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도록 맑은 공기 가르는 두루미떼…한탄강 품에 안겨 걷노라면 절로 탄성이
 |
신철원 남동쪽에 솟은 명성산 자락의 삼부연폭포는 중생대 쥐라기의 화강암이 흐르는 물에 오랜 기간 깎여 세 번 꺾이면서 만들어졌다.
|
|
- 신생대 제4기 화산폭발로
- 흘러내린 용암이 지면 메워 철원용암대지 형성
- 강 한쪽 협곡에 우뚝 선
- 15m높이 '고석'을 비롯해
- 이름난 지질·지형 명소가 철원 한탄강변 곳곳 위치
요즘은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여행자 친화적'이다. 고속도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국도뿐만 아니라 지방도도 4차로로 시원하게 뚫려 있다. 도로뿐만이 아니다. 어지간한 명소는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게 꾸며놓고 탐방로나 시설을 설치해 놓았다. 그렇지만 실제 가보면 실망하는 일이 잦다. 그만큼 '과대포장'된 곳이 많기 때문이다.
지나친 '포장'에 지친 여행자라면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개발의 손을 덜 탄 곳이 반갑다. 흔히 때 묻지 않은 자연이라면 서남해안의 한적한 섬이나 강원도 산골 오지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위적인 훼손이 적은 곳이 휴전선을 따라 이어지는 비무장지대다. 155마일(250㎞) 휴전선 가운데 3분의 1에 가까운 50마일(80㎞)이 지나는 곳이 강원도 철원군이다. 이맘때 철원의 들녘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겨울을 나려 시베리아에서 온 세계적인 진객 두루미이다. 여기에 더해 철원은 제주도를 제외하고 뭍에서는 유일한 현무암 지대로 한탄강을 따라 자연의 신비를 감상할 수 있다.
■겨울 철원은 두루미의 안식처
|
 |
|
토교저수지 위로 비상하는 두루미떼를 보는 탐조객들. |
새벽어둠을 뚫고 잇달아 통제소를 지나 도착한 곳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토교저수지. 뿌연 안개 너머 아침을 알리는 철새들의 요란한 울음소리가 전해온다. 저수지에서 밤을 보낸 두루미와 오리 등 철새들은 해가 뜨기 전후 몇 마리씩 또는 큰 무리를 지어 날아올라 인근의 논으로 가서 먹을거리를 찾는다. 두툼한 방한복을 차려입은 탐조객들은 저수지 둑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철새들의 비상을 기다렸다. 10분 정도를 기다렸을까. 저수지 안쪽이 점차 부산스러워지더니 한순간 한 떼의 두루미가 날아올라 다가오더니 머리 위를 지나 순식간에 들판 쪽으로 사라졌다.
안개 탓에 날아오르는 모습을 볼 수 없는 탓에 가까이 다가와서야 이들의 접근을 알아챈 탐방객들은 바쁘게 하늘을 바라보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20~30마리씩 무리를 지어 몇 차례 지나간 뒤 일순간 앞서와는 다른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수백 마리의 두루미가 하늘을 가득 채운 장관이 펼쳐졌다. 희부연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두루미의 실루엣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모두 한 방향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날아가는데 간혹 한두 마리가 가족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모습이 살짝 웃음을 자아냈다. 다시 작은 규모의 두루미떼가 몇 차례 지나가고 한 번 더 시끌벅적한 울음소리와 함께 두루미 수백 마리가 저수지를 떠나 아침 먹을거리를 찾아 나섰다.
휴전선과 가까운 철원의 민통선 지역은 오랫동안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데다 주민 대다수가 농업에 종사할 만큼 공장이 없어 오염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또 논이 많은 만큼 추수 후 떨어진 낟알이 먹이가 돼 철새들이 철원을 주요 이동 경로이자 월동지로 활용하게 됐다. 최근에는 또 다른 두루미 서식지인 일본 이즈미 지역의 환경이 훼손되면서 철원을 찾는 두루미가 더 늘었다. 토교저수지를 떠난 두루미떼는 낮엔 민통선 내의 여기저기 논에 흩어져 먹이를 찾는다. 특히 남방한계선에 가까운 월정리역 일대는 겨울이면 탐방 차량 외에는 인적이 끊겨 여유롭게 거니는 두루미들을 볼 수 있다.
철원 두루미는 겨울 철새인 만큼 이맘때만 볼 수 있다. 또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있는데다 철새들이 스트레스를 적게 받도록 개인 차량은 출입을 제한하고 버스만 들어갈 수 있다. 매년 12월에서 이듬해 2월 말까지 운영하는 철새탐조관광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된다. 고석정 입구의 철의삼각전적지관광사업소에서 매주 수요일과 토·일요일 오후 1시30분에 출발한다. 토교저수지 외에도 철원평화전망대 근처 동송저수지 일대에서 재두루미와 흑두루미, 기러기를 볼 수 있다. 탐조관광은 시간이 바뀔 수 있으니 철원군청(관광문화과 033-450-5534)에 문의하고 가는 게 좋다.
■한탄강 따라가는 자연사 기행
철원은 독특한 지질 명소도 여럿 감추고 있다. 철원 일대는 신생대 제4기에 일어난 화산활동의 결과로 제주도와 함께 우리나라 내륙에서는 유일하게 현무암으로 구성된 곳이다. 특히 다양한 지질·지형 명소는 한탄강을 따라 있어 강변을 트레킹하며 살펴볼 수 있다. 한탄강은 '큰 여울'이란 이름에서 보듯 물의 흐름이 빠른 급류가 많다. 그래서 여름이면 영월 동강, 산청 경호강과 더불어 우리나라 강 가운데 래프팅을 할 수 있는 드문 곳 중 하나이기도 하다.
휴전선 너머 북한의 평강에서 발원한 한탄강은 화산활동의 결과로 용암이 흘러 만들어진 철원 평야를 가로지른다. DMZ를 따라 있는 강원도의 철원, 화천, 양구, 인제, 고성군 등 5개 군이 지역의 지질·지형 명소를 아울러 '강원평화지역지질공원'으로 부르고 있다. 이 가운데 철원에는 6곳의 명소가 있다. 27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 사이에 북쪽 평강 지역의 화산에서 흘러온 용암이 지면을 메워 평탄해진 곳이 바로 지금의 철원용암대지다. 철원 일대를 다니다 보면 뜻밖에 넓은 평야 지대란 걸 알 수 있다. 곳곳에서 제주도와 같은 거무스름한 현무암이 보인다.
승일교에서 고석정을 지나 송대소까지 한탄강 생태탐방로가 조성돼 있어 트레킹을 하며 주변 명소를 둘러볼 수 있다. 고석정이 있는 고석(孤石)은 한탄강 협곡의 한쪽에 15m 높이로 불룩 솟은 바위다. 인근 사람들이 예전에 여름이면 바위 위 소나무 그늘에서 더위를 식혔다는 고석정은 주변이 현무암인 것과는 달리 밝은색의 화강암이다. 현무암 용암에 덮인 단단한 화강암이 한탄강의 침식작용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고석정에서 운행하는 보트는 겨울이면 물이 얼어붙어 운행하지 않지만 대신 꽁꽁 언 얼음 위로 트레킹하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고석 바로 아래는 수심이 15m나 되지만 수십m만 하류로 내려가면 어른 키 정도로 수심이 얕아진다.
고석정 인근에서 한탄강과 합류하는 대교천은 현무암 대지 사이를 흐르는 좁고 깊은 골짜기다. 협곡 하류는 20~30m의 절벽 사이를 흐르는데 현무암류의 용암이 풍화 침식돼 생기는 주상절리가 발달해 있다. 또 승일교 상류의 직탕폭포는 높이 3m, 너비 80m의 폭포로 층을 이루고 식은 용암 위로 오랜 기간 물이 흐르면서 용암층이 주상절리를 따라 쪼개지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외 가볼 곳
|
 |
|
임꺽정의 이야기가 얽힌 한탄강변의 고석. |
삼부연폭포는 신철원 남동쪽 명성산 자락에 있다. 중생대 쥐라기의 화강암이 지표에 드러난 뒤 흐르는 물에 오랜 기간 깎여 만들어졌다. 높이 20m의 삼부연(三釜淵) 폭포는 물줄기가 세 번 꺾이고 폭포 아래가 가마솥처럼 움푹 패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 좁은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나오는데, 눈이 내린 직후엔 올라가기 어렵다.
도피안사는 철원평야에서 야트막하게 솟은 화개산 아래에 있다.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여러 차례 전란을 겪으며 소실됐고 한국전쟁 때 완전히 폐허가 됐다. 예전에는 민간인통제구역 안에 있었지만 민통선을 북쪽으로 옮기면서 지금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국보인 철조비로자나불 좌상과 보물인 삼층석탑이 있다.
# 이승만·김일성 이름자 딴 승일교
- 영원히 달리지 못할 파괴된 철마
- 분단의 상처가 관광 자원으로
|
 |
|
'철마는 달리고 싶다'로 잘 알려진 월정리역의 현재 역사는 1988년 복원한 것이다. |
철원은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비무장지대의 3분의 1을 차지하며 남과 북이 팽팽하게 대치하는 곳이자 한국전쟁 당시 격전이 펼쳐졌던 곳이다. 그런 만큼 안보관광지로도 잘 알려졌다. 일부러 찾아가지는 않더라도 철원 곳곳에 분단과 대치의 아픔을 보여주는 명소가 많다.
승일교는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로 이승만과 김일성의 이름에서 한자씩 따서 붙였다. 이 일대는 한국전쟁 전 북한 땅이었는데 북한이 만들다 중단된 공사를 전쟁 후 국군이 계속해 완성한 다리다. 한탄강 협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라 높이는 35m나 된다. 다리는 지탱하는 아치 2개의 모양이 서로 다른데 이는 남과 북이 각각 공사한 결과로 분단 현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바로 옆에 한탄대교가 있어 보행자용으로만 사용된다.
남방한계선에 바짝 붙어 있는 월정역은 철원 안보관광의 대표적인 장소로 폭격을 맞은 객차의 잔해가 그대로 보존된 채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팻말을 앞에 두고 있다. 지금의 역사는 1988년 복원한 것이다. 수십 m 거리에 남방한계선 초소가 있어 사진 촬영 때는 역사와 열차만 담도록 주의해야 한다. 관광객이 오면 초병들이 달려와 계속 주의하라고 하기도 한다. 월정역 주변은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고 논이 많아 낮에 두루미를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의 대표적 격전지였던 백마고지 전적지도 들러볼 만하다. 백마고지는 1952년 열흘 동안 주인이 24번 바뀔 정도로 혈전을 벌인 끝에 국군의 승리로 매듭지어진 곳이다. 백마고지에는 출입할 수 없고 남쪽 고지에 기념탑과 전적지를 조성해두었다. 가까이 있는 노동당사는 붕괴 위험이 있어 최근 보수공사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