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 雲 入 世 多 (풍운입세다) 세상에 풍운이 많이 일어나고
日 月 擲 人 急 (일월척인급) 해와 달 사람을 급히 몰아치니
如 何 一 少 年 (여하일소년) 이 한번의 젊음을 어찌 하리오
忽 忽 已 三 十 (홀홀이삼십) 어느덧 벌써 서른살이 되었네
<감 상>
지은 이는 이회영(李會榮, 1867~1932), 號는 우당(友堂)이며, 본관은 경주(慶州)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일생을 국내 외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명문가의 자손으로 국권회복에 각별한 사명
의식을 품고, 온 가문이 함께 물심양면으로 참가한 일은 고금(古今)에 드문 일이다.
특히,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정리하여,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가서 모든 재산을
털어,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일본에 맞서는 군사 인재들을 양성한 일은 유명하다.
그 후 자신과 가족들은 망명지 중국을 전전하면서, 혹독한 가난을 겪으며 불굴의 독립
정신으로 살아 간 빛나는 족적은 후세에 큰 귀감이 되고 있다.
위에 소개한 시는 5언 절구 평기식이지만, 시의 평측 구성은 전통 한시와는 다소 상치
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공의 불굴의 기개와 투혼은 이 시속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음을 느낀다. 이 시는
'남양주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으로, 공의 나이 서른 살에 지은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공과 공의 형제분들, 그리고 그 많은 재산을 가졌으면서도 이를 나라위해 기꺼이
바치고, 가솔(家率)들로 하여금 가시밭 고난 길을 걸어가게 하신 살신성인의 애국애족
정신과 눈물겨운 전(全) 가문의 헌신에 삼가 추모와 경의를 드리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