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사유의 길 위에 선 숭엄(崇嚴) — 곡부(曲阜) 공자묘에서...양인석 작가
양인석 작가
양인석 작가 프로필
경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역사교육학 석사
2024년도 에세이스트 118호 신인상 수상
진등재 문학회원
에세이스트 문학회원
경남수필가협회 회원
양인석 작가의 에세이 '사유의 길 위에 선 숭엄(崇嚴) — 곡부(曲阜) 공자묘에서'[그림 제공=최신뉴스 박경아 기자]
사유의 길 위에 선 숭엄(崇嚴) — 곡부(曲阜) 공자묘에서
중국 명산 중에서도 오악독존(五嶽獨尊) 태산 봉우리에서 받아낸 정신의 깊이를 가슴에 안은 채, 경남대 수필 교실 문학기행단은 공자의 산소 공림(孔林) 참배를 위해 취푸(曲阜)로 떠났다. 정적에 가까운 이른 아침, 짐을 챙기며 마음은 묵직한 설렘으로 가득 찼다. 공자를 만나러 간다는 생각 하나만으로도 등줄기 아래에서부터 작은 전율이 올라왔다.
창밖으로 중국 산둥성의 들판이 너울거렸다. 무심히 펼쳐진 논과 밭, 간간이 보이는 마을의 조용한 풍경. 황톳빛 대지 위로 피어난 노랗게 익어가는 밀밭은 어제의 태산과는 다른 시간의 결을 품고 있었다. 그 풍경은 웅변하지 않지만, 세월의 심연 속에서 차분히 존재하는 듯했다.
이동 중 마음은 묘하게 고요했다. 철학자의 공간으로 향한다는 여정에는 소란이 어울리지 않았다. 차 안에서는 누구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고, 나 또한 메모장 위에 공자의 말을 되새겨보며 마음속 대화를 시작했다.
군자는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 (子曰, 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문득 지금의 나에게 던지는 말씀처럼 들렸다. 나는 무엇을 구하러 이곳에 온 걸까. 공자를 만나면 무엇이 달라질까.
공자묘의 대문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대문은 마치 시간의 입구 같았다. 내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느려졌다. 먼 길을 달려온 건 분명하건만, 발아래로 펼쳐진 풍경은 그 무엇보다 느리고 깊었다. 이곳은 공자의 고향, 그리고 그 가르침의 근원지. 나는 지금 그 문 앞에 서 있다.
이 공자묘는 기원전 478년, 공자의 사후 2년 뒤 노나라 애공이 그의 집을 사당으로 삼으며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수나라, 송나라, 원나라, 명나라를 거치며 여러 차례 증축과 개축이 이루어졌고, 특히 1499년 명나라 홍치제 시기에 대규모 재건이 이루어져 지금의 웅장한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그 규모는 자금성에 이어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역사적 건축군으로 평가받는다.
이곳엔 공자뿐 아니라 그의 유가적 후손과 제자들의 흔적도 함께한다. 공자의 아들 공리(孔鯉), 손자 공급(孔伋), 그리고 제자인 자공(子貢), 증자(曾子), 자사(子思) 등은 모두 유가의 계보를 잇는 인물들이다. 공급은 중용을 저술했고, 증자는 효를 강조했으며, 자사는 공자의 사상을 체계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은 단순한 제자가 아니라, 유가의 뿌리를 굳건히 다진 철학자들이었다.
붉게 칠해진 대문을 지나 좌우로 길게 뻗은 성벽의 중심에 자리한 문은 크고 둥근 홍예형(아치형) 구조로, 고대의 조화를 품고 있었다. 그 옛 문은 권위와 겸손을 동시에 말하고 있었다. 문 위의 편액엔 한자로 ‘공자묘(孔子廟)’라 또렷하게 새겨져 있고, 천년을 거쳐 닳은 기둥마다 바람과 역사, 존경이 스며 있었다.
그 문은 마치 시간의 경계였다. 문 안은 역사였고 문밖은 현재였다. 나는 그 문턱에 선 채, 마음속에서 오래된 사유의 문을 넘고 있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마치 내가 수천 년의 시간을 걸어 이 자리까지 왔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눈앞의 문은, 단지 건축물로서가 아니라, 인문과 윤리, 사유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그 앞에 선 나는 철학과 정신을 직접 마주하게 된 것 같은 숭엄함에 목이 메었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깊게 들이마신 숨결은, 마치 공자가 걸었던 길을 지나 지금의 나에게 닿은 듯했다. 나 자신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이제 사유의 문을 열자." 그 순간, 붉은 문은 나를 환영하며 묵묵히 열리고 있었다. 말은 없었지만, 마음으로 교감하는 그 침묵 속에서 나는 공자와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대문을 통과한 나는 더 이상 여행자가 아니었다. 나는 배우고자 하는 자였고, 마음으로 그를 만날 준비가 되어있었다.
고요한 담장을 넘어서니 묘역의 중심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뿌리 내리고 있었다. 그중 한 나무, 수령이 수백 년을 넘긴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고목은 땅을 품고 하늘을 잉태하듯 우뚝 서 있었다. 안내인은 말한다. 이 나무는 명나라 중엽쯤부터 자리한 유물이라 한다. 자리를 지킨 나무는 절대로 말하지 않지만, 그 침묵의 권위로 모든 소란을 잠재운다.
묘역을 걷다 보니 주변 풍경은 그 자체로 공자의 가르침을 말하고 있었다. 질서와 조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배치.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나무와 건물, 바람과 돌이 말해준다. 그곳의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원이었다. 공자의 철학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돌고 도는 원형의 진리로 우리를 감싸고 있음을 느꼈다.
묘역 중앙의 비석과 위패, 그 앞에 고개를 숙이자,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이 흐른다. 공자는 우리를 기다렸던 걸까, 아니면 우리는 늘 그에게 걸어오고 있었던 걸까. 이 만남은 유적 답사가 아니라 자기 내면과의 문답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조용히 되묻는 공간. 그리고 나는 그 질문에 답할 준비가 아직 안 되어있음을 깨달았다. 참배를 마친 순간! 산소 앞 수천 년 자란 나무에서 회오리바람과 함께 나뭇잎이 흩날린다. 우리의 소망에 대한 공자님의 응답일까. 신비로운 현상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우연인가 기적인가.
묘역을 나서며 나는 다시 한번 공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공자님! 쉬지 않고 배우고 공부하며 끈질기게 창작 활동을 이어 가겠습니다.
(경남대학교 백남오 수필교실: 010-2314-5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