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樊遲問仁,子曰,"愛人". 問知(智), 子曰,"知人" 樊遲未達.子曰 擧直錯(조:버리다)諸枉 能使枉者直 樊遲退 見子夏曰 鄕也 吾見於夫子而問知 子曰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 何謂也 子下曰 富哉言乎 舜有天下 選皐陶(고요) 不仁者遠矣 湯有天下 選伊尹 不仁者遠矣 顔淵 22章
번지가 인에 대해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사람함이다." 지에 대해 여쭈었다."사람을 알아 봄이다." 번지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바른 사람을 등용하여 바르지 않은 사람 위에 두면 바르지 않은 사람을 곧게 할 수 있다." 번지가 물러 나와 자하에게 말하였다. "조금 전에 선생님을 뵙고 지에 대해 여쭈었더니 선생님께서"바른 사람을 등용하여 바르지 않은 사람 위에 두면 바르지 않은 사람을 곧게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무슨 뜻일까요?" 자하가 말하였다."풍성하도다. 그 말씀이! 순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 여러 사람중에 고요라는 사람을 등용하자 어질지 못한 사람은 멀어져 갔고 탕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 이윤을 등용하자 어질지 못한 사람들이 멀어져갔다."
다른 번역
1. 성백효이ㅡ 논어 집주
번지가 인에 대해 공자에게 묻자, 공자께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하셨다. 智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사람을 아는 것이다."하셨다. 번지가 그 내용을 통달하지 못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정직한 사람을 들어 쓰고 모든 부정한 사람을 버리면 부정한 자로 하여금 곧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번지가 물러가서 자하를 보고 물었다. "지난번에 부자를 뵙고 지를 물었더니 부자께서 '정직한 사람을 들어 쓰고 모든 부정한 사람을 버리면 부정한 자로 하여금 곧게 할 수 있다.'하셨으니 무슨 말씀인가? 자하가 말하였다. "풍부하다. 그 말씀이여! 순임금이 처하를 소유함에 여러 사람 중에서 선발하여 고요를 들어 쓰시니 불인한 자들이 멀리 사라졌고 탕임금이 천하를 소유함에 여러 사람 중에서 선발하여 이윤을 들어 쓰시니 불인한 자들이 멀리 사라졌다."
- 尹焞은 번지의 이 같은 배움의 태도를 칭찬하였다. 모르면 묻고 또 모르면 다른 사람에게서라도 물어 그 뜻을 깨우치는 것이다.
2. 배병삼의 <한글세대가 본 논어>
번지가 인을 여쭈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사람을 아끼는 것이다. 지혜를 여쭈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 번지가 깨닫지 못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올곧은 사람을 들어서 굽은 사람 위에 쓰면, 굽은 사람도 곧게 할 수 있느니라.
번지가 물러서서 자하를 만나 말했다. 앞서 선생님을 뵙고 지혜를 여쭈었더니 '올곧은 사람을 들어서 굽은 사람 위에 쓰면, 굽은 사람도 곧게 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무슨뜻인지?' 자하가 말하였다. 넉넉하구나, 그 말씀이여!
순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 사람들 속에서 고요를 뽑아 썼더니 불인자가 사라졌지. 탕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 사람들 속에서 이윤을 뽑아 섰더니 불인자가 사라졌지.
- 여기서 不仁者遠矣 라는 뜻은 불인한 사람이 멀리 추방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감화가 되어 인한 사람이 되었다로 해석하는 것이 합당하다 할 것이다. 좋은 정치란 能使枉者直라 했는데 이는 굽은 자를 곧게하는 것이라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이 바로 仁이고 愛人인 것이다.
- 번지는 '농사 짓는 법'과 '원예 가꾸는 법'을 공자에게 물었다가 '소인배'라는 꾸지람을 받은 인물이다. 번지가 '사소한 지식(小知)'에 파묻혀 공동선에 대한 고민-큰 일을 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공자는 번지에게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백성이 공경하지 않을 리 없고 윗사람이 의를 좋아하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을 리 없고, 윗사람이 믿음을 좋아하는데 백성이 마음 주지 않을 리 없다. 대저 이렇게만 하면 온 사방에서 사람들이 애는 들쳐업고 세간은 짊어지고 몰려들 터인데 어느 겨를에 농사짓는단 말이냐"라고 꾸짖었던 것이다.(13-4)
자하는 "문학에는 자하"(11-2),"더불어 시를 논할 만하다"(3-8)했던 것처럼 스승의 말뜻을 금방 이해했다.
# 번지가 스승의 뜻을 이해 못한 것은 지적 능력이 떨어졌다기 보다는 관심의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자하의 말을 듣고 '아 하~! 그것이 정치적 맥락에서 이야기한거구나'하고 이해하고 그럴 수 있지라고 동의할 수 있었겠으나 자신의 삶의 맥락속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 같다. 누군가 농대를 입학하고 교수에게 꿈을 이야기 하니 졸업 후 시골에 가서 농사짓고 싶다고 하니까 교수가 하는 말이 그럼 지금 가서 아버지에게 배워라. 농대는 학문을 배운느 곳이지 농사짓는 기술을 알려주는데가 아니다라고 했다지 않은가. 또한 생물학과를 지원한 친구가 지원동기를 묻는 질문에 종달새 왜 우짖는지 알고 싶어서란다. 교수는 좀 하챦아 했다지 않나? 번지가 농사짓는 법에 대해 물으면 난 모른다. 다만 나는 이렇게 하면 된다고 본다. 꼭 네가 그 것을 알고 싶으면 내가 아는 좋은 사람이 있는데 그 곳에 가서 배우거라.하면 안될까? 굳이 방향을 잘 잡지 못한 번지를 혼내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세상에 안 좋은 사람 중 한 사람은 자기 감정대로 막 상대방을 혼내켜 놓고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거다. 물론 본인은 은근슬쩍 알려주었다고 생각했겠지는 모르겠지만 상대방은 혼나고 시간 보내고 그리고 까마귀 깍깍~날아가는 적막만이 남는다면 누구 잘못인가? 받아들이고 이해못한 상대방이 문제인가? 그렇게 해 주지 못한 사람이 문제인가? 번지는 그래도 질문하고 또 질문해서 이문을 열려고 노력했다. 가상하지 않은가? 번지의 배움 이후의 삶이 궁금해진다.
- 여기서 핵심어는 애인과 지인이다. 그중 지인이 중요하다. 군주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들을 다스리는 행정관들을 잘 뽑아 쓰는 일이다. 그물에 비유하면 그물눈(目)까지 신경쓰지 않고 그 벼리(網)에만 신경을 쓰는 일이다. 이것이 군주의 지인이고 결국 애인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지인과 애인은 정치적 맥락,통치의 술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3.신정근의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번지가 이번에는 평화(화해)에 대해 물었다. 공선생님이 대꾸했다.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는(아끼는)것이지." 번지가 내친 김에 분별력에 대해 물었다. 공선생님이 대꾸했다."주위 사람들의 잘잘못을 알아서 쓰는 것이지" 번지가(예상했던 답과 달랐는지)무슨 뜻인지 못 알아들은 듯했다. 공선생님이 부연 설명을 했다. "올곧은 인물을 뽑아서 굽은(휘둘리는)사람 위에 두면 굽은 사람을 올곧게 만들 수 있지." 번지가 강당에서 빠져나와 (길을 가다가)자하를 만나서(선생님과 한 말을)이야기했다. "좀 전에 나는 선생님을 만나서 분별력에 대해물어봤지.선생님이 '올곧은 인물을 뽑아서 굽은 사람 위에 두면 굽은 사람을 올곧게 만들 수 있지'라고 하셨는데 도대체 무슨 말씀이실까?" 자하가(곰곰이 생각한 끝에 무릎을 딱 치며)입을 뗐다. "생각할수록 의미심장하구나,선생님의 한마디가! 순임금이 하늘 아래, 즉 중원 지역을 다스릴 때 여러 인물 중에서 사람을 가리고 가려서 고요를 발탁했지. 그러자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던 자들이 힘을 못 쓰게 되었다. 탕임금이 하늘 아래,즉 중원 지역을 다스릴 때 여러 인물 중에서 사람을 가리고 가려서 이윤을 발탁했지.그러자 사람 사이응 이간질하던 자들이 힘을 못 쓰게 되었지."
- 신정근선생님은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논어를 쉽게 익힐까를 고민하는 사람이다. 윗 문장을 보더라도 그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 깊이 읽기란에, '우리는 왜 알려고 하는가?'라는 글이 있다. 우리가 공부하고 안다는 것에는 두가지가 있다. '방식how'을 아는 것과 '사실that'를 아는 것이다. 나무를 어떻게 잘라야 하는지가 방식이라면, 로마군이 어떤 장소에 야영을 했었다는 것은 사실에 대한 지식일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에 대한 의문과 '사실여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아는 것과 믿는 것은 차이가 있다. 옳다 그르다는 가치 판단이 들어가는 의문은 그 명제에 대한 이유와 근거를 질문하는 것으로 가야 한다. 지인과 애인이라는 명제에 대하여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를 묻는 것은 맞지만 카드치는 요령에 빗대거나 농사짓는 구체적 기술에 빗대어 질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리송~~~내 생각도 개입시켜 보니 더 어렵다. 아~천박한 지식의 가벼움이여~ㅜㅜ)
논점
1. 愛人이란?
형병(?) -널리 사랑하고 대중을 구제하는 것(박시(애)제중)
주희-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인을 베푸는 것이고 사람을 안다는 것은 지의 임무다.
다산- 인이란 두사람이다. 자식과 아버지, 신하과 임금, 목민관과 백성의 관계에서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인이다.
이기종- 남을 자기처럼 여기고 사랑하는 맘을 인이라고 한다.
(# 예수의 율법 정신의 핵심 두가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2. 知(智)란?
형병 - 사람의 현덕과 재능을 알아서 등용하는 것이 지다.
주희- 사람을 안다는 것은 지라는 것의 임무다
이기동- 지라는 것은 인을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분별능력이다.
(# 다른 사람을 안다는 것에 대한 기독교적 의미. 첫째, 구약에서 나타나는 히브리인들의 정서. 단지 아는 것 뿐아니라 상
대방의 정서적 기호, 맥락, 역사를 총칭해서 안다는 것을 의미. 남녀가 안다는 것은 부부관계처럼 속속들이 다 아는 정도
를 포함한다. 둘째, 신약에서 나타나는 유대인의 정서- 희랍적-지성적-성격. 바울과 예수는 이를 부정적으로 판단.
# 오늘날 지인이란 그저 아는 사람을 의미. 얼굴과 이름을 아는 정도? SNS시대에 페친,일촌정도?)
3. 바른 사람을 등용한다(擧直)의 의미는?
탕임금이 등용한 이윤은 직업이 요리사. 사람의 겉모습이 아니라 속의 잠재력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의 본래적 모습을
캐치해 내는 능력이 바로 앎이다.
겹쳐 읽기
1.위정편: 애공이 어떻게 하면 백성이 따를까요?라고 묻자, 공자가 바른 사람을 위에 두면 백성이 따를 것이다라고 함.
2. 묵자 상현편: 귀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써서 어리석고 천한 사람을 다스리면 나라가 편안해 진다.
번지의 이문(耳門)을 열어준 자하: 문학에 뛰어난 제자. 스승 공자와 시를 나눌만하다고 칭찬도 받는 사람
'인'개념의 역사성
1.시경- 군자다움 사내다움 전사적 기질로서의 인을 의미: 부족국가에서 적을 제압하는 능력이 필요했던 시대를 반영
2. 공자- 도덕적인 따뜻한 마음의 성질를 의미로서 인. 그 전의 인의 개념을 부드럽게 인문적으로 변화 시킴.
3. 성리학- 사대부 계급이 공유해야 할 미덕. 국민들을 계몽하는 정치의 術로서 사용
4. 18,19세기- 인간과 인간끼리의 보편적 관계의 가치로서의 개념으로 적용
5. 서구 사조가 들어오면서- 보편적 사랑이라는 추상적 보편적 의미로 확대 됨
인과 예악의 관계, 그리고 지의 능력
주희의 설명: 仁之施也. 우주 전체가 생명을 살리고 낫고 하는 인의 원리를 이루어져 있다. 그러한 차원의 생명의 원리가 사람에게 본성으로 갖추어져 있다. 이 본성을 밖으로 들어 내는 것이 유학의 역할이다.(공맹전통)
예와 악은 외재적 측면(텍스트). 인은 내재적 측면(컨텍스트)이다. 이은 예와 악으로 표현되고 예와 악을 통해 사람의 본성,인을 알 수 있다. 이 알 수 있음이 지혜다.
극기복례위인이라 했다. 예는 형식이고 겉으로 들어나는 것이라면 극기는 나의 사특한 마음을 이기는 것이므로 그 순간 인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것이 예로 표현되는 것일 뿐이다. 기독교에서는 이 표현이 일요일 예배보러 오는 맘이라 할 수 있단다. 인의 마음이 뒤따라지지 않는 예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이루워질 수 없는 것이다.
정치의 영역에서 인의 사랑은 제대로 된 인사를 하는 것.
인과 사랑의 차이점
인을 실천하는 자를 인자,군자라 하는데 이들의 영역은 gentlelman, superior man, perfect man으로 번역. 인을 실천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자라는 의미가 잇고 그러함으로 다른 사람들이 따를 수 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사랑은 하느님으로 부터 온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듯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 너도 용서를 받았으니 다른 사람에게도 그러하라는 것. 이 것은 모든 의미와 행위의 근원은 하느님 위에서 내려온다는 것이다. 네가 완벽해서 용서를 하고 사랑을 할 수 있는다는 말이 아니다.
앎과 사랑이라는 개념:
남과의 관계에서 완성되는 것. 내부의 문제, 그리고 수신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
고쳐읽기
정치적 맥락에서 인은 바른 사람을 등용한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모든 일은 혼자가 할 수 없다. 그래서 공공단체,사회단체를 만들고 개인이 할 수 없는 공적인 큰 일을 하는 거다. 그리고 거기에 책임자를 앉히게 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사회단체,공공기관의 힘을 개인의 사적인 욕심을 채우는데 사용한다면 어떻겠는가? 오늘날 우리는 대통령 조차도 선거로 뽑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뽑은 대통령이 국민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일개 기업의 CEO처럼 행동하고 있다면 이게 옳겠는가? 국가와 기업은 분명 다른데 말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올바른 사람을 등용할 줄 아는 지혜의 눈을 갖추어야 한다.
2부
1. 그리스도=기독. 한자로 음차한 것. 우리나라는 개신교와 천주교로 구분하여 이야기 함. 종교개혁때 영국에서 형성된 교단. 성공회가 제도나예배방식은 카톨릭적. 신앙적 방식은 상당히 개방적. 성공회내에서도 다양한 모습들이 존재한다.
2. 개신교 목사,성공회에서는 신부님. 그것의 유래는? 신부는 father를 번역한 것. 일본에서는 센세이.선생님이라 함.
3. 결혼여부.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 그것이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배드로도 가족이 있었다. 카톨릭에 독신이 된 것은 천년 정도 지나 제도화 된것. 성서적 기반이 있는 것은 아니다.
4.율법서에 성서의 핵심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자꾸 받으니 예수가 깔끔히 정리해서 이야기 한 것. 하느님 사람,이웃 사랑이라고. 그것이 십자가에 형상화된 것이라 함. 예수의 말은 설명하지 않고 단지 선포한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그냥 믿고 따라가는 것. 그것의 대표적 예가 예배. 서로 모여 하는 것이니 그래서 교회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교회를 다니는 것이 된다.
5.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의미: 본질적으로 남녀노소 귀천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 하느님 사랑. 현실적으로는 부자들은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에게 손이 많이 가게 된다.
6. 용서의 의미: 불치 병에 걸린 사람을 친구들이 지붕을 뚫고 방으로 내려 가자 예수가 하는 말 "너는 구원을 받았다"고 함. 죄를 용서받았으니 돌아가라는 뜻. 용서는 채무관계가 개입되어 있다. 죄와 관련. 하느님으로 부터 멀어지는 것이 죄. 이기적 탐욕이 죄. 이러한 죄에 대해 하느님이 탕감해 주는 것 죄를 면해 주는 것.
7.원죄설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다양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개념. 신학생이 이야기한 원죄에 대한 견해를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 성공회는 공식입장을 왠만하면 안 갖는다. 그만큼 경계가 넓었고 신학이 2천년 역사를 가졌기에 좌편향 우편향이 당양하게 존재해 왔었다. 서구신학의 핵심은 원죄설.이를 받아들이면 백인 중심의 신학이 되어 흑인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렇게 태어난 것이고 여자도 마찬가지가 된다. 해방신학은 전혀 원죄설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원죄설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존재해 왔다.
8. 다양한 견해가 용인된다는 것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주장은 후에 수정할 수 있는 자유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만약 그러한 자유가 없다면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는 독단에 빠지게 되고,도그마에 빠지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독재를 하게 된다.
9.incarnation.성육신: 하느님이 인간과 동행하기 위해서 직접 내려온 것이다. 성탄의 의미. 요한복음 1장.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가 바로 그것. 시공간의 제약이 없던 분이 불편한 이 세상으로 온 것. 근데 사람들이 그를 못 알아 본 것. 굳이 안 오셔도 되는 분인데 인간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지 보여주려고 온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크리스도가 오신 것이 기쁜일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기쁘다. 즐겁다라 해서 메리 크리스마스!가 되는 것이다.. 부활이 있기에 성탄이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다.
10. 순종의 뜻: 머리로는 이해가 안되지만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 우리 삶은 여러 차원에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일상적이고 소소한 삶에서는 합리적이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나 신앙적 차원에서는 합리적인 것이 아닌 것에도 믿음이 있다고 생각이 된다.
11.사랑의 3단계; 에로스,필리아,아가페. 사랑을 이해하는 설명의 방식이라 생각. 신과 자연과 사람이라는 우주의 전체에 대한 사랑을 구성하는 요소가 그것이 아니겠는가.
12. 그리스도의 수난의 의미: 예수가 죽게 된 직접적 죄목은? 우리의 죄를 구원하기 위해서 죽었다는 대단히 성서적 해석. 그 당시 구체적 죄목을 말하는것. 하나는 유대교 전통에서 거짓 증언을 하면 사형. 혹세무민,구세주 자청. 이 예언이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냐 아니냐는 회당에서 판단. 그들 입장에서는 목수의 아들이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는 행위가 무례한 짓으로 판단. 당시 팔레스타인은 로마의 식민지. 로마 총독에게 그를 죽여 달라고 청원하자 로마가 신경쓸 일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이를 거부. 그러자 제사장들이 죄목을 바꿔 예수가 왕을 사칭했다고 주장. '어린 양이자 예루살렘의 왕으로 예수가 왔다'는 표현을 정치적으로 해석하여 주장한 것이다. 결국 로마법에 걸려 정치범으로 십자가에 걸린 것이다. '유대인의 왕'이라 십자가에 적혀 있다. 그것이 죄목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가롯 유다 같은 사람은 실제 무장독립투쟁에서 예수가 지도자가 되기를 바랬기도 해서 정치범으로 잡힌 것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면도 있다. 로마 총독 빌라도가 "네가 유대인의 왕인가?"라고 묻자 예수가 "그것은 너의 말이다."라고 해서 부인도 부정을 하지 않았다. 예수 스스로는 사회혁명가로서 정체성은 가지지 않았다. 그래서 유다와 혁명가 시몬들에게는 불만을 가졌을 것이다. 예수는 3년간 목회 활동을 해서 성공한 것은 없다. 하느님 나라 선포-가 핵심. 내세의 천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루어지도록 노력. 그러한 현실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이러한 고난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구나 하고 생각한 것. 그리고 부활을 함으로써 그제서야 제자들이 믿게 되는 것.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고 하지만 실제 부활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이전 십자가의 고난과 말씀이 의미가 있게 된 것.
13. 예수가 다 알고 왔다?: 잘 모르겠다.
14. 예수님은 살아 생전에 이미 신적인 존재였다. 아니다 인간적 고통과 고뇌를 알고 있는 존재다라는 논쟁: 후자의 입장을 지지. 나는 사람의 아들이다-라고 예수 스스로 이야기. 인간적 고통과 고뇌가 있었기에 그 모든 고난을 감당했다는 것이 위대한 것.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순간에 자신이 부활할 수 있는지 안 할 건지 확신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주여 이 잔을 치워 줄 수 있으면 치워주세요. 그러나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마시겠습니다라고 말함.
15.십자가에 오른 순간 부활의 코스를 밟고 가는 것. 십자가에 올라 고통에 몸부릴 칠만한대도 옆의 죄인을 용서하고 자신에게 형벌을 가한 사람을 구원하겠다고 말한 것을 보면 이미 범상함을 뛰어 넘는 존재가 된 것이다.
16. 진리의 말씀을 말로 증거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몸으로 직접 보여줘서 증거할 수 있는 것이 있다.
17. 근대 신학의 두가지 흐름: 계몽주의에 대한 반작용. 물리학,진화론등에 의해 기존 신학이 배척당하자, 그것은 인간들의 것이고 신학은 천상의 것에 대한 학문이고 믿음으로 정리한 경우가 있고 다른 한쪽은 성육신적인 관점에서 모든 사실과 진리에는 하느님의 뜻이 있는 것이니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대화를 하는데 주저하지 말자는 파가 있는데 성공회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18.예수천국,불신지옥에 대한 견해는? 조선시대 계급적 지배상황과 일제시대 핍박받는 상황에서 복음은 큰 위로가 되었을 것. 그러니 예수를 믿으니 천국을 간다는 말은 대단히 매력적이었을 것. 그러나 지하철에서 폭력적으로 전도하는 방식은 오히려 역작용이 생기는 것. 원래 의도가 좋을지 몰라도 말이다. 종교 개혁때 지역 언어로 성서를 번역하면서 당시 교권과 교황의 권위가 더 중요한지 성경의 말이 더 중요한지에 대한 논쟁이 있으 면서 '솔라피데스'라는 말이 나온 것. 근데 500년이 지난 지금 당시 그 말이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은 무시하고 오로지 '솔라'만 주장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19.협박론,지옥론이 포교의 효과적인 방식이라는데? 지옥이라는 개념은 성서에 있다. 이 것을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 협박이 될 수 있다. 인터스텔라의 미션이 '나자로미션'이란다. 나자로가 성서작 인물이고 지옥을 다녀온 인물. 이 영화는 구원의 개념이 들어 있다. 성서도 해석이 되어야 한다. 물론 해석의 범위와 제한의 문제는 있겠다. 성서의 이야기도 맥락이 있는 것이고 신약도 구약을 해석하는 바도 있다.
20. 물질만능 풍조가 종교의 영적인 능력을 퇴화시킨 것은 아닌지? 포교에 경영학 이론이적요되기도 한단다. 많이 먹어 본 사람은 포만감의 고통을 안다. 이젠 어느 정도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본다. 뭔가 바뀔 때가 되었다고 본다.
21. 교황의 경제적 살인에 대한 언급에 대하여? 포도원의 주인이 일한 시간의 차이가 있는데 똑 같이 임금을 주자 그에 항의하는 사람에게 너하고 그렇게 계약하지 않았느냐는 말을 했다는 일화를 인용.하루 급여가 하루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같은 돈을 줬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서적 해석을 보면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차별하고 맘에 안 든다고 세무조사하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22. 크리스 마스가 신부에게 다가오는 의미: 하느님의 뜻은 사실 잘 알 수 없다. 세상에 와서 몸소 우여곡절을 겪고 진리의 길을 증거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 놓으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마리아 입장에서 이해하고 싶다. 하느님 말씀을 마리아가 아기를 잉태했던 것처럼, 진리의 말씀을 자신의 몸속에 잉태하려는 자세를 갖는 것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로지선생님의 정리 말: 사랑에 대한 자세. 빈털털이. 웃음거리. 노자 41장에 나오는 이야기: 뛰어난 사람은 도를 들으면 힘써 행하고 어중간한 사람은 긴가민가 고민하고 못난 사람은 비웃는다.
1월 4일 첫 주일. 오래간만에 교회를 갔다.하늘도 맑고 바람도 잔잔하고 햇볕은 따스한게 그야말로 푸근한 날이다.
오늘 설교 말씀은 실패 3종 셋트
누가복음 9장 46~56절에 있다.
첫째. 비교와 경쟁.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46~48절)
- 그 당시 어린 아이는 낮고 볼품 없는 사람을 상징.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해 온 예수를 앞에 두고 제자들이 각 기 자기가 낫다고 논공행상의 우선 순위를 논하는 것이 우습다. 이를 보고 예수가 한마디한 것이다. 베데스다연못이 있는데 평소에는 건천인데 순간 물이 바닥 한 가운데서 솟아나오는 경우가 있단다. 그럴 때 제일 먼저 물에 들어가는 자는 병을 낫는다는 소문이 있어 사람들이 항상 연못가에 대기해 있단다. 근데 언제 물이 쏫아 나오는지는 모를 일. 38년 동안 연못가에서 기다리고 있는 병자에게 예수님이 한마디 했단다. 침대를 메고 집에 돌아가라고. 그러니 병이 나았다고 한다.
/ 남하고 비교하고 경쟁하는 순간 지는 거다. 왜? 나하고 못난 사람과는 비교하지 않으니까. 일등만이 살아남는 구조에서 경쟁은 설령 내가 일등을 했다 하더라도 불행하다. 그 과정이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인가? 일등을 하면 끝나는가? 그 것을 유지하기 위한 에네르기는 어디서 나올 것인가? 결국 자기 몸에서 쥐어 짜서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나 이분법적으로 비교하고 경쟁하는 순간 사탄의 유혹에 빠진다고 보는 것은 그렇다. 하나의 상징으로 표현한 것이면 몰라도 원래 내가 선하고 누군가가 악해서 나를 유혹해 가는 것이 아니니까. 결국 내 안에 선과 악이,이기심과 이타심이 천사와 사탄이 공존하는 것이고 나의 삶이 왜 그런지 몰라도 팍팍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뭔가 잘못되었다고 되돌아 볼 일이다. 혹시 내가 누군가와 되지도 않는 비교와 경쟁으로 몰아 넣고 있는지 말이다. 더욱 우스꽝스러운 것은 상대방은 전혀 개의치 않는데 나만 스스로 동동거리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최선의 노력은 해야 겠지. 그럴려면 가치와 이상은 크고 넓게 목표는 남들과 다르게 두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둘째, 편가르기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하시니라(49~50절)
- 예수님.하나님편이 중요하지 우리 교회 안 다닌다고 배척해서는 안될 것이다. 고린도전서 3장 4~5절에 이런 말이 있다.
"어떤 이는 말화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한국 사회도 편가르기가 거의 망국병이 되었다 한다. 교회 안에도 마찬가지다. 편가르기하는 순간 예수를 올바로 섬기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편을 가를까.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인 이기심이 바로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지성과 교육을 통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는 있겠다. 또한 맹자가 이야기하듯이 항산이 되어 항심을 유지할 수 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편가르기는 돈과 권력의 독점을 위한 인간의 투쟁에서 나오는 것이다. 조금 더 편하게 돈을 벌고 유세를 떨기 위해서 내 편을 만드는 것이다.내가 어느 편에 들어기지 않으면 인생이 고달퍼지는 것이 세상사다. 친목모임에라도 들어가야 사업이 어느 정도 되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니 우리는 적절하게 편을 들면서도 상대방에게 불합리한 처우를 받지 않도록 중용을 지켜나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지 않을가 생각된다.
세째, 쓸데없는 과시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류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안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예수께서 예류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51~56절)
- 구약의 삼손도 그랬다. 하느님의 자식으로 그에게 힘을 주었고, 그 힘으로 불리세 나라를 제압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그 힘을 자기과시나 남을 조롱하는데 쓰니,결국 불릿세 사람들에게 두 눈이 뽑히고 쇠사슬에 묶여 짐승같은 삶을 살게 되었다한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기 힘을 믿고 자기에게 불쾌하게 대했다고 과한 형벌을 내리려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지혜의 왕 솔로몬도 그랬고 말이다. 사람은 겸손할 줄 알아야 하겠다.
/ 설교를 듣고 이한호신부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았다. 진짜 예수께는 제대로 된 제자들이 없는 듯. 그 말에 안사람은 우린 결국 인간이잖아 한다. 우리는 비교하고 경쟁하며, 편을 가르고 어렵게 획득한 자기 힘을 어딘가에 쓰고 싶어하는 기질을 갖고 있는 건 분명하다. 그것이 어찌보면 우리 인류를 문명화하고 계속 앞으로 나가게 하는 힘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 각 개인들의 삶은 팍팍하고 퍽퍽할 것이다. 결국 경계하고 노력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증자가 했듯이 매일 세 가지를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말이다.
예배가 끝나고 대천천 한 곳을 아름들이 무성하게 장식하고 있는 갈대가 보기 좋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