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복음 15, 11 - 20 |
11 그러나 수석 사제들은 군중을 부추겨 그분이 아니라 바라빠를 풀어 달라고 청하게 하였다. 12 빌라도가 다시 군중에게 물었다. “그러면 여러분이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부르는 이 사람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 것이오?” 여기서는 군중이 누구를 풀어 달라고 할지 정하지도 않고서 빌라도에게 몰려가서 관례대로 죄수 하나를 풀어 달라고 요구한 것처럼 표현되어 있는데, 아마도 실제로는 처음부터 바라빠를 풀어 달라고 요구하기로 정해져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타당하다.
그런데 마태오복음 27장 17절을 보면 바라빠의 이름도 ‘예수’ 로 되어 있다. 아마도 빌라도는 군중이 풀어 달라고 하는 예수가 바라빠라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척 시치미를 떼고 나자렛 예수의 석방을 원하느냐고 물었을 것이다.
수석 사제들이 군중을 부추겨서 바라빠를 풀어 달라고 청하게 했다는 것은 바라빠의 석방을 확실하게 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사형을 확실하게 확정 짓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혹시라도 예수님이 석방될 것을 염려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군중을 선동해서 바라빠를 풀어 달라고 요구하게 한다. 유대인들이 바라빠와 예수님 중에서 바라빠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빌라도가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 것이다. 아마도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선택할 가능성은 처음부터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내용에서 강조점은 군중이 예수님 대신 바라빠를 선택했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예수님의 사형을 강력하게 요구했다는 점에 있다. 사실 유대인들이 바라빠를 선택했다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
13 그러자 군중은 거듭 소리 질렀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여기서 ‘거듭’ 이라는 말은 ‘다시’ 라고 바꿔야 한다. 그들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는 것은 앞의 11절에서 바라빠를 풀어 달라고 소리를 질렀음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서 바라빠를 풀어 달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다시’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다.
군중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를 지른 것은 아마도 11절에서처럼 수석 사제들이 부추겨서 그랬을 것이다. 수석 사제들 외에도 바리사이들의 선동이 있었을 것이고, 군중심리도 작용했을 것이다.
어떻든 이 구절은 유대인들의 군중이 단순히 예수님의 유죄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형을 주장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유대인들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
14 빌라도가 그들에게 물었다.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짓을 하였다는 말이오?” 군중은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빌라도가 군중에게 예수가 무슨 나쁜 짓을 했느냐고 묻는다. 즉 예수의 죄가 무엇이냐고 묻고 있다. 그러나 군중은 그 질문에 답변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말만 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죄목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다. 군중심리, 선동,무질서, 증오만이 가득하다.
여기서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라는 말은 폭동에 가까운 소동과 아우성을 뜻한다. 빌라도는 폭동을 진압할 수 있는 강력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는 총독이다. 그래서 그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유대인들을 강제로 해산 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군중의 압력에 굴복한다. 그는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거나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군대를 동원할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그가 군중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아마도 그는 평소에 유대인들의 미움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했을 것이다.
다른 복음서들을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을 석방 하려고 애를 쓴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것은 빌라도를 변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책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마르코복음만 놓고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을 석방하기 위해 애를 쓰는 장면은 별로 없습니다. 조금 각도를 달리해서 보면, 오히려 빌라도가 군중을 선동한 것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하여간에 최고 의회, 바리사이들, 율법학자들, 헤로데 당원들, 그리고 일반 유대인 군중,빌라도, 그들 모두가 예수님을 살해한 공범입니다. |
15 그리하여 빌라도는 군중을 만족시키려고, 바라빠를 풀어 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었다.
여기서 ‘군중을 만족시키려고’ 라는 말은 예수님이 유죄냐, 무죄냐에 상관없이 군중이 원하는 대로 사형 선고를 내리고 재판을 끝냈다는 뜻이다. 군중이 원하는 것은 바라빠의 석방과 예수님의 십자가형이다.
빌라도는 권한을 갖고 있는 총독이면서도 자기의 권한을 전혀 행사하지 못하고 군중의 요구대로 행동하고 있다. 그가 지금 가장 크게 관심을 갖고 있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은 ‘정의’ 를 실현하는 일이 아니라, 군중을 만족시키는 일, 즉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는 일이다.
원래 ‘채찍질’ 은 경범죄를 지은 노예나 식민지 백성에게 가한 형벌이었고, 십자가형은 대역 죄인에게 내린 극형이었습니다. 그런데 죄수를 십자가형에 처할 때 우선 채찍질로 기운을 빼서 빨리 죽게 하는 것이 관례였다. 채찍질은 죄수의 옷을 벗기고 시행했다. 채찍은 긴 가죽 끈으로 되어 있었고, 끝에 납덩이나 뼛조각, 쇳조각 등이 달린 것이었다. 그래서 채찍질을 할 때마다 살점이 뜯겨졌다. 유대법에는 채찍질은 40번을 넘지 못하게 되어 있었지만, 로마법에는 채찍질 회수에 제한이 없었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었다.’ 라는 말은 십자가형을 집행할 군인들에게 예수님을 넘겨주었다는 뜻이다. 십자가형을 처음 만든 것은 페르시아인들이라고 전해진다. 로마인들에게 있어서 십자가형은 ‘맹수의 밥이 되는 형’ 과 함께 가장 치욕스러운 처형 방법으로 간주되었다. 십자가형은 주로 노예들과 식민지 백성들에게 행해졌는데, 로마 시민들도 반역 죄인이나 탈영병, 성전 강도 등 같은 중죄인들은 십자가형을 당했다. 십자가는 보통 T형이나 십자형으로 되어 있었다.
십자가형에 앞서 채찍질 같은 고문이 먼저 집행되었고, 죄수는 십자가나 또는 십자가의 횡목을 도시 밖 처형장까지 지고 가야 했다. 그때 죄목을 적은 명패를 목에 걸거나 앞에 들고 갔다. 처형장에 도착하면 옷을 모두 벗기고 알몸으로 만든 다음 팔을 벌린 모습으로 횡목에 묶거나 못을 박아 매달았다. 십자가형을 당한 죄수는 흔히 며칠 동안 살아 있는 경우가 많았고, 숨이 끊어지면 시체가 썩을 때까지, 또는 맹수의 먹이가 될 때까지 십자가에 매달아 놓았다. |
16 군사들은 예수님을 뜰 안으로 끌고 갔다. 그곳은 총독 관저였다. 그들은 온 부대를 집합시킨 다음,
‘군사들은 예수님을 뜰 안으로 끌고 갔다. 그곳은 총독 관저였다.’ 라는 말은 지금까지 총독관저 바깥뜰(또는 광장)에서 재판이 진행되었음을 나타낸다. 십자가형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준비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십자가형 집행 준비를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서 군인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있다. 그들은 온 부대를 집합시킨 다음에 예수님을 뜰 안으로 끌고 간다. 부대원이 모두 예수님을 조롱 했다고 생각 하기는 어렵다. 예수님을 조롱한 군사는 몇 명이었을 것이고, 나머지 부대원들은 그것을 구경했을 것이다. 부대원의 수는 600-1,000명 정도였고,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이방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군 복무가 면제 되었습니다. |
17 그분께 자주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머리에 씌우고서는, 이렇게 말하며 인사하기 시작하였다.
‘자주색 옷’은 그리스 지역의 임금들이 입었던 옷인데, 마태오복음 27장 28절을 보면 군인들이 예수님께 입힌 옷은 자주색 옷이 아니라 자기들의 군복인 진홍색 망토였다. 아마도 자기들의 군복을 예수님께 입히면서 왕의 옷이라고 조롱했을 것이다.
‘가시관’ 은 그 지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가시나무, 또는 엉겅퀴나 가시가 돋친 식물로 왕관을 흉내 내서 만든 관이다. 마태오복음 27장 29절에는 ‘가시 나무’로 되어 있다. 당시 임금 들은 황금 잎사귀로 만든 왕관을 썼다. 군인들이 왕관을 흉내 내어 가시관을 엮어 예수님의 머리에 씌운 것은 신체적인 고통을 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롱하기 위해서이다.
18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지금 군인들의 행동은 예수님의 죄목이 ‘유다인들의 임금’ 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걸 조롱하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다. 그들은 임금의 옷을 흉내 내서 자기들의 외투를 예수님께 입히고, 왕관을 흉내 내서 가시관을 씌운 다음에, 이제는 왕에게 경배하는 모습을 흉내 내고 있다. 여기서 ‘ 인사하기 시작하였다.’ 라는 말은 인사하는 모습을 흉내 냈다는 뜻이다. |
19 또 갈대로 그분의 머리를 때리고 침을 뱉고서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예수님께 절하였다.
마태오복음 27장 29절에 의하면 ‘갈대’ 는 왕의 지팡이, 즉 왕 홀을 흉내 낸 것이다. 당시에 왕 홀은 불복종하는 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매질을 할 때 사용하기도 했기 때문에 군인들은 그것을 흉내 내면서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때린다.
‘침을 뱉는 것’ 은 극심한 경멸을 뜻한다.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했다.’ 라는 말은 앞의 18절에서 말한 ‘인사하였다.’ 라는 말을 다시 설명한 것인데, 왕에게 경배하는 모습을 흉내 낸 것이다.
20 그렇게 예수님을 조롱하고 나서 자주색 옷을 벗기고 그분의 겉옷을 입혔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러 끌고 나갔다.
군인들이 예수님을 조롱하는 동안 십자가 형을 집행할 준비가 끝납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을 다시 입히고 십자가형을 집행하기 위해서(십자가에 못 박으러) 예수님을 처형장으로 끌고 갑니다. 예수님은 침묵 속에서 이 모든 고난과 모욕을 견뎌내고 있다. 사형수가 십자가를 지고 형장까지 가는 것은 당시 로마의 관습이었는데, 대개는 십자가의 기둥은 형장에 세워 두고 죄수는 십자가의 횡목만 지고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