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같은 놈
아무래도 글 쓰는 데는 개가 만만한 짐승인 것 같다. 전에 한번 ‘개타령’이라는 글을 쓴 일이 있는데, 지금 또 개 이야기를 쓰게 되니 말이다. 집에서 다시 개를 기르게 된 것인데 그럴 만한 이유가 또 생긴 것이다.
몇 달 전에 장마당의 애완견 센터에 부탁을 했더니 ‘똘선이’라는 이름의 진돗개를 한 마리 주선해 주었다. 5대조의 이름까지 밝혀져 있는 거창한 족보를 달고 온 ‘똘선양’은 진돗개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수한 황구였다.
개 다운 개 한번 길러 본다는 생각으로 유난히 신경을 써가며 잘 거두었다.
그 뒤 매스컴에서 개의 혈통서가 조작 남발되고 있다는 보도를 듣고 실망이 없지도 않았는데 ‘똘선이’의 그것도 수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차 지나면서 보니 밥만 치우는 멍청이인데다가 항상 겁에 질린 표정이 애처롭기까지 했다.
그동안 우연히 또 한 마리가 굴러들어왔는데 이번에는 야단스러운 혈통서 같은 것은 달고 오지 않았지만, 야무지게 생긴 스피츠 계통의 수컷이었다. 아파트로 옮길 차비를 하고 있던 사람이 물려준 것인데 오자마자 식구들을 따르고 문간에 자리를 차려 주었더니 빈틈없이 망을 보았다. 먼저 집에서 붙여준 ‘나귀’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발음이 비슷한 이름을 생각하다가 ‘럭키’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해 주었다.
일제 시대 우리는 억지로 창씨개명(創氏改名)을 했었다. 그것을 어떤 사람들은 (創氏犬名)이라고 꼬집은 일이 있는데, 우리 집 개도 하여간 ‘럭키’라는 개명(犬名)으로 개명(改名)을 한 것이다.
식성이 까다로운 것이 흠인데 입맛에 맞지 않으면 단식투쟁이라도 하듯이 무작정 밥그릇을 외면해서 안주인의 애를 태웠다. 그러면서도 낯선 사람은 얼씬도 못 하도록 충직하게 문을 잘 지킨다.
헬렌 켈러 여사는 사흘 동안만이라도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면 충직한 개의 눈도 꼭 한번 들여다보고 싶다고 말(?)했었다. (말은 반드시 입으로만 하는 것은 아닐 터이니까). 이렇듯 개는 사람에게 가장 충직한 짐승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개들이 욕을 바가지로 뒤집어쓰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상스러운 욕설이 아니더라도 남의 앞잡이 노릇이나 하는 저질 인간을 주구(走狗)라고 하고, 속 다르고 겉 다른 행동을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고 하는 따위는 모두 개와 관계있는 달갑지 않은 말들이다. 한자(漢字)의 옥(獄)은 두 마리 개가 서로 맞붙어서 아귀다툼하는 꼴이며 영어의 Son of bitch도 저들의 고약한 욕설이다. 일본에서는 싸움터에서 도망치는 비겁한 무사를 ‘이누사무라이(犬侍)’라고 멸시한다든가.
저자는 확실하지 않지만 일제 말기에 옥중에서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이라는 책을 읽은 일이 있다. 소위 ‘수양 서적’이라는 명목으로 그들이 감방에 차입해 주는 책이었는데 각양 각종의 짐승 대표들이 모여서 인간을 성토하는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인간들은 짐승들보다 몇 배나 더 악랄하고 탐욕스럽고 비겁하기 이를 데 없는 저질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선량하고 순진한 동물들을 학대하고 빗대서 욕설을 함으로써 동물 모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성토했다. 그리고 동물의 세계에서는 ‘사람 같은 놈’이 가장 치욕적인 욕설이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본다. 다만 견공(犬公)만이 오로지 사람 편을 들어서 비호하고 나섰다.
‘극히 드물기는 하지만 그들 가운데도 어린이들처럼 악에 물들지 않은 선량한 사람들이 없지는 않다’라고.
그건 그렇고 우리 내외는 상의한 끝에 밥만 치우는 똘선이를 언제까지나 끌어안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마침내 방출(?)하기로 결심을 했다.
교환조건도 제시했지만 좀처럼 상대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서야 낯 모르는 개장수가 찾아오더니 다짜고짜로 사 온 값의 반으로 후려 깎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 럭키 군의 그늘에 가려서 천덕꾸러기로 지내온 터인데 그래도 살던 집에 정이 들었다는 것일까? 필사적으로 버티는 똘선이를 개장수와 합세해서 억지로 올가미를 씌우고 말았다. 미물의 짐승이라고는 하지만 넉 달 가까이 거두어 준 똘선이를 떠나보내고 나니 서운한 마음 그지없었다. 보신탕집에는 넘기지 말도록 당부 한 마디 못한 것이 못내 후회스러웠다.
‘사람 같은 놈’이라는 그들의 지독한 욕이 두고두고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月刊 에세이, 198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