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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의 네 가지 삶
(샨사 1972~ )
「샨사, 필명으로는 Yan Ni(1972년 중국 북경 출생). 프랑스국적 작가이자 화가.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예술 지능으로 17세 때 “장래가 촉망되는 북경의 별”에 선정되기도 했다. 1990년 프랑스 정부의 장학금을 받고 파리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소로본 대학 교수인 부친과 함께 생활하며, 파리 가톨릭 인스티튜트 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97년 불어로 쓴 첫 소설 '천안문'을 발표했으며, 이 책<버드나무의 네 가지 삶>(1999)은 두 번째로 쓴 소설이다. 그 후 그녀의 책<바둑 두는 여자>(2001)은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가장 읽고 싶어하는 책으로 '공쿠르 데 리쎄앙 상'을 받으며 프랑스 독서계에 샨사 열풍을 가져왔다.」
[하나] 1430년, 한 부유한 직물상의 배가 둥팅 호 하구, 웨양루 맞은편에 닿았다. 배 주인이 지역 상인들을 배로 맞아 들여 흥정을 벌이는 동안, 그의 외아들 충양은 독선생과 하인 둘을 대동한 채 쪽배를 타고 웨양을 구경하러 갔다. 겨우 여섯 살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옛 시구 수백 편을 훤히 꿰고 있는 아이는 옛 시인들이 노래한 명소에 들러 명상에 잠기곤 했다.
웨앙루 발치, 누더기를 걸친 한 늙은 도승이 아이를 불러 세웠다. 충양은 하인을 시켜 도승에게 적선을 하게 했다. 노인은 아이에게 기연, 명성, 부귀영화를 예언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부질없는 꿈과 먼지에 불과한 것을……
아이는 수양버들이 간드러진 앞으로 수면을 쓰다듬고 있는 연못가로 갔다. 그러고는 발끝으로 서서 긴 가지 두 개를 꺾어 품에 안았다.
“내 선물은 바로 이거야.” 아이가 혼자 중얼거렸다.
아버지와 아들은 양쯔강을 항해해 집으로 돌아갔다. 충양은 그 두 가지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화병에 꽃인 그것들은 물결이 치는 대로 일렁였다. 아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그것들을 자기 방 창문 아래에 심었다.
두 가지는 곧 뿌리를 내렸고, 어느새 새잎들이 돋아났다. 그것들은 무럭무럭 자라 단 몇 년 사이에 무성한 잎을 땅까지 늘어뜨렸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 날, 충양 아버지의 물건을 싣고 가던 배들이 양쯔강에서 난파하고 말았다. 그 해 여름, 기온이 낮고 비가 잦아 충양의 아버지가 투자한 아마 천 가격5이 폭락하고 말았다. 결국 집안은 파산했다. 그들은 빚쟁이들을 피해 오지로 피신했다. 열 두 살이 된 아이는 수양버들과 헤어지게 된 것이 가슴 아파 눈물을 흘렸다.
부모가 죽었을 때 그의 나이 열여덟이었다. 충양은 험한 산 중턱에서 고독한 삶을 영위했다. 그는 밤마다 과거시험을 준비했다.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충양은 말발굽 소리에 몽상에서 깨어났다. 돌아보니 녹색 당의를 입은 청년이 페르시아 말에서 뛰어내려 그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삼일 후, 충양이 촛불을 켜놓고 책을 읽는데, 멀리서 아련한 피리, 비파, 류트 소리가 말발굽 소리와 뒤섞여 들려왔다.
칭이가 말에서 훌쩍 뛰어내려 충양에게 인사를 했다. 하루빨리 당신에게 행복을 안겨주고 싶어 이렇게 기별도 없이 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녹 옥색으로 차려 입은 처녀가 그에게 깊이 허리 숙여 절을 했다.
이튿날 뤼이는 동이 트자마자 일어났다, 곧 바로 집 안 청소를 하고 식사를 준비했다. 그는 그 예기치 못한 행복에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1444년, 충양은 현 에서 실시한 두 차례의 시험에 합격해서 지방 고시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가을이 끝날 무렵, 충양은 황실 고시를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뤼이가 산 발치까지 그를 배웅했다.
제가 충고해 드릴 건 단 한 가지 밖에 없어요. 당신은 이 세상에 태어나 호사를 누렸고 그것을 잃었어요. 이생이 덧없다는 것을 부디 잊지 마세요. 우리가 다음 생에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우리도 몰라요. 부도, 가난도 우리의 행복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돼요.
충양은 수도의 각 대로에 내걸린 자신의 이름을 보았다. 구경꾼들이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튿날, 충양은 황제가 하사한 선물, 보석으로 장식된 관복, 금괴, 화려한 비단을 받았다. 충양은 새 의관을 갖추고 황제에게 감사하기 위해 궁궐로 가야 했다. 황제는 뛰어난 재능을 칭찬하고 그에게 높은 직위를 맡겼다. 충양이 길고 긴 절을 마치자, 황제가 그에게 혼인을 했느냐고 물었다. 충양은 잠시 망설였다. 뤼위와는 혼례를 올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얼굴을 붉히면서 아니라고 대답했다.
열 한번째 날, 그는 거만함이 매어나는 팔십 대 노인, 황궁 대제학의 방문을 받았다. 황제의 동생, 치위 대군의 사자인 그는 충양에게 혼사를 제안했다. ~~~~노인의 제안이 충양을 혼란에 빠뜨렸다.
혼인 축하연이 석 달 동안 이어졌다. 수도 전체가 환희에 들 떠 있었다.
옹주는 남편이 원하는 것을 미리 가늠해 충족시켜줄 줄 아는 총명한 여자였다.
기다려 뤼이 기다려! 날 혼자 두지마!
충양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전쟁은 충양의 위상을 드높여놓았다. 새 황제에 의해 황실 최고 조언자이자 대장군으로 임명된 그는 자신의 권위로 조정을 완전히 휘어잡아 더는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충양의 나이 서른 살이었다. 그는 자신의 권력과 부가 천하를 뒤덮는 것을 우수에 젖은 눈길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뤼이의 이미지가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뤼이는 선물을 보내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러나 시골생활에 익숙해진 그녀에게 그 귀한 것들은 필요가 없었다. 오랜 세월 동안 헤어져 지냈지만 그녀의 감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살았고, 그의 것이었던 물건들에 에워싸여 있어서 행복했다.
뤼이의 편지는 충양을 절망에 빠뜨렸다. 불같이 화가 나 집사를 쫓아내버린 그는 이번에는 검소하게 차려 입은 소수의 호위병을 딸려 개인비서를 급파했다. 그는 제발 자신의 곁으로 와달라고 그녀에게 애원했다.
마침내 돌아온 비서는 충양에게 새로운 편지를 전했다. 뤼이는 그에게 지혜롭게 행동하라고 부탁했다. 마치 임박한 위험이라도 본 듯 당장 조정에서 빠져 나오라고 그에게 충고 했다.
충양이 그녀에게 말을 하려 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격렬한 바람이 정원을 가로지르며 그녀의 옷을 펄럭이게 했다. 그는 환한 달빛에 그녀의 발이 땅에 박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공중에 흐트러지며 긴 가지들로 변했다. 그녀의 눈, 코, 입이 서서히 그녀의 피부를 뒤덮는 나무껍질 속으로 녹아 들어갔다.
뤼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자리에 수양버들 한 그루가 마치 그녀가 아직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살랑거리며 가지를 흔들고 있었다. 깜짝 놀란 충양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나뭇잎들이 누렇게 시들더니 가지에서 떨어져 바람 속에서 소용돌이치다 벽 너머로 날아가 버렸다. 나무는 순식간에 메말라 버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수액이 다 빠져버린 속 빈 나무둥치만 덩그러나 남아 있었다.
충양이 한동안 보지 못한 칭이가 정원 입구에 나타났다. 그가 수양버들을 향해 달려들어 껴안고는 통한의 눈물을 쏟았다. 그가 아연실색해 그를 관찰하고 있던 충양을 향해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당신이 창문 아래 심어 주었던 두 그루의 버드나무요. 우리가 어렸을 적, 누이는 당신의 은혜를 꼭 갚겠다고 맹세를 했소. 이제 운명이 우릴 당신 곁에서 떠나게 만드는구려.”
그가 충양에게 절을 하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충양이 갑자기 깨어났다. 그의 눈길이 정원을 훑었다. 평소와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밤바람에 흔들리는 모란들이 마치 누군가 나지막이 말하는 것처럼 속삭였다. 충양이 산으로 보냈던 개인비서가 베이징에 도착했다. 그는 그에게 금괴를 돌려주었다.
국경에서 전쟁이 터졌다. 충양은 대장군으로 임명되어 베이징을 떠났다. 측근들이 조정을 비우는 것은 위험하다며 만류했다. 하지만 충양은 수도에 머무는 것이 따분했다. 그는 전쟁만이 치료할 수 있는 - 그는 그렇게 믿었다 - 이상한 공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여섯 번째 달 중순에 거위 깃털 같은 굵은 눈송이들이 떨어졌다. 전투가 끝나자 하얀 땅은 병사와 말들의 시체, 피에 물든 풀들로 뒤덮였다.
황궁에서 급보가 날아들었다. 황제가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충양은 단숨에 수도로 돌아갔다. 그는 궁궐 대문에서 황실근위대에 의해 체포되었다.
몇몇 대신들이 충양의 부재와 치위의 임종을 틈타 군대를 동원해 황궁을 포위했던 것이다. 반란과 치위의 죽음으로 다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영종은 충양에게 극형을 선고했다. 일 년 후, 그는 황실의 부마라는 이유로 감형을 받았고 귀향을 떠났다.
귀향 길에 오른 그가 고향을 지나가게 되었다. 징 소리와 충양이 끄는 쇠사슬 소리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죄수가 지나가는 것을 구경하며 재미있어 했다. 충양은 열두 살 이후로 두 번 다시 찾은 적이 없는 자신의 옛집을 보았다. 그는 수행 병사들에게 지니고 있던 엽전 몇 푼을 건네며 잠시 들렸다 갈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덧문들이 모두 떨어지고, 한때 화려했던 지분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사람들이 벽을 허물고, 대리석 상감을 뽑아가고, 기둥을 무너뜨리고, 귀한 목재로 된 문틀을 떼어가 버렸다. 약탈자들이 모든 것을 쓸어가 버렸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먼지와 거미줄로 뒤덮인 그의 방 창문 앞에 썩은 수양버들 둥치 두 개가 나란히 서 있었다.
충양은 뤼이와 헤어지던 장면을 떠올렸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가장 늙은 나무 아래로 이끌었다. 그들은 다음 생이 시작되자마자 오누이가 되어 다시 만나자고 맹세했다. 하지만 충양의 앞길에는 암흑뿐이었다.
[둘]
우리 가문은 주원장 장군이 중국에서 몽고군을 몰아낸 후에 명나라를 세우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14세기 중엽에 황실 조정에 들어갔다.
십삼 대가 이어진 삼백 년 동안, 우리 가문은 쉬지 않고 부, 권력, 그리고 영광을 좇았다. 아들들은 고위직에 올랐고, 딸들은 명문가로 시집을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기근이 극에 달하자 도적의 무리들이 난을 일으켰다. 전국을 휩쓴 그들은 베이징을 포위하고 쯔진성의 문을 부쉈다. 황제는 정원에서 목을 매고, 반란군의 우두머리 인 리쯔강(李自成) 장군이 권좌에 올랐다.
만주 오랑케들이 제국 내부의 정세가 어지러운 틈을 타 북쪽에서 밀고 내려왔다. 변심한 한 장군이 그들에게 완리창정의 문을 열어주었고, 황위찬탈자 리쯔강은 화살을 맞고 죽었다. 쯔진청의 새 주인이 된 오랑캐의 왕은 청나라를 세웠다.
삼백에 달한 우리 가문의 구성원은 전쟁의 연기 속에서, 혹은 망나니의 도끼 아래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 중 하나가 멸족에서 살아남았다. 그는 이 년 동안 각지를 헤매다 남서부 고원 지대에 정착했다. 맹렬하게 흐르는 강들, 야만족들이 거주하는 험준한 산맥들이 그를 보호하고, 그의 출신에 얽힌 비밀을 지켜주었다. 그는 성을 바꾸고, 재혼을 하고, 절벽에 요새를 건설하고, 가축을 기르는 일에 전념했다.
청나라가 망하고 한인의 치세가 돌아오기를 염원하며 내 조상들은 부를 축적해갔다. 우리 집안은 수많은 딸들을 키워 그 지역 귀족들과 혼인시켰다.
그런데 마치 저주라도 내린 것처럼 아들이 무척이나 귀했다. 근근이 이어오던 가문의 적통이 끊어질 위험에 처해 있었다.
장장 삼천일 동안 이어진 기도와 무당이 처방해준 고통스러운 요법 덕분에 결국 임신에 성공한 건 우리 엄마였다. 오빠와 나는 엄마의 뱃속에서 이마와 이마를 맞댄 채 생의 첫날들을 함께 보냈다. 우리는 마치 하나의 몸처럼 결합되어 있었다.
오빠가 네 살이 되자, 할머니는 쓰촨 지방에서 유명한 독선생을 모셔왔다.
오빠와 나는 여섯 살 때부터 이미 상반된 성격을 드러냈다. 춘이는 격하고 충동적이었다. 반면에 나는 변덕을 자제하고 표현을 조심하고, 어른들의 요구를 미리 헤아릴 줄 알았다.
병약했던 아버지는 여자들 틈에서 자랐다.
봄이 늦게 찾아왔다. 파릇한 사프란 새순들이 눈을 뚫고 올라왔다. 검은 당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리고 태양이 눈부신 빛을 발한 어느 날, 나무들이 녹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첫 번째 첩은 사당패의 딸이었다.
세 번째 첩은 살에 선 장에서 머리를 빡빡 밀고 회색 당의 차림으로 구걸을 하다가 아버지의 눈에 들었다. 스무 살인 그녀는 예쁜 얼굴과 활달한 기질로 집안 사람들을 홀렸고, 고아로 보낸 어린 시절 이야기로 마음들을 짠하게 했다. 하지만 춘이와 나는 검은 뱀장어 같은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관자놀이까지 길게 찢어진 그녀의 눈을 두려워했다. 춘이가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훌쩍 크자, 그녀는 그때까지 무시하며 지냈던 그를 희롱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피해 다니는 그를 유혹하려고 시도했다. 나는 화가 났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말없이 고통을 삭였다.
달은 고독을, 고독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상기시켰다. 꽃들은 시들고, 그와 함께 시간은 달아났다. 악천후는 아름다움에 대한 고삐 풀린 세상의 잔인성을 나타냈다.
춘이는 다리를 쭉 뻗었다. 이 길로 집으로 돌아간다면? 밤새 화를 삭인 아버지가 그를 용서해 줄지도 몰랐다. 설마 장차 후계자가 될 외아들의 목을 벨까? 그래, 날이 밝는 대로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한 오아시스를 지나자 모래가 여기저기 덤불들이 솟아 있는 굵은 자갈들로 변했다. 그 척박한 땅에 진홍색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그는 거의 아무도 만나지 못한 채 말을 타고 달렸다. 날이 저물면 땅에 단도를 박고 말고삐를 묶었다. 망토로 몸을 감싸고 풀 위에 드러누워 별들이 천천히 이동하는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고요가 민첩한 여우처럼 지면을 내달렸다.
나는 몰래 도망을 준비했다. 가진 것을 모두 춘이 에게 줘버렸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의 보석을 훔쳐야만 했다. 나는 말을 타고 먼 길을 갈 때 입을 옷들을 짓게 하고, 말 타는 법을 배웠다.
초원이 그늘에 잠긴 산맥의 경사면 앞에서 중단되었다.
세 번째 마을에 도착했을 때 지평선 너머로 해가 기울었다. 농부들은 일손을 마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없었다. 붉게 물든 구름 아래 나무들이 덧없는 것과 영원한 것에 대해 명상하고 있었다.
네 번째 마을에는 승려들이 살고 있었다. 연기에 시커멓게 그을린 벽화들이 쓰러져가는 사찰들을 뒤덮고 있다. 어두컴컴한 회랑의 아치 아래 보살들이 인상을 쓰고, 맹렬하게 피리와 비파를 연하고, 죄진 들을 짓밟고 있다.
열 다섯 번째 마을 출구, 양고기 국수를 먹은 주막에서 그는 황허의 사공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통이 넓은 그들의 검은색 바지는 허리 부근이 푸른색 면 허리띠로 질끈 묶여져 있었다. 그들은 맨 상체에 흰 조끼를 걸치고 있었다. 툭툭 불거진 핏줄이 끔찍한 문신처럼 팔을 타고 기어 올랐다. 그들은 아무 말없이 화주를 들이켜고 양고기 국수를 주문해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강가에 선 춘이는 말이 끝없이 펼쳐진 흙탕물에 흡수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가 강둑을 떠났다. 대지는 작별을 고하는 자에게 끝없는 시야를 제공했다. 모래톱이 길게 이어졌고, 갈대가 바람에 몸을 뒤척였다. 멀리, 옥수수 밭이 밀밭을 얼싸안고 있었다. 지평선의 산들이 납작해졌고, 얼마 안 가 보이는 것이라곤 격류, 수포, 소용돌이뿐이었다. 구름과 야생거위들이 지나가는 하늘은 불확실한 색깔을 띠고 있었다. 강은 고생의 흔적이 역력한 노인네의 얼굴을 닮아가고 있었다. 배를 처음 타보는 춘이는 토를 하고 말았다. 그를 놀리기라도 하듯,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사공의 목구멍에서 걸걸한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가을이 산을 기어올라 절을 드나든 다음 평야로 다시 내려왔다. 농부들이 밀을 추수하기 시작했다. 춘이는 마침내 총안이 뚫린 성벽에 대문이 활짝 열린 도시, 베이징에 도착했다.
나는 비단 허리띠에 문과 금고 열쇠들을 차고 다녔다. 그것들이 내가 움직일 때마다 딸랑거렸다. 나는 우리 집안의 눈부신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그 쇠락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재산을 엄격하게 관리했다. 나는 마지막 여 전사로서 사라진 조상들의 성소를 지켰다.
나는 바람, 눈, 침묵, 그리고 초원의 으르렁거림에 에워싸여 있었다.
나는 내가 택한 남자와 결혼했고 곧 임신을 했다. 내 안에서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그것은 소용돌이쳤고, 그리고 잠잠해졌다. 나는 살 속에 호수를, 바다를 품고 있었다. 나는 하늘의 궁륭으로 변했다.
어느 날 밤, 그 작은 존재가 소스라쳐 잠에서 깨어났다. 그가 몸을 비틀며 용을 썼다. 다음날 아침, 나는 사내아이를 출산했다. 산파가 아이를 보여주었다. 피에 젖은 쭈글쭈글한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셋]
아침 여섯 시, 바람이 구름을 쫓았다.
거리가 떠들썩했다. 요란한 북소리에 맞춰 아코디언들이 누구나 아는 노래를 연주했다. 노래가 멈추자 갈채가 쏟아졌다. 확성기를 통해 증폭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혁명은 최고의 이성이다! 혁명을 원하는 자들은 환영이다! 혁명을 원치 않는 자들은 모두 꺼져라!”
1966년, 유난히 큰 사건이 많았던 그 해, 나는 윗입술 위에 솜털이 거뭇거뭇 자라는 열 여섯 살 소년이었다. 나는 사내가 되기를 원하는 소년의 어마어마한 고통을 가슴에 담고 있었다. 현기증과 뒤섞인 우수가 나를 덮쳤다. 공허한 가슴, 멍 한 영혼, 나는 춘궁의 폐허로 산책을 나갔다. 나는 미래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어질 시절을 기억하지 못했다. 나의 유일한 관심거리는 ‘나는 누구지?’라고 고통스럽게 자문하는 것이었다. 아름답던 그 여름날 아침 기적이 일어났다.
중관춘 광장에서 캠퍼스에서 나온 칭화 대학교의 학생들과 마주쳤다. 녹색 군복 차림에 마오쩌둥 주석의 초상화를 가슴에 들고 오른팔에 붉은 완장을 찬 그들은 깃발을 흔들며 회의실에서 뜯어낸 커튼 두 개를 이어 만든 십 미터 길이의 넓은 플래카드를 들고 다녔다. 거기에는 마오 주석 만세! 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붉은 마오쩌둥 어록을 꺼내 들고 행진하기 시작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곧 농부, 노동자, 일선 직원들의 자녀들로 구성된 새로운 그룹의 대학생들 사이에 끼었다.
그들의 완장은 공식 규격과 일치하지 않았다. 그것은 손으로 기워 붉은색으로 물들인 것이었다.
거의 계집아이로 보이는 한 아가씨가 삼륜 자전거가 끄는 수레 위에 앉아 현기증 나는 솜씨로 아코디언 가락을 연주했다. 그녀 주위에서 마오 주석의 초상화가 춤을 췄다.
환호 속에서 여대생 둘이 동료들의 어깨를 짚고 무리위로 올라가 마주 섰다. 그들의 선창으로 혁명가가 울려 퍼졌다.
동무들, 우리는 극히 순수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일본군을 상대로 팔 년, 국민당을 상대로 사 년의 전쟁을 치르는 동안 나라는 초토화되었고 문명은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우리 대학생들은 사회를 개선하려는 욕망이 들끓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주석께서는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하신다. 모든 것을 깨부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 그것은 스스로를 심판하고, 감히 경멸하고, 자신의 충동을, 젊음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혁명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 자신에게 남아 있는 구시대적 규범의 잔재를 제거하는 것, 그런 연후에 썩어 문드러진 모든 요소들과 함께 낡은 사회를 전복시키는 것입니다.
나는 내 부모와 스승들을 추호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절대적 진리였다. 내 삶은 아무 일 없이 평화롭게 흘러갔다. 나는 부모와 스승을 존경하고, 독서, 장기, 축구를 좋아하고, 언젠가 천체물리학자가 되기 위해 베이징 대학에 입학하기를 꿈꾸는 모범생이었다. 동무들. 미래는 청년의 것입니다. 마오찌둥 사상의 깃발 아래 하나로 뭉칩시다. 그분의 축복으로 무장합시다. 권위를 깨부숩시다. 수정주의자, 소시민, 봉건사회 수호자들을 무찌릅시다!
마오찌둥 주석 만세!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문화혁명 만세! 중국 인민의 연대 만세!
내가 군중 속에서 확성기로 연설을 한 여대생을 찾고 있을 때, 각 대학 캠퍼스에서 나온 수천 명의 홍위병이 우리와 합류했다. 누군가 나에게 불은 깃발을 건넸다. 한 여대생이 문화혁명 중앙위원회가 내린 최근 지침을 인쇄한 종이를 나눠주었다. 나는 그것을 반으로 접어 상의 안주머니, 내 심장 근처에 집어넣었다.
학교 수업은 9월 초에 중단되었다. 우리는 새로운 지침을 공부하고 사회주의가 나아가야 할 길을 토론하기 위해 학교로 갔다. 첫 혁명위원회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탄생되었다.
내 눈이 붉은 잉크로 큼지막하게 씌어진 대자보를 훑었다. 그것은 제 1호 수정주의자, 교장 차이용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붉은 군대 소속 병사였다가 이제 오십 대를 바라보는 교장은 나에게는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한때 붉은 병사로서 인민을 위해 마오쩌둥 사상을 수호했다고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 염불이 우리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그는 험악한 발길질을 당하고 나서야 입을 다물었다.
이튿날, 학교 건물 전면에 서른 개의 대자보가 나붙었다. 교사와 학생을 갈라놓는 교묘한 이간질로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눈 밖에 난 정치학 교사, 상관과 불륜 관계를 맺은 것으로 의심 받아온 전 교장 여비서 등, 다른 반혁명분자들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계속 누군가를 색출하고 체포해야만 했다.
아버지는 유명한 외과의사, 열정을 가진 직업인, 자신에겐 엄격하고 타인에겐 관대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나는 일 년 전부터 뚜렷한 이유 없이 내 우상의 결점에 괴로워했다. 나는 그가 너무 선하고 융통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연민은 순진함에 가까웠고, 그것이 날 짜증나게 만들었다.
그가 나에게 침대에 앉으라고 권하고는 마주 앉았다. 그는 다음해 6월에 있을 예정인 대학 입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곤 어떻게 할 작정이냐고 물었다. 문화혁명을 하더라도 공부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어디 가니? 아버지가 물었다.
갈래요!
여기 있어, 어리석은 짓은 그만둬, 제발!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여러 달 동안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시험에 통과해 베이징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서는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다. 나는 산책을 하고, 친구를 사귀고, 토론에 참석했다.
나는 땅을 개간하러 오지로 떠나는 수백만 대학생들과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홍위병 농활국에 등록을 하고, 시청에 가서 베이징 거소증을 말소시켰다.
12월 1일, 베이징 경기장에서 농활을 떠나는 만 명의 홍위병이 집결하는 행사가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갈채를 보냈다. 땋은 머리에 붉은 리본을 달고 얼굴에 분을 바른 어린 계집아이들이 기쁨에 들뜬 비둘기처럼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우리의 단춧구멍에 붉은 꽃을 달아주었다.
그날 오후, 우리는 역에 도착했다. ~~~ 마침내 기차가 출발했다.
우리는 이튿날 오후 메일린 시에 도착했고, 순식간에 너무나 협소해 보인 역을 점령했다.
우연히 기차에서 다시 만났던 여대생을 떠올렸다. 그녀는 인민대학에서 도전문학을 전공하고 있었고 성은 류(柳, 버드나무)라고 했다.
대나무 숲으로 뒤덮인 산자락에 위치한 마을은 열두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수십 무(1mu는 대략 200평) 논을 경작하며 살아가는 작은 부락에 불과했다.
군인들의 어깨너머로 시민들이 물 잔을 건넸고, 우리는 목이 터져라 혁명가를 불러 사의를 표했다. 시민들이 우리를 응원했고, 우리는 입을 모아 구호를 외쳐 그들에게 답했다. 1월 1일, 우리는 자연에 최후통첩을 날렸다. 우리가 볕이 드는 산 경사면을 계단식 논으로 변모시킬 때까지 자연은 가만히 있어야만 했다. 우리는 방화 띠를 사용할 넓은 지역에서 벌목을 한 다음 구역별로 대나무 숲에 불을 질렀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산봉우리는 안개에 잠겨 있었다. 비가 그친 후, 우리는 그 짙은 색깔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도시의 소란에 익숙한 우리가 별을 바라보며 잠을 청할 당시, 대나무 들의 전율, 날카롭고, 낮고, 맑고, 묵직하고, 섬세하고, 황량한 소리들의 심포니가 우리의 잠을 방해했다. 간격을 두고 고요가 찾아 들기도 했지만, 그것은 다시 밀려오는 바람소리를 더 잘 들리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졸졸 흐르는 샘물 소리처럼 들릴 듯 말 듯한 속삭임들이 바람이 숲을 가로지름에 따라 점점 커졌다. 그것들은 백 마리, 이백 마리, 삼백 마리 말이 달리는 것처럼 소란스러울 때까지 커졌다. 갑자기, 땅의 으르렁거림, 격류의 쇄도,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의 소란. 화재는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우리가 일기예보를 고려해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그 며칠 동안 바람은 아주 약했고, 검은 연기 기둥은 하늘을 향해 똑바로 올라갔다. 우리는 마을에서 불을, 노호하고, 뛰어오르고, 용을 쓰고, 질주하는 그 괴물을 바라보았다.
야영지에서 우리는 서로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가끔 신경질적인 웃음이 터지곤 했다. 우리는 화염의 무시무시한 힘에 사로잡혀 있었다. 몇몇 마을 아낙들이 마을 반대편 끝에 있는 작은 절로 가 대지의 신에게 향을 바치려 했다. 우리는 그들을 붙잡고 그런 신앙은 봉건시대의 미신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인민에게 과학의 빛이 결여되어 있었다. 하늘과 대지의 영주들이 인민을 공포에 질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새로운 세상의 절대적 주인인 공산당 덕분에 인민이 하늘과 땅을 지배했다! 그날 밤 바로 우리는 찰흙으로 된 우상을 파괴해 그 조각을 흩뿌려버렸다.
화재로 길들여진 산은 슬픈 풍경을 제공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슬픔에 빠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잿더미 곳곳에 붉은 깃발이 꽂히고 투쟁이 시작되었다.
대나무는 생명력이 질긴 식물이다. 뿌리가 그리 깊진 않지만 놀라울 정도로 넓게 펼쳐져 있을 수 있다. 우리는 대나무 뿌리를 뽑기 위해 괭이와 호미를 손이 쥐고 불에 탄 땅을 휘젓고 다녔다.
류는 비단처럼 연약했다. 며칠 만에 퉁퉁 부어 오른 그녀의 팔은 괭이를 들 힘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작은 호미를 들고 고집스럽게 대나무 뿌리를 찾으러 다녔다.
수확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병사들이 우리를 두고 떠났다. 우리는 대학생들 가운데 새로운 조장을 선출했다. 나는 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나는 내 권위를 이용해 류가 야영지에 남게, 부엌에서 일 하게 배려했다. 그녀는 화를 냈고, 부엌일이 한가할 때면 어김 없이 들판으로 일을 하러 나왔다.
나는 산 아래에 서서 흰 구름 두루마리들이 올라가는 거대한 층계로 변한 논들을 바라보았다. 난 논들이 완성되었을 당시의 내 오만한 주장을 떠올렸다. 난 자연을 길들였다고 믿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차분한 목소리로 날 체포한 이유를 물었다. 그가 웃으며 공책 한 권을 꺼냈다. 나는 소스라치듯 놀랐다. 그의 손에 내 일기장이 쥐어져 있었던 것이다. 심문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내가 붉은 동양의 단원으로서 공산당과 주석을 전복하려는 음모에 가담했다고 주장했다. 증거물은 내가 붉은 동양의 젊은 대원과 만났다고 기록해 놓은 일기장과 붉은 별 고등학교의 배지였다.
근거 없는 비방에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발끈한 나는 언제나 문화혁명의 훌륭한 전사로 처신했노라고 대꾸했다.
누가 내 일기장의 존재를 파견단에 밀고했을까? 누가 배신했을까? 뚱보 장이 곤란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날 팔아 넘겼을까?
이튿날 오후, 발길질에 잠에서 깨어난 나는 마을 밖으로 끌려갔다. 그들이 바위 근처에 단상을 설치했다. 그 뒤로 계단식 논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등 뒤로 손이 묶인 채 단상 앞으로 끌려 나갔다. 그들은 나를 군중을 마주한 채 무릎을 꿇고 엎드리게 했다.
몇몇 구호를 외치고 혁명가를 부른 후, 누군가 단상으로 올라왔다, 곧 이어 뚱보 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가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농부들을 비웃으며 그에게 수정주의 사상을 주입하려 애썼고, 평생 무지렁이로 살기 싫으면 읽고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마지막 배신이 내 가슴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파견단장이 확성기에 대고 외쳤다. 류 동무, 당신은 용감하게도 반혁명분자를 고발했고 그가 일기장을 숨긴 장소를 알려줬는데, 이 자리에서 뭐 하고 싶은 말 없소?
순간, 내 피가 혈관 속에서 얼어붙었다. 나는 마지막 힘을 모아 고개를 들었다. 나는 군중 속에 있는 류를 보았다. 나는 그녀를 향해 눈이 아파올 정도로 증오에 찬 눈길을 날렸다. 갑자기,, 허리띠가 내 머리를 후려쳤다. 관자놀이가 윙윙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곧 정신을 잃었다.
그 심판의 날 밤은 슬펐다.
이튿날, 심문과 고문이 다시 시작되었다. 피로와 절망에 사로잡힌 나는 죄를 인정하길 거부하고 차라리 그들 손에 맞아 죽기로 마음 먹었다. 삶이 모욕과 배신으로 가득한데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점심식사 시간, 파견단원들이 날 다시 절로 데려갔다. 그들은 날 묶고는 공동식당으로 식사를 하러 갔다. 그들이 절을 나서자마자 희미한 흐느낌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통으로 뻣뻣해진 다리를 끌며 창가로 다가가 누가 이렇게 구슬피 우느냐고 물었다. 나야 류가 대답했다. 꺼져!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으니 꺼져버려. 날 좀 가만히 내버려둬.
내 말 좀 들어봐, 제발! 그들이 날 찾아와서 네가 일기장을 어디다 숨기는지 물었어. 난 어느 날 밤 네가 그 버드나무 둥치 속에 뭔가를 넣는걸 본 적이 있었어…… 난 그들에게 아무 말도 않으려 했어……그런데 그들이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네가 반혁명적 음모에 연루되었다고 말했어. 난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어. 그리고 일기장이 네 결백을 증명해줄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내가 얼마나 멍청했던지…
입 닥쳐! 내가 온 힘을 다해 외쳤다.
나는 매맞은 개처럼 제단 아래 누워 있었다.
내 말 잘 들어. 감옥 담장을 따라가다 보면 벽 위에 풀이 자란 곳이 있어. 경비원들이 그곳은 거의 통제하질 않아. 산책 시간에 그곳으로 갈게.
한 교도관이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류가 황급히 일어났다.
그 날이 저물 무렵, 나는 안뜰 구석에서 신문지 뭉치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교도관들의 부주의를 틈타 산책하는 죄수들 틈에서 슬그머니 빠져나가 재빨리 그것을 주웠다. 그 안에는 찐 빵 두 개가 들어 있었다.
류는 내 나날을 지옥으로 변모시켜놓았다. 그녀는 어디서 살까? 나는 상상 속에서 낮에는 메일린 시를 배회하다 밤이면 다리 밑에서 잠을 청하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에겐 돈이 없었다. 그녀는 식당을 돌아다니며 구걸을 했다. 그녀는 도둑질을 했다. 그녀가 어떻게 마을에서 빠져 나왔을까? 수백 킬로미터를 걸어왔을까? 그녀가 없어진 것을 안 동료들에게 쫓기는 것은 아닐까? 도시 불량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
해질 무렵, 그녀의 소포를 받고 감동한 나는 고통으로 창자가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그날 밤, 말없는 기쁨이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솟아 올랐다. 나는 그 음식을 굶주린 자의 게걸스런 눈길로 바라보는 내 감방 동료들과 나눠먹었다.
그들은 그녀에게 또 한번의 면회를 허락했다. 그녀의 옷에서는 악취가 풍겼고, 삐쩍 마른 얼굴 속의 두 눈은 예전보다 훨씬 더 커 보였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제발 베이징의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라고 애원했다.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베이징에서 날 기다…… 내가 마침내 소리쳤다. 이 고백에 지레 놀란 내가 도중에 말을 멈췄다. 그녀가 웃었다. 혼자 힘으로 버텨온 그녀는 예전보다 훨씬 강건해 보였다. 그녀의 눈에서 영악하고 쾌활한 빛이 반짝였다.
이튿날 저녁, 나는 다른 수감자들 틈에 끼어 걷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또다시 둘의 생활을 꿈꾸고 있는데 갑자기 교도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구냐? 꼼짝 마! 나는 벽 쪽으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담을 넘어온 물건 하나가 안뜰에 떨어졌을 때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날 붙들려는 교도관을 밀치고 벽 쪽으로 달려갔다. 모든 죄수들이 날 쫓아왔다. 소란 속에서 나는 담 너머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죽었어, 시신을 수습해. 류는 누구였을까? 그녀는 유성처럼 암흑 같은 내 삶을 가로 질렀다. 그녀는 어디로 떠났을까? 어디로 가야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감방을 같이 쓰는 교수 하나가 나에게 신문지 뭉치를 펼쳐 보였다. “닭고기일세,”그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말했다.
[넷] 아파트 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아무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전화벨은 집요하게 계속 울렸다. 예, 엄마. 전화를 받기 위해 뛰어서 거실을 가로지른 아징이 소리쳤다. 안 돼요, 엄마, 시간이 없어요. 저 나가봐야 돼요. 국제 코즈메틱 살롱 때문에 홍콩에 가요. 이번에 새로 나온 제 향수를 출품 했거든요…… 내일 아침에 전화 드릴께요.
아징은 택시에 뛰어들었다.
그녀가 몇몇 사원에게 전화를 걸어 지시를 내리는데 두 번째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는 스물 네 살의 그 젊은 수습 변호사를 친한 친구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네 살 연상인 아징은 그에게 모성애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의 순진함이 그녀를 즐겁게 해주었다.
수화기 저편에서 그가 갑자기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왜 매일 그렇게 바쁘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혹시 다른 남자가 있는 게 아니냐고 그녀를 의심했다. 그는 그녀가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털어 놓았다.
구질구질한 사랑고백이 그녀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을 소유한다고 믿는 남자들은 질색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리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다음 번 저녁 만남을 기약하며 그를 달랬다.
또다시 전화가 울렸다. 이번에는 헤어진 남자친구 크리스토퍼였다.
홍콩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자란 크리스는 중국어를 쓰지는 못했지만 아징이 모르는 광둥어를 했다. 두 사람은 영어로 의사소통을 했다. 겉은 황인종이지만 속은 백인종이라 해서 아시아인들이 흔히 바나나라고 부르는 종족인 크리스는 외국어와 유럽문화로 그녀를 매료시켰다.
영국은 그에게 세익스피어의 슬픈 판타지와 심각한 광기를, 그의 부모는 주상을 숭배하는 전통을 가르쳤다.
크리스의 피부에서는 위스키와 라벤더 향이 풍겼다. 그는 포로셀르 몰았다. 그는 소비하고, 춤추고, 유혹하길 좋아했고, 술과 약에 취해 살았다. 그는 외국인들을 악마라고 불렀고 자기 동족을 경멸했다. 동양과 서양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남자의 애매성이 매료되었던 아징은 어느 날 아침 마법에서 깨어났고 그와 헤어지기로 마음 먹었다.
홍콩행 비행기가 마침내 이륙해 구름을 관통했다. ~~~그녀는 자신이 저항할 수 없는 힘에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백마 한 마리를 아징에게로 끌고 왔고, 그녀가 안장에 오르도록 도와주었다. 그들은 검은 솜 산이 솟아올라 앞을 막을 때까지 광활한 구름 평원을 질주했다. 그들은 말에서 내려 거대한 층계를 걸어 올라갔다. 계단을 백 개를 오를 때마다 난간으로 둘러싸인 넓은 테라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첫 번째 계단을 오르자 궁궐이 나타났다.
어느 날 아침, 아징은 황후의 부름을 받았다. 황후가 아징에게 말했다. 나에게 총명하고 부드럽고 아량이 넓은 아들이 하나 있는데, 너희들은 천생연분으로 태어났느니라.
얼마 후, 임신을 한 아징이 알을 낳았고, 알이 부화하자 눈부신 광채들이 뻗어 나왔다. 알 속에는 사내 아이가 들어 있었다. 아침 이슬에 꿀을 섞어 마시며 아이는 천천히 자랐다. 그의 성장 속도는 지상의 아이들보다 열 배는 더 느렸다.
아징은 흰머리를 처음으로 발견한 날까지 하늘의 축복 속에서 살았다. 그때서야 그녀는 시간이 향 막대처럼 자신의 삶을 서서히 태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력이 떨어졌고, 주름이 서서히 이마를 뒤덮었으며, 등은 구부러졌고, 시력은 흐려졌다. 피할 수 없는 노쇠와 머지않은 이별의 공포에 시달리던 그녀는 고독 속으로 도피했다.
아징은 점점 약해졌고, 머지않아 더는 걸어 다닐 수 없게 되었다. 어느 날 아침, 그녀가 침대에 누워 정원에서 놀고 있는 아들을 불렀다. 한참 후에 아이가 웃으며 그녀에게로 왔다. 아이가 그녀의 손바닥에 수양버들 가지를 엮어 만든 관을 올려 놓았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곧 여행을 떠날 게다. 슬기롭고 용감하게 처신하고, 아버지 말씀에 복종하도록 해라. 내 생각이 나거든 기분이 울적하면 무지개로 산책을 나오느라, 그러면 네 발 아래 네 어미가 태어났고 도로 돌아간 넓고 비옥한 땅이 보일 게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아버지에게 가서 어머니가 뵙자고 한다고 말씀 드려라.
아이가 달려 나갔다.
그녀는 다시 침대에 누워 기다렸다. 궁궐을 지배하는 고요가 그녀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것이 샘처럼 그녀의 가슴을 가득 채웠다. 아징은 관을 품에 안으며 길게 한숨을 쉬고 눈을 감았다.
아징은 비행기가 막 홍콩에 착륙했다는 안내방송을 들었다.
홍보담당이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다. 그가 차 안에서 지역 신문에 실린 기사와 광고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인터뷰, 방송출연, 갈라 칵테일 파티 시간을 알려주었다. 아징은 딴 생각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호텔 방에 도착한 그녀는 욕조 물부터 받았다.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 입고, 화장을 한 다음 기자들을 만날 때까지 정확히 이십 분이 남아 있었다.
아징은 가방을 열었다. 그녀는 드레스 두 벌 사이에서 시든 수양버들 관을 발견했다.■
[Review]
중국 근대사의 격변기를 넷으로 나누어
부귀(富貴), 사랑, 정치적
이데올로기 그리고 새로운 시대 젊은이들의 꿈의 이야기를 담았다. 각 구성은 독창적이지만 버드나무의 생명력을
윤회로 연결 시킴으로써 끊어지지 않는 역사의 흐름을 표현했다. 시대적 배경에 여성스러운 필체의 부드러움과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서정적인 이미지. 동양의 신비로운 사상이 어우러지는 이야기 속으로 독자를 빠져들게
한다. 첫 번째 삶은 장사를 해서 많은 돈을 벌어 부귀영화를 누리던 가문이지만, 재물은 구름과 같아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이 날아갔다. 부모는 영재(英才)인 아들을 데리고 빗장 이를 피해 시골로 숨어들었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다. 홀로 남은 아들은 오직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은 과거에 등용 하는 길뿐임을 알고 노력하여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지만, 그는 사랑을 잃고 괴로워하다가 모함을 받아 죄인 된 몸으로 쇠사슬에 묶여 귀향한다. "충양이 한동안 보지 못한 칭이가 정원 입구에 나타났다. 그가 수양버들을 향해 달려들어 껴안고는 통한의 눈물을 쏟았다. 그가 아연실색해 그를 관찰하고 있던 충양을 향해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당신이 창문 아래 심어 주었던 두 그루의 버드나무요. 우리가 어렸을 적, 누이는 당신의 은혜를 꼭 갚겠다고 맹세를 했소. 이제 운명이 우릴 당신 곁에서 떠나게 만드는구려.”(본문) 두 번째 삶은 중국 황실에서 부와 권세를 누리던 가문이 새로운 힘<청나라>에 의해 밀려나면서 몰락하자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사람에 의해 다시 회복을 꿈꾼다. 시골로 숨어들어 다시 부를 이루었으나 대를 이을 후손이 없어서 위기에 봉착했다. 지극정성 천일 기도로 쌍둥이 남매를 낳았으나 가정에 비극적인 일들이 일어나고......남매는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가을이 산을 기어올라 절을 드나든 다음 평야로 다시 내려왔다. 농부들이 밀을 추수하기 시작했다. 춘이는 마침내 총안이 뚫린 성벽에 대문이 활짝 열린 도시, 베이징에 도착했다." (본문) "나는 비단 허리띠에 문과 금고 열쇠들을 차고 다녔다. 그것들이 내가 움직일 때마다 딸랑거렸다. 나는 우리 집안의 눈부신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그 쇠락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재산을 엄격하게 관리했다. 나는 마지막 여 전사로서 사라진 조상들의 성소를 지켰다."(본문) 세 번째 삶은 1960년대 중국 문화혁명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젊은 대학생들이 안정된 가정을 떠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보지만 .... "소란 속에서 나는 담 너머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죽었어, 시신을 수습해. 류는 누구였을까? 그녀는 유성처럼 암흑 같은 내 삶을 가로 질렀다. 그녀는 어디로 떠났을까? 어디로 가야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본문) 네 번째 이야기는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의 소용돌이처럼 벌어지는 일상의 삶 속에서 그들이 추구하는 꿈과 사랑의 윤리관을 표현하고 있다. "홍콩행 비행기가 마침내 이륙해 구름을 관통했다. ~~~그녀는 자신이 저항할 수 없는 힘에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본문) 저자는 중국 북경 태생(1972)으로 어릴 때부터 뛰어난 예술 지능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북경의 별”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1990년 프랑스 정부의 초청으로 파리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소로본 대학교의 교수인 부친과 생활하며, 파리 가톨릭 인스티튜트 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97년 불어로 쓴 첫 소설 '천안문'을 발표했으며, 이 책<버드나무의 네 가지 삶>(1999)은 두 번째로 쓴 소설이다. 그 후 그녀의 책<바둑 두는 여자>(2001)은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가장 읽고 싶어하는 책으로 '공쿠르 데 리쎄앙 상'을 받으며 프랑스 독서계에 샨사 열풍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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