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동자, 관음보살께 법을 청하다
고려불화 대표하는 ‘'수월관음도’
中 주방 창안… 관음·竹 그려져
宋代 이후 공양자·서유기 다양화
선재동자, 韓수월관음도만 전해
일본 가가미진자(鏡神社) 소장된 고려불화 수월관음도. 아래에는 수월관음에게 법을 청하는 선재동자가 그려져 있다. 이 같이 수월관음과 선재동자가 배치된 도상은 한국에만 유일 도상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국 불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동양의 모나리자’로 일컬어지는, 물에 비친 달과 대나무를 배경으로 반가부좌한 아름다운 관음보살을 그린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그림을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라고 하는데, 한국 불화 중에서도 특히 고려 불화를 대표하며 종교미술의 정수라고 인정받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현존하는 고려 불화는 대략 160여 점으로서, 그 중에서 40여 점이 수월관음도일 정도로 고려 시기 불교 신앙에서 수월관음이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하였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고려수월관음도의 대략적인 화면구성은 재난과 질병을 막아주며 여러 위험에서 구원해 준다는 관음보살이 수정 염주를 손에 쥐고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의 연못가 바위 위에 한쪽 다리를 들어 반대쪽 다리의 무릎 위에 올린 반가좌의 자세로 풀방석(부들자리) 위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있다. 그리고 관음 옆의 바위 위에는 유리 접시 위에 놓인 정병에 버들가지가 꽂혀 있으며, 그 뒤로 구불구불한 기괴한 암석과 두 그루의 대나무가 표현되어 있다. 화면의 하단에는 선재동자(善財童子)가 관음보살을 향해 합장한 채 간절한 구도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작품에 따라서 화면 하단에 선재동자 이외에도 용왕 및 반인반수의 괴수가 산호, 침향 등의 공양물을 바치러 오는 장면이 추가되는 작품들도 있다.
수월관음도의 기원에 관해서 살펴보면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에 8세기 중후반 당대(唐代)의 궁정화가 주방(周昉)이 창안한 것으로, 그가 그렸던 수월관음은 둥근 원 안에 앉아 있으며 대나무와 함께 묘사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최초 수월관음도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현존하는 수월관음도 중 기년명이 명확한 가장 이른 사례는 오대(五代)시기 943년에 돈황(敦煌)지역에서 제작된 비단에 그려진 그림으로서, 물가의 암석 위에 반가부좌 형태로 앉은 관음이 오른손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왼손에는 약기를 들고 있다. 그리고 관음의 뒤로 커다란 달이 물 위에 떠 있으며, 세 그루의 대나무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더불어 화면의 왼쪽에 ‘수월관음보살(水月觀音菩薩)’이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서 기암괴석을 배경으로 반가좌한 관음과 대나무 세 그루가 표현되는 화면구성은 주방이 수월관음을 창안하였던 8세기 중후반부터 성립되어 10세기 경까지 큰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송원대(宋元代)의 수월관음은 비교적 수량이 많은데, 쌍룡(雙龍) 만불사(萬佛寺)와 사천(四川) 대족(大足)석굴, 안서(安西) 유림굴(垈林窟)에서 공양자와 선재동자가 묘사되어 있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이처럼 11세기 경부터 수월관음도에 우리에게 익숙한 공양자나 선재동자가 등장하기 시작하지만, 금대(金代)에 조성된 섬서(西) 석홍사(石泓寺)의 수월관음상 하단에는 〈서유기〉에 등장하는 삼장법사·손오공·저팔계·사오정이 표현되기도 하였다. 이후 중국의 수월관음은 청대(淸代)까지 여러 이야기와 많은 등장인물들이 더해지는 등 다양한 변화를 겪으며 제작되었다.
한편 우리나라에 언제 어떠한 모습의 수월관음이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현존하는 40여 개의 사례를 통해서 볼 때 모두 채색 불화이며, 공양자는 묘사되지 않기도 하지만 한 두 작품을 제외하고 반드시 관음에게 지식을 청하는 선재동자가 표현된다는 특징이 있다. 즉, 중국처럼 다양한 도상의 수월관음이 아닌 상단의 수월관음과 하단의 선재동자가 화면을 구성하는 단일한 도상이 제작되어 유통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관음·기암괴석·대나무 조합의 기본 구성에서 시작하여 선재동자까지 어떠한 이유로 만나서 불
교미술 최고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고려 수월관음도를 탄생시켰을까?
먼저 관음보살 구제와 구복 신앙의 뿌리는 〈법화경(法華經)〉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의 다음과 같은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만일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이 여러 가지 고뇌를 받을 때에 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곧 그 음성을 듣고 모두 해탈케 하느니라(중략) 내 이제 그것들을 간략히 말하리니 이름을 듣거나 몸을 보거나 마음으로 생각함이 헛되지 않으면 능히 모든 고통을 멸하리라.”
그리고 그림의 배경이 되는 달빛이 비치는 물가와 풀방석, 가부좌한 관음, 선재동자의 근거는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화엄경〉의 마지막 품을 이루고 있는 입법계품은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善知識)을 두루 만나면서 도를 추구하는 이야기로서, 〈화엄경〉의 가르침을 재미있고 쉽게 서술하였기에 일반인들에게도 매우 널리 알려져 있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중국의 송대부터 ‘화엄삼매회 지식도’라는 제목으로 비로자나와 53명의 선지식을 53개의 칸으로 세분화하여 그렸으며, 일본에까지 전해져 도다이지(東大寺) 등에 현존하고 있다.
선재동자가 28번째로 찾아간 선지식 관음보살과의 정황은 〈화엄경〉 입법계품에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서쪽 골짜기에 시냇물이 굽이져서 흐르고 수목은 우거져 있으며 부드러운 향풀이 오른쪽으로 쓸려서 땅에 깔렸는데, 관자재보살이 금강석 위에서 가부하고 앉았고 한량없는 보살들도 보석 위에 앉아서 공경하여 둘러 모셨으며 관자재보살이 대자대비한 법을 말하여 그들로 하여금 모든 중생을 거두어 주게 하고 계시었다. 이때 선재동자는 관자재보살의 발에 엎드려 절하고 수없이 돌고 합장하고 서서 여쭈었다. 거룩하신 이여 저는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사오나,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의 도를 닦는지를 알지 못하나이다. 듣자온데 거룩한 이께서 잘 가르치신다 하오니 바라옵건대 말씀하여 주소서.”
또한 ‘수월관음’이라는 명칭은 관음보살이 물에 비친 달을 본다는 뜻으로, 역시 입법계품에 ‘수월중(水月中)’이라는 내용을 근거로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고려 수월관음도의 신앙과 도상을 정리해 보면,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의 관음의 대비심과 〈화엄경〉 입법계품의 물에 비친 달, 배경이 되는 물가, 풀방석, 가부좌한 관음, 선재동자가 조화롭게 결합되었다고 하겠다. 즉 고려 수월관음도는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법화경〉과 〈화엄경〉을 경전적 배경으로 삼아, 고려 최고의 불화승들의 역량이 더하여 탄생된 불교 최고의 정수라 할 수 있다.
고려 수월관음도 중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꼽는 일본 가가미진자(鏡神社)소장의 ‘수월관음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 그림은 세로 430cm, 가로 254cm 크기로 이음새가 없는 한 폭의 비단에 제작된 대형불화로서, 한중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사례에 해당이 된다. 이 수월관음도는 1310년 고려 충선왕(忠宣王) 시기에 숙비(叔妃) 김씨의 발원으로 8명의 화원이 조성한 것으로서, 1391년 사가현 카라츠시 가가미진자에 전해졌다.
화면의 구도는 일반적인 고려수월관음과 동일하며, 특히 대형의 작품이어서 세부묘사를 자세히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듯이 관음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치고 있는 투명한 비단과 섬세한 귀갑문·연화문·보상화문 등의 무늬가 실제의 비단천을 보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킬 정도로 생생하다.
우리가 중국과 일본의 수많은 수월관음도에 감동하지 못하는 이유는 절대적으로 고려 화원들의 뛰어난 기량과 예술적인 심미안 때문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