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
정우림
파란시선 0145
2024년 8월 15일 발간
정가 12,000원
B6(128×208㎜)
129쪽
ISBN 979-11-91897-83-8 03810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 신간 소개
표정이 자주 흔들리는 문을 열고 들어간다
[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은 정우림 시인의 세 번째 신작 시집으로, 「펜로즈 삼각형」 「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 「소문의 자루―소름 1」 등 57편이 실려 있다.
정우림 시인은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으며, 2014년 [열린 시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살구가 내게 왔다] [사과 한 알의 아이] [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을 썼다.
정우림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을 관통하면서 독자에게 일관된 정서를 전달하고 있는 힘의 근간에는 유목적 상상력이 자리하고 있다. 이때 ‘유목적’이라는 수식어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는 이미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먼저, 지금의 일상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온갖 기준과 경계들이 어느새 현대인들에게 폭력과 억압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포식성으로 인해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마저도 일상의 논리 안으로 삼켜지고 만다는 사실이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부각된다. 그렇게 자본의 확장이 결국 미래의 전망까지 장악해 버린 현실에서 온갖 금기에 대한 저항으로, 그리고 경계를 넘어 무한대의 새로움을 지향하는 창조적 가능성으로 ‘유목’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이는 ‘오래된 미래’처럼 과거의 시간 속 경험에 대한 확신으로 인해 한층 매력적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현실에서라면 정착과 안정의 의미인 집 짓는 과정을 다룬 작품에서 시인이 그와 상반되게만 보이는 “설계자 없는 설계/중심이 비어 있는 형태와 균형감”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을 때처럼 말이다(「흔들리는 집」). 말하자면 시집 [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에 드러난 시인의 상상력은 현실의 요소들을 상세하게 관찰하면서, 부여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고정되어 있던 각각의 위치들에 대한 재배치를 가능하도록 만든다. (이상 남승원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 추천사
정우림 시인의 이번 시집은 유목적 상상력이 「꽃의 유목」으로, 「이미지 유목민」으로 시편들 곳곳에서 발화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리플리증후군」에선 “알 수 없는 자신을 찾아 나서는 길이라고” “너를 나로 편집하는 것이라고” 거짓이 탄로 날까 봐 불안해하는 리플리증후군을 보이지만, “모르는 음악이 지도를 넘나”드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구름이 말을 한다지 그 말귀를 잘 알아들은 말과 양 떼가 그 노래를 따라 부른다지 (중략) 초원에서 함께 뛰어”노는 ‘구름’을 만남으로써 활짝 수국이 피어오르듯 노마드적 삶의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다(「구름이 들려주는 시」).
그만큼 초원에서 마주친 구름의 이미지는 다양하게, 그녀의 혈맥을 타고 뛰어오르는 한 마리 새 같다. 「은이」에선 “구름의 줄기에 매달린 새가 빙빙 돈다”로, 「염 들이다」에선 “몽글몽글 순두부처럼 익어 가는/구름이 사람들을 어루만진다”로, “태풍의 경로를 이탈하고 싶은”(「변이 지대」) 시 「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에선 “구름이 태어나는 벼랑 같아요”로 정우림 시인의 “포도주처럼 발효된 이야기들”을 총 57편의 작품을 통해 읽어 낼 수 있다. “도시의 모든 것들과 맞서 싸워야 했”던(「이미지 유목민」) 그녀로서는 “표정이 자주 흔들리는 문을 열고 들어간다//바늘에 걸린 물방울이 튀어 오르고//찌를 던지고 기다리는 것은 오히려 떨림//물의 심장이 되어 출렁이는 구름//수면의 셔터가 번쩍,//그늘이 없는 감정의 마디가 휘청인다”로 한층 시적 상상력을 응축, 고양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펜로즈 삼각형」).
세 번째 시집 [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인 “돌기둥 육각형 안”에서 부디 “불에서 태어나신 할아버지”를 만나고 그녀가 “불의 씨앗”을 ‘할아버지’로부터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할아버지 품에서 알이 되고/날개를 달고/검은 눈을 가진 새”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
―김금용(시인)
•― 시인의 말
소리에게 몸이 다가선다
눈에게 몸이 옮겨 간다
겹겹이 스며든다
서로 사귄다
소리와 눈이 마주 보며 떨린다
피어나는 순간과 휘발되는 순간 사이에
공간이 번져 간다
시가 사라질 때까지 시를 그린다
•― 저자 소개
정우림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다.
2014년 [열린 시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살구가 내게 왔다] [사과 한 알의 아이] [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을 썼다.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펜로즈 삼각형 – 11
꽃의 유목 – 13
알 수도 있는 사람 – 14
대공원 안에서 – 16
불타오르는 기타 – 18
흔들리는 집 – 20
이불과 수건 – 22
언 꽃 – 24
변이 지대 – 26
혀의 무덤 – 28
손가락선인장 – 30
흰 꽃병 – 32
발왕산 주목나무 살아 있지도 죽지도 못하고 – 33
제2부
탁본 – 37
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 – 38
이미지 유목민 – 40
들깨를 털다 – 42
묵호에 묵다 – 44
철원 – 46
양양의 해를 따라 – 48
그림자 속 그림자 – 50
풀린 끈을 묶다가 – 52
캐스팅 – 54
은이 – 56
리플리증후군 – 58
돌의 폭포 – 60
구름이 들려주는 시 – 62
제3부
소문의 자루―소름 1 – 65
울타리 안 개구리―소름 2 – 66
최후의 목격자―소름 3 – 68
저수지의 신발―소름 4 – 69
염 들이다―소름 5 – 70
흰 나비 두 마리―소름 6 – 72
한밤의 내비게이션―소름 7 – 74
조문―소름 8 – 76
새 둥지 안에 세 들다―소름 9 – 77
금빛 제비집―소름 10 – 78
요양하러 왔어요―소름 11 – 79
횡문근육종암―소름 12 – 80
거짓말의 진실―소름 13 – 81
축원의 다라니―소름 14 – 82
그 아이는 두 손만 모으고 있었다―소름 15 – 84
에르카, 너의 소녀야―소름 16 – 86
제4부
개가 집을 나가는 경우의 수 – 89
공원의 한 페이지를 읽는 동안 – 92
끝나지 않는 줄 – 94
달의 뚜껑을 열다 – 96
돼지의 귀 – 98
기억의 오늘, 코르사코프 – 100
82-1 – 102
흰 그림자를 따라가다 – 104
검은 고요 – 105
편의점 안 세 여자 – 108
달이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 110
이면지의 이면 – 112
육면체의 고라니 – 114
붓을 씻으며 – 116
해설 남승원 어긋난 지점들을 따라 걸으며 – 118
•― 시집 속의 시 세 편
펜로즈 삼각형
표정이 자주 흔들리는 문을 열고 들어간다
바늘에 걸린 물방울이 튀어 오르고
찌를 던지고 기다리는 것은 오히려 떨림
물의 심장이 되어 출렁이는 구름
수면의 셔터가 번쩍,
그늘이 없는 감정의 마디가 휘청인다
물의 각이 어긋날 때 물고기와
잠시,
만났다
헤어진다
수면이 찰랑
메아리 번져 간다 ■
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
할아버지가 살고 계시다는 먼 산을 찾아갔습니다
새의 그림자가 시간을 돌립니다
검은 돌에 새겨진 불꽃의 글자들
구름이 태어나는 벼랑 같아요
한 번도 뵌 적 없는 할아버지 만나면
주름 깊은 이마를 더듬어 볼 수 있을까요
걷다가 도착한 곳이 여기, 비탈엔 검버섯이 많고
나무들은 등이 굽었어요
할아버지 생각은 한 번도 써 본 적 없네요
불에서 태어나신 할아버지
그 먼 이름에 유황 냄새가 배어 있는 아버지의 아버지
돌 속에서 살다가 돌 속에서 돌아가신 돌의 조상님
벼랑의 돌주머니에 제비가 살고 있네요
할아버지 품에서 알이 되고
날개를 달고
검은 눈을 가진 새
주술에 걸린 밤과 낮의 수염 자락에 매달린 집
돌기둥 육각형 안에는
포도주처럼 발효된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할아버지의 불은 차갑게 식어 돌이 되고
지금도 돌덩이 등에 지고 산을 오르시나요
꿈이 쏟아져 내리는 밤마다
말랑말랑한 과일을 찾아 맛봅니다
돌도서관에 사시는 할아버지,
살구나무 피리를 불어 드릴 테니
진흙과 석양의 음악을 조금 들려주시면 안 될까요
불의 씨앗을 저에게 주시면 안 될까요 ■
소문의 자루
―소름 1
소금 자루라고 했다 조직이 팽팽하게 부풀어 보였다 언 땅에서 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났다 어둠이 더 어두워졌다 아픈 사람처럼 웅크린 자세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들풀이 자랐다 자루가 사라졌다
달이 이지러질 것이다 아이가 노인이 될 것이고 마을의 집은 지붕이 뾰족해질 것이고 서로 닮은 얼굴이 사라질 것이다 희망이라는 말이 사라질 것이다 삼각형 모자를 쓰고 날아다닐 것이다 소문이 마을을 잡아먹을 것이다
눈이 내린다 경계를 지운 폭설 눈사람의 눈동자를 달아 준다 반짝 빛난다 잊고 있던 자루가 불쑥 날아온다 홀쭉하다 바람이 운다 자루를 흔든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중얼거리는 자루 얼룩이 묻어 있다 만지려 하자, 쏜살같이 날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