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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년 목사
기네스북에 기록된 세계 최고령의 프랑스 할머니 잔 칼망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90세 되던 해에 47세의 이웃 아저씨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웃집 아저씨는 할머니가 90세니까 곧 돌아가실 것으로 알고 계약을 맺었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까지 매달 2천5백프랑(우리돈으로 약40만원)을 줄테니 죽으면 살던 집을 자기에게 넘겨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만약에 할머니가 1년 안에 죽으면 자기는 400만원으로 집을 얻는 것이 되고, 2년 안에 죽으면 800만원으로 집을 얻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100세가되어도 안죽고 120세가 되어도 안죽고 122세에 죽었습니다. 이웃집 아저씨는 30년 동안이나 할머니가 죽기를 기다리다가 자기가 먼저 죽었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많다고 먼저 죽고, 젊다고 나중에 죽거나, 건강하다고 오래 살고 약하다고 일찍 죽는 것이 아닙니다.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어도 죽을 때는 순서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생각이나 말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표현은 우회적으로 사용합니다. 즉 죽었다고 말하지 않고, 돌아가셨다. 소천 하셨다, 별세 하셨다, 운명했다, 하나님의 불러가셨다 등등의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만큼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경향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본문1절 말씀입니다.
“내가 마음을 다하여 이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펴본즉 의인과 지혜자나 그들의 행하는 일이나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 미래임이니라.”
인생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별히 본문 본문 2-3절 말씀에 봅시다.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이며 선하고 깨끗한 자와 깨끗지 않은 자며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의 결국이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이며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 하는 자가 일반이로다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특별히 사람들의 생과 사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대로, 다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특별히 그의 택함을 받을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10:28-29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너희를 내 손 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하였습니다.
내 손에서 빼앗을 수 없고, 그 다음에 다시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빼앗아 갈 자가 없습니다.
어린 아기가 세상에 나서 어떻게 자랍니까?
어린애가 그냥 내버려두면 하루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어린애가 그냥 내버려두면 하루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핏덩어리로 세상에 나서 어떻게 자라납니까? 거기에는 한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손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손이 이 핏덩어리를 거들어 주고 젖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목욕시켜 주고 재워 주고 어머니의 손이 모든 것을 다 해 줍니다. 이 어머니의 손 때문에 핏덩어리 어린애가 자랍니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얘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가라뉘시고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떻게 구원에 이를까요?
하나님 아버지의 손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아버지의 손이 어린 심령을 붙들어 줍니다. 이 아버지의 손이 우리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생명수로써 먹여 주십니다. 생명의 양식으로 공급하여 주십니다. 우리를 해치려는 원수 마귀가 올 때는 능력의 팔로 막아 주십니다. 시험에 빠지려고 할 때는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하나님 아버지의 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까지 우리의 믿음을 보존하고, 이렇게 연약한 심령이지마는 아주 멸망하는 자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하늘나라까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을 인정하라.
한번은 예수님께서 밤에 물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왔습니다. 제자들은 배를 타고 있다가 물 위에 무엇이 보이니까 처음에는 무슨 요물인 줄 알고 크게 놀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나다, 두려워말라 하셨 습니다. 예수 선생님의 음성인 것을 알아차린 제자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이때 성미 급 한 베드로는 너무 반갑기도 하고 흥분이 되어서 아, 선생님이세요. 그러면 저도 물 위로 걸어가 게 해주세요. 그래서 예수님이 그럼, 이리 오너라.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베드로에게는 담대한 믿음이 생겨서 감격한 가운데 예수님만 쳐다보고 물위로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물결 이 밀어닥치는 바람에 예수님은 안보이고 물결만 보이니까 성난 물결에 그만 겁이 질렸습니다. 겁에 질리는 순간 그러니까 예수님 잊어버린 순간 베드로는 물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소리쳤습니다. 주님, 저를 살려주세요. 그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성 경을 자세히 보세요.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래서 물에 빠져 죽게 된 베드로를 건졌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 체험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죄악 세상에서 무서운 죄악의 물결이 밀려오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예배당에 나와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새로운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고 나아가지만 갑자기 죄 악의 큰 물결이 밀어닥치면 그 순간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겁이 나서 무서워서 그만 그 물결에 빠져들어 가는 때가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붙들어 주시지 아니하면 우리는 아주 죄악의 물결에 휩싸여 멸망한 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여 이손을 꼭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 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때
주님여 날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소리 귀기울이시사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영국의 A. 스미스(경제학의 시조)는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 이란 학설을 주장했는데 그것은 가격을 중심으로 수요와 공급이 스스로 조절되는 것, 이른바 가격의 자동조절작용 또는 가격의 매개적 기능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시장경제에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수요와 공급이 자동적으로 조절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보이지 않는 손을 바로 하나님의 손으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살아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숨쉬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연장하신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오늘 하루도 기회를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살아있을 때 기회를 선용해야 합니다.
본문 4절 말씀입니다.
“모든 산 자 중에 참예한 자가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
팔레스타인에서 사자와 개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사자는 동물의 왕으로 대단한 가치가 있는 동물이고, 개는 천한 동물로 여겼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차이가 나는 동물이지만 아무리 가치 있는 사자라도 죽으면 소용없고, 도리어 살아 있는 개만도 못하다는 말입니다.
결국 살아있다는 것은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즉 소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회개할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도 믿을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도 사랑할 기회가 남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어진 기회를 붙잡아야 합니다. 아직도 기회가 있을 때 선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 봉사, 기도, 전도 등 모든 것이 살아 있을 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어리석은 부자가 죽어서 지옥에서 전도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무리 지옥에서 전도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전도는 죽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을 때 하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 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경제인이 누구인가? 삼성에 이건희 회장입니다. 이건희 회장이 쓴 에세이 ‘시간에 바탕을 경쟁’이라는 책에 보면
시간개념
원시시대=낮과 밤(해뜨는 시간/해지는 시간)
농업사회=농사를 짖다보니 아침 점심 저녁으로 삼분.
산업사회=24시간을 기준으로 한시간 개념등장
정보사회=이제는 1초단위로 세분화됨
그는 10초만 일찍 주식정보를 알아도 수백원을 벌 수 있다함.
이제는 시간이 경쟁력입니다.
얼마나 빠르냐로 승부를 거는 시대입니다.
무조건 빠른 것이 다 좋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제는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얼마나 빨리 내것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가 나뉘어집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병폐 가운데 코리안 타임이 있습니다. 이것은 빨리 사라져야 할 병폐입니다. 내 시간이 소중하면 남의 시간이 소중한 것도 알아야 합니다.
시간이 또 오고 또 오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란 주어졌을 때 붙잡아야 합니다. 지나가고 나면 결국 후회하게 됩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삶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선용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본문 7절 말씀입니다.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찌어다 이는 하나님이 너의 하는 일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먼저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죽으면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없습니다. 유일하게 살아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음식문화가 중요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서로 떡을 떼며 기쁨으로 잔을 나누었다고 했습니다. 먹고 마실 때 은혜가 충만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먹는 기쁨과 마시는 즐거움을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잠언 15:17절에 “채소를 먹으며 즐거워하는 것이 살진 소 먹으며 미워하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서로 즐거움과 기쁨으로 먹고 마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합니다.
또한 살아 있을 때 멋있게 살기를 바랍니다.
본문8절입니다.
“네 의복을 항상 희게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않게 할찌니라”
이 말은 살아 있는 동안에 좀 더 멋있게 살라는 것입니다.
옷도 단정히 입고, 향수도 뿌리고, 치장도 하면서 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좋은 옷을 아끼고, 기가 다 죽어서 삽니까! 우리가 너무 사치하면 안되지만 우리가 기왕이면 멋을 내고 살아야 합니다. 죽으면 멋내고 싶어도 낼 수 없습니다.
교회 올 때도 멋을 내고 오시기 바랍니다. 집에서나 직장에서 일할 때는 작업복을 입어도 교회 올 때에는 최고 좋은 옷을 입고 제일 멋있게 꾸미고 오시기 바랍니다.
요즘 이단들이 얼마나 득세하는지 모릅니다.
이단 가운데 몰몬교가 있는데 이들은 양복을 입고 용모를 단정히 하고 이름표 달고 포교 활동을 합니다. 그들의 교리는 잘못이지만, 자세는 옳습니다.
이단 가운데 보면 교리가 잘못되고, 신학이 잘못된 것은 많은데 그들의 생활이나 활동은 칭찬할 만한 것이 많습니다.
우리도 예배드리러 나올 때, 멋을 내고 나와야 합니다.
일할 때는 작업복을 입어도 사람을 만날 때 전도할 때 예배드릴 때 교회 나올 때 멋을 내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준비를 해서 나와서 예배 합시다.
또한 살아 있을 때 행복한 가정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본문 9절입니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찌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여기서 ‘사랑하는 아내와 즐겁게 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아내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에게 주신 하나님의 분복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가정의 행복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천국에는 이런 가정의 즐거움이 없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천국의 즐거움이 있지만 오늘 우리의 가정의 행복을 없으니 여기 사는 동안에 맘껏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교회 올 때도 부부가 함께 앉아서 예배드리고, 가능하면 가족별로 함께 앉아서 예배드리고, 부부가 서로 팔짱도 끼고, 손도 잡고, 때로는 뽀뽀도 하면서 즐겁게 사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교회 와서 이렇게 안하면 어디 가서 이렇게 하고 삽니까! 부디 행복한 부부,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하며 삽시다.
본문10절입니다.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찌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여기서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힘써서 일해야 합니다.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으면 일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거기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천국에서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고, 지옥에서는 고통 중에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녀들에게 노동을 축복으로 생각하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동을 고생으로 생각하고 먹고 노는 것이 축복인 줄 착각합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성공 출세하면 먹고 놀기만 하는 줄 압니다.
이스라엘의 속담 가운데 “자녀에게 노동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도둑질을 가르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노동을 가르치는 것은 축복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살전3:10절)고 했습니다.
즉 일하기 싫으면 죽으라는 이야기입니다.
죽으면 더 이상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습니다. 일도 살아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살아 있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의 생명이 그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살아 숨쉬는 동안 우리 모두가 그분의 주권을 인정합시다.
그리고 살아 있을 동안에 그분이 주신 기회를 놓치지 맙시다.
살아 있을 때 먹고 마시는 것을 즐기며 누립시다.
살아 있을 때 멋있게 삽시다.
살아 있을 때 행복한 가정을 만듭시다.
살아 있을 동안에 열심히 일합시다. 죽도록 충성합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