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는 정원 한가운데 있었다.
이른 아침 햇살이 담장을 비스듬히 넘어오는 시각, 강민준 형사는 잔디 위에 엎드린 남자를 내려다봤다. 피해자는 이란 출신 외교관 다리우시 파르한, 52세. 호르무즈 해협 관련 비밀 협상을 위해 서울에 체류 중이었다는 것이 초동 보고서의 전부였다.
담장 너머 운동장 철봉 기둥 위에 참새 두 마리가 앉아 있었다. 한 놈이 왼쪽 기둥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왼쪽으로. 강민준은 그 단순한 왕복 운동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감식반장 오세진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독살입니다. 차 한 잔 마셨는데 심장이 멎었어요. 빠른 계획범이에요."
마당 한쪽에는 삼색 고양이 한 마리가 화단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흰 바탕에 갈색 점이 박힌 다른 고양이도 그 옆에 조용히 붙어 있었다. 두 고양이는 형사들이 오가는 동안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강민준은 수첩을 꺼냈다. 이 집 주인은 누구인가. 그리고 파르한은 왜 이 정원에 있었는가.
단서 #1
피해자 파르한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메모지. 손으로 쓴 한국어 주소와 함께 단 한 줄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참새가 오가는 집에서 기다리겠소."
집 주인은 윤재학, 65세. 전직 외교부 통상교섭 본부장이었다.
그는 경찰서 조사실에서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반듯한 자세, 천천히 고르는 말들. 강민준은 그런 종류의 사람을 잘 알았다. 평생 협상 테이블에서 단련된 사람이었다.
"파르한 씨를 초대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스스로 왔습니다."
"스스로요? 당신 집 주소를 어떻게 알았습니까?"
윤재학은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 조사실 창 너머로 도심의 회색 건물들이 보였다.
"30년 전, 테헤란에서 우리는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나는 그에게 말했죠. 언젠가 새 정권이 들어서면, 양국이 진정한 교역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그 약속이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내 집 주소쯤은 찾아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강민준은 수첩에 밑줄을 그었다. 30년 된 약속. 교역. 새 정권.
단서 #2
윤재학의 서재에서 발견된 30년 된 외교 문서. 이란과의 비공개 통상 협의록. 서명란에는 두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윤재학. 그리고 다리우시 파르한.
사건 발생 당시 정원에는 세 명이 더 있었다.
첫째는 윤재학의 비서 최수아, 34세. 그녀는 차를 준비했다. 둘째는 미국 대사관 소속 외교관 브렌트 홀, 48세. 파르한의 방한 사실을 파악하고 동석을 요청했다고 했다. 셋째는 이란 혁명수비대 출신으로 현재 민간인 신분인 레자 모사비, 57세. 파르한의 개인 수행원이었다.
강민준은 세 인물의 프로파일을 테이블 위에 펼쳤다.
홀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이 협상에 동맹국 개입이 불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파르한이 한국과 단독 채널을 열려 한 것은 우리에게도 달갑지 않았죠."
모사비는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파르한은 순교자입니다. 그의 죽음은 국가적 비극입니다. 나는 그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최수아는 떨리는 손으로 진술서를 붙들고 말했다.
"차는 제가 직접 우렸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제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차에 접근했습니다. 제가 다시 왔을 때 찻주전자 위치가 달라져 있었어요."
단서 #3
차가 담긴 잔 옆, 정원 테이블 위에 작은 깃털 하나. 참새의 깃털이었다. 감식 결과 깃털에서 독극물 흔적이 검출됐다. 누군가 깃털을 매개로 차에 독을 떨어뜨린 것이었다.
강민준은 다시 정원으로 돌아왔다.
참새들은 여전히 기둥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그는 이번에는 단순한 왕복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로를 눈으로 쫓았다. 왼쪽 기둥에서 오른쪽 기둥으로 날 때, 참새는 정확히 정원 테이블 위를 스치듯 통과했다.
그는 철봉 기둥 위쪽을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감식팀이 사다리를 가져왔다. 오른쪽 기둥 꼭대기 틈새에서 작은 비닐 캡슐이 발견됐다. 안에는 얇은 독침이 들어 있었다. 참새가 기둥에 앉았다가 날아오를 때 발에 독침이 묻도록 설계된 장치였다. 새는 아무것도 모른 채 정원 위를 날았고, 그 발에 묻은 독이 차 위로 떨어졌다.
강민준은 오랫동안 기둥을 바라봤다.
범인은 참새의 경로를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이 집을, 이 정원을, 이 새들의 습관을 관찰한 사람이었다.
단서 #4
철봉 기둥 금속 표면에서 지문 한 점. 데이터베이스 조회 결과 — 브렌트 홀. 미국 대사관 외교관.
진실은 교역이었다
강민준은 홀을 다시 불렀다.
이번에는 조사실 불빛이 조금 더 강하게 켜져 있었다.
"기둥에서 당신 지문이 나왔습니다."
홀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파르한은 위험한 일을 하려 했습니다. 한국과 이란이 직접 통상 채널을 열면, 미국의 대이란 제재 전선에 균열이 생깁니다. 그건 우리가 수십 년간 구축한 질서를 흔드는 일이에요."
"그래서 죽였습니까?"
"파르한이 가져온 제안서에는 이란의 새로운 온건 세력이 서명한 비공개 협의안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게 세상에 나오면, 이란에 대한 군사 옵션은 명분을 잃습니다. 호르무즈를 지켜야 한다는 논리도요."
홀의 목소리는 낮았다. 변명도, 후회도 없는 목소리였다.
"나는 질서를 지킨 겁니다."
강민준은 수첩을 덮었다.
질서. 그 단어가 조사실 공기 속에 오래 떠 있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질서가 평화였고, 어떤 사람에게는 질서가 침묵이었다. 파르한은 그 침묵을 깨려 했다. 30년 전 윤재학과 나눈 약속을 들고, 참새가 오가는 집의 정원으로 왔다.
그리고 죽었다.
홀이 연행된 다음 날 아침, 강민준은 다시 그 집 정원을 찾았다.
윤재학은 등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솜이와 누룽지가 그의 발 옆에 붙어 있었다. 담장 너머 기둥 위에는 참새 두 마리가 어김없이 앉아 있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강민준이 물었다.
"파르한이 가져온 제안서, 원본이 남아 있습니까?"
윤재학은 오래 기침을 기다리듯 시간을 두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파르한은 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원본은 다른 곳에 보관해 두었더군요.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나는 그 제안서를 세상에 내놓을 겁니다."
강민준은 참새들을 바라봤다. 오가고, 오가고, 또 오갔다. 철봉 기둥 꼭대기 틈새는 이미 비어 있었다. 독침도, 장치도, 흔적도 없었다. 새들은 이제 아무것도 모른 채 자유롭게 날았다.
그는 생각했다. 언젠가 이란에 봄이 오면, 그 봄의 씨앗 한 알은 이 정원에서 심어진 것이 될 것이다. 참새의 발에 독 대신 꽃가루가 묻어 날리듯, 오늘의 용기가 내일의 교역으로 번질 것이다.
사건은 해결됐다. 그러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