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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제1봉, 마음을 내려놓는 산
운곡 조이무
삼복의 아침 햇살이 고성의 산등성이를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햇볕은 산과 나무에는 자비로운 빛이었지만, 민둥머리인 내 정수리에는 조금도 자비롭지 않았다. 모자를 눌러 써도 볕은 빈틈을 기가 막히게 찾아냈다. 산에 오르기도 전에 부처님의 가르침보다 먼저 여름의 따끔한 죽비를 맞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화암사로 들어서는 초입의 공기는 달랐다. 산 아래의 더위가 한창 성질을 부리고 있는데도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은 계절을 잠시 잊은 듯 풋풋하고 선선했다. 한 걸음 앞에서는 여름이 고함을 지르고, 한 걸음 뒤에서는 가을이 소매를 붙드는 듯했다.
십수 년 동안 내게 화암사를 이야기한 벗이 있다. 천문지리와 역사, 고서에 밝은 이현범 교수다. 그와 나는 동갑내기이고, 한 달에도 몇 번씩 얼굴을 맞대는 허물없는 사이다. 그는 화암사 이야기를 시작하면 좀처럼 멈출 줄 몰랐다. 절의 내력에서 수바위 전설로, 수바위에서 금강산 제1봉으로, 다시 진표율사와 고승들의 발자취로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졌다.
나는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언젠가는 한번 가보세.”
사람이 말하는 ‘언젠가’라는 날짜는 달력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약속을 미루기에 이보다 편리한 말도 없다. 나 역시 십수 년 동안 그 언젠가를 잘 이용해 왔다. 산행을 하기에는 몸이 예전 같지 않았고, 경사진 길을 보면 다리보다 마음이 먼저 아팠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더 늦기 전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보다 마음이 먼저 길을 나선 것이다.
약 한 달 전, 이현범 교수를 비롯하여 몇몇 지인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그러나 그때의 목적은 화암사보다 금강산 제1봉 산행에 가까웠다. 여러 사람이 함께 움직이다 보니 한 사람의 궁금증을 오래 붙잡을 수 없었다. 절 앞을 지나면서도 절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돌탑의 글을 읽으면서도 뒤따르는 사람의 발소리에 떠밀려 내려왔다.
그 미진함이 오래 남았다.
좋은 장소는 한 번 다녀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돌아온 뒤에도 마음속에 길 하나를 남긴다. 나는 그 길을 다시 따라왔다. 이번에는 누구의 걸음에도 맞추지 않고, 돌 하나와 문장 하나를 오래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무엇보다 나를 다시 이끈 것은 화암사의 첫 글자였다.
禾巖寺. 벼 화(禾), 바위 암(巖), 절 사(寺).
절 이름에 ‘벼’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농사를 가까이해 온 내게는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는 수많은 절이 있지만, 벼를 앞세운 절은 왠지 농부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사람들은 이 말을 겸손의 비유로 자주 쓴다. 벼가 고개를 숙이는 것은 철학을 배워서가 아니라 그 안에 알곡이 차기 때문이다. 비어 있는 이삭은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지만, 가득 찬 이삭은 제 무게를 견디며 땅을 향한다.
겸손은 억지로 허리를 굽히는 예절이 아니라, 안에 든 것이 많아 자연스럽게 낮아지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절도 농사와 닮았다. 농부가 흙을 갈아 씨앗을 심듯 수행자는 마음을 갈아 한 생각을 심는다. 농부는 싹이 나지 않는다고 땅을 나무라지 않고, 수행자는 깨달음이 더디다고 세월을 탓하지 않는다. 때를 기다리고, 잡초를 뽑고, 물길을 살피는 일. 농사와 수행은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기다림이다.
공용주차장에서 길을 따라 오르자 ‘金剛山 禾巖寺’라는 현판이 시야에 들어왔다. 한 달 만에 다시 온 손님을 현판이 알아볼 리 없지만, 나는 혼자 반가웠다. 사람은 자신이 그리워한 장소가 자기도 기다렸을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화암사는 설악산과 금강산의 경계에 기대어 있다. 이곳의 봉우리를 금강산 제1봉이라 부르는 까닭도 금강산 남쪽 끝자락의 시작이라는 의미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금강산이라 하면 휴전선 너머의 산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산맥은 사람이 그어 놓은 선을 모른다. 구름도 검문소를 지나지 않고, 바람도 신분증을 내밀지 않는다.
사람은 산을 남과 북으로 나누었지만, 산은 한 번도 자신을 둘로 나눈 적이 없다.
나는 그 생각 앞에서 잠시 부끄러워졌다. 사람은 하나인 것을 나누고, 나눈 뒤에는 서로 자기 것이 더 옳다고 다툰다. 산은 묵묵히 이어져 있는데 인간의 생각만 군사분계선처럼 날카롭다.
일주문 앞에 섰다.
일주문은 사찰의 첫 문이다. 기둥이 일렬로 놓여 있어 옆에서 보면 하나의 기둥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을 바라보고 있으면 단순한 건축 형식 이상의 뜻이 느껴진다.
부처와 중생, 진실과 세속, 너와 나, 안과 밖이 결국 하나라는 가르침.
사람은 문 안으로 들어가며 밖을 버리고 싶어 하지만, 사실 세속은 문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욕심도, 미움도, 걱정도 모두 등에 지고 들어간다. 몸은 절에 들어왔는데 마음은 아직 주차장에 있거나, 집에 있거나, 해결하지 못한 일 앞에 서 있기도 한다.
어머니가 떠올랐다.
어머니는 한평생 절을 향해 합장하셨다. 부처님의 이름을 자주 불렀지만, 자식들에게 불교를 강요한 적은 없었다. 대신 당신의 삶으로 보여 주셨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이웃에게 한 움큼을 덜어 주셨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오래 원망하지 않으셨다.
어머니의 불경은 책장이 아니라 손바닥에 쓰여 있었다.
어머니는 절에서 돌아올 때마다 무엇인가를 얻어 온 것이 아니라, 마음속 무거운 것 몇 가지를 놓고 오셨는지도 모른다. 나는 일주문 앞에서 어머니처럼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등에 지고 온 걱정 보따리를 문밖에 내려놓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시름도 주인을 알아보는지 내 뒤를 슬그머니 따라 들어왔다.
사람의 번뇌는 충성심이 강하다. 아무리 떼어 놓아도 좀처럼 배신하지 않는다.
일주문을 지나자 계곡 물소리가 가까워졌다. 매미 소리와 풀벌레 소리, 산새 소리가 서로 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누가 지휘하는 것도 아닌데 묘하게 어울렸다. 도시에서라면 소음이라 불렀을 소리가 산에서는 음악이 된다. 아마 사람의 귀도 장소에 따라 마음이 달라지는 모양이다.
길 양옆으로 돌탑과 시비가 이어졌다. 크고 작은 돌들이 서로 기대어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손으로 쌓였지만, 이제는 사람의 손을 떠나 산사의 일부가 된 돌탑들이었다.
돌탑은 위로 올라갈수록 작아진다. 아래의 큰 돌이 묵묵히 무게를 받치고, 위의 작은 돌이 마침표처럼 올라앉는다. 세상은 높은 자리를 으뜸이라 여기지만, 돌탑은 가장 낮은 돌이 가장 많은 무게를 감당한다.
가정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다.
보이지 않는 낮은 자리에서 누군가가 무게를 견디고 있기 때문에 위의 돌이 쓰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꼭대기의 작은 돌만 바라본다. 가장 높다는 이유 때문이다.
수십 기의 돌탑과 시비에는 고승과 시인들이 남긴 문장들이 새겨져 있었다. 어떤 글자는 비바람에 닳아 흐릿했고, 어떤 글자는 막 새긴 듯 또렷했다. 돌은 단단하지만 그 위의 글씨도 세월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중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청풍은 문밖에 있고, 명월은 가슴에 품고 있네.”
바람과 달은 시인들이 가장 많이 빌려 쓰는 자연의 재산이다. 나 역시 글을 쓰면서 바람을 불러오고 달빛을 끌어다 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바람과 달이 사용료를 받았다면 가난한 시인은 시 한 편 쓰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고승들이 말하는 바람과 달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었다. 바람은 변하는 세속이고, 달은 흔들리지 않는 본래의 마음이라고 한다.
바람은 문밖에 두고, 달은 가슴에 품는다.
말은 쉽지만 사람은 대개 반대로 산다. 바람은 가슴에 들여놓고 흔들리면서, 정작 달은 문밖에 세워 둔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하루가 흐려지고, 작은 손해에도 마음이 출렁인다.
내 안에도 바람이 많았다.
칭찬에는 봄바람이 불었고, 비판에는 태풍이 일었다. 이제 나이 칠십에 이르렀지만 마음속 기상청은 여전히 예보가 어렵다.
계단을 오르며 또 하나의 시구를 만났다.
“산은 말이 없고, 물은 흘러간다.”
짧고 간결했다.
산이 말이 없는 것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다. 너무 오래 보아 왔기 때문일 것이다. 왕조가 바뀌고, 전쟁이 지나고, 수많은 사람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모습을 산은 모두 지켜보았다. 그 긴 세월 앞에서 인간의 다툼은 잠시 일었다 사라지는 먼지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은 흘러간다.
붙잡지 않고, 되돌아보지 않고, 낮은 곳을 찾아 흘러간다. 돌을 만나면 돌아가고, 절벽을 만나면 떨어지고, 웅덩이를 만나면 잠시 머문다. 그러나 마침내 다시 흐른다.
사람은 막히면 화를 내지만, 물은 막히면 길을 바꾼다.
어쩌면 유연함이야말로 가장 강한 힘일지도 모른다.
화암사의 모습이 나뭇잎 사이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산사는 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찾아오는 사람의 마음은 매번 다르다. 지난달의 나는 봉우리를 보러 왔고, 오늘의 나는 문장 하나를 만나러 왔다.
절 안에 들어서기도 전에 이미 법문을 들은 셈이었다.
화암사는 오랜 세월 여러 차례 불타고 다시 세워졌다. 전쟁과 화재를 견디며 무너졌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통일신라 때 창건된 뒤 이름이 바뀌고, 건물이 소실되고, 다시 중건되었다. 6·25전쟁 때도 큰 피해를 입었고, 이후 여러 차례 복원되어 오늘의 모습을 갖추었다.
연혁을 읽다 보니 한 사찰의 역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생애처럼 느껴졌다.
사람도 살아가며 몇 번씩 무너진다. 건강이 무너지고, 믿음이 무너지고, 꿈과 관계가 불타기도 한다.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마음속 법당 하나쯤 잿더미가 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중요한 것은 한 번도 무너지지 않는 일이 아니다.
무너진 뒤 무엇을 다시 세우는가이다.
화암사는 불탄 자리에 다시 기둥을 세웠고, 사라진 단청 위에 새로운 빛을 입혔다. 그것은 과거를 지워 버리는 복원이 아니라, 상처까지 품고 계속 존재하겠다는 의지였다.
나 역시 살아오며 여러 번 무너졌다. 그때마다 예전과 똑같이 다시 세울 수는 없었다. 어떤 것은 더 작게 세웠고, 어떤 것은 끝내 포기했다. 대신 그 빈자리에 글을 놓고, 흙을 놓고, 사람에 대한 생각을 놓았다.
젊었을 때는 무너지지 않는 것이 강함인 줄 알았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한 칸을 세우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절 입구의 수바위는 웅장하게 서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가난하던 시절, 한 노인이 나타나 바위의 구멍을 세 번 두드리면 쌀이 나온다고 알려 주었다. 그 말대로 하자 흰쌀이 흘러나와 스님들이 굶주림을 면했다고 한다.
그러나 욕심을 낸 객승이 더 많은 쌀을 얻기 위해 네 번째로 바위를 두드리자 쌀 대신 붉은 피가 흘러나왔고, 그 뒤로 쌀도 더는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탐욕의 교훈이라고 한다.
나는 네 번째 손짓을 생각했다.
세 번이면 충분했다. 오늘 먹을 양식도 있었고, 수행을 이어 갈 만큼의 쌀도 나왔다. 그러나 인간은 충분함을 확인한 순간 오히려 불안해진다.
내일은?
다음 달은?
다른 사람보다 적으면 어쩌지?
그래서 한 번 더 두드린다.
욕심은 많이 가지려는 마음만이 아니다. 멈출 때를 모르는 마음이다.
수바위의 전설은 오래전 객승의 이야기이지만, 오늘의 우리도 수많은 바위를 두드린다. 재산이라는 바위, 명예라는 바위, 권력이라는 바위, 건강과 장수라는 바위를 두드린다. 세 번이면 족한데 네 번, 다섯 번, 열 번을 두드린다.
그러다 쌀이 피로 변하는 순간을 만난다.
돈을 벌었지만 건강을 잃고, 이름을 얻었지만 친구를 잃고,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내려올 길을 잃는다.
수바위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침묵으로 묻고 있었다.
‘그대는 지금 몇 번째 두드리고 있는가.’
나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대웅전 뒤편으로 들려오는 물소리를 따라 삼성각에 올랐다. 숨이 조금 찼다. 젊었을 때는 산길을 오르며 정상만 보았는데, 이제는 중간중간 쉴 곳부터 찾는다. 나이가 들면 욕심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다리가 먼저 현실을 가르쳐 준다.
삼성각에서 가족과 친구, 지인들의 평안과 자연의 보전을 기원했다. 오래 앉아 참선을 할 경지는 아니었지만, 잠시 눈을 감고 물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생각을 비우려고 했다.
그러나 생각은 비우려 할수록 더 많이 떠올랐다. 밭의 작물도, 써 놓은 글도, 만나야 할 사람도, 잊었다고 생각한 옛일도 줄을 지어 나타났다.
마음을 비우겠다는 욕심 또한 하나의 욕심인지 모른다.
그래서 비우려 하지 않고 그냥 흘려보냈다.
생각이 오면 오게 두고, 가면 가게 두었다. 계곡물처럼 흘러가도록 두자 조금씩 고요해졌다. 고요는 아무 생각도 없는 상태가 아니었다. 생각이 떠들어도 그것을 따라 뛰어가지 않는 상태였다.
삼성각 아래로 고성의 풍경이 펼쳐졌다. 수년 전 산불의 흔적을 품은 산과 마을이 멀리 보였다. 불에 그을린 노송과 새로 돋은 숲이 한 병풍 안에 섞여 있었다.
자연은 상처를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불탄 자리에 새잎을 내고, 부러진 나무 곁에 어린나무를 키운다. 인간은 흉터를 부끄러워하지만, 산은 흉터를 역사로 받아들인다.
농부의 현상도 다르지 않다. 밭은 해마다 같은 얼굴이 아니다. 장마가 지나가면 흙이 쓸려 내려가고, 가뭄이 오면 갈라지며, 병충해가 들면 잎이 무너진다. 그래도 다음 해에 다시 씨를 뿌린다.
농사는 성공의 기술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습관이다.
화암사 역시 천 년 동안 몇 번의 풍화와 외세의 침략으로 무너지면, 다시 시작해 온 절이었다.
대웅전 앞에 내려오니 정오의 햇볕이 법당과 불상 위에 머물렀다. 처마 밑에는 짙은 그늘이 깔렸고, 그늘 끝에는 빛의 작은 입자들이 떠다녔다. 빛은 높은 곳에서 내려오지만 낮은 곳을 먼저 밝힌다.
그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도 빛을 닮으면 좋을 것이다. 높아질수록 아래를 더 밝히고, 많이 가질수록 어두운 곳을 먼저 살피는 사람. 그러나 세상에는 빛을 받으려는 사람은 많아도 빛을 나누려는 사람은 드물다.
부처의 얼굴은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웃는 듯도 하고, 슬픈 듯도 했다.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얼굴이었다. 편안할 때 보면 자비로웠고, 괴로울 때 보면 모든 것을 알고도 침묵하는 어머니의 얼굴 같았다.
나는 어머니를 다시 떠올렸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분의 합장하던 손은 내 기억 속에서 오래 움직였다. 말보다 깊은 가르침은 대개 뒤늦게 도착한다. 젊을 때는 잔소리라 여기던 말이 나이가 들면 경전이 되고, 평범한 밥 한 그릇이 공양이 된다.
절을 찾는 것은 부처를 만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잊고 지낸 사람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오후가 되어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올라올 때는 돌탑이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는데, 내려갈 때는 내가 돌탑을 바라보고 있었다. 달라진 것은 돌탑이 아니라 나의 눈이었다.
서산대사의 글이 새겨진 돌탑도 아침과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서 있었다. 바람이 지나가고 햇빛의 각도가 달라졌을 뿐, 돌은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돌탑 앞에 멈췄다.
작은 돌 하나를 주워 손바닥 위에 올렸다. 소원을 빌어 볼까 생각했다. 가족의 건강, 글의 완성, 남은 삶의 평안. 빌고 싶은 것은 많았다.
사람은 마음을 비우러 절에 와서도 소원을 한 보따리 더 짊어지고 간다.
잠시 돌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돌탑 위에 얹지 않은 것은 소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돌 하나를 올리는 대신 마음 하나를 내려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걸음 걷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결국 그 작은 돌을 탑 위에 조심스럽게 올렸다.
내려놓는 것도 집착이 되면 또 다른 욕심이다. 비움만이 옳다고 고집하는 순간, 비움도 무거운 짐이 된다. 돌을 올리는 일이 반드시 욕심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의 안녕을 바라고,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버릴 필요는 없었다.
나는 다시 돌 하나를 얹으며 생각했다.
비움은 아무것도 갖지 않는 일이 아니라, 내 것이라고 움켜쥐지 않는 일이다.
사랑하되 붙들지 않고, 바라되 강요하지 않으며, 곁에 있되 소유하지 않는 것.
그것이 어쩌면 산사가 말하는 비움일 것이다.
바람이 다가와 어깨를 스쳤다. 달빛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돌 위에는 이미 저녁의 기운이 내려앉고 있었다.
돌탑은 세월의 무게와 비와 눈, 바람과 안개를 받아들이며 그 자리를 지켜 왔다. 한 번도 세상을 바꾸겠다고 외친 적이 없지만, 그 앞에 선 사람의 마음을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진정한 가르침은 목소리가 크지 않다.
흙도 말없이 씨앗을 품고, 물도 자랑하지 않으며 낮은 곳을 향한다. 어머니 역시 자신의 희생을 설명하지 않았다. 돌탑과 흙과 어머니는 모두 낮은 자리에서 생명을 떠받친다.
그 이름은 침묵이다.
하지만 침묵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오래 남는 말을 하는 방식이다.
일주문이 가까워졌다.
아침에 들어설 때는 세상을 등에 지고 왔다. 걱정과 욕심, 자랑하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한데 얽혀 있었다. 문밖에 내려놓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들은 나를 따라 산사 깊숙이 들어왔다.
그러나 나갈 때는 조금 달랐다.
걱정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람의 마음이 절 한 번 다녀왔다고 새것이 될 리 없다. 다만 걱정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달라졌다. 무거운 돌도 자리를 잘 찾으면 탑이 되듯, 삶의 고통도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무게가 달라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금강산 제1봉은 가장 높은 봉우리가 아니었다.
내게는 가장 먼저 내려놓아야 할 봉우리였다.
사람은 평생동안 각자의 산을 오른다. 누군가는 재산의 산을 훌쩍 오르고, 누군가는 명예의 산을 쌓아 올린다. 또 누군가는 자식의 성공과, 건강과 장수의 산을 오른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더 높이 오르고 싶고, 이미 오른 사람은 내려올 일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산은 오르는 사람에게만 길을 내주는 것이 아니다.
내려오는 사람에게도 같은 길을 내준다.
인생은 오르는 일보다 잘 내려오는 일이 더 어렵다. 젊음에서 늙음으로, 직장에서 은퇴로, 소유에서 나눔으로, 말에서 침묵으로 내려오는 길.
그 길을 비탈지고 약간 굴곡지게 걷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일주문을 나서기 전 뒤를 돌아보았다.
산사는 붙잡지 않았고, 돌탑도 배웅하지 않았다. 바람은 여전히 제 갈 길을 갔고, 계곡물은 오래전부터 흐르던 속도로 흘렀다.
그 무심함이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비롭게 느껴졌다.
붙잡지 않기 때문에 다시 올 수 있고, 묻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
나는 아침보다 조금 느린 걸음으로 산을 내려왔다. 민둥머리 위로 다시 햇살이 내려앉았다. 아침에는 따갑기만 하던 햇볕이 이제는 묘하게 따뜻했다.
달라진 것은 햇살이 아니었다.
나였다.
화암사의 바람은 끝내 아무런 이별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오래된 법문 하나를 들었다.
삶은 무엇을 얼마나 높이 쌓았는가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누구와 함께 떠받치고 있는가로 깊어진다는 것.
비움은 자기를 잃는 일이 아니라 더 넓게 품는 일이다. 또한 고요는 침묵이 아니라 생명의 가장 깊은 울림이라는 것.
그리고 사람다운 사람은 세상을 모두 가진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품고도 그것을 자기 것이라 주장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
나는 그날 산사를 오른 것이 아니었다.
내 안의 높은 마음에서 조금 내려왔을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