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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장 끊어짐을 잇게 하고 (6)
노희공이 군위에 오름으로써 노(魯)나라는 깊은 수렁에서 헤어나와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보와 애강의 일이 완전히 마무리된 것은 아니었다.
온갖 우여곡절 끝에 공자 신(申)을 군위에 올리는 데 성공한 계우(季友)는 다시 노나라 재상에 올랐다.
"경보(慶父)를 제거하지 않는 한 불씨는 남아 있다!"
곡부로 돌아온 그의 첫 일성이었다.
계우는 즉시 사자를 거나라로 보냈다.
- 경보(慶父)는 우리 노나라의 간적입니다. 그를 우리나라에 넘겨주거나 목을 베어 보내주면 섭섭지 않은 사례를 하겠습니다.
거나라는 지금의 산동성 거현 일대를 봉지로 하는 나라이다.
주무왕이 오제 중의 첫번째인 황제(黃帝)의 장남 현효의 후예를 찾아내서 분봉했다. 작위는 자작(子爵), 국성(國姓)은 영이다.
거자는 곤란했다. 그는 이미 경보(慶父)의 망명을 허락해주었다.
그에게서 상당량의 뇌물을 받기도 하였다. 만일 그가 계우(季友)의 요구대로 경보를 소환하거나 죽인다면 여러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경보로 인해 노나라와 원수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노나라에서 제시한 '섭섭지 않은 사례'에도 구미가 당겼다.
거자가 고민하고 있을 때 그의 동생인 영나가 한 가지 계책을 내었다.
"제3국으로 보내시면 경보를 위해서도, 노나라를 위해서도, 우리를 위해서도 모두 좋습니다."
"묘책이다."
거자는 사람을 보내 경보(慶父)에게 자신의 처지와 뜻을 전했다.
"우리 거나라는 보잘것 없는 나라이외다. 공자로 인해 우리나라와 노나라 사이에 의가 상해 싸움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두렵소이다. 미안하지만 공자께서 다른 나라로 떠나주시면 고맙겠소이다."
그러나 경보(慶父)는 떠나려 하지 않았다. 떠나면 죽는다. 그가 어찌 이 사실을 알지 못하랴. 악착같이 거나라에서 비티고 앉았다.
거자 또한 살아야 했다. 강경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 경보를 추방하라!
거자의 동생인 영나가 직접 경보를 함거에 실어 문수(汶水) 근방에 떨어뜨려 놓앗다.
"아아, 어디로 갈 것인가. 이 넓은 천지에 이 작은 몸 하나 갈 곳이 없는가!"
경보(慶父)는 하늘을 우러르며 탄식했다.
때마침 사절단의 자격으로 제나라로 갔던 공자 해사(奚斯)가 귀국하던 중 문수 가에 이르렀다가 그 곳을 배회하는 경보를 발견하였다. 해사는 노환공의 비첩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한때 서형인 경보와는 사이가 매우 좋았었다. 경보가 마구간지기 낙을 시켜 공자 반(般)을 살해했을 때 그의 흑심을 눈치채고 경보의 당(黨)을 탈퇴했다.
공자 해사(奚斯)는 초라한 모습의 경보를 보자 지난날의 정이 되살아나 마음이 안쓰러웠다.
"함께 귀국하시어 종묘에 용서를 비심이 어떠하신지요?"
해사(奚斯)의 권유에 경보는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내가 노나라로 돌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나, 누구보다도 계우가 나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 돌아가거든 네가 계우(季友)에게 잘 말해서 목숨 하나만은 살려달라고 빌어보아라. 우리는 다같이 선군의 피를 이어받은 형제간이 아니냐."
"알겠습니다."
해사(奚斯)는 강변에서 경보와 작별하고 문수를 건너 노나라로 들어갔다.
그가 귀국하여 도중에 경보를 만났던 일을 고하자, 노희공은 측은한 마음이 일어 계우를 돌아보았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모양이니, 한번 용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계우(季友)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임금을 죽인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장차 무엇으로써 뒷사람들을 경계하시렵니까?"
그러고는 해사(奚斯)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분부했다.
"그대는 다시 문수로 가서 내 말을 전하라. 만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자손을 세워 대를 잇게 해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손조차 보존하지 못하리라!"
다음날 해사(奚斯)는 수레를 타고 다시 문수 가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는 차마 경보에게 그 말을 전할 수없었다. 해사는 경보가 머물러 있는 집 대문 앞에 가서 큰 소리로 통곡했다.
경보(慶父)는 방 안에 앉아 있다가 울음소리를 듣고서 해사가 온 것을 알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긴 숨을 내쉬며 탄식했다.
"해사(奚斯)가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슬피 울기만 하니, 계우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내가 짐작하겠다."
경보는 마침내 허리띠를 끌러 대들보에 목을 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무렵, 제환공(齊桓公)은 노나라에 대해 미안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는 관중을 불러 물었다.
"따지고 보면 노환공과 공자 반(般), 노민공 등 노나라의 세 군주가 모두 자기 명대로 살지 못하고 비명에 죽은 것은 우리나라 공녀인 문강과 애강 때문이오.
만일 우리나라가 이 일을 모른 척하면 노나라 사람들은 두고두고 우리 제(齊)나라를 원망할 것이 분명합니다. 나는 이 일을 해결하고 싶은데, 어찌하면 좋겠소?"
관중(管仲)이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한다.
"여자는 한 번 출가하면 남편을 따를 뿐입니다. 시집에서 지은 죄를 친정에서 처리할 수는 없습니다. 정히 주공께서 마음이 불편하시다면 비밀리에 애강(哀姜)을 죽여버리십시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가장 좋겠지."
다음날 임치성을 나서는 미복의 한 사내가 있었다. 바로 제환공의 총신인 내관 수초였다. 수초는 발길을 재촉하여 주나라로 달려가 애강을 만났다.
"부인께서는 노나라의 국모이십니다. 속히 노나라로 귀국하십시오."
애강(哀姜)은 오라비인 제환공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수초를 보낸 것으로 알고 짐을 꾸려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그들이 주나라 경계를 벗어나 제나라 영토인 이(夷) 땅에 이르렀을 때였다.
날이 저물어 관사에 들었다. 저녁 식사가 끝난 뒤 수초가 애강의 방으로 들어왔다.
애강(哀姜)은 수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수초는 전에 없이 공손한 태도로 무릎을 꿇고 입을 열었다.
"부인께서 두 임금을 죽였다는 사실은 노(魯)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이제 부인이 곡부로 돌아가시면 무슨 면목으로 노나라 태묘를 대하시렵니까? 소생의 짧은 생각으로는, 손수 목숨을 끊으시어 지금까지의 허물을 덮은 것이 더 나을 듯싶습니다."
".........................!"
애강은 비로소 제환공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았다.
그녀는 목상(木像)처럼 앉아 있기만 했다.
수초가 방을 나와 뜰을 가로지를 때 등 뒤에서 구슬픈 통곡 소리가 일었다.
그 울음소리는 한밤중이 되어서도 계속 이어졌다. 어찌나 처연한지 수초 자신의 애간장이 다 끊어지는 듯했다.
문득 통곡 소리가 그쳤다.
사위는 적막했다. 밖으로 나왔다. 초생달이 오동나무 가지에 걸려 바둥거리고 있었다. 수초는 애강(哀姜)의 방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방 한가운데 의자가 넘어져 있고, 그 바로 위로 두 다리가 흔들거리고 있었다.
이상이 애강과 경보가 빚어낸 노나라 어지러움의 전말이다.
끊어짐을 잇게 한 제환공(齊桓公)의 업적보다는 육욕과 사욕에 눈이 먼 두 남녀의 끝없는 욕심의 종말이 어떠한가를 새삼 일깨워주는 듯한 일화이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