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이야기]〈47〉꽃잎은 져도 꽃은 지지 않는다
생멸 현상 속 변치 않는 실상〈實相〉
보이는 현상은 사라지지만
밑바닥에 변치않는 실재 존재
작년 겨울 무렵, 어느 법조인이 퇴임식을 하는데, 퇴임사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겼다.
“낙엽은 뿌리로 돌아간다(落葉歸根). 낙엽은 지지만 낙엽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꼭 챙겨보는 TV뉴스에서 저 말을 듣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낙엽귀근’은 6조 혜능(638~713) 선사가 열반할 때 한 말인데, 재가자가 그 말을 했다는 사실에 의아했다. 소납은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는 터라 법조인이 무슨 뜻으로 그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미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어쨌든 그 내용을 <육조단경>에서 보기로 하자.
713년 7월8일 혜능이 열반에 들려고 하자, 문인들이 모였다. 대중이 슬피 울면서 좀 더 머물기를 청하자, 혜능이 말했다.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신 것도 열반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옴이 있었으니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의 이 몸도 반드시 가야 한다.”
“스님께서 지금 가시면 언제 돌아오시는 겁니까?”
“잎사귀가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간다(落葉歸根). 다시 올 날을 말할 수 없으리(來時無口).”
‘낙엽’이라는 눈에 보이는 현상이 사라진다고 해서 ‘낙엽’이라는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또 ‘꽃잎’이 떨어졌다고 하여 꽃이 진 것은 아니다. ‘꽃잎’은 현상적인 존재로 피었다가 지는 것이지만 그 꽃잎을 떠받치고 있는 참된 실재(꽃)는 영원히 존재한다. 생멸하는 현상 속에 변치 않는 실재, 그 실재가 실상(實相)인 것이다.
우리 눈앞에 펼쳐진 모든 존재는 우리가 인식하는 것들이다. 곧 현상은 내 마음에 투영된 세계이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삼계는 탐심(貪心)으로 생겨난 것이요, 생사라고 하는 것도 마음에서 일으킨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생겨나 잠시 존재하다가 파괴되어 사라지게 되어 있다(生住異滅). 현실적으로 보이는 이 현상은 파괴되어 사라지지만 그 밑바닥에는 변치 않는 실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법화경>에서 이를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고 하였다. 모든 존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열 가지로 표현하여 십여시(十如是)라고 하였다. 또한 이 실상을 공(空)이라고 하는데, 이 모두는 구마라집(鳩摩羅什)의 해석이다.
초기불교에서 실상은 연기(緣起)사상이다. 현 불교학에서는 시간적인 선후 인과 관계만 연기라고 보는데, 초기불교에서는 논리적인 상호의존의 인과 관계도 연기라고 하였다.
현 불교학에서 연기 의미가 축소된 것이다. 부처님께서 깨달은 진리가 연기였고, 이 연기를 대승불교에서는 공, <법화경>에서는 제법실상인 것이다. 이 제법실상을 선(禪)에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깨달은 세계를 표현하는 문구로 사용한다.
소동파는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다”라고 하였고, 도오겐(道元)은 “눈은 옆으로, 코는 세로로 달려 있다(眼橫鼻直)는 사실을 알았다”고 하였다.
하나 더 읽어보자. <무문관>의 저자 무문혜개(無門慧開, 1183~1260)의 말이다. “봄에는 꽃이 있고,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있고 가을에는 달이 있고, 겨울에는 눈이 있다. 망상에 사로잡히지만 않는다면 모두가 좋은 계절이다.”
한결같이 선덕(先德)들은 선적(禪的) 경지로 삼라만상 펼쳐진 그대로의 현상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소납은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대답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정운스님… 서울 성심사에서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운문사승가대학 졸업, 동국대 선학과서 박사학위 취득. 저서 <동아시아 선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경전숲길> 등 10여권. 현 조계종 교수아사리ㆍ동국대 선학과 강사.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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