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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글의 가난하고 자상한 부모님 이야기 읽고
저는 좀 다르지만.. 어쩌면 비슷할까 해서 저도 써봐요.
어릴때 저는 할머니 밑에서 자랐어요. 부모님이 사업에 실패하고 형편이 안좋아지면서
어린 저를 할머니께 보냈죠.
갓 태어났을 때부터 열살까지 할머니가 키우셨어요.
부모님은 명절이나 할머니 생신이나 가끔 내생일에 오기도 하고...
지금도 기억나는 할머니 집, 깡시골에 텃밭 있는 찌그러진 집이었어요.
그때 칠순이 넘었던 할머니가 저를 얼마나 애지중지 키우셨던지...내 강아지 내 강아지...
할머니 텃밭에서 땡볕 받고 일하시는 동안 나는 흙 파고 놀고... 그늘에서 낮잠 자고...
할머니 등짝에 기어오를때 땡볕에 달아오른 뜨거운 등짝...
햇볕냄새... 할머니 냄새...지금도 그리워서 시큰해요.
부모와 떨어져서 시골에 큰다고 서러운 기분이 하나도 없었어요.
하루는 할머니가 비엔나 소시지를 볶아주셨는데 세상에 그런 천상의 맛이... ㅎ
어린애들 좋아하는 반찬이 뭔지 몰라서 멀리 사는 젊은 부부에게 가서 애들 반찬 뭐 해주냐고 물어보셨대요
장에 가는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그 비엔나 소시지를 꼭 한봉지씩 사셨어요 ㅎ
할머니 동네는 버스도 이틀에 한번씩 오는 깡시골이라 수퍼마켓도 없었거든요.
하지만 소세지도 좋았지만 할머니가 사철 볶아주는 김치볶음이면 더 바랄게 없었어요.
반찬이 늘 똑같았던거 같아요 물만 밥에 김치볶음 ㅎ 우리 할머니가 할줄아는 최대의 애기 음식이 김치볶음이었나봐요.
가끔 김 구워주시고... 할머니 잘 드시던 나물이나 겉절이는 제가 잘 안먹었구요.
지금생각하면 가난하길 가난하길...
TV는 당연히 없었고, 라디오는 나오다말다... 푸세식 변소였구요. 휴지도 없었어요
할머니는 신문지나 거친 짚풀 비벼서 쓰셨고, 저는 애기라고 꼭 물로 씻겨주셨어요.
부끄럽지만 저는 인생 그때 가장 청결했을거예요... ㅎ
근데 어릴땐 가난한줄 몰랐어요. 그냥 웃을 일밖에 없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까지 할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가난한 집이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친구들 데려와서 놀았어요.
친구들도 우리집 오는걸 좋아했어요. 뭐든 허용되는 자유세계... 할머니가 부쳐주는 부침개맛...
그때 할머니가 키우던 닭들만 쳐다봐도 하루종일 신났어요.
부모님 형편이 좀 나아졌다고 서울로 가게 되었을때 공포스럽던 기억이...
오빠는 계속 부모님이 키우셨는데 나한테 못되게 하진 않았지만 오빠 얼굴엔 늘 심술이 더덕더덕 붙어있었거든요.
서울에서 살기가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내가 오빠를 불쌍해할 지경이었는데
서울로 와서 너무 깜짝 놀랐어요. 엄마아빠 사는 집이 상상 이상으로 부잣집이더라고요.
알고보니 아빠 사업은 예전에 일어섰는데 꾀가 나서 날 데려오기 싫어서 10년간 할머니께 방치했던 거...
하루아침에 이층집에 내방 생기고 자가용 타고 살게 됐는데
지옥이 여기구나 싶었어요.
엄마는 이제부턴 공부해야한다고 닥달...
내가 너한테 안해준게 뭐가 있냐고, 애가 감사한줄을 모른다고 닥달...
애가 뻣뻣하다, 정이 없다, 고마운줄 모른다, 멍청하다, 배은망덕하다, 촌스럽다, 남부끄럽다...........................
할머니는 단 한번도 나에게 아들 며느리 욕한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전혀 몰랐어요. 그냥 엄마아빤 고생하는 줄만 알았죠.
부모 밑에서 자랄때는 그저 내가 부족한줄, 잘못한줄, 모자란줄 알았어요... 그래서 늘 혼나고 들볶이는줄...
자라서 어른이 되면서야 깨달은건 내 부모가 짐승같은 자들이었다는 거였어요.
어떻게 우리 할머니 같은 사람이 아빠같은 자식을 낳았는지... 운도없지 그런 며느리를 봤는지...
자기 홀어머니한테 딸을 10년 맡겨 키우면서 부부가 똑같이 그렇게 모른척 돌보지 않을 수 있었는지
할머니와 저는 서로를 견우직녀처럼 그리워했는데
부모는 우리가 애틋한것도 그리 못마땅했는지, 방학때 한번 데려다주질 않더라고요.
명절때도 나 공부해야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시골에 안 갔어요
평생 산골짝 마을 떠난적이 없던 할머니가 나 보러 애써 서울에 올라오시고...
다리 다치신 뒤로는 그마저도 못오시고...
중학교때 한번 무작정 시외버스 타고 할머니 댁에 갔어요... 병들고 혼자 늙어가던 우리 할머니...
얼른 올라가라, 이젠 서울에서 공부 열심히 해야지, 여기 오면 안된다 하시던... ㅠ.ㅠ
할머니 돌아가시고 세상 잃은듯 방황하다가,
내가 비뚤어지면 할머니가 얼마나 속상해할까 정신이 번쩍나서 미친듯이 공부해서 출세했어요.
이제는 부모와 거의 인연을 끊고 삽니다. 가끔 봐도 불편하고 아무런 공감이 들지 않아요.
어떻게 저사람들이 할머니랑 혈연인가 신기할뿐...
그들에게 유일하게 고마운건, 날 십년동안 할머니께 던져두고 돌아보지 않았다는거...
덕분에 나는 세상 둘도없는 사랑을 받고 세상 건강하고 밝은 사람으로 자랐거든요.
진짜 사랑을 받으면, 어릴땐 가난이 힘들지 않은 것 같아요.
시골 초등학교에서도 사철 김치볶음뿐인 제 도시락 반찬은 유난히 초라했거든요. 그래도 아무렇지 않았어요.
애들이 우리 할머니 김치볶음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ㅎ
부모 밑에서 돈걱정 안하고 살았던 십대가 저에겐 지옥같은 기간이었죠 오히려.
내 부모가 나한테 물려줄 재산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는데, 받고싶지도 않고
준다면 그 돈은 손도 대고싶지 않아요. 우리 할머니 살던 마을에 목욕탕이나 짓고싶어요...
제가 아는 가난은... 할머니의 사랑과 얽혀서
그냥 한없이 포근하고 그립기까지 한... 그런 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