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반친구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8분 非常戒嚴이 선포 되었다.
TV 화면을 통해 긴급 속보로, 전국에 대통령 令으로 하달 되었다.
여느 때와 다른 평온했던 그 날 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당구를
치고 저녁밥과 막걸리 한 잔하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잠이 들려는 찰라였다.
사관 생도 4학년 시절, 維新憲法 선포로 유신 헌법 지지
종로 파레이드에 참가했던 기억과 광주 民主化革命으로
국보위에서 특전사 계엄군의 시민 혁명군 진압 사태를
현역 시절 멀리서 경험했던 나로서는 암울한 앞날을
어찌 살아야 하나 걱정하며 혹시 가짜 뉴스는 아닌가
화면을 주시하던 중......
다행히 여당 일부 의원과 야당의 계엄 반대 성명이 있었고,
그렇게 155분 간의 숨 막히는 시간이 흐르며 계엄은 해제 되었다.
윤 대통령, 그는 왜 계엄 카드를 꺼내 들었을까
표면적인 이유는 국회 야당 의원들의 연속된 탄핵 발의와
예산안 삭감 등의 의회 폭주, 그리고 선관위의 부정 선거 의혹이었다.
또한 지지율 하락과 명태균 황금폰 수사,한동훈 대표의 변심으로 인한
김건희 특검 통과 가능성,측근 비리 의혹 등,
국면 전환을 위한 수단으로 계엄을 택한 것 같다.
정치적으로는 야당과 協治 보다는 대결 구도로 검찰 권력을
앞세운 야당 탄압과 언론 장악 이었다.
사회적으로는 고물가, 고금리,고환율의 현상으로 민생 경제의
악화에서 국민들의 불만을 고조 시켰고,
그래서 충성스러운 군을 동원하여 국정을 완전 장악하고,
자신을 향한 정치 공세를 막으려 했던 것 같다.
계엄군에 의한 국회 장악을 위한 어둠 속의 군사 작전은
날짜와 시간 선택의 부적절,목적에 따른 임무의 불 명확,
그리고 보안의 중요성 이라는 이유로 모든 정보,
작전 부대가 동원됐으면서도,
통합 작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작전이었다.
계엄이 선포되고, 계엄군 707 특전 부대를 태운 헬기는
비행 금지 구역 통과의 협조 없이, 통과하려다 수방사 작전처의
거부로 통과 여부가 40분이나 지연되어,
계엄군은 계엄이 선포되고서, 1시간이나 늦게 목표 지역에 도착했다.
이들 부대는 임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상부 지시만 산발적으로 듣고, 갈팡질팡했다.
전방 작전 부대와 후방 작전 부대 간의 업무 협조도 없었다.
즉 수방사와 특전사의 협조 부재와 합참과의 소통 단절,
현장 지휘관의 정확한 임무 미숙지 등의 불합리성이 있었다.
따라서 병사들은 자신들이 왜 국회에 왔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임무를 알지 못하고, 시민들과 부딛쳐야 했다.
엄마 같은 나이든 시민 어머니들과 형제, 자매,친구 ,동생들의
비난을 받아들이는 곤욕을 치뤄야 했다.
출세 욕에 눈 먼 일부 정치 군인들의 병정놀이 하듯 진행된 계엄으로
국민과 군만 피해자가 되었다.
모든 군사 작전은 적이 알지 못하는, 예상치 못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신출귀몰하게 신속히 진행되어야 하는 데, 그러하질 못했다.
6.25는 북한군이 일요일 새벽 BMNT-30분 (해뜨기 전 가장 어두운 시간),
04 시에 공격이 개시 되었고,5.16 군사 쿠데타는
밤 00시에 쿠데타 군이 출동하여 한강 헌병 초소를 유린하였다.
12.12도 국민이 잠든 시간,12시에서 새벽 4시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이번 계엄은 일요일도 아니고,
00시도 아닌 평범한 날자와 시간에 국민들이 가족과
TV보는 시간대에 행동 개시를 했었다.
그 외에 위헌적인 계엄 포고령에도 중대한 헌법을 어긴 것이다.
계엄군은 그 날 밤 11시 까지 국회 의사당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국회의원들이
집결 할 시간을 벌어 주었다.
계엄군들에게 구체적인 후속 조치를 지시하지 않았고,
단계 별, 액션 플랜도 없었다. 의원을 끌어내라는 대통령 지시만 있었지
구체적인 후속 계획이 없어, 현장 지휘관들이 우왕좌왕 하였고,
일부 병력은 進入과 鎭壓,逮捕를 포기하거나 철수 명령을 기다리기도 했다.
시민들과 국회 보좌관 들과의 대치로 계엄군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보안에 치중하려다, 보안과 실행 사이 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친위 쿠데타는 거의 100% 확률로 성공한다는 과거 경험을 놓친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계엄을 막아낸 저항과 힘은 시민들의 저항 연대였으며
국회 앞의 촛불 시위였다고 할 수 있다.
계엄군과 시민의 대치는 시민들의 두려움을 이겨낸 용기와
전국 각지에서 '우리가 대한민국을 살려야 한다' 는 시민들의 憤怒 였다..
전국 각지에서 타오르는 촛불,SNS를 통한 실시간 저항 운동,
새로운 연대의 방식, 실시간 정보 공유,가짜 뉴스의 대응,이런 것들이
계엄을 막아내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할 수 있다.
여기에 더 결정적인 것은 현장 계엄군 지휘관과 병사들의
과거 역사 경험을 통해 배운 인내와 자재, 소극적 대응이 피를 흘리지 않는
계엄 해제의 원동력 이었다.
긴급 의원 총회를 소집 ,계엄 해제 결의 안 통과,시민과 국회 직원들의
몸싸움,이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이 되었다 할 수 있다.
민주당 지도부의 신속한 의사 결정과 의원들의 단합과 결속력,
시민들과의 연대, 병사들의 민주 의식과
군인으로서 시행하기 어려운 명령 불복종의 용기 있는
선택의 종합 작품이었다.
이번 사태에서 현장에 투입된 군인들의 苦惱가 컷을 것이다.
군인은 상관의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처벌 받게 되어 있고,
전시에는 사형감이다. 전장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야 할
엘리트 군 장성들이 계엄에 연루되어 처벌을 받고
불명예 제대하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다시는 군을 이런 임무에 투입해서는 안된다. 군의 총은 적에 향해야 한다.
무너진 신뢰와 상처 입은 군을 치료하기 위한 군 개혁이 필요하고,
정치 군인 척결을 위한 인사 시스템의 개혁과,군 내부 통합 감시 시스템의
강화,군 사법 제도 개혁,군 인사 시스템의 개혁,
군의 정치적 중립 확보 방안, 등이 고려 된다.
잘 훈련된 군인들이 딴 생각하지 않도록 하고,적과의 전투에서
필승 할 수 있도록 사기를 북돋아 주어야 한다.
예비역이 된 후에도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된다.
나는 군에 입대하면서 부터, 世界戰史를 공부할 때,
수 많은 배울 점이 많은 장군, 이를테면, 거대한 로마를 무너뜨린
카르타고의 한니발, 세계를 통일한 알렉산더 대왕, 안토니우스,
중국을 통일한 한신,프랑스 혁명을 완성한 나폴레옹 ,
2차 대전시 전격전의 롬멜, 패튼,한국 전쟁시 상륙 작전의 맥아더 ,
아이젠 하우어등, 많다. 그 중에서도 해군으로서 넬슨, 야마모도 이소로쿠,
이순신 제독을 존경하지만 ,
그 분들 말고도,내가 좋아하는 장군이 몇 있다.
한분은 내가 미 지휘참모 대학 연락 장교로
근무할 때, 초청 강사로 온 미 육군성 4성 장군 모씨와
여주에서 귀농하여 농사를 짖고 있는 동기생, 그리고 고향에 낙향하여
농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힘쓰는 동기생 등 셋을 꼽을 수 있다.
이분 들은 하나 같이 퇴역하고서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군인다운 군인이다.
지휘참모대 강의하러 온 4성 장군은, 지금 하시는 일이 무어냐고
여쭈었더니,예편 후 택사스에서 땅공 밭을 경작하고 있다 하고,
여주에 살고 있는 동기생은 매년 양봉을 하여 꿀을 몇 통씩
보내주고 있고,한 동기생은 나의 골프 멤버였는 데,
영암에 귀농하여, 농촌 계몽에 헌신하고 있다.
일체 정치와는 거리가 먼, 4성, 3성 장군들이다.
군인은 현직이 든, 예비역이 든,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된다.왜냐하면 이들은 잘 훈련된 1등 총잡이 이며,
쉽게 위험한 총을 만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지도층에서는 헌법을 개정하고,계엄 요건 강화,
계엄 선포 절차 개선,국회의 통제 권한 강화
대통령의 군 통수권 제한,군의 국민과의 관계 재정립,
군 인권 개선 등이 시급하고,
계엄을 통해 배운 교훈은 '민주주의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서 지켜내야 하고,
중도층의 적극적인 민주주의 참여,권력은 부폐하기 쉽고,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더욱 위험하다.군은 정치적 중립을 지겨야 하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뼈아픈 교훈을 국민에게 심어 주었다.
역사는 하시라도 반복될 수 있다(History is repeated).
깨어 있는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구했다.
적극적인 정치 참여와 연대와 협력,민주주의에 대한 지속적인 학습,
이에 더 해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 선거 제도, 정당 개혁
국회 개혁, 경제 개혁으로 불평등 해소, 재벌 ,노동 사회 언론 개혁이
필요할 것이다.
미래 세대를 위한 과제로 역사 교육의 강화, 민주주의 가치 전승,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 등이 필요한 시점으로
이번 계엄 사태는 교훈을 주었다 할 것이다.
다음 정부는 통합과 화합으로 상처를 빨리 치유하고,
급변하는 세계 안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외교 노력과
세계에서 1등가는 K-문화, K-정보 산업이 발전되도록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친구들! 건강과 행운을 빈다.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