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소시지’에 대해 환상을 가졌던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장편 소설을 읽고서였습니다. 강제노동수용소에서 10년 노역을 하는 주인공이 몰래 숨겨 놓은 칼을 빌려주고는 소시지 한 도막을 얻어먹는 장면이 있는데 그 소시지가 향긋한 고기내음을 풍기며 입 안에서 목으로 넘어갈 때의 묘사를 보고 소시지가 그렇게 맛이 좋은 것인가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서울에 와서 소시지를 먹어보니, 이건 고기가 아니라 밀가루라는 생각만 들었고 ‘독일식 소시지’라고 해서 먹어봐도 별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뒤에는 소시지에 대한 환상을 아예 버렸습니다. 비엔나소시지도 별거 아니고 군에서 나오는 ‘조미육’이 그나마 제일 나았습니다. 그래서 소시지는 쳐다보지도 않는데 오늘 꽤 유명세를 타는 소시지가 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보통 소시지 하면 두툼한 손가락처럼 길쭉한 형태가 가장 많습니다. 그리고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라고 하는 훨씬 짧고 얇은 소시지도 우리나라에서 많이 팔리는 소시지 종류입니다.
그런데 2017년 한국에서 소시지 하나가 출시됩니다. 바로 폴란드 전통 소시지 '킬바사’입니다. 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소시지는 최근 우리나라 소시지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제품인데도 말입니다.
키엘바사(Kielbasa)는 폴란드어로 '소시지'라는 뜻입니다. 폴란드에서는 소시지를 만들면 길쭉한 양쪽 끝을 묶은 후 막대기에 이를 걸쳐놓고 제조하는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말발굽 모양 소시지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1989년부터 소시지, 햄 등 육가공제품을 만들던 에쓰푸드라는 중소기업이 있습니다. 백설햄, 롯데햄, 진주햄 등 기존에 소시지를 만들던 회사들이 가정용 시장에 집중하는 동안 피자·샌드위치 등에 들어가는 소시지와 햄으로 성공을 거둔 기업입니다. 존쿡델리미트는 이 회사의 소비자용 제품 브랜드입니다.
과거부터 서양식 특이한 햄·소시지를 시험적으로 많이 출시하던 이 회사는 2017년 폴란드식 소시지 '킬바사'를 출시하게 됩니다. 폴란드식 소시지라고 해서 제품을 폴란드에서 수입하는 것은 아니고, 우리나라 돼지고기·소고기를 재료로 폴란드식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사실 킬바사는 모양만큼이나 특이한 소시지입니다. 고추가 들어가 상당히 매콤할 뿐만 아니라 향도 강렬합니다. 호불호가 상당히 갈릴 수 있는 제품이라는 뜻입니다. 보통 소비자에게 낯선 제품은 식품시장에서 묻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먹는 것에 보수적이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음식은 시도해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킬바사의 특이한 모양을 어필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킬바사가 출시된 다음해인 2018년부터 유튜브에 킬바사를 먹는 영상이 올라왔는데요. 아무래도 모양부터 기존에 우리가 알던 소시지와 다르다는 점에서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쓰푸드는 자신들의 소시지 제품에 대해 풍부한 육즙과 탱탱한 식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육즙과 탱탱함이 '먹는 소리'가 중요한 먹방에서 킬링포인트로 작용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킬바사 먹방을 보면 유튜버들이 소시지를 한 입 물어뜯었을 때 나는 톡톡 터지는 소리가 매우 자극적입니다.
에쓰푸드가 2017년 처음 킬바사를 출시할 때 유튜버나 먹방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전혀 의외의 곳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회사 측도 어안이 벙벙했다고 합니다. 기껏 먹방 유튜버들이 먹는다고 소시지가 잘 팔렸을 까요? 그렇습니다. 잘 팔리게 되었습니다.
2018년 8만개 정도 팔렸던 킬바사 소시지는 2019년 50만개, 2020년에는 208만개가 팔렸습니다. 208만개는 무게로 따지면 600t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킬바사 1팩 가격이 5000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최소 100억원 이상 매출이 킬바사 소시지 단일 품목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니치마켓을 공략하는 제품이 이 정도 성공을 거두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에쓰푸드 킬바사가 중소기업들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요.
유튜브와 같은 새로운 미디어와 채널이 중소기업들에는 큰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킬바사 사례처럼 유행은 인위적으로 기업이 만들려 한다고 해서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유튜브 먹방처럼 새롭게 만들어진 트렌드에 올라타려는 노력을 계속해야지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아닐까요.>매일경제, 이덕주 벤처과학부 기자
킬바사를 아직 먹어보지 않아서 제가 뭐라 말을 할 단계는 아니지만 소시지는 역시 소시지일 거라는 생각입니다. 고기는 뭐라해도 그냥 고기 자체로 먹어야지 다른 방법으로 저장한 것이나 맛을 가미한 것은 오히려 그 맛을 떨어뜨린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일부 유튜버들 때문에 덕을 보는 사람도 있지만 엄청난 피해를 보는 사람도 많은 것이 현실일 겁니다. 무슨 일을 하든 바른 방법으로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