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타임스 120>
<김진수의 들꽃에세이 120>
“너를 위해 온전히 나를 바친다” - 지치(紫根)
학명: Lithospermum erythrorhizon Siebold & Zucc.
목련강 꿀풀목 지치과 지치속의 다년초
『지치』의 속명 리토그페르뭄(Lithospermum)은 리토스(lithos, 암석)와 스페르마(sperma, 열매)가 합성된 라틴어에서 유래한다. 종소명 에리트로리존(erythrorhizon)은 붉은(erythro) 뿌리(rhizus)라는 뜻으로 지치의 뿌리 색에서 연유한다. 영명도 ‘redroot-Gromwell’이다. 지치에 대한 첫 한글 기재는 15세기 《구급간이방》에 ‘지최’로 나온다. 이것이 지초를 거쳐 지치가 된 것. 지초 뿌리의 붉은 색을 적시한 영명이나 종소명처럼 한자 이름도 자주색 뿌리를 강조하여 자초(紫草)·자근(紫根)이다. 더러 지초(芝草)라고도 하는데, 지초는 자전(字典)에서 상서로운 버섯 또는 일산(日傘, 볕을 가리기 위한 큰 양산)이라 하였는바 ‘芝’는 불로초과에 속한 버섯‘영지(靈芝)’를 지칭한다.
5~6월에 피는 작은 꽃은 흰색이며 5갈래로 갈라지고 잎에는 억센 털이 가득하다. 열매는 8~9월에 맺는다. 주로 밝은 숲속이나 가장자리, 구릉지나 풀밭, 표토가 깊고 부식질이 풍부한 지역이 지치의 삶터이다. 생육조건이 까다로워 배수가 불량한 땅이나 강한 광선을 싫어하며 여름철 고온다습한 조건에서 뿌리 썩음이 발생한다. 야생에서 매우 드물게 발견되는 종보존등급 Ⅱ의 중대감시대상종이다.
같은 속(屬)의 ‘반디지치’는 산지에서 자라며 분홍빛에서 파란 색으로 변해가는 작고 예쁜 꽃을 피운다. 줄기는 꽃이 진 다음에 옆으로 뻗으면서 마디마다 뿌리를 내리고 이듬해에 새싹과 꽃줄기가 올라온다. 반디지치는 일본 명 ‘형갈(螢葛)’에서 왔다. 파란 반딧불처럼 예쁜 별 모양의 꽃과 칡처럼 줄기로 기는 특징을 표현한 것. 옹진군 대청도에서 처음 발견되어 부르게 된 ‘대청지치’는 키가 10~15㎝ 정도로 작으며 전체에 길고 거친 털이 밀생한다. 대청지치는 2011년에 국가표준식물목록에 새롭게 추가된 식물종이다. 또 ‘개지치’는 산이나 들에 나는 한해 또는 두해살이식물로 키는 대청지치보다 크지만 털은 더 짧다. ‘당개지치’는 개지치처럼 뿌리에 염료로 사용하는 색소가 없으며 우리나라에 1종이 분포한다. 당개지치의 ‘당(唐)’은 원산지가 중국임을 뜻한다. 바닷가 모래땅에서 자라는 ‘모래지치’가 있고 산지에서 자라며 잎의 양 면에 강모가 밀생하는 ‘산지치’, 열매에 갈고리 모양의 가시가 특징인 ‘들지치’, 밑에서부터 위로 가지가 많이 갈라지는 ‘돌지치’, 고지대에 분포하는 ‘뚝지치’ 등 지치과 식물은 우리나라에 13속 약 22종이 분포한다.
지치는 약초세계에서 이름값이 상당히 높다. 지치를 한방에서는 「자근(紫根)」이라 하여 약으로 쓰는데 성은 차고, 맛은 달고 쓰며 짜다. 간과 심경으로 들어가 해열하고 활혈(活血)한다. 소아홍역과 수두의 초기단계에 열을 내리고 해독하는 능력이 우수한데, 발진이 되어 이미 활발할 때 보다는 반진이 있을 때 사용하는 것이 좋다. 자근에는 항균, 항염, 배농, 해독작용이 있으므로 악창·습진·음부소양 및 화상에 사용하며 이뇨·이담·이습의 효능으로 급성간염의 예방과 치료에 쓴다. 또 소아 고열과 편도선염, 열에 의해 위로 넘치는 코피, 아래로 터지는 혈림을 다스린다. 자근 추출물이 피부 구성 지방인 세라마이드(Ceramide)의 분해 억제작용을 통해 아토피 치료 활성을 보이며 주성분인 시코닌(Shikonin)은 항암활성을 갖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지치의 꽃말은 ‘희생(犧牲)’이라 한다. ‘犧’는 흠 없는 소(牛)를 뜻하고, ‘牲’은 제사에 쓸 온마리 소를 뜻한다. 소의 편에선 인간의 제사를 위해 흔연히 자신의 목숨을 내놓겠다는 의미이므로, 희생이라는 낱말은 “너를 위해 온전히 나를 바친다.”로 풀어진다. 우리가 먹는 매일의 양식과 고기, 언제라도 아프면 기꺼이 탕약이 되어주는 지상의 모든 푸나무들이 고맙다. 사람의 병 치료를 위해 통째 뽑아주는 지치의 뿌리는 하필 소의 피처럼 붉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