어떤 강간도 나중에는 화간이 된다는 이치와 같지 않은가.
만근(輓近) 30년래에 우리 나라는 변절자가 많은 나라였다. 일제 말의 친일 전향, 해방 후 남로당의 탈당, 또 최근의 민주당의 탈당, 이것은 20년이 넘은, 사상적으로 철이 난 사람들의 주착 없는 변절임에 있어서는 완전히 동궤이다. 감당도 못할 일을 제 자신도 율(律)하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민족이니 사회니 하고 나섰더라는 말인가. 지성인의 변절은 그것이 개과천선이든, 무엇이든 인간적으로는 일단 모욕을 자취(自取)하는 것임을 알 것이다.
우리가 지조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말은 다음의 한 구절이다. 기녀라도 늘그막에 남편을 쫓으면 한 평생 분냄새가 거리낌이 없을 것이요, 정부(貞婦)라도 머리털 센 다음에 정조를 잃고 보면 반생의 깨끗한 고절(苦節)이 아랑곳 없으리라. 속담에 말하기를 사람을 보려면 다만 그 후반을 보라 하였으니 참으로 명언이다.
차돌에 바람이 들면 백 리를 날아간다(늦게 배운 잘못은 더 큰 잘못을 저지른다.)는 우리 속담이 있거니와, 늦바람이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아직 지조를 깨뜨린 적이 없는 이는 만년을 더욱 힘 쓸 것이니, 사람이란 늙으면 더러워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직 철이 안든 탓으로 바람이 났던 이들은 스스로의 후반을 위하여 번연(飜然, 깨달음이 갑작스러움)히 깨우치라. 한일합방 때 자결한 지사시인 황매천(黃梅泉)은 정탈(定奪)이 매운 분으로 매천필하무완인(梅泉筆下無完人)이란 평을 듣거니와 그 [매천야록]을 보면 민충정공, 이용익 두 분의 초년 행적을 헐떧은 곳이 있다. 오늘에 누가 민충정공, 이용익 선생을 욕하는 이 있겠는가. 우리는 그 분들의 초년을 모른다. 역사에 남은 것은 그분의 후반이요, 따라서 그분들의 생명은 마지막에 길이 남게 된 것이다.
도도히 밀려오는 망국의 탁류 - 이 금력과 권력, 사악 앞에 목숨으로써 방파제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지조의 함성을 높이 외치라. 그 지성 앞에는 사나운 물결도 물러서지 않고는 못배길 것이다. 천하의 대세가 바른 것을 향하여 다가오는 때에 변절이란 무슨 어처구니 없는 말인가.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었어도 자기를 위한 36년의 선견지명(?)은 가졌었다. 무너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권력에 뒤늦게 팔리는 형색은 딱하기 짝이 없다. 배고프고 욕된 것을 조금 더 참으라. 그보다 더한 욕이 변절 뒤에 기다리고 있다.
'소인기(小忍飢.배고픔을 조금 참다)하라.' 이 말에는 뼈아픈 고사가 있다.
광해군의 난정(亂政) 때 깨끗한 선비들은 나아가서 벼슬하지 않았다. 어떤 선비들이 모여 바둑과 청담으로 소일하는데, 그 집 주인은 적빈(赤貧)이 여세(如洗.씻은 듯하다)라, 그 부인이 남편의 친구들을 위하여 점심에 수제비국이라도 끓여 드리려 하니 땔나무가 없었다. 궤짝을 뜯어 도마 위에 놓고 식칼로 쪼개다가 잘못되어 젖을 찍고 말았다. 바둑 두던 선비들은 갑자기 안에서 나는 비명을 들었다. 주인이 들어갔다가 나와서 사실 얘기를 하고 초연히 하는 말이, 가난이 죄라고 탄식하였다. 그 탄식을 듣고 선비 하나가 일어서며, 가난이 원순 줄 이제 처음 알았느냐고 야유하고 간 뒤고 그 선비는 다시 그 집에 오지 않았다. 몇 해 뒤 그 주인은 첫뜻을 바꾸어 나아가 벼슬하다가 반정 때 몰리어 죽게 되었다. 수레에 실려서 형장(刑場)으로 가는데 길가 숲속에서 어떤 사람이 나와 수레를 잠시 멈추게 한 다음, 가지고 온 닭 한 마리와 술병을 내 놓고 같이 나누며 영결(永訣)하였다. 그때 그 친구의 말이, 자네가 새삼스레 가난을 탄식할 때 나는 자네가 마음이 변한 줄 이미 알고 발을 끊었다고 했다. 고기 밥맛에 끌리어 절개를 팔고 이쏠이 되었으니, 죽으면 고기맛을 못 잊어서 어쩌겠느냐는 야유가 숨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찾은 것은 우정이었다.
죄인은 수레에 다시 타고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탄식하였다.
'소인기, 소인기(小忍飢)하라.'고-
변절자에게도 양심이 있다. 야당에서 권력으로 팔린 뒤 거드럭거리다 이내 실세(失勢)한 사람도 있고, 지금 요추(要樞.중요한 요직)에 앉은 사람도 있으며, 갓 들어가서 애교를 떠는 축도 있다. 그들은 대개 성명서를 낸 바 있다. 표면으로 성명은 버젓하나 뜻 있는 사람을 대하는 그 얼굴에는 수치의 감정이 역연하다. 그것이 바로 양심(良心)이란 것이다.
구복과 명리를 위한 변절은 말없이 사라지는 것이 좋다. 자기 변명은 도리어 자기를 깎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녀가 아기를 낳아도 핑계는 있는 법이다. 그러나 나는 왜 아기를 배개 됐느냐 하는 그 이야기 자체가 창피하지 않는가.
양가(良家)의 부녀가 놀아나고, 학자.문인까지 지조를 헌신짝같이 아는 사람이 생기게 되었으니 변절하는 정치가들도 우리쯤이야 괜찮다고 자위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역시 지조는 어느 때나 선비의, 교양인의, 지도자의 생명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지조를 잃고 변절한다는 것은 스스로 그 자임(自任)하는 바를 포기하는 것이다. (全文)
*【감상】
이 글은 1960년대 친일파들이 정치 일선에서 행세를 하고, 정치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지조 없이 변절을 일삼는 당대의 세상 모습을 냉철한 지성으로 비판하고 있는 글이다.
지조란 역사의 개관적 상황을 냉철히 인식하고 미래를 예측하여 올바른 길을 판단하고 그것을 초지일관(初志一貫) 밀고 나가는 것이다. 또한 세태에 따라 다소 태도를 바꾸더라도 개과천선(改過遷善)으로서의 변절(變節)일 때는 도리어 지조를 찾은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변절은 단순하게 '절개를 바꾼다'는 의미가 아니라, 개인의 이익을 위해 옳은 신념을 버린 것을 의미한다. '변절자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이 글은 친일파들이 정치 일선에서 행세를 하고,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지조 없이 변절을 일삼는 당대의 세태를, 간접적 체험을 사례로 들어가며, 냉철한 지성으로 비판하고 있다. 또한 민충정공, 이용익처럼 후에 자신의 행적을 반성한 경우에는 그 변절을 용서할 수 있다는 유연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지금 비난받는 자들이라도 열심히 자기 성찰에 힘쓰고 지조를 지킬 것을 당부하고 있다.
<지조론>의 전반부에서는 지조의 정의와 가치로부터 시작되어 자신이 이런 글을 쓰는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개진하고 지조에 관한 자신의 신조를 펼쳐 보인다. 아울러 이런 글을 쓰는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개진하고 지조에 관한 자신의 신조를 펼쳐 보인다. 아울러 지사와 정치가는 다른 것임을 유연하게 인정하면서도 난국의 지도자는 직업 정치인보다도 지사적 품격을 갖춰야 한다는 점도 지적한다.
이 수필은 정치적 혼란기에, 권력에 야합하면서 스스로 신의를 저버린 정치 지도자에 대한 준열한 비판을 담고 있다. 이러한 비판은 변절자를 겨냥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철저한 반성의 일환이기도 하다. 자기 생활의 기록으로서의 수필은 이처럼 자기 자신의 인격 수양과 관련되어 있다.
작가는 정치 지도자를 일반 민중과 구별한다. 일반 민중은 지조를 꺾고 살아도 되지만, 정치 지도자만큼은 변절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작가는 정치 지도자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위해 이 글을 썼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만큼, 그만한 책임도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일반 민중들에게 지조가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지조는 우국지사의 충성심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정직성, 신의를 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작가가 일반 민중에게는 지조를 요구할 필요가 없다고 한 말은 일반 민중의 인격을 무시해서라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정치 지도자에게 지조가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생각을 바꾸면/박 완 서---
그들은 그런 대로 재미가 있을지 몰라도 당하는 쪽에선 고문과 같았다. 나중에는 참다못해 느네들한테 노래할 자유가 있는데 나한테는 왜 안 할 자유가 없냐?고 외치고 말았다. 너무 진지하게 외쳤던지 나름대로 흥청거리던 분위기 일순 서먹해지고 말았다. 그제서야 아차, 싶었지만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아지는 게 아니었다.
(중략 : 유신 시절 남들이 자유를 외칠 때 이를 남의 일인 듯이 외면하고 있었다는 고백이 이어져 나온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데서 자유를 찾는 자신의 모습이 더 부끄럽다는 진술이 담겨 있다.)
나는 나의 유치함에 질려 어쩔 줄을 몰랐다. 그 고약한 기분은 다음날까지 계속됐다. 7,80년대를 끽소리 한 마디 못 하고 살아남은 주제에 고작 노래방에서 웬 자유씩이나, 그 생각만 하면 창피하고 혐오스러워 닭살이 돋을 것 같았다.
그런 자기 혐오는 나는 왜 노래도 못할까? 하는 열등감으로 이어져 온종일 우울했다. 그러고 있는데 고등 학교 동창한테서 오랜만에 전화가 걸려왔다. 왜 목소리가 그 모양이냐고 먼저 이쪽의 우울증을 짚어 내기에 나는 왜 노래도 못 할까? 하면서 하소연을 시작했다. 친구는 딱하다는 듯이 네가 노래까지 잘하면 어떡허게, 라고 말하는 게 하닌가. 나는 그 한 마디를 뛸 듯이 반기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재차 확인까지 했다. 기분이 담박 맑아졌다. 노래도 못 한다고 생각할 적엔 나 같은 건 이 세상에서 무용지물(無用之物)과 다름없더니, 노래까지 잘하면 어떡하느냐는 소리를 들으니까, 노래만 빼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줄줄이 떠올랐다.
10년 전 참척(慘慽)을 당하고 가장 힘들었던 일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하는 원망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는 거였다. 원망스럽기만 한 게 아니라 부끄러움까지 겹쳤다. 저 여자는 무슨 죄를 많이 지었기에 저런 일을 당했을까? 수군거리면서 손가락질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이 나만 보고 흉보는 것 같아 두문불출(杜門不出)하고 있어도 하늘이 부끄럽고 땅이 부끄러웠다. 슬픔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게 원망과 치욕감이었다. 하늘도 부끄럽고 땅도 부끄러웠고 이 세상에서는 도저히 피할 곳이 없으니 차라리 죽고 싶었다.
그때 만난 수녀님이 이상하다는 듯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래, 내가 뭐관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을 나에게만은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여긴 것일까. 그거야말로 터무니없는 교만이 아니었을까.
한 마디 말이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지만, 말의 토씨 하나만 바꿔도 세상을 달라지게 할 수도 있다. 바닥의 앞과 뒤는 한 몸이요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뒤집지 않고는 볼 수 없는 가장 먼 사이이기도 하다. 사고의 전환도 그와 같은 것이 아닐까. 뒤집고 보면 이렇게 쉬운 걸 싶지만, 뒤집기 전엔 구하는 게 멀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