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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1-10 (인격의 힘)
성경본문 : 다니엘 6: 1-10
1. 다리오가 자기의 심원대로 방백 일백 이십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2.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에 하나이라 이는 방백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함이었더라
3.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4.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5.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하고
6.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7. 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율법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려 하였는데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8. 그런즉 왕이여 원컨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어인을 찍어서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9. 이에 다리오왕이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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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홍문수목사
흔히 인간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IQ (지능지수)를 언급합니다. IQ가 높으면 유능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지능지수가 능력의 전부는 아닙니다. 최근에는 IQ보다 EQ(감성지수)가 높아야 한다는 말들을 합니다. 머리도 좋아야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감성적 능력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영국 여왕 엘리사베스 2세의 에피소드입니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영국을 방문한 중국 고위 관리 환영 만찬 석상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중국 관리가 서양식 테이블 매너를 잘 몰라서 식사 전에 손가락을 씻는 그릇(finger bowl)에 담긴 물을 마셔버리고 말았습니다. 참석자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특히 의전 담당자들은 경악했습니다. 그때 여왕은 시치미 뚝 떼고 자기도 그 물을 마셔버렸다고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고 위기 상황을 재치 있게 대처했던 겁니다. 얼마나 놀라운 능력입니까? 이런 게 바로 EQ입니다. 나중에 중국의 관리가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겠습니까? 또 그 회담은 얼마나 잘 됐겠습니까?
그런데 EQ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데, MQ(Morality Quotient) 즉 ‘도덕지수’입니다. 지미 카터 前 대통령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재임 시보다 퇴임 후에 더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퇴임 후 정치에는 전혀 간여하지 않고, 크리스천 정신으로 사회사업과 인권운동을 펼침으로써 세계인의 존경과 신뢰를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세계 각처의 분쟁 지역을 누비고 다니는 분쟁해결사로 맹활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1994년 핵문제로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전격적으로 북한을 방문해서 위기를 잠재워 준 적이 있습니다. 또한 ‘사랑의 집짓기 운동’(해비타트 운동)으로도 유명합니다.
우리가 크리스천으로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분야가 바로 이겁니다. 많은 축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고, 여러 가지 능력과 조건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고매한 도덕성을 갖추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의 인격화’가 중요합니다. 이게 바로 ‘신앙의 성숙’이고, 이런 모습으로 살아갈 때 가장 행복하고 존귀한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다니엘의 신앙과 인격이 그의 인생을 얼마나 아름답고 빛나게 했는지 살펴봅니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통해 고귀한 신앙 인격을 추구함으로 다니엘처럼 아름다운 인생, 복된 인생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다니엘의 인격 : 신앙의 열매
다니엘은 BC 6세기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멸망할 때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입니다. 소년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바벨론에 살면서 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바벨론의 총리가 되었고, 역사에 빛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의 신앙과 인격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신앙인이었는데, 그의 신앙이 고매한 인격으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본문은 바벨론 정권이 바뀌어 메대 바사 왕국이 된 후의 상황인데, 그는 총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다리오 왕은 전국에 120명의 고관을 세워 통치하고, 그 고관들을 세 명의 총리가 관리하도록 조치했습니다. 그 중의 한 명이 다니엘입니다. 그런데 세 명의 총리가 관할하다 보니까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다니엘을 수석총리로 세워 전체를 관할하도록 계획합니다.
그 계획을 눈치 챈 다른 두 명의 총리와 고관들이 불만을 갖게 됩니다. 다니엘은 포로 출신인데, 어떻게 자기들보다 위에 올라가느냐 이겁니다. 다시 말하면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니엘을 몰아낼 음모를 꾸밉니다. 예나 지금이나 정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쓰는 방법은 뻔합니다. 뒷조사를 해서 한 방에 날려 보내는 겁니다. 그들이 다니엘의 뒷조사를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됩니까? 4절 보시죠.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아무리 뒤져봐도 다니엘에게서 작은 허물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표현해서 다니엘은 ‘털어도 먼지가 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고매한 인격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았기 때문에 아무리 인간들이 약점을 잡으려 해도 잡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이 어떤 수작을 부립니까? 신앙 문제로 시비를 겁니다. 그가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알고, 왕에게 아부하는 척 하면서 앞으로 30일간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하는 자가 있으면 색출해서 처형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말하자면 ‘불충자 일제 단속 기간’을 두자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특별법이 제정 공포됩니다. 다니엘을 넘어뜨리기 위한 흉계였죠.
그때 다니엘이 어떻게 합니까? 10절 봅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는 평소와 같이 매일 세 번 기도합니다. 그는 일신상의 안위를 위해 신앙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던 겁니다. 그의 신앙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죠. 그가 어떤 약점도 잡히지 않을 정도의 고귀한 인격을 갖추고 있었던 게 다 이런 신앙의 결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신앙이 좋다 나쁘다 평가하는 기준이 여러 가지지만 가장 핵심적인 게 인격이라는 사실입니다. 왜 그런가요? 우리가 구원받는 과정 상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구원받는 과정은 여러 단계로 이뤄집니다. 그 과정을 단순화시키면 세 단계가 됩니다. 칭의(Justification), 성화(Sanctification), 그리고 영화(Glorification)입니다.
칭의(稱義)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롬3:23~24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으면, 그리고 예수님의 대속을 믿으면 의인의 신분을 취득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행위와 관계없이 오직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칭의를 얻은 사람은 그냥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성화(聖化)는 거룩하게 된다는 뜻인데, 칭의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런 결과입니다. 칭의는 비유하자면 ‘죄의 나무’가 ‘의의 나무’로 바뀌는 겁니다. 성화는 의의 나무가 된 후 ‘의의 열매’를 맺는 겁니다. 의의 열매는 곧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격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믿음으로 구원 받지만, 그 결과로 성화된 인격이 있어야 마땅하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으면 즉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당장 천국에 갈 수 있는데 우리를 이 세상에 오래도록 남겨두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보다 천국이 훨씬 좋은데 말입니다. 두 가지 때문입니다. 사명과 성화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 때문에, 그리고 우리의 인격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성화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이 살아남아 있는 동안 성화를 위해 평생 힘써야 됩니다.
그리고 영화(榮化)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성화의 길을 가다가 천국에 들어갈 때 혹은 예수님 재림으로 부활할 때 완전해 지는 것입니다. 구원의 완성 단계입니다.
칭의는 순간적이지만, 성화는 점진적인 것입니다. 흔히 믿는 자를 가리키는 말 중에 ‘성도’(聖徒, Saints)라는 말이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거룩한 사람들! 그러니까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예수님을 닮은 인격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물론 100% 완전해진다는 뜻은 아니죠. 우리가 일평생 노력해도 예수님과 똑같아질 수는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을 점점 닮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성도의 인격은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구원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원의 목적입니다.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구원의 목적이 예수님을 닮은 인격으로 변화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마5:48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으셨기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거룩한 인격을 기대하신다는 겁니다.
이렇게 볼 때 다니엘은 그의 성숙한 신앙으로 고귀한 인격의 열매를 맺은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모진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도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신앙 때문이요, 더 나아가 그 열매인 고귀한 인격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다니엘의 승리 : 인격의 힘
인격은 우리가 갖출 수 있는 능력 가운데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보다 탁월한 재능은 없다.”(맥체인)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인격의 힘에 관해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살펴봐도 인격의 힘이 인생의 과정 가운데 얼마나 대단한 알 수 알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새 정부의 인사가 있었는데 고소영(고대, 소망교회, 영남 출신 인사) 내각이니 뭐니 하면서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인사권자 입장에서 보면 고충이 있었을 겁니다. 고위 관리 후보 리스트를 뽑아놓고 검증을 시작하면 이 사람은 이래서 걸리고 저 사람은 저래서 걸렸다는 겁니다. 사람은 많은데 인물이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거죠. 한 장관 후보가 국회 청문회에서 한 말이 기억납니다. “공직을 예상했더라면 미리 미리 신변을 깨끗하게 했을 텐데 유감입니다.” 모순적인 말입니다. 평소에 깨끗이 산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지, 장관을 겨냥하고 깨끗이 사는 게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인격은 머리보다 재산보다 재능보다 학력보다 인맥보다 더 중요한 힘입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그의 신앙과 인격이 위기의 때에 빛을 발하며 그의 인생을 승리케 만들었습니다.
① 형통의 삶 :
그는 시련도 많았지만 그런 가운데 형통한 인생이었습니다. 본문에도 보면 간신들 때문에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되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기를 맞이합니다. 절체절명의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하십니까? 굶주린 사자의 입을 틀어막아 조금도 상치 않게 보호해 주셨습니다.
단6:22 보면, 왕이 걱정이 되어서 다음 날 새벽 사자 굴로 가서 혹시나 해서 다니엘을 불렀을 다니엘이 멀쩡하게 살아남아 대답한 말이 나옵니다.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 하였나이다”
그 후 어떻게 되죠? 왕이 기뻐하면서 다니엘 대신 원수를 다 갚아줍니다. 단6:24 “왕이 말하여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숴뜨렸더라”
다니엘은 손에 피를 한 방울로 묻히지 않고 원수들을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단6:28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어떤 교훈을 얻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정직한 인격을 지키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중간 과정에서 고난과 시련이 있을 수 있죠. 하지만 결국은 승리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하도 완악하고 살벌하다 보니까 우리도 모르게 피해의식이 생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직하게 살면 나만 손해다! 나만 바보다!” 이런 왜곡된 생각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다윗도 한 때 그런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승리를 체험하고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37:1~2 “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2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시37:16~17 “16 의인의 적은 소유가 많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 17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세상이 갈수록 죄로 관영하고 살벌해지는데, 그럴수록 오히려 고귀한 도덕성이 요구된다는 사실입니다. 옛날에는 대통령한테만 잘 보이면, 외적인 능력만 인정받으면 장관을 했잖아요. 하지만 요즘엔 그것만 갖고는 안 됩니다. 도덕성을 갖춰야 합니다. 심지어 기업인들도 그렇잖아요. 그래서 윤리 경영 운운 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 와서 강연한 적도 있는 미국의 역사학자 미래학자인 예일대 교수 폴 케네디(Paul Kennedy)의 말입니다.
“21세기에는 기업가 정치가 등 사회지도층이 성직자에 준하는 고도의 도덕성을 갖춰야 성공할 수 있다. 앞으로는 갈수록 경영인의 도덕성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그는 오랜 연구를 통해 이와 같은 일반적인 원리를 이야기했지만, 성경은 이미 이런 원리를 수천 년 전부터 강조해 왔습니다. 우리는 크리스천으로서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진정으로 형통한 삶을 위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격으로 성숙해져야 합니다.
② 증인의 삶 :
크리스천의 고귀한 인격은 개인적인 형통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이런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특히 요즘같이 사람들의 인지가 발달되고 수준이 높아진 시대에는 입으로만 증거해서는 비효과적입니다. 물론 성령이 역사하시면 몇 마디 말로도 뒤집어지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증인의 삶을 위해서도 하나님을 닮은 인격을 추구해야 합니다. 다니엘이 고귀한 인격으로 어떻게 증인의 삶을 살았는지 본문을 보면 곳곳에 드러납니다. 단6:14절 보면, 그가 평소에 사람들에게 얼마나 효과적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다리오 왕이 간신들에게 속아 법령을 정한 후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다니엘을 사자 굴에 넣었지만, 그 모습을 모습시오!
단6:14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말미암아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내려고 힘을 다하다가 해가 질 때에 이르렀더라”
안타까워서 어쩔 줄 모르는 왕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단6:18도 보면,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새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오락을 그치고 잠자기를 마다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왕이 너무 속이 상해서 식음을 전폐한 것입니다.
그리고 단6:19~20 보면 또 어떻습니까? “19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굴로 가서 20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너를 구원하셨느냐”
왕이 다음 날 새벽에 혹시나 하는 생각에 사자 굴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다니엘을 불러봅니다. 평소에 다니엘의 신앙과 인격에 감화 받았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사자 굴에서 살아나는 기적이 나타나자 왕은 아주 적극적으로 다니엘을 칭송합니다. 아예 조서를 내려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해 줍니다.
단6:26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시요 ... ”
그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크리스천들이 인격의 향기를 풍기기 시작하면 증거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고후2:15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꽃에 향기가 있으면 벌과 나비가 몰려들듯이 크리스천에게 인격의 향기가 있으면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즘에 느끼는 것은 크리스천으로서의 무력감입니다. 인구 비례로 보면 우리나라는 기독교인 숫자, 교회 숫자, 신학교 숫자가 아마 세계 수위를 다툴 정도입니다. 너덧 명 중 한 명이 크리스천입니다. 그런데 영향력을 발휘하기는커녕 왕따를 당하고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불신자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면도 있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반성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신앙의 지향점이 달라져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축복 받는 데 목을 매는 게 아니라 이제는 도덕성의 회복, 성화된 인격의 추구를 신앙생활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이게 성경적입니다.
재미교포 중에 신재원 박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신문에서 그분의 기사를 보고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가 얼마 전 NASA(美 항공우주국)의 항공부분 최고책임자로 취임했습니다. NASA에서 서열3위에 해당되는 직책입니다. 보통 실력 있는 미국인이 30년 만에 성취할 수 있는 과정을 19년 만에 달성한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런 직책을 맡으리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너무 부족한데, 하나님께서 이 자리로 끌어다 놓으셨습니다.” 그러면서 굳이 성공의 비결을 있다면 성실성, 정직성(Integrity)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백인 사회가 은근히 배타적인데, 그 속에서 실력만 갖고 그 자리에 오를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는 인격의 힘으로 승리한 것입니다. 또 그런 과정을 통해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을 증거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너무 흐뭇합니다.
[3] 인격 수련의 방법 : 신령한 교제
그러므로 인격의 수련에 관심을 갖기를 바랍니다. 물론 성령께서 변화시켜 주셔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도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어떻게 수련할 것인가 그 방법을 알아봐야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과 주님과 신령한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인간관계 속에서도 그렇잖아요. 오래 만나면 서로 닮습니다. 부부가, 친구가 닮는 게 다 그런 원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자주 만나면, 예수님을 오래 만나면 주님을 닮게 됩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그는 어려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일평생 매일 매일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신령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이것이 곧 성화의 길입니다.
우리는 인격의 수련을 위해 무엇보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성화의 길이요, 고귀한 인격을 이뤄가는 것입니다.
갈5:22~24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도 중요한 성화의 도구가 됩니다. 시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여러분, 미국의 소설가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1864)의 소설 『큰 바위 얼굴』을 잘 아시죠? 거기 보면 주인공 ‘어니스트’가 소년 시절부터 그 마을의 전설을 듣고 자랍니다. 마을 저편 산에 바위가 사람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데, 장엄하면서도 온화한 표정의 얼굴입니다. 그 골짜기 마을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그런 훌륭한 인물이 나온다는 겁니다. 어니스트는 그런 인물이 나타날 것을 그대하며 삽니다. 어느덧 그의 나이가 지긋해졌습니다. 그 마을 출신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속속 찾아옵니다. 그런데 번번이 실망합니다. 사람들은 뭣도 모르고 환호했지만 큰 바위 얼굴과 전혀 다른 얼굴들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바로 어니스트 자신이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이었습니다. 매일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었던 그가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그 얼굴로 변화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바로 주님과의 신령한 교제 원리입니다. 매일 주님을 만나고 마음을 갈고 닦을 때 나 자신이 주님의 형상을 이루게 되는 겁니다.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과연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혹시 예수 믿고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저 기도하고 축복받아 잘 먹고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이런 것들도 중요한 겁니다. 그러나 신앙의 정말 중요한 목표는 그게 아닙니다. 고귀한 인격을 가꾸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 다니엘 같이 신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인격의 힘으로 승리하는 인생, 고난이 닥쳐도 극복하고 형통하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인격의 힘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