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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4 : 1~24)
1 온 백성이 요단 건너기를 마치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ㅇ온 백성이 요단 건너기를 마치매 - 이와 동일한 내용의 표현이 3장 마지막 구절(17절)에는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3장과 4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단 강 도하(渡河) 사건에 관해 기록하고 있는데, 3장에서 요단 강 도하는 사실상 종결되었고, 4장은 요단 강 도하 사건의 요약 및 도하 후의 일들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본절은 이러한 4장 내용의 서두라고 할 수 있다.
2 백성의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열 두 사람을 택하고
ㅇ매 지파에 한 사람씩 열 두 사람을 택하고 - 요단 강을 건너기 전 3:12에서는 이스라엘 지파 중 열 두 사람을 택하라는 단순한 언급만 있었다. 그에 비해, 본 구절 이하에서는 왜 열 두 사람을 택했는지에 관한 이유가 명시되어 있다. 즉 그것은 요단 강에서 열 두 돌을 취하여 기념비를 세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3-5절).
3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둘을 취하고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의 유숙할 그곳에 두라 하라
ㅇ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강 가운데 굳게 선 결과, 강물은 갈라졌고 강 바닥은 말랐다. 따라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사히 요단 강을 건널 수 있었다(3:17). 그러므로 제사장들이 서 있었던 그곳에서 열 두 돌을 취해 기념비를 세운다는 것은 요단 강 도하를 기념하는 가장 적절한 조치였다.
ㅇ돌 열 둘을 취하고 - 각 지파의 한 사람이 돌 한 개씩을 취하므로 돌 열 둘이 되었다. 이와같이 각 지파가 한 개씩 취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치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의 연합된 민족임을 깨달을 수 있었고, 또한 후일에 어떤 분열 등을 방지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ㅇ유숙할 그곳 - 이 구절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19절을 통해 볼때 이곳은 '길갈'(Gilgal)임을 알 수 있다.
4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예비한 그 열 두 사람을 불러서
ㅇ예비한(쿤) - '준비하다', '확정하다'라는 뜻이다. 이와같이 이미 준비된 12명을 데리고 오라는 것을 볼 때, 이 12명에 대한 선택 작업은 요단 강 도하 전에 이미 있었음을 알 수 있다(3:12).
5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들어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개씩 취하여 어깨에 메라
ㅇ하나님 여호와의 궤 - '언약궤'를 지칭하는 말이다(3:3).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3:14-17 강해, '언약궤에 대하여' 부분을 참조하라.
6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 자손이 물어 가로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뇨 하거든
ㅇ표징이 되리라 - 여기서 '표징'(表徵, sign)에 해당하는 '오트'는 '표시하다', '나타내다'란 뜻의 '우트'에서 파생된 말로 곧 '기념', '증거'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본절에는 하나님께서 열 두 돌을 취하도록 명령하신 목적이 명시되어 있다. 즉 열 두 돌은 요단 강 도하가 오직 하나님의 권능에 의한 기적적 사건임을 후대에 증거로 보여주는 증표인 것이다. 평상시에는 그 어느 누구도 흐르는 요단 강 한 가운데서 어깨에 짊어질 정도의 큰 돌들을 취할 수 없었는데, 가나안 입성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요단 강의 흐름이 멈추게 됨으로써 이것이 가능하였다는 사실을 오고 오는 세대에 전하여 주는 기념물인 것이다.
ㅇ후일에 너희 자손이 물어 가로되 - 출 12:26, 27; 신 6:20-25에도 '출애굽 사건'과 관련하여 이와 유사한 말이 언급되어 있다. 출애굽 사건과 마찬가지로, 실로 요단 강 도하 사건도 이스라엘에게 있어 기념비적인 대사건으로 후손들에게 두고 두고 기억시켜야 할 역사적 사건이었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후일에'라는 말의 히브리어 '마하르'는 '장래에'라는 뜻으로 표징의 목적이 미래를 위한 것임을 보여 준다.
7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었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리라 하라
ㅇ요단 물이...끊어졌었나니 - 3:16 주석 참조.
ㅇ이 돌들이...영영한 기념이 되리라 - 어떤 사건들을 기념하는데 있어서 돌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7:26;8:29;창 28:18;35:14;삼상 7:12;삼하 18:17). 경우에 따라 큰 돌기둥은 증거물로(24:26, 27;삼상 7:12), 혹은 죽은 사람을 위한 기념비로(왕하 23:17; 겔 39:15) 세워졌다. 그리고 어떤 특정한 돌 혹은 기둥들은 하나님께 기념물로 드려지기도 했고(창 28:18-22;사 19:19), 그 장소에는 종교적 명칭이 붙여지기도 했다(창 35:7). 이런 견지에서 여호수아가 길갈에 세운 본문의 돌은 기념비적인 성격을 띤 한 예로 볼 수 있다. 한편 '기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직카론'은 어떤 사실을 마음에 떠오르게 하거나 나타내는 대상이나 행위를 뜻한다. 즉 유월절은 '출애굽'이란 위대한 역사적 사건을 생각나게 하는 하나의 '기념일'이었고(출 12:14), 길갈에 세워진 '열 두 돌'은 요단 강 도하 사건을 나타내는 '기념물'이었던 것이다(20-24절).
8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수아의 명한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신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를 따라 요단 가운데서 돌 열 둘을 취하여 자기들의 유숙할 곳으로 가져다가 거기 두었더라
ㅇ명한대로...이르신대로 - 여기서 '...대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케'는 '...처럼'(as like), '...에 따라'(according to)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이다. 그러므로 본 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에 철저히 순종했음을 보여준다(출 39:42, 43;40:16, 19, 21, 23, 25, 29, 32).
9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 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 있더라
ㅇ또...선 곳에 돌 열 둘을 세웠더니 - 지금까지 말로써 명령만 하던 여호수아가 여기서는 직접 행동으로 있음을 볼 수 있다(Buther). 즉 길갈에 기념비를 세우기 위해(20절) 돌 12개를 취하게 한 다음(8절), 여호수아는 먼저물이 흐르는 요단 강 바닥에 또다른 기념비를 세웠다. 따라서 기념비는 이스라엘 백성이 유숙한 길갈에 12개, 제사
장들의 발이 섰던 곳에 12개로서 도합 24개가 세워졌던 것이다(Clarke). 이것은 이중 표징 행위로서 사건의 확실성과 중대성을 시사한다(Matthew Henry). 한편, 그런데 어떤 이는 제사장들이 섰던 곳에 세운 열두 돌은 다시 흘러 넘칠 (18절) 요단 강물에 곧 잠겨 버릴 것이기 때문에 이 기념비를 세운 의의를 분명히 알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단강 가운데 세워진 열두 돌은 비록 보이지는 않을지라도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가운데 세워진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두어 요단강을 볼때마다 그 사실을 기억하게 할 것이다.그리고 간혹 강물의 수심이 낮아질 때면 그 기념비의 꼭대기가 보이게 됨으로서 그러한 효과를 배가 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Calvin's Commentaries, Matthew Henry's Commentary). 한편, 혹자들은 요단 물이 멈춘 시기는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 동편 물가에 잠겼을 때이므로(3:15)열 두 기념석은 그 가장 자리에 세워졌다고도 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Pulpit Commentary). 만약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물이 강둑까지 넘쳐 흐르는 모맥 거두은 시기(3:15)를 제외하고는 항상 그 돌들을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ㅇ오늘까지 - 즉 이 기사가 기록될 때까지를 가리킨다(Keil). 한편 이 문구는 여호수아서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데(6:25; 7:26; 8:28; 9:27; 10:27; 13:13; 14:14; 15:63; 16:10), 이는 여호수아서가 역사적 사실에 잘 부합된다는 사실을 시사할 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생한 기록이었음을 보여준다.
10 궤를 멘 제사장들이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이르게 하신 일 곧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한 일이 다 마치기까지 요단 가운데 섰고 백성은 속히 건넜으며
ㅇ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이르게 하신 일 - 여기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적 모습을 띤다. 그는 또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지도자(왕과 같은 사람)였으며, 때로는 백성들의 애통함을 대신 아뢰는 제사장적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7:6-9). 여호수아가 모세와 마찬가지로 참 선지자요, 왕이시며,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적 인물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ㅇ모세가 여호수아게게 명한 일 - 본절은 여호수아를 모세와 연결시켜 주는 여러 구절들(1:5, 17; 3:7; 11:23) 가운데 하나이다(Woudstra). 생전에 모세는 여호수아를 불러서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인도하도록 그에게 지시하였고(신 1:38; 3:28; 31:3), 또한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역사하셨던 것처럼 여호수아에게도 함께 하시리란 것을 약속했었다(신 31:7).
ㅇ다 마치기까지 요단 가운데 섰고 - '마치다'의 히브리어 '탐맘'은 '완성하다', '일을 멈추다'란 뜻으로, 곧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다 가나안 땅을 밝게 되어 요단 도하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이 밝게 되어 요단 도하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이 다 수행되었다는 말이다.
ㅇ백성은 속히 건넜으며 -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강을 건너가고 있는 동안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한 곳에 굳게 서서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그들의 힘이 빠지지 않도록 서둘러 강을 건너야 할 필요가 있었다(Keil & Delitzsch, op. cit. p. 50).
11 모든 백성이 건너기를 마친 후에 여호와의 궤와 제사장들이 백성의 목전에서 건넜으며
ㅇ백성의 목전에서 - 곧 3:6, 14의 '백성의 앞에서'와 같은 말이다(Keil). 아마도 백성들이 강을 다 건너자,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도 강을 건너가 다시금 백성들 앞에 선 것을 뜻 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그러한 구체적인 상황은 15-18절에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12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가 그들에게 이른 것 같이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앞서 건너갔으니
13 사만명 가량이라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건너가서 싸우려고 여리고 평지에 이르니라
ㅇ르우벤, 갓, 므낫세 반(半) 지파는 일찍이 요단 동편 땅을 분배받을 때 모세와 맺은 약속(민 32:16-32)대로 요단 서편의 가나안 본토 정복 전쟁에 참전키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요단 강을 건넜다. 자세한 내용은 관련 부분인 1:12-15 주석을 참조하라.
ㅇ여리고 평지 - 요단 강 서쪽에 있는 초원 지대를 가리킨다(Keil, Bartlett). 비스듬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이곳은 여리고 성의 근교 저지대로서 그폭은 도보로 약 3, 4시간 걸릴 정도인데(Robinson), 요단을 건넌 이스라엘의 선봉대가 진친곳이다.
14 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그의 생존한 날 동안에 백성이 두려워하기를 모세를 두려워하던것 같이 하였더라
ㅇ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 3:7의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이다. 여호수아는 요단 강 도하 사건을 통하여 모세의 후계자로서 지도자적 위치를 공고히 확보할 수 있었다.
한편 여기서 '크게 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가달'은 '명예와 인격을 높이다', '자랑스럽게 하다'등의 뜻을 지니는 말이다(3:7; 대상 29:12). 실로 하나님께서는 요단 강 도하의 이적을 통하여 여호수아의 지도자적 권위를 더욱 공고히 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사는 날 동안 여호수아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호수아에게 위임된 권위는 세상의 많은 지도자들의 경우에서처럼 개인적인 영달과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어진 것이었다.
ㅇ그의 생조난 날 동안에 - 직역하면 '그가 살아있는 모든 날 동안에'이다.
ㅇ모세를 두려워하던 것 같이 - 1:5, 17;3:7에서와 마찬가지로 여호수아와 모세가 연결되고 있다. 이것은 모세의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후계자로서 여호수아를 부각시키려는 시도 때문이다. 한편 '두려워하다'의 히브리어 '야레'는 대체로
(1) 공포심에 의한 두려움과
(2) 경외심에 의한 두려움을 모두 뜻하는데, 여기서는 후자에 해당한다(24절).
15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16 증거궤를 멘 제사장들을 명하여 요단에서 올라오게 하라 하신지라
17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요단에서 올라오라 하매
ㅇ증거궤 - 레 16:13 주석 참조.
ㅇ요단에서 올라오게 하라 - '오르다'의 히브리어 '알라'는 '위로 올라가다', '높은 곳으로 오르다'를 뜻하는 말로, 곧 요단강 도하의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다.
즉 제사장들은 발을 강 바닥에 디뎌 놓았으므로 이제는 건너편(요단 서편) 강둑에 올라서야 했던 것이다.
18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서 나오며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 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러 여전히 언덕에 넘쳤더라
ㅇ여호와의 언약궤 - 3:14-17 강해, '언약궤에 대하여'를 참조하라.
ㅇ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 바로 앞 17절에 '요단 강에서 올라왔다'는 문장이 있으므로, 여기서의 '육지'(하라바)는 3:17절에 묘사된 요단강 속의 '마른 땅'과는 구별된다. 그리고 '밟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타크'는 '선두에 나서다', '치켜 올리다', '뽑다'라는 뜻이 있으므로, 여기서는 '발을 들어 올려 여리고 동편의 육지를 밟았을 때에'라고 해석해야 한다. 한편, 이처럼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 동편의 물을 밟았을 때 물의 흐름이 멈추었고, 요단 서편의 땅을 밟았을 때 물이 도로 흘렀다는 사실은 다음 두 가지 사실을 뚜렷히 시사해 준다.
(1) 요단 강 도하 사건은 하나님의 초자연적 이적 사건이다(Matthew Henry).
(2) 요단 강물의 흐름을 멈추게 한 것은 여호와의 언약궤이다(Keil).
ㅇ요단 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러 - 여기서 '도로'는 '돌이키다', '제곳으로 돌아가다'란 뜻의 '슈브'가 사용되었고, '흘러'는 '가다'(to go)라는 뜻의 '얄라크가 사용되었으므로,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자기들이 있던 장소로 돌이켜 갔다'라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요단 강이 다시 흐르게 된 이 현상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물의 자연적인 이치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음을 말해준다(욥 38:8-11;시104:9;잠 8:29).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요단 강을 멈추에 하실 때 뿐만 아니라, 그 물을 다시 흐르게 하실 때에도 당신의 능력을 사용하셨다.
ㅇ여전히 언덕에 넘쳤더라 - '여전히'(키트물 쉴숌)는 '이전'(以前), '어제'(yesterday)란 뜻의 '물'과 '3'이란 뜻을 가진 '솰로쉬'의 합성어로서, 곧 '3일전' 혹은 '그저께'를 뜻한다. 아마 강을 건너기 전 요단 동편에 유숙할 때 바라보았던 '넘실대는 강물'을 기억하면서 이 기사를 기록한 듯하다.
19 정월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서 여리고 동편 지경 길갈에 진 치매
ㅇ정월 십 일 -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침내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밟은 이 날은 그들이 애굽에서 나온지 40년에서 만 4일이 모자라는 날로서, 곧 유월절 어린 양을 예비하는 날이었다(출 12:3). 그러므로 여기 이처럼 정확한 날짜가 서술된 것은 유월절 규례와 연관시켜 말하기 위함이었다<5:10>. 한편 '정월'(the first month)은 히브리어로 '아빕'월인데, '아빕'은 이미 익었으나 여전히 푸른 색깔을 띤 부드러운 보리를 뜻한다(출 13:4). 그리고 이 시기는 '모맥 거두는 시기'(3:15)와 일치하는 시기로 오늘날 태양력의 3월 말이나 4월 초에 해당되는데,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는 '니산'(Nisan)월이라 불리웠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가나안 땅에서 유월절을 예비하고 지키게 함으로써 그들이 하나님께 성별된 민족임을 깨달아 알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애굽에서 유월절의 기적을 통해 구원받은 점을 기억하며, 그 구원이 요단을 건넘으로써 마침내 완성되었다는 것을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ㅇ길갈 - 이 명칭의 의의(意義)에 대해서는 5:9에 잘 나타나 있다. 즉 '굴리다'(roll)란 뜻을 가진 동사 '갈랄'에서 파생한 이 명칭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목적지인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함으로써 과거 애굽에서 겪은 노예의 수치를 모두 굴려 버렸다는 뜻으로 명명된 것이다. 한편 요단 강 언덕으로부터 약 8km 가량 떨어진 이곳 '길갈(Gilgal)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진(陣) 친 첫 숙영지이자 가나안 정복 전쟁을 위한 교두보였다. 따라서 이후 전개되는 가나안 정복 전쟁은 물론, 사사 시대및 초기 왕국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곳 길갈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군사적, 종교적 중심지로서 특히 중요한 성읍이 되었던 것이다. 한편 오늘날 그 위치는 '길벳 엘 메프질'(Khirbet el-Mefjir)로 추정되고 있다(Muilenburg).
20 여호수아가 그 요단에서 가져 온 열 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ㅇ열 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 열 두 돌을 세운 목적은 이스라엘 전체 12지파로 하여금 여호수아 시대 뿐 아니라 오고 오는 세대를 통하여 요단 강 도하의 이적을 베푸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이적을 기억하고 찬양하며 기리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길갈에 기념비를 세운 이유는 길갈이 요단 강 도하 지점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성읍으로, 도강 후 최초의 이스라엘 숙영지(宿瀯地)였기 때문이다(3절).
21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 가로되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22 너희는 자손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ㅇ후일에...무슨 뜻이냐 - 6절 주석 참조.
ㅇ너희는 자손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 체계적인 교육 제도가 마련되지 않았던 고대 사회에서는 가정 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이 실로 막대하였다. 특히 히브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가정 교육이 매우 중시되었는데(출 12:26, 27;신 6:20-25), 그것은 무엇보다 가정이 여호와 신앙 교육의 산실이자 언약 전승의 핵심 처소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2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 마르게 하사 너희로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로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ㅇ건너게 하신 것이...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 여기서는 요단 강 도하 이적과 홍해 도하 이적이 비교되고 있는데, 이 두 사건은 공히 전혀 불가능한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물이 갈라졌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이적을 베푸신 목적도 공히 같다. 즉
(1) 세상 열방에게는 하나님의 크신능력을 선포하여 두려움을 갖게 하고
(2) 선민 이스라엘에게는 그러한 능력의 현시를 통해 찬양과 감사를 받기 위함이었다(24절).
ㅇ홍해 - '홍해'(紅海)의 히브리어 '얌 숲'은 본래 '갈대의 바다'(the sea of reeds)란 뜻인데, 70인역에서 '홍해'(헤에루드라 쌀랏사)로 번역하였다. 이후 영역 본들(KJV, RSV, NEB, NTV)도 모두 '홍해'(the Red Sea)로 번역하였다. 출 13:18 주석 참조.
24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ㅇ홍해 - 도하 기적과 마찬가지로 요단 강 도하 기적도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는 땅의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하는 것이며(출 14:4, 18),
둘째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는 것이다(출 14:31).
ㅇ땅의 모든 백성 - 여기에서는 이 말이 가나안 땅의 거민들을 가리키느냐, 아니면 온 세상 사람을 가리키느냐 하는 문제가 성립된다. 원문에는 '그(the) 땅'(하아레츠)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전자의 해석이 정확하다(Clarke). 그러나 동시에 이 길갈의 기념비는 동서 고금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증명하기에 충분한 것이라는 점에서 후자의 견해 역시 그 의미상 타당하도 볼 수 있다.
ㅇ여호와의 손 - 성경에서 '손'(야드)은 흔히 '능력'이나 '힘'을 상징한다(신 8:17). 특히 이 은유는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하는 데 두드러지게 사용되고 있다. 대상 29:12은 여호와의 손에 힘과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시 89:13). 그 외에도 성경은 여호와의 손은 약하지 않고 강하며(사 59:1), 세상을 강조했고(시 8:6;95:5), 진리와 정의
를 행하시며(시 111:7), 여호와는그의 손으로 의인들을 붙들어주고 인도하신다고 한다(시 37:24;139:10). 그러한 능력의 손을 하나님께서 친히 들어 사용하신 가장 두드러진 경우가 출애굽 사건(출 3:3-16; 민 33:3)이며, 또한 홍해 도하 사건과 요단 강 도하 사건인 것이다(Alden).
ㅇ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 '경외하다'(야레)는 말에 관해서는 14절 주석을 참조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든 기념 비석과 기념 절기 등을 통해 자손들을 가르치는 궁극적 목적이 결국 하나님을 경외케 하려는데 있음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식의 근본이기 때문이다(잠 1:7;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