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향기 국화꽃향기 그리고 하늘
정경진
배내옷 가지런히 잘 갖춰입은
꽃씨, 풀씨, 텃새 둥우리들
눈 뜨지 않은 솜털 고양이처럼
배내짓 연신 해대며
아리랑 고개 미끌려 내려와
버선코 추임새 품으로
사라락 파고들고 있다
놋그릇 흥에 목 축이는
푸른 하늘처럼
내 목젖 촉촉이 젖고 있다.
수성못 바라보는 고구려와 날치
정 경 진
낼,모레,글피면 글쎄 또 추석
후다닥 엎어지면 코 닿을 이상화시비앞 수성못
분수장치,올렛길 한바퀴 도는데 인색한 나인데
내안의 의사선생님 청진기는 발바닥에서 머리끝까지
투다닥 투투투 두드리며 돌고 돈다
해질녘 스케이트월츠 추는 오리 거위떼
시간 가는줄 알고 몰려와 노닥거리는 모습 찰칵
낮밤 구별없이 양동이로 퍼붓던 빗줄기 멈춘하늘 찰칵
아직 어설프게 남아있는 청국장의 끈적거리는
끈끈한 생명줄들이 앞산위에 찾아와 우뚝선 몇 천년전
백의민족의 고구려와 날치를 휘감싸며 요동친다
마주 선 내 뇌리에 선명히 보여주는 하늘이야기
찰칵 찰칵 담아간다
관룡사를 찾아서
정 경 진
사흘 굶은 논 귀퉁이에 쥐죽은 듯이 앉아
회상하는 볏단의 군락
한 폭의 그림으로 밀치는
뻣뻣한 화왕산 오르는 설렁한 가슴 안에
소낙비 내릴 때
다시 물 오르는 내가 보인다
고개숙인 억새풀
시계바늘의 그림자 흔들고
몸과 마음 안팎 부지런히 다듬는 단풍잎
보름달밤 오지랖처럼 크게 눈 뜨며
참선하는 오지의 땅
깨우지 않은 산비탈 새벽길
조신조신 밟고 내려가
관룡사 대웅전 석가모니 여래 앞에
하늘 얹은 바윗돌에 잠시잠시 넋두리 풀어놓는
까마귀 넉살로 엎어질 듯 엎드리면
낯선 몸짓 덩그렇게 앉아 있을 수 없게
후끈 휘감는 거대한 강물
목젖 열고 넘어가기 전에 뭍을 찾아
헤엄치는 나는 물살 마다하고
바위 끌어안은 이끼도 물고기도 아닌 것이다
장가계에 올라서서
정 경 진
내뿜는 뽀얀 담배연기없이 무슨 회의들 하나
주거니 받거니 날개짓 하던 이야기 뚝 그치고
모아 쉰 눈빛만 치켜 세우고 있습니다
하얗게 바래진 좌담회 자리
석순처럼 솟아 올라 빙그르르 도는 의자끼리
혹여 닿을까 차렷 자세로 몸 사리고 있습니다
서넛 둘러앉은 자리라 생각했는데
둘러보니 만만치가 않습니다
쪽지에 쓴 하고많은 건의사항
올라오다 볕에 바래어 져서
들고 오는 이도 무슨 영문인지 전할 수 없어
침묵의 골은 더 깊어만 갑니다
잠시 쉬는 시간을 알리는 매미 소리만
훨훨 날개옷 입고 자유로이 날아 다닙니다
그래도 지금은 만만찮은 회의중입니다
목련꽃
정 경 진
잠시 잠깐
정신없이 낮잠 자고 나서
후드득 기지개 켜는
꼬인 가지들,
한낮보다 더 크게 웃는 목련꽃
해 떨어지는 선잠 끝에
채찍질하는 바람 닿자
화들짝 놀라
물배 채워 계단 밟는
어린 구름 어루만진다
먼 곳의 해
가까이 얹어 놓은 가지들
그대로 머물러 있게
처진 어깨 에워싼 허기진 하늘 아래
꿈꾸는 밤 찾아와도
잠들지 아니하고
아가방 지키는 전기불처럼
휘청거리며 깨어 있네
꽃자리 한때처럼
정 경 진
길가에 뜬금없이 떨어진
껍데기뿐인 검은비닐 봉지 하나
풋풋풋 달겨드는웃음 채곡채곡 담아
웅비하는 새처럼
푸하하 날개짓하며 날아오른다
전신주에 걸릴 듯
꽃나무에 사뿐 내려앉을 듯
몇 구비구비 세상살이 넘고 넘다
달아나는배꼽 움켜쥐고 나 살려라
떼구르르 굴렁쇠처럼 마구 뒹군다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길 모퉁이에
후줄그레 남겨질 지도 모르는
검은비닐봉지 하나
꽃자리 한때처럼 지금
무슨 꿈 꾸며 뒹굴고 있는지
한동안 바라보며
바람부는 벌판에 나는 서 있다
현풍 곽씨 십이정려각
정 경 진
예전엔 형체도 없던 사람들 웅성웅성
한 말씀! 지금 밀양 영남루는 예전에
난리법석 물난리로 떠 내려간 현풍루라네?
둥둥 떠오른다 뱃놀이 소풍가서 물에 빠져
기겁한 옷 말린곳, 무궁화 기차 지나가며
눈도장 찍는 아랑각, 밀양 영남루, 다행한 일
400년 지나고 다섯번째 사춘기 접어든
솔례마을 「현풍 곽씨 십이정려각」 마주한 순간
눈 깜짝할 사이 누 훅 불어 끈 듯 고요하다
쏟아질 듯 그칠 듯 하늘거리는 빗줄기 춤사위
연꽃군락 남생이 갈대 휘 휘 펼쳐 놓은 뚝길
거닌다 보물찾기하는 재롱둥이 용흥저수지
봄눈 녹이 듯 넘어가는 커피 마시며
나름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지리 솔례마을」
책거리 마침표 찍는다
감홍시 발그레한 얼굴
정 경 진
간밤 아무도 모르게 앞산으로 살금 왔다가
팔공산 코끝 아래로 조용히 짧은 인사 남기고
지나간 그가 긴 편지를 써 놓았다
새소리 재잘재잘 들으며 깨어나는 아침이어야겠죠
출근하는 발걸음 질척거리면 안되겠죠
한낮은 맨발로 뛰어다니면
밝아지고 이쁘겠죠
솜같이 가볍던 몸 퇴근길에 나서면
물에 젖은 듯 피곤하니 조용히 해야겠죠
아직도 하루 끝나지 않은 밤
낮같이 바쁘니 조용히 지켜봐야겠죠
발길 멈춘 것은 깨어있는 누군가가
다가오며 자꾸 뉘쉬유 그대 뉘신가
묻기 때문입니다
아하, 잎 떨군 감홍시의 발그레한 얼굴이
유난히 밝습니다
어느 분이 사시는 곳이길래
팔공산과 앞산 마주보고
밤낮 보초를 서고
금호강은 몸 낮추어 흐르고
아침이슬 송글송글 맺힌다
꽃들의 속삭임
정 경 진
너덜너덜 생긴 대로 울퉁불퉁거리며
갈무리 못한 길 찾아 헤메이다
걷어채이는 돌멩이들 무어라 말 걸어오는지
새 색시인 양 분홍 볼우물 인기척 내는 꽃들
저 나름대로 피었다고 낯가림하며 수런수런거린다
졸졸졸졸 생긴 대로 기웃기웃거리며
보이지 않는 길 찾아 헤메이다
흘러가는 시냇물들 무어라 말 걸어오는지
새 색시인 양 분홍 볼우물 인기척 내는 꽃들
저 나름대로 피었다고 낯가림하며 수런수런거린다
천태산 영국사 아래 은행나무
정 경 진
다산을 천번해도 단 하나
거느리지 못하는 천태산 영국사 아래
은행나무의 꿈은 무엇일까
해우소의 물컹한 향기
쪼글쪼글 말아쥔 열매속에
팽팽한 녹색 꿈이 하얗게 영글고 있다
콩고물처럼 떨어지는 황금잎 하나 하나
주워 들여다 보면 노오란 사랑표다
쇠똥구리 말똥구리는 천태산으로 들어가고
개똥벌레는 영국사로 들어갔다
산기를 비는 사람들
삼신할머니 뒷전에 두고
노오랗게 치장한 은행나무 아래로 모여든다
은행나무는 지금 산란 중이다
<약력>
2001년, 「詩現實」등단.
대구문협, 대구시협, 한국문협 회원.
주소 : 대구광역시 수성구 수성로 121-13
jkj5997@hanmail.net
첫댓글 축하드립니다!
목련꽃은 아기방 지키는 전기불이였네요~~
곧 산란중인 은행잎 흐드러질
예전에는 마을의 중심처럼 꽃띠 두른 은행나무도 상샇합니다
잘 감상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