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의 계절
박순심
창가에 기대 선 겸허한 사발 하나,
식탁 중앙에 놓이면
내어줄 것 하나 없는 투박한 제 몸을
다 비워내어
세상의 온갖 쓴맛을 받아낼 준비를 마친다
고된 날들을 건너온 아버지의 굽은 어깨가
뽀얀 액체 위로 일렁이고
잊고 살았던 논길의 풍경이
부드럽게 흩어져 다시 피어오른다
잔속에서 쌀알처럼
임자 없는 들녘처럼 꾸밈없는 미색은
오랜 세월 풍파를 누룩처럼 삭여 만든 정직한 빛깔과
입안 가득 번지는 담장 밑 산국화 향기다
대대로 이어진 삶의 굽이마다 마음을 달래주던 막걸리,
가진 것 다 내어주고도
끝내 바닥에 묵직한 침전물로 남는 성정
먼 길 돌아온 이의 허기를
묵묵히 받아내던 그 저녁의 온도
첫댓글 졸 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노력하시는 미모의 선생님
오늘 같은 날은 막걸리 한잔에 좋은 시 감상하기 딱 좋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