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유대인이 그저 “사업 능력이 남보다 조금 뛰어난 사람들”이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물론 유대인은 그동안 비즈니스에서 남다른 능력을 발휘해왔습니다. 그들은 경제뿐 아니라 예술, 철학, 종교, 교육 등 모든 부문을 비즈니스로 확대한 선구자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이 우리의 선입관처럼 단순히 장사에만 능했다면 일개 장사꾼으로 오늘날 명멸(明滅)을 달리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각 분야에서 명성을 얻은 유대인에는 누가 있을까요?
얼마 전 한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아르헨티나 출신의 혁명가 체 게바라는 유대인입니다. 마르크스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자동차왕 시트로엥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다이아몬드왕 오펜하이머, 그리고 러시아 최대의 석유기업인 유코스를 푸틴 대통령에게 빼앗긴 호도르코프스키, 유코스에 버금가는 석유기업인 시브네프치의 회장으로 2003년 7월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구단 첼시를 인수한 아브라모비치 또한 유대인입니다.
하이페츠, 오이스트라흐, 프리츠 크라이슬러, 아이작 스턴 같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와 왁스맨, 브루노 발터, 쇤베르크, 조지 거슈윈 같은 작곡가를 비롯해 유명 지휘자인 레너드 번스타인, 뮤지컬의 대부 리처드 로저스,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등도 유대인입니다. 이밖에도 사르트르와 앙드레 지드, “닥커 지바고”의 파스테르나크, 카프카, 토마스 만, 프루스트 역시 유대인입니다.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 같은 세기의 과학자들을 키운 것은 유대식 가정교육을 몸소 실천한 그들의 부모였으며, 인상주의를 개척한 피사로와 샤갈, 모딜리아니와 피카소는 “사람들이 세상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입체적으로 바라본다”는 “탈무드”의 명구가 길러낸 유대계 화가들입니다. 그리고 할리우드를 개척한 찰스 채플린, 마르쿠스 형제, 퓰리처, 로버트 카파, 빌리 와일더, 윌리엄 와일러,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유명한 극작가 아서 밀러, 하드보일드 소설의 대명사인 노먼 메일러, 연기파 배우인 폴 뉴먼과 더스틴 호프먼, 커크 더글러스 등의 유일한 공통점 역시 유대인이라는 점입니다.
즉, 우리가 유대인을 일개 장사꾼으로 성공한 민족이라고 여기는 동안 그들은 인간의 손길이 미치는 모든 영역에서 마치 그물망처럼 자신들의 입지를 다져나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유대인의 그물망을 뚫고 나가야 될 당면과제를 안게 된 셈입니다.
한 민족의 흥망성쇠의 역사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인류가 역사를 기술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특수한 환경에서, 특수한 목적을 위해, 특수한 과정을 거쳐 성공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유대인을 모델로 삼아 이념에 의해 분단된 오늘날 한국의 시점에서 세계를 향해 뻗어갈 수 있는 희망과 기회를 연구해야만 합니다.
이른바 글로번 스탠더드로 정의되는 세계화의 요구가 내외적으로 거세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여 년 전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가름해야 할 21세기, 더 나아가 다가올 세기는 이 같은 글로번 스탠더드와 더불어 민족의 정체성까지 함께 증명해야 하는 시기가 될 것입니다. 국경과 인어의 장벽이 허물어진 현대사회에서 민족의 정체성은 편협한 민족주의적 발상이 아닌 삶의 원동력이며, 위기의 순간에 제시할 수 있는 대안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란 우리보다 앞서 세계화를 이룬 국가들의 양식을 그대로 따르는 데 있지 않고, 우리의 스탠더드를 글로벌화하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이미 5,000년 전부터 그 같은 문제에 직면해왔던 유대인의 삶을 통해 우리 앞에 놓인 과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깊게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이 같은 통찰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유대인에 관한 성공 스토리나 비즈니스 요령, 또는 일상생활에 적용 가능한 실용적인 내용보다는 그들을 통해 우리의 위치와 방향을 되돌아볼 수 있는 타산지적의 기능을 더욱 중시해야합니다.
민족의 운명이 걸린 기로에서 개별적 성공을 민족의 신화로 거듭나게 만든 유대인의 힘을 살펴보고, 이 같은 유대인 특유의 능력이 발휘된 삶의 모습을 관찰해야합니다. 토라와 탈무드를 통한 유대인의 삶의 지혜에 대해 알아보고, 지식보다 지혜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유대 교육의 힘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와 사회의 발전은 집단 간의 경쟁이 아닌 구성원 간의 경쟁에서 결정되게 마련입니다. 우리의 한결같은 소망인 21세기 선진국 진입의 꿈은 위정자와 몇몇 대기업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실천하는 삶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대인을 우리보다 성공한 부류로 선망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원동력으로, 또는 우리가 속한 집단의 혁신으로, 아니면 우리 가정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촉매제로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김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