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7월15일-16일(土日) 雨雲
▲변산반도(邊山半島)(3)(원암리-직소폭포-월명암-낙조대-남여치)
해봉산악회(15명)
♠참 고
변산반도국립공원[邊山半島國立公園]
전북 부안군에 있는 국립공원.
국립공원 지정연도 : 1988년 6월 11일
면적 : 157㎢
명물 : 직소폭포, 낙조대, 선계폭포, 적벽강, 변산해수욕장
변산반도 서부의 변산산괴(邊山山塊)를 중심으로 1971년12월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88년 6월 11일에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범위는 변산면(邊山面) ·하서면(下西面) ·
상서면(上西面) ·진서면(鎭西面)에 걸쳐 있다. 변산의 경치는 일찍이 한국 8경의 하나로
꼽혀 왔으며 내변산(內邊山), 즉 산의 변산과 외변산, 즉 바다의 변산으로 나누어진다.
내변산의 경승은 300∼400 m의 산지가 이루는 산악미 ·계곡미와 울창한 수림 및 산중에
산재하는 사찰 등으로 이루어진다.
상서면 감교리(甘橋里)에 있는 개암사(開岩寺)는 고려 숙종(肅宗) 때에 창건한 절로 그 뒤
조선 초기에 건립된 개암사대웅전(大雄殿:보물 292) ·개암사동종(지방유형문화재 126)
등이 있다. 변산면 석포리(石浦里)에 있는 내소사(來蘇寺)는 신라 때 창건한 고찰로
대웅보전(大雄寶殿:보물 291) ·고려동종(高麗銅鐘:보물 277) ·법화경절본사본(法華經
折本寫本:보물 278) ·내소사삼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124) ·내소사 선실당과 요사(지
방유형문화재 125) 등을소장하고 있다. 경내 일대의 전나무숲이 훌륭하다. 내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높이 약 20 m의 직소폭포(直沼瀑布)는 그 용소(龍沼) 옥수담(玉水潭)
및 그 밑에 이어지는 제2 ·제3폭포와 더불어 내변산 제일의 경승지를 이룬다.
산내면 중계리(中溪里)의 낙조대(落照臺) 정상부에 가까운 동사면에 6 ·25전쟁 때 병화를
입은 것을 중건한 신라시대 창건의 월명암(月明庵)이 있다.
그 뒷산인 낙조대(448 m)는 황해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는 경관이 훌륭하다.
내변산에는 실상사지(實相寺址) 등 유적과 울금바위 ·선계폭포(仙溪瀑布) ·가마쏘[釜棲]
등 경승지가 있다. 외변산의 경승은 주로 암석해안의 해식애(海蝕崖)와 모래해안의 백사
청송(白砂靑松) 등 해안경치로 이루어진다. 변산면의 격포리(格浦里) 해안에는 채석강
(彩石江) ·적벽강(赤壁江)의 두 경승이 있다. 두 경승을 강으로 부르고 있으나 하천이
아닌 해식애에 붙여진 이름이다. 중생대 백악기(白堊紀) 신라층군(新羅層群)에 속하는
퇴적암이 침식을 받은 두 해식애가 각각 중국의 시선(詩仙) 이태백(李太白)과 문장가
소동파(蘇東坡)가 노닐던 채석강과 적벽강의 경치와 흡사하다 하여 이름지어진 것이라
고 한다. 층암단애(層岩斷崖)를 이루는 해식애와 밀물에 깔리는 자갈 등이 뛰어난 해안
경치를 현출한다.
변산면의 대항리(大項里) 해안의 변산해수욕장은 백사청송 10리의 아름다운 경치와 심하지
않은 조석간만의 차 및 완만하게 깊어지는 수심 등 천혜의 조건을 갖춘 해수욕장으로,
숙박 ·위락 ·공중 시설 등이 잘 갖추어져 있다. 그 밖에도 변산면 일대에는 호랑가시
나무 군락 ·후박나무 군락 ·꽝꽝나무 군락 등천연기념물이 있다.
♣산행 코스
원암리(05시27분)-->원암재(6시2분)-->직소폭포(6시25분)-->자연보호비식사(7시10분)-->
너럭바위전망대(7시50분)-->월명암(8시40분)-->낙조대(9시2분)-->남여치(9시47분)
총 4시간20분
☞☞세 번째 변산반도 산행이다. 다음주의 해봉산악회 창립기념12주년 기념 산행 때 유공자
4명에게 기증할 비디오테이프를 만들기 위해서 참여했는데 비가 온다는 예보 탓인가 5명중
3명이 불참이고 더욱 맥이 빠지는 건 집행부 이사를 포함하여 모두 15명.
조 회장의 적자도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소리를 들으며 밤 11시에 출발한다.
서부산T/G를 빠져나와 남해고속도로에 오르자 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 대장이 힘없는
안내방송을 하고 얼마가지 않아 도로가 정체, 마산T/G를 한시간만에 간신히 빠져나간다.
문산휴게소에 들려 용무를 보고 다시 달리는데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04시25분, 23번 국도를 달리고 있다.
전면 유리창에 윈도브러시가 왕복하며 빗발이 부디 친다.
내소사 주차장까지 가서 용무를 보고 되돌아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 훤히 밝은
원암마을 입구에 도착한 게 5시20분,
흰 고무신 신고 비 맞으며 산행을 안 하겠다는 조 회장을 남겨두고 상견례도 없이
5시27분, 산행 길로 출발한다.
첫 번 산행은 깜깜한 밤중에 프렛시를 비추며 출발하여 주변을 제대로 촬영 못했고 이번은
비가 내려 판초 우의를 입었으나 열기를 식히기 위해 판초를 반 넘어 뒤로 제겨서 불편
하기 이를 떼 없다.
원암경노당 옆길을 지나 텅 빈 매표소에 도착한 게 5시34분.
침목으로 만든 계단을 오른다.
5시40분, 비스듬히 누운 너럭바위길 을 올라서고 완만한 바위오름길은 계속 이어진다.
5시55분, 가벼운 바위 오름 턱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6시, 해발180m 재백이고개 삼거리 이정표(원암매표소1.2km 내소사2.1km 직소폭포1.5km)를
지나 안개구름이 피워 오르는 주위 산자락을 바라보며 내리막을 탄다.
숲 속 길에 이정표(직소폭포1.2km)를 지나면서 빗줄기가 다시 굵어지는 가, 노란 원추리
기 피어있는 흘러가는 개울에 파문이 인다.
6시25분, 빗발이 그쳐 판초를 벗고 폭포소리가 요란한 해발110m 직소폭포이정표(월명암
3.1km 내변산매표소2.4km)옆을 지나 오른편으로 시계가 트이면서 산자락 아래 작은 벼랑
바위에 하얀 물기둥을 떨어뜨리는 직소폭포(直沼瀑布)를 내려다본다.
석포리(石浦里) 소재 내소사(來蘇寺)의 북서쪽, 선인봉(仙人峰)의 동쪽 산자락에 형성된
계류폭포(溪流瀑布)로, 높이 20 m 이상을 비류(飛流)하여 옥수담(玉水潭)에 떨어지는데
그 밑에 제2 ·제3의 폭포가 있고 현지인들은 이 폭포와 그 일대를 내변산(內邊山)의 제일
경승으로 치며 변산 8경의 하나로도 꼽는다고 한다.
폭포 아래로 내려가 우람한 굉음 속에 물줄기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올라가 등산
로변에 세워놓은 폭포형성설명판을 보고 다시 아래로 내려가는 길목에 2,3폭포를 거쳐
내려오는 잔잔한 호수를 촬영한다.
몇 년 전 이 코스를 새벽에 지나갈 때 요란한 황소개구리 소리를 들은 기억이 생생한 넓은
호수를 오른편으로 끼고 가는데 저만큼 못 위 암벽위에서 회원들이 캠코더를 의식했는지
두 손을 흔든다.
너무 쳐진 것 같아 잰걸음으로 뒤쫓아 그 암벽위에서 한 군등 젊은 회원들이 기념촬영에
여념이 없고
멀리 직소폭포와 호수를 배경으로 기념촬영 한다.
7시6분, 자연보호헌장비가 있는 갈림길 이정표(월명암2.0km 내변산매표소 )를 거쳐
원추리 한 송이가 외롭게 피어있는 오름 끝에 정 대장등 회원들이 등산로 변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부산에서 세 산악회가 올라온 중의 ‘정다운산악회’회원들이 한발 앞서왔는지 식사를
끝내고 먼저 올라가는데 정 대장이 자격지심에서인지 쪽팔린다고 한다.
7시25분, 안정적인 촬영을 위해 적당히 식사를 끝내고 먼저 올라간다.
왼편으로 작은 조망바위를 바라보며 제법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
7시50분, 이정표(월명암1.2km 직소폭포1.7k)를 지나 바로머리위에 보이는 목책으로 안전
장치를 해놓은 너럭바위 조망대에 올라선다.
세 방향으로 조망이 확 트이는데 좌로 산비탈에 잿빛 안개구름이 소용돌이치며 하늘로
솟구친다.
5,6분 뒤 집행부 순남양이 앞장서 올라오고 그 뒤를 일일회원인 풍만한 부녀회원등 8,9
명이 따라 올라온다.
목책 앞에 서게 하고 캠코더로 행복한 순간들을 담고
단출한 회원들을 오른편 너럭바위위에 서게 하고 단체기념촬영한다.
목책 건너편의 산자락에는 잿빛 구름이 피어오른다.
다시 너럭바위위에 먼저 올라가 뒤따라오는 회원들을 촬영하는데 갑자기 순남양이 소리
친다.
“잠깐요! 선두 리더를 두고 먼저 올라가면 어떻게 하요! 내가 먼저 앞서갈 테니 뒤따라
오이소!”
그만 폭소가 터지고 모두 하나가 되어 행복한 시간을 갖는다.
모처럼 느긋한 시간에 유유자적의 산행을 만끽한다.
날이 선 바위 길을 거쳐 평탄한 흙길을 밟는다.
왼편으로 낙조대로 올라가는 길이 폐쇄되어 있고
8시40분, 해발380m의 월명암 이정표(남여치매표소2.0km 직소폭포2.9km)앞에 당도한다.
함석지붕으로 만들어 놓은 월명암 요사 안에 부처님을 모셔놓고 스님이 목탁을 치며 경을
읽고 있는데 한 등산객이 무릎을 꿇고 재배를 올리고 있다.
요사 오른편으로 등산로를 표시해 놓은 곳으로 내려가는 걸 낙조대를 보려면 되돌아
가야한다고 했더니 뒤돌아 올라온다.
정 대장이 어느 산악회에서 준비해온 수박을 권유받았는지 수박한쪽을 들고 오면서 웃으며
소리친다.
“마~~맛이 댓끼리 인기라!~~”
그리고 오른편으로 꺾어져 올라가는 낙조대길의 통나무 계단 길에 정 대장 부인이 정 대장의
배낭을 뒤에서 잡고 앞에서 이끌며 다정하게 올라가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 한동안
캠코더에 담는다.
9시, ‘낙조대경관해설판’앞에 올라선다.
황금빛 낙조대신
검은 구름이 드리운 희미한 수평선 아래 약7년 전 풍랑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위도를
비롯하여 작은 섬들이 보이고 회원들은 이를 배경으로 기념촬영하기에 바쁘다.
9시5분, 이제 본격적인 하산 길로 접어든다.
월명사 갈림길 이정표(법당가는길)에 낙조대쪽으로 출입금지를 시켜놓은걸 보고 회원들은
월명암에서 등산객들을 낙조대 대신 월명암으로 유인하는 한심한 속셈을 들어내었다며
실소를 한다.
9시15분, ‘관음약수’터에서 시원한 약수로 생기를 얻고 적당한 경사의 바위 길과 잡목
사이 길을 거쳐
9시47분, 새로 만든 남여치매표소를 빠져나옴으로 4시간20분의 산행이 끝난다.
2시 방향으로 저만큼 남여치 도로의 관광버스와 그 넘어 위쪽으로 군기지 정상이 보인다.
마침 정 대장 부인이 기다리고 있어 산행소감을 물으니 웃으며 이야기한다.
“오늘 변산반도 산행을 와가지고, 비가 와서 예약자가 많이 불참했지만... 적은 인원이
지만 분위기가 좋았고...”
“정 대장에게 하고픈 이야기는 없어요?”
했더니 건강을 위해 금연을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후미를 기다리며 정 대장에게 산행소감과 부인에게 한마디 할 생각이 없느냐니까 아내에게
평소 제대로 못해주어 미안하다며 앞으로 아내에게 실망시키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한다.
수박밭에서 한 회원이 시중가격보다 세배나 비싼 설익은 수박을 사서 설익은 수박파티를
하고
10시28분, 금산사로 출발한다.
왼편으로 수억만의 생명체가 서식하는 광활한 서해 갯벌과 결사반대의 현수막이 걸려있는,
자연파괴에서 오는 무서운 재앙을,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위정자와 사업자들,
말썽 많은 ‘새만금갯벌 방파재’공사현장을 한숨짓고 바라보며 달리다 부안을 거쳐
11시40분, 금산사 주차장에 당도한다.
그전부터 국보와 보물이 많은 금산사를 촬영해 보고 싶었는데 우선 금산사에 대한 백과
사전의 글을 소개하기로 한다.
+금산사[金山寺]
전북 김제시 금산면(金山面)모악산(母岳山) 남쪽 기슭에 있는 대사찰.
종파 : 대한불교 조계종
임진왜란 이전의 기록은 모두 소실되어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등을 인용하여
사적기(事蹟記)가만들어졌는데, 금산사의 창건은 599년(백제 법왕 1)에 왕의 자복(自福)
사찰로 세워진 것이라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지금까지 전하는 바로는 진표(眞表)가 762년
(신라 경덕왕 21)부터 766년(신라 혜공왕 2)까지 4년에 걸쳐 중건(重建)하였으며, 1069년
(문종 23) 혜덕왕사(慧德王師)가 대가람(大伽藍)으로 재청하고, 그 남쪽에 광교원(廣敎院)
이라는 대사구(大寺區)를증설하여 창건 이래 가장 큰 규모의 대도량(大道場)이 되었다.
1598년 임진왜란 때 왜병의 방화로 미륵전(彌勒殿) ·대공전(大恭殿) ·광교원(廣敎院)
등과 40여 개소에 달하는 산내 암자(庵子)가 소실되었다. 그러나 1601년(선조 34) 수문
(守文)이 재건의 역사(役事)를 벌여 1635년(인조 13)에 낙성을 보았다. 고종(高宗) 때에
이르러 미륵전 ·대장전(大藏殿) ·대적광전(大寂光殿) 등을 보수하고, 1934년에 다시
대적광전 ·금강문(金剛門) ·미륵전 등을중수하였다.
금산사와 인연이 있는 고승(高僧)은 혜덕왕사(慧德王師) 이외에도 도생승통(道生僧統)
·원명(圓明) ·진묵(震默) ·소요(逍遙) ·남악(南嶽) 등 대사가 거쳐 갔거나 죽거나 하였다.
주요 건물로는 미륵전(국보 62) ·대적광전(보물 476) ·대장전(보물 827) ·명부전(冥府殿)
·나한전(羅漢殿) ·일주문(一柱門) ·금강문(金剛門) ·보제루(普濟樓) 등과, 방등계단
(方等戒壇) ·5층석탑(보물 215) ·6각다층석탑(보물 27) ·석련대(石蓮臺:보물 23) ·
석종(石鐘:보물 26) ·당간지주(幢竿支柱:보물 28) ·혜덕왕사진응탑비(慧德王師眞應塔
碑:보물 24) 등의 석조물이 있다.
캐논과 캠코더만 챙겨 넣고 바쁘게 금산사로 올라간다.
‘母岳聖地’라고 음각한 석비를 거쳐 2300원의 입장료는 국가유공자증으로 대신하고,
녹지로 감싸인 홍예석문을 지나 ‘母岳山金山寺’란 현판이 걸린 일주문을 통과한다.
金剛門을 지나 天王門앞뜰 오른편 나무그늘아래에 하얀 모시저고리를 입은 할머니가
모델이 되어 대학사진반 학생들이 촬영을 하려는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보제루(普濟樓)밑을 지나 올라서니 넓은 뜰 전면에 1986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든 대적광전
(大寂光殿)이 복원되어있고 오른편으로
거대한 삼층의 미륵전(彌勒殿)이 앉아있다.
그 뒤편으로 멀리 모악산 정상이 송수신철탑전시장으로 변신하여 내려다보는데
미륵전안의 거대한 입석미륵대불을 촬영하려고 안을 들여다보니 ‘촬영금지’라는 팻말이
붙어있어 불편한 각도에서 힘들게 구도를 잡아보는데 마침 대학생 동아리 팀이 관리보살
님에게 사정을 이야기하자 1분간만 촬영하라며 허락한다.
그 기회를 이용하여
문밖에서 캠코더와 캐논으로 두어 컷 촬영하고
방등계단에 올라 보물25호 오층석탑에서
미륵전을 다른 각도에서 다시 촬영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들어있다는 사리탑, 불상좌대로 추증되는 석련대, 6각다층석탑,
노주, 대장전, 석등등 8개의 보물들을 캠코더에 담고 나니
12시41분, 그 사이 한 시간이 흘러갔다.
흐르는 땀을 주체 못하고 모자와 카메라는 비닐봉지에 넣고 바쁘게 내려와 그전부터
유명하다는 전주비빔밥을 시식을 하고 싶어 눈에 뜨이는 전주비빔밥집에 들려 비빔밥을
시켰는데 그게 돌솥 밥으로 데워서 나올 줄은 미처 몰랐다.
넉넉히 주는 양으로 별도의 그릇에 식혀가며 이열치열로 바쁘게 먹고 주차장에 도착하니
배기사가 개인적인 용무로 인근에 있는 김 성수대장의 본가에 가 아직 미도착.
그사이 주차장 주변의 노점상중에 집행부의 이사진과 회원들이 피부병에 만병통치약이라며
파는 아주머니의 선전에 너도나도 사서 서로 선물한다.
뒤늦게 버스가 도착하자
13시47분, 주차장을 떠난다.
광주까지 73km라는 금산사I/C를 빠져나와 호남고속도로위를 왼편으로 호남선의 무궁화호와
나란히 달리다 정 대장과 이사진등 몇몇 회원이 버스 뒤쪽으로 자리를 옮겨 포커 판을
벌리고
왼편 차창 밖으로 내장산을 촬영한다.
14시35분, 광주T/G를 지나 곡성휴게소에 들리고 다시 섬진강휴게소에 들려 용무를 보고
차량정체가 없어
18시, 서부산T/G를 빠져나간다.
산행 후 여건과 시간이 허락하면 이런 문화 관광지 답사도 여러모로 유익하다는 걸
새삼 느끼면서....
산 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