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카라반을 숙소로 사용하는 뉴질의 할리데이 캠프
파이히아에서 오랜만에 할리데이 파크에 묶게 되었고 이왕 이럴 바에는 전에 경험하지 않은 On Site Caravan 이란 곳에 자게 되었다. 왜 캠퍼밴은 아니지만 잠을 자게끔 만들어진 방 모양의 박스를 달고 좋다고 여행가는 뉴질랜드 사람들을 여러분은 보았지 않았는가?…그 끌고 다니는 발통 달린 잠자리가 노후화되면 할리데이 캠프 같은 곳에서 구입해서 잠자리로 사용이 되나 보다.
카라반 안에는 더블 침대 하나와 싱글 침대 하나가 있고 적당히 부엌시설이 구비되어 있는데 수도꼭지는 있지만 물은 나오지 않더라…그리고 작은 냉장고도 있고 커피포트도 있고 그랬다. 화장실이 없다는 게 흠…카라반 창문엔 커튼이 있으니 잠잘 때는 적당히 가리면 된다. 뭐 할리데이 파크엔 웬통 텐트치고 자는 사람들과 캠퍼밴 끌고 와서 자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좀 궁상스런 모습도 적당히 괜찮아 보인다.
손님들은 90마일 비치로 새벽같이 떠났고 하루 종일 나 혼자 남아서 뭐 하나 그러다가 생각해 낸 게 파이히아, 이 바다 같지 않은 조용한 바다에서 카약킹을 해보기로 했다. 오클을 떠나 올 때는 어디 적당한 워킹코스 하나 선정해서 종일 걷기나 하자 그랬는데 이 눔의 늦더위가 날 물로 가게 만들었다.
사무실에 카약 빌리러 갔더니 시간당 5불인데(이거 너무 싸다…) 아직 물때가 아니란다. 그래서 그때까지 주변을 어설렁 거리기로 했다. 마침 할리데이 캠프 뒤로 산길이 하나 있어 걸어갔더니 올라가는 척 하다가 금방 바닷가 쪽으로 선회한다. 그럭저럭 나무 사이로 파이히아 바다를 떠도는 배도 지나가고 해안가 사람들도 보이고 괜찮다. 경치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벤치가 만들어져 있어서 들고 왔던 맥주 캔 하나를 두 번째 벤치에서 끝장을 내버리고 다시 출발.
이윽고 산길은 끝이 나고 큰 도로를 목전에 둔 지점에서 이번에는 물 빠진 뻘을 걸어 해안가를 통해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처음엔 얼마나 빠지나 보자 그랬는데 어떤 곳은 마치 어릴 적 미꾸라지 잡던 시궁창처럼 많이 빠지더라. 물 빠진 해안에서 듬성듬성 몸을 드러내고 있는 식물들을 보고 경외감을 느끼기도…
마침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을 만났는데 이 눔의 개가 바다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주인이 던져주는 나무막대를 찾아서 바다 속을 달려 들어갈 때는 무슨 돌고래가 튀듯이 야단법석이다. 그리고 나와서 부르르…한번 털고. 신나는 뉴질랜드 개, 누가 나에게 뉴질랜드엔 누가 가장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개’라고 이야길 하겠다.
작은 강이 흐르는 건너편 모래 사장에서는 노 젓는 작은 배에 여자아이 하나를 태운 아버지인지 삼촌이 열심히 노를 움직이고 있고 그걸 할아버지 할머니 인듯한 사람이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보고 있었다. 바람이 강한지라 아니면 노 젓는 실력이 딸리는지 배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늘엔 두둥실 흰구름이 떠다니고 그 사이로 눈 좋은 갈매기들이 뭔가 먹을 게 없을까 선회를 하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앞서 멀리 갔건만 그 눔의 보트는 아직도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자 급기야 앞서 갔던 할아버지가 이쪽을 한참이나 응시하다가 안되겠던지 강물로 들어온다. 이 일련의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흘러가서 몇 커트 사진을 찍어봤는데 얼마나 표현할 수 있을까?...지금 이 모습에는 가족간의 사랑과 염려가 듬뿍 녹아서 나한테는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다시 바위로 이루어진 해안을 걷다 보니 바위에 달라붙어 있는 게 모두 굴이란 걸 알았다. 굴…내가 어렸을 때 동해바다 할아버지 댁으로 여름에 놀러 가면 바닷속 잠수해야 겨우 채취할 수 있던 그 굴이 사방에 덮여 있었던 것이다. 맥주가 아니라 소주를 하나 차고 왔었으면 좋았겠다 그러면서 몇 개를 깨뜨려서 먹어보니 달콤한 그 맛에 아련한 옛 생각이 나를 30여 년 전으로 끌고 간다. 뉴질랜드에, 철 지난 파이히아 바닷가에서 난 싱싱한 한국의 동해를 생각한다.
물때가 조금 이르지만 사무실에서 카약을 하나 빌렸는데 생각보다 무겁더군. 바다까지 질질 끌고 가는데 그걸 본 주인 아저씨, 들고 가란다. 너나 들지 내가 어떻게…그러다가 끙끙거리고 겨우 물가로 도착. 디카는 바닷물에 안 젖게 카약 꼭대기의 노끈에 단단히 묶어두고 살살 카약을 몰고 캠프 건너편 바닷가에 도착, 거기서 카약에서 나와서 수영을 했다. 물이 빠져 있어 그런지 깊지를 않다.
그런데 수영하고 수영복 호주머니에 자동차 키를 넣어두었었는데 이게 그날의 낭패였다. 아마도 바닷물이 알람 장치에 이상을 일으켰는지 알람 시스템이 해제가 되질 않아서 이후 차를 움직일 때 마다 도난 경보가 시끄럽게 울려서 얼마나 당황했는지…온 파이히아 시내를 삑삑거리면서 다녀야 했으며 그날 수많은 사람들이 날 자동차 도둑으로 오해를… 결국 그 날밤 차는 캠프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캠프 들오는 비포장길에 주차할 수 밖에 없는 지경까지 이른다.
- 새벽에 부리나케 그 전날 AA 에서 가르쳐 준 카센터에 가서 알람 선을 자르고 나서야 차는 조용해 졌다는 웃기는 피이히아의 추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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