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1권 3-733 술회述懷 73 자탄自歎 스스로 탄식하다
1
괴래소수파상신怪來搔首頗傷神 괴상한 것 보면 머리 긁으며 퍽이나 정신 상하는 것은
안저평생흠가인眼底平生欠可人 안저眼底에 한평생 좋은 사람 못 보겠어서네.
민병매어간사득悶病每於看史得 답답한 병 매양 역사 읽다가 얻었고
수장빈향과소신愁腸頻向課騷新 마음 상하는 일 이소離騷 읽다가 자주 새로워라.
춘광이역편선도春光異域偏先到 봄빛은 딴 세상에만 편벽되게 먼저 오는데
로기잔년차제순老氣殘年次第巡 늙은 기운은 쇠한 나에게 차례로 돌아온다.
하이견요소영일何以遣寥消永日 무엇으로 심심파적 긴긴 날을 보낼 거나
단로련약변군신丹爐煉藥辨君臣 단로丹爐에 약 만들며 군신君臣을 가려 보세.
2
홍창난일열인심烘窓暖日悅人心 햇볕 내리쬐는 창 따뜻한 날이 사람의 마음 기쁘게 하는데
수전도서열고금手展圖書閱古今 손수 도서圖書 펼쳐 놓고 고금古今을 훑어보네.
수식원공언와설誰識袁公偃臥雪 누가 원공袁公의 눈 올 때에 누웠는 것 알았으며
난봉종자자탄금難逢鍾子自彈琴 종자기鍾子期 만나기 어려워 홀로 금琴을 타보누나.
당우이원귀하처唐虞已遠歸何處 당우唐虞시절 이미 멀었으니 어디로 돌아가며
인의위우향저심仁義爲迂向底尋 인의仁義가 오활하다 하지만 어디로 향해 찾을까?
독포유경장탄구獨抱遺經長歎久 나 홀로 남은 경서經書 안고 긴 탄식 오래 하는데
한아섬섬집전림寒鴉閃閃集前林 찬 갈가마귀 훌쩍 훌쩍 앞 수풀로 모여든다.
►원공袁公 동한東漢의 정치가 원안袁安.
눈이 여러 날 와서 서울[洛陽]에 푹 쌓였는데 낙양령洛陽令이 시내를 순찰하다가 한 집문 앞에는
사람 드나든 발자국이 없으므로 빈집인가 하고 들어가 보니 선비 하나가 누워 있으므로
"어찌하여 나오지 않았는가?" 하고 물으니
“먹을 것도 없고 갈 데도 없어 아니 나갔노라." 하여
얼마 동안 말해 보니 학덕이 대단한 선비이므로 나라에 추천하여 그 후에 정승까지 되었다.
►종자기鍾子期 춘추시대 초楚의 음악가.
백아伯牙가 거문고를 타면서 우연히 높은 산을 생각하였는데 종자기가
“거문고 곡조가 마치 높은 산에 올라가는 듯하다.”고 말하고
또 우연히 흐르는 물을 생각하자 "마치 시냇물의 좔좔 흐르는 것 같다.” 하여
거문고의 음을 듣고 그 마음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종자기가 죽은 뒤에는 백아가 다시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 한다.
►섬섬閃閃
3
종일지이불자료終日支頤不自聊 종일 턱을 고이고 앉아 스스로 어찌할 길 없어서
정사마힐설중초靜思摩詰雪中蕉 고요히 마힐摩喆의 눈 속 파초를 생각하였네.
득심응수하론실得心應手何論實 마음에 얻고 손에 응하면 무슨 실상을 논하랴?
저사정기반불요佇思停機反不饒 우두커니 생각하고 心機를 멈추면 도리어 넉넉하지 않다.
사업필종무망득事業必從無妄得 사업은 반드시 무망無妄에서 얻어지는 것이니
영화기가유심초榮華豈可有心招 영화가 어찌 마음에 있어 부를 수 있겠는가?
일생모리홍진객一生謀利紅塵客 일평생 모리謀利하는 홍진 세상의 사람들
감소구구도로초堪笑區區到老焦 구구하게 늙어지도록 초조한 것 가소롭구나.
►지이支頤 손으로 턱을 바침. ‘턱 이頤’
►마힐摩喆 당唐나라의 大詩人이며 畵家인 왕유王維의 자字.
그는 설중파초雪中芭蕉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무망無妄 일이 갑자기 생기어서 생각지 아니하였을 판.
►모리謀利 자신의 이끗만을 노려 不正한 利益을 꾀함. 잇속 노리기. 잇속 꾼. 잇속장이.
►구구區區 제각기 다름. 떳떳하지 못하고 苟且스러움. 잘고 용렬庸劣함.
4
춘광융야일초지春光融冶日初遲 봄빛이 밝고 고와 해가 처음으로 더디게 지는데
정청송초설락시靜聽松梢雪落時 소나무 끝에서 눈 떨어지는 것 고요히 듣는다.
로경약무시사용老境若無詩思湧 늘그막에 와서 시 생각이 만일 솟지 않는다면
한중나유가심희閑中那有可心嬉 한가한 중에 어찌 마음으로 기뻐하는 일 있으랴?
보심매오니첨극步尋梅塢泥沾屐 걸어서 매화 핀 언덕 찾았더니 진흙이 나막신에 묻고
음와송당로입유吟臥松堂露入帷 읊으면서 솔당[松堂]에 누웠더니 이슬이 휘장으로 스며든다.
공도리명위호사共道利名爲好事 모두들 名利가 좋은 일이라 말하니
정능제우작고기定能際遇作皐夔 일정코 잘 만나면 고기皐夔될 것일세.
►‘휘장 유帷’
►고기皐夔 훌륭한 신하를 지칭하는 말.
고皐는 고요皐陶인데 우순虞舜 당시의 형관刑官이며
기夔는 우순 당시의 악관樂官이다.
●자탄自歎 스스로 탄식하다/백대붕
취삽수유독자오醉揷茱萸獨自娛 술 취하면 수유 꽂아 혼자 흥청거리고
만산명월침공호滿山明月枕空壺 밝은 달이 온 산 가득하면 빈 술 단지를 베개 삼아 눕네.
방인막문하위자傍人莫問何爲者 여보소, 뭣 하는 놈이냐고 묻지를 마오,
백수풍진전함노白首風塵典艦奴 늙바탕까지 온갖 풍상을 겪은 전함사의 종놈이라오.
►전함典艦 전함사典艦司.
조선 때의 관청으로 선박과 군함의 수리, 감독, 관리 등을 맡아보았음.
►백대붕白大鵬(?~1592) 조선 선조 때의 시인. 자는 만리萬里.
전함사典艦司의 노복奴僕 출신으로 통신사通信使 허성許筬을 따라
일본으로 가서 호방하고 의협한 기상의 詩로써 이름을 날렸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을 따라 상주尙州 싸움에 참가했다가 전사했다.
자기의 신세를 한탄한 시.
첫 구에서 수유를 꽂는 것은 중양절의 풍습이므로 음력 9월 9일이 시간적 배경이 된다.
둘째 구도 ‘온 산에 달이 밝을 때’는 대개 가을철의 음력 보름을 그렸다 할 것이다.
반상班常이 엄격하던 시대라 서민들은 아무리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나도
벼슬길에 오르기 힘들었고 쓰임을 받지 못했으니
얼마나 불공평한 사회였던가를 역사에서 익히 배운 바다.
지은이도 천한 신분으로 하여 시를 잘 지었지만 대우를 받을 수 없어 이 시처럼 한탄을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아까운 인재들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스러져 갔으니
지난날 우리 封建制度의 폐해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