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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에서는 꺼리어 기피하는 일이 많다.
중국 사람들은 바다에서 배를 탈 때 '주(駐)' 자를 꺼리는데,
이는 '착(著)'자와 음이 같기 때문이다.
'착(著)' 자를 말해야 할 때면 '쾌(快)'자로 부르는데,
이는 '쾌'자에서 빠르고 신속하다는 의미를 취한 것이다.
중국어에서 물건이 무거운 것을 '침(沈)'이라고 말하는데,
유독 배 안에서는 '침'이라 하지않고 '중(重)'이라고 하는 것 역시 이를 꺼려서 하는 말이다.
근래 우리나라 유생 가운데 과거에 응시하는 이들은 항상 '락(落)'자 쓰는 것을 싫어한다.
여러 벗들이 서로 약속해 말하길,
말할 때 만약 '락(落)'자를 사용하는 자가 있으면 응당 모두 주먹으로 때려 주기로 하자.
라고 하였다.
어떤 유생이 과거 시험장에서 구운
낙지(絡蹄)를 반찬으로 했는데,
한 유생이 젖가락을 쥐고 와서 말했다.
입지(立蹄) 구운 것 좀 먹어도 되겠소?
입(立)'이란 수립(樹立)한다는 뜻이었으니,
이 말을 들은 시험장 사람들이 모두 크게 웃었다.
과거에 합격하기 전에는 낙지를 먹지 않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으니,
낙제(落蹄)와 음이 같기 때문에 이를 꺼리는 것이었다.
유희서(柳煕緖)가 장차 사마시(司馬試)에 응시 하려고 할 때,
꿈에 준마를 타고 달리다가 중도에서 떨어졌다.
꿈에서 깨어나자 그는 멍하니 정신이 없었다.
그는 준마를 좋아하여 늘 무인(武人)에게 이를 빌려 타고 장안의 기생집을 두루 돌아다니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말이 넘어지는 바람에 말에서 떨어지자 자신의 몸을 다친 사실도 잊어버리고 꿈이 징험된 것을 기뻐했다.
이튿날 과거에 응시하여 과연 사마시에 합격했다.
신숙(申熟)은 매양 시험에 응시할 때마다 고양이가 그의 앞을 가로 질러가면 반드시 합격했다.
급제하여 전시에 응시한 날이 내일로 닥쳤는데 종일토록 돌아다녔지만 고양이를 볼 수 없었다.
억지로 친구 집을 찾아다니다 깊은 밤이 되었는데,
길가 점사 문 밖에 병든 고양이가 쪼그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부채를 휘둘러 놀라게 하자,
고양이가 길을 가로질러 도망쳤다.
그는 크게 기뻐하며 집에 돌아와 잤으며,
이튿날 응시해 과연 합격하였다.
아!
꺼리어 기피하는 것은 흔히 여자들이 하는 일이다.
선비가 도리를 알면서 어찌 요망한 설에 현혹되겠는가?
선비들의 습속이 과거를 중시해 마치 물을 건너는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을 근심하는 듯하니,
가소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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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立)'이란 수립(樹立)한다--
수립한다는 것은 세운다는 뜻으로 과거시험에 합격해서 '입신(立身)'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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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申熟)--
<조선왕조신록> 선조 38년 2월 29일자에 신숙(申熟)을 승문원 판교로 임명한 기록이 있는데,
이야기에서 일컫는 장본인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