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금강당(金剛幢)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널리 살펴보고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菩薩志樂常安住하야 正念堅固離癡惑하며 其心善軟恒淸凉하야 積集無邊功德行이로다
보살은 뜻에 즐거이 항상 편히 머물러 바른 생각 견고하고 어리석음 떠남이라 그 마음 착하고 부드러워 항상 청량해 그지없는 공덕행(功德行)을 쌓아 모으도다.
▶강설 ; 보살이 마음으로 즐거워하는 일은 항상 편안히 머물러 바른 깨어 있음과 바른 견해와 바른 삼매와 바른 말과 바른 행동 등이 견고하여 욕망과 분노와 어리석음 등 일체 번뇌를 멀리 떠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선량하고 부드러워 항상 청정하다. 보살의 마음상태가 이와 같으므로 그지없는 공덕행을 쌓아간다. 경계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참마음의 진여자리에 안주하여 팔정도(八正道)로 무장하고 있다면 저절로 6바라밀과 10바라밀 등 온갖 바라밀과 인의예지가 넘쳐 나오게 된다. 그래서 공덕은 저절로 쌓이리라.
菩薩謙順無違逆하야 所有志願悉淸淨하고 已得智慧大光明하야 善能照了一切業이로다
보살이 겸손하고 순하여 어기지 않고 가진바 뜻과 소원 모두 청정해 지혜의 큰 광명을 이미 얻어서 모든 업(業)을 밝게 비추어 능히 다 알도다.
▶강설 ; 보살은 그 마음이 언제나 겸손하고 순하여 남과 세상사와 결코 어기지 않는다. 뜻과 소원이 청정하고 뛰어나다. 지혜의 큰 빛이 언제나 밝게 빛난다. 그래서 중생들의 어떤 업도 환하게 비추어 모르는 바가 없다. 선근회향만을 인생에서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보살의 마음의 본체는 언제나 이와 같다.
2) 회향할 바의 행을 밝히다
菩薩思惟業廣大하니 種種差別甚希有라 決意修行無退轉하야 以此饒益諸群生이로다
보살이 생각하는 광대한 업이 가지가지 차별하여 매우 희유하거늘 결정한 뜻은 수행함에 퇴전치 않고 이것으로 모든 중생 요익케 하도다.
▶강설 ; 보살은 중생제도의 필수방편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중생의 모든 업을 낱낱이 사유한다. 가지가지가 차별하여 실로 희유하기 이를 데 없다. 그와 같더라도 보살의 중생을 위한 결정한 뜻은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보살의 요익중생의 길에 어찌 퇴전이 있겠는가.
세상의 부정부패와 온갖 사기협잡과 별의 별 범죄들을 보면 세상을 위하고 중생들을 교화하겠다는 원력에서 물러서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세상이 험악하더라도 보살은 결코 그 꿈과 희망과 기대를 포기하지 않는다. 한 방울 한 방울 스며드는 맑은 물이 언젠가는 바다 전체를 청정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諸業差別無量種을 菩薩一切勤修習하고 隨順衆生不違意하야 普令心淨生歡喜로다
모든 업이 한량없이 차별하거늘 보살이 일체를 부지런히 닦아 익히어 중생의 뜻을 따라 어기지 않고 널리 그 마음 청정케 하고 환희케 하도다.
▶강설 ; 중생들의 일체 업장들이 한량없이 차별하다 하더라도 큰 서원을 가진 보살은 부지런히 수행하여 그들 중생의 마음을 어기지 않고 다 수순해 준다. 그래서 그 마음 청정케 하고 환희케 한다. 이것이 보살의 비원(悲願)이다.
已昇調御人尊地하야 離諸熱惱心無礙라 於法於義悉善知나 爲利群生轉勤習이로다
이미 중생을 다스리는 높은 자리에 올라 모든 번뇌 여의고 마음에 걸림 없으며 법이거나 이치거나 분명히 알고 중생을 이익케 하려고 더욱 부지런히 수행하도다.
▶강설 ; 보살이 올라간 중생을 다스리는 높은 자리란 부처님의 경지이다. 그 자리는 사람사람이 본래로 갖춘 자리지만 모든 불자가 다시 또 희망하는 자리이다. 그 경지는 이미 모든 번뇌를 여의었고 마음에 일체 걸림이 없다. 어떤 법이거나 어떤 이치이거나 분명히 다 알아서 막힘이 없는 경지다. 그러나 다시 중생을 이익케 하려고 더욱 더 부지런히 수행하는 일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끊임없이 상구보리하고 하화중생하는 것이다.
菩薩所修衆善行이 無量無數種種別이어든 於彼一切分別知하야 爲利群生故廻向이로다
보살이 수행하는 온갖 선한 일들이 한량없고 수 없어 각각 다르나 그 모든 것을 분별하여 모두 다 알고 중생을 이익케 하려고 회향하도다.
▶강설 ; 불교에서는 선행을 설명할 때 6바라밀과 10바라밀고 10선과 사섭법과 사무량심과 인의예지 등만을 위주로 이야기하지만 어찌 이것뿐이겠는가. 보시만 하더라도 세분하면 제6 수순견고일체선근회향에서 60종의 보시를 설명하였다. 선행이 아마도 수백만 가지는 넘을 것이다. 보살은 그 모든 선행을 다 분별하여 안다. 그리고 중생을 이익하게 하려고 모두 다 닦아 널리 회향한다.
3) 진여를 널리 밝힘
以妙智慧恒觀察 究竟廣大眞實理하야 斷諸有處悉無餘하고 如彼眞如善廻向이로다
끝까지 광대하고 진실한 이치를 미묘한 지혜로써 항상 관찰하며 모든 생사[有處]를 끊어서 남기지 않고 저 진여의 성품과 같이 잘 회향하도다.
▶강설 ; 이 설법이 제8 진여상(眞如相)회향이므로 다시 진여를 들어 선근회향을 거듭 설한다. 끝까지 광대하고 진실한 이치란 곧 진여생명의 깊은 이치다. 법성진여와 일심진여의 내용이 광대무변하다. 보살은 미묘한 지혜로 항상 관찰하여 생사의 존재 사실은 남김없이 끊어 없앤다. 진여생명의 이치를 깨달으면 생사의 존재 사실은 남김없이 끊어 없애게 된다. 이와 같은 진여생명처럼 일체 선근을 회향한다.
譬如眞如徧一切하야 如是普攝諸世間하고 菩薩以此心廻向하야 悉令衆生無所着이로다
진여가 모든 것에 두루 하듯이 이와 같이 모든 세간 다 포섭하고 보살은 이 마음으로 회향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집착이 없게 하네.
▶강설 ; 보살이 선근회향을 하는 것은 진여가 일체 세간과 출세간에 두루하는 것과 같이 역시 일체 세간과 출세간을 두루 포섭한다. 또 중생을 잘 깨우쳐서 모든 집착을 떠나게 한다.
菩薩願力徧一切하야 譬如眞如無不在라 若見不見念悉周하야 悉以功德而廻向이로다
보살의 원력이 일체에 두루한 것이 진여가 모든 곳에 다 있듯이 보는 데나 못 보는 데나 다 두루하고 이러한 공덕으로 회향하도다.
▶강설 ; 보살의 원력이 일체에 두루하다. 진여도 또한 일체에 두루하다. 선근회향의 공덕도 이와 같이 한다.
夜中隨住晝亦住하며 半月一月亦隨住하며 若年若劫悉住中하니 眞如如是行亦然이로다
밤에도 머무르고 낮에도 있고 보름이나 한 달이나 따라 있으며 몇 해거나 몇 겁(劫)이나 모두 있나니 진여가 그러하고 행(行)도 또한 그러하도다.
▶강설 ; 진여는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에 다 두루하다. 밤이나 낮이나 보름동안이나 한 달 동안이나 몇 년이나 몇 겁이나 항상 두루하다. 보살의 선근회향도 또한 그와 같다.
所有三世及刹土와 一切衆生與諸法에 悉住其中無所住하야 以如是行而廻向이로다
그지없는 삼세(三世)와 모든 세계와 일체의 중생들과 모든 법들의 그 속에 있지마는 있는 데 없어 이와 같은 행으로써 회향하도다.
▶강설 ; 진여는 과거·현재·미래와 일체 세계와 일체중생들과 일체 모든 존재에 다 있지만 그 고장된 실체는 없다. 보살의 선근회향도 온 우주를 다 덮더라도 그 고장된 실체는 없다.
譬如眞如本自性하야 菩薩如是發大心하니 眞如所在無不在라 以如是行而廻向이로다
비유하면 진여의 본 자성과 같이 보살이 이와 같이 큰 마음을 내어 진여의 있는 데에 모두 다 있어 이와 같은 행으로써 회향하도다.
▶강설 ; 모든 사람에게 진여는 다 가지고 있다. 보살은 그 진여를 마음껏 활용하여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선근을 널리 회향한다. 이것이 보살의 길과 중생의 길의 다른 점이다.
譬如眞如本自性이 其中未曾有一法하야 不得自性是眞性이니 以如是業而廻向이로다
비유하면 진여의 본 자성과 같이 그 속에는 한 법(法)도 있지 아니해 제 성품 못 찾는 게 참 성품이니 이와 같은 업으로써 회향하도다.
▶강설 ; 진여자성에는 어떤 한 법도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은 없다. 진여생명, 진여불성, 일심진여 등으로 불리지만 고정된 자성은 찾을 수 없다. 이것이 진여의 참 성품이다. 보살은 이와 같이 선근을 닦아 회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