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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의 성립
불교경전이라고 하면, 현대인은 문자로 엮어진 ‘경經’을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석존 재세 시대는 암기에 의하여 입으로 입으로 전해지고 보호유지되고 있었다.
이 시대의 인도에서는 문자는 이미 보급하고 있었지만, 그 사용은 상용商用이나 법규공포法規公布 등에 한정되고, 세속의 용건에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적는 것은 자신을 떠나는 것이고, 성전聖典에 대하는 경건함을 잃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에 의한다.
즉, 문자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불교경전이 조직적으로 짜여진 것은, 석존의 입멸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라고 한다.
원시경전의 기록에 의하면, 석존입멸시에 한 비구가, “이제 스승에게 이러니저러니 듣는 일도 없어졌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것을 들은 십대제자의 1인의 마하가섭이 석존의 교설敎說(法과 律)을 바르게 保持하는 大事를 비구들에게 호소하여 성전의 편찬이 시작되었다.
불교에서는 성전의 편찬회의를 ‘결집結集’이라고 부른다. 이때 결집에는 500인의 비구가 모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회의장소는 라자가하(왕사성. 석존포교의 중심지의 하나)의 교외에 설치되고, 2인의 암송자暗誦者를 중심으로 석존의 교법의 기억이 확인되고 교설敎說의 공유성이 확립했다고 <율장律藏> 속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 우리들이 눈으로 보는 듯한 경전의 성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원시불교경전을 진주에 비유한다면 그 핵이 되는 것이 여기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때의 편찬회의는 ‘제1결집’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즉 그 뒤에도 결집이 반복되어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제2결집을 보면, 그 개최시기는 불멸후 100년경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때는 계율상의 10개조의 문제(계율위반인가/아닌가)를 계기로 하여 열려지고, 개최지로 인하여 ‘베사리결집’이라고도 불리워지고 있다.
이렇게 하여 편찬된 경전도 수백년간은 의연히 암기에 의하여 保持되고 문자로 쓰여진 일은 없었다.
그럼 原典이라고 불리는 경전은 어떠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근본 경전, 즉 각국어로 번역되기 이전의 경전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인도의 언어에 의하는 경전이 중심이 된다.
그곳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석존이 사용하신 언어에 대해서이다. 그것은 오늘날은 고대 마가다국적일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실제로 남아 있지 않다.
현재 남아 있는 경전으로 가장 오래 된 것은 빠리어의 성전이다.
이 시대의 용어로서는 산스크리트어(梵語)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산스크리트어는 표준어로, 심오한 학문이나 지식을 익힌 사람들이 사용한 일종의 古語였기 때문에, 대승포교를 생명으로 하는 불교는 고어보다도 일반적인 용어를 사용한 것을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불교가 동인도에서 서인도로 발전해 감에 따라 서인도에서 사용되고 있던 빠리어로 경전이 쓰여지게 된 것은, 나중의 일로 그 경우에서도 속어俗語의 요소를 혼입混入한 불교범어(프라크리트)등이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경전의 원전이란 이 언어들로 쓰여진 것으로 오늘날까지 남겨진 것을 말한다. 용지는 패엽貝葉(다라의 잎을 말려 종이 대신으로 사용한 것)등이 사용되고, 문자로서는 데바나가리문자(悉曇文字와 같은 계통. 7세기경부터 발전)가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