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제우의 『동경대전』
1. <동경대전>은 1860년 신비스러운 득도 후 짧은 기간 동안 ‘동학’의 가르침을 전파하다 1864년 처형당한 수운 최제우의 작품을 그의 후계자 최시형이 모은 책이다. 이 모음집에는 수운의 집안 내력과 개인적 경험을 통해 어떻게 동학을 시작했는가에 대한 자전적인 기록뿐 아니라, 왜 ‘동학’의 가르침이 그 시대에 필요한가에 대한 역사적이며 사상적인 통찰이 담겨있으며, 성리학적 질서가 무너지는 시기에 성리학의 대안으로서의 동학의 중요성을 ‘서학(천주교)’와의 비교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또한 ‘동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왜곡된 인식을 교정하고 섣부른 욕심을 경계하며, 한순간의 변화 대신에 오랫동안 준비하면서 내면적인 도덕적 수행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2. <동경대전>에 실린 글들은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맥락에서 기록되었다기 보다는 각각의 상황 속에서 필요에 따라 쓰여졌다는 점에서 때론 중복되는 부분도 보이지만, 그러한 직접성 때문에 동학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생생한 견해가 담겨있으며 글의 독자가 대부분 일반 평민이라는 점에서 한문으로 기록되었음에도 글의 내용이 난해하고 복잡하지 않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의 글은 관념적이지는 않지만 심오한 성찰과 새로운 시대에 대한 명백한 비전이 담겨져 있으며 독자적인 수운의 사고가 잘 드러나있다고 할 수 있다. 수운의 <포덕문>에는 수운이 상제를 만나 득도를 하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수운은 참다운 도를 찾는 과정에서 상제를 만났고 그로부터 새로운 덕을 실현할 수 있는 영부(부적)와 주문을 받는다. 부적과 주문은 수운의 가르침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것은 핵심적인 요소가 아니었다. 수운이 강조한 것은 민중들의 도덕성이었으며 참다운 양심을 찾는 일이었다.
3. 수운의 핵심사상은 ‘侍天主’였다.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 수운에게 하늘은 천주교와 같이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하늘’은 ‘하느님’으로서 우주를 관장하는 자연의 이치에 대한 인격적인 표현이었다. 그리고 ‘하늘’의 뜻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 찾을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렇기에 ‘하늘을 섬기는 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행위였다. 수운은 마음을 통해 ‘도’를 찾는 것이 아니라. 마음, 즉 올바른 마음(양심)을 찾는 것이 목표였고 그것을 행위의 표준으로 삼았던 것이다. “우리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방식은 사심을 품지 않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방식, 곧 無爲而化의 방식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보존하고 자신의 기운을 바로 잡아 하늘이 부여해 준 본성에 따르는 것입니다.”
4. 이러한 마음을 닦는 방식의 차이가 동학과 서학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다. 수운은 서학이 ‘이익을 추구하지 않지만 천하를 가지려 한다’라는 말을 통해 제국주의적 침략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음을 경계하였다. 수운은 새로운 사상을 찾는 과정에서 ‘서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그것이 민중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탐구하였다. 그러한 결과 동학과 서학은 근본적인 차이점을 가지고 있음을 간파하였던 것이다. “자연의 이치에 따르고자 한다는 관점에서 이야기하면, 동학이든 허학이든 모두 천도이지만, 천도를 따르는 방식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서학과는 전혀 다른 동학입니다.”
5. 동학이 ‘서학’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 이유는 동학의 포교 이후 점차 세를 불리면서 ‘서학’과 같이 양반과 평민, 남자와 여자의 구별을 없앤다는 서원과 관아의 비난과 감시에 시달리게 되면서 동학을 변호하기 위한 목적도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유학자들의 비난에 대해서도 자신의 아버지가 뛰어난 유학자였음을 강조하면서 동학이 유교의 핵심정신인 ‘인의예지’를 결코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포함하여 좀 더 넓은 의미의 깨달음으로 향하고 있다고 강조하였던 것이다. “인의예지는 공자의 가르침이요, 수심정기는 내가 다시 밝힌 것이다.” 복잡하고 단계적인 성리학의 수양론을 단순하게 하여 도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닦는 것만이 중요하며 그러한 수양을 통해 얻은 마음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 참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6. 하지만 동학의 ‘수심정기’는 유학자들의 거센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양심’이 누구에게나 있고 누구도 수양을 통해 도달할 수 있음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반 백성을 어리석은 사람들이라 평가절하한 성리학적 질서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계급적인 위계를 위협하는 심각한 발언이었다. 그럼에도 수운은 보통 사람들도 공자와 같은 뜻을 가질 수 있고 많은 책을 읽지 않아도 웅대한 뜻을 지닐 수 있다고 평민들의 수행을 권고하였던 것이다. 수운이 강조한 또다른 중요한 점은 개인의 성장이 아니라 공동체의 성장과 발전이었다. 마음을 닦는 것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초석이 되는 일이며 개인의 행위가 반드시 좋은 성과를 얻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 세상의 운명은 복을 받아도 세상 사람들과 함께 받고, 화를 입어도 세상사람들과 함께 입는 것입니다. 게다가 복을 받는냐 화를 입느냐 하는 것은 하늘에 달려있는 것이지, 각자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7. 수운은 새로운 변화의 기운이 도래했고 그것은 막을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이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묵묵히 도덕적 수행을 힘쓰라고 권고한다. 그것은 ‘평등’에 대한 희망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가르침이 동학에 입문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급진적인 변화를 요구하게 만들었고 과격한 실천에 대한 움직임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수운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은 시를 통해서도 표현된다. “세상을 움직이는 일, 돌아가는 상황 따라 하는 법, 현묘한 기틀을 드러내려 마라, 마음을 조급히 먹지 마라.” “천 년 전에 담가 놓고 쓸 곳 있어 아껴온 것, 부질없이 개봉하면 냄새 흩어지고 맛 옅어지나니.”
8. 동학의 수행은 막연하면서도 관념적인 것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수운은 <불연기연(不然基然)>에서 참다운 것은 구체적이고 드러난 것에 대한 탐색에서 시작되고 발견된다고 말하면서 현상에서 이법을 발견하는 것이지, 추상적인 원리에서 구체적인 사물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심원한 것을 탐구하면 끝끝내 알 수가 없고, 드러난 일들에 의탁하면 분명하고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구체적 현상을 통한 진리의 길은 결국 일상 속에서 살고 있는 평민들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진다. 평민들을 무시하는 세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 “말 못하는 갓난아기도 제 부모를 아는데, 이 세상 사람들을 두고 어찌 앎이없다하는가!”
9. <동경대전>에 실린 글을 통해 수운이 생각하는 새로운 개벽(다시 개벽)은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 속에서 모두가 참된 마음을 깨달아 좋은 공동체를 만들고 그 속에서 참된 진리를 실현하는 세계였다. 하지만 기득권을 지고 있던 양반들은 동학의 확산에 두려움과 분노를 표시했다. “용납할 수 없는 것은 동학이라는 말을 사용한다는 점이요, 두려워할만한 것은 무리들이 엄청 많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이 결국 수운을 체포하였고 어떤 폭력을 조장하지 않았음에도 ‘국정모반’이라는 죄목으로 처형하게 만들었다. 수운의 죄를 회복시켜러는 동학의 ‘교조신원운동’은 이후 동학의 가장 핵심적인 움직임이 되었고 동학을 결집시키는 중요한 요소였다. 비록 뜻은 크고 만인의 평화로운 세상을 꿈꿨지만, 그러한 꿈 자체가 반역이 되는 시대적 아픔 속에서 수운은 사라져야 했다. 하지만 그런 비폭력적 변혁의 정신이 뒤이어 등장하는 증산교, 원불교, 대종교 등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사상적 배경이 되었으며 왕조국가를 대체하는 민중들이 주체가 되는 공화적인 대한민국의 초석이 되었던 것이다.
첫댓글 - 동학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어떻게 종교,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계승 발전하는가에 대한 연구들....... 민중 혁명의 시작으로 보는...... 1919 기미독립선언의 실체...... 도올 및 여러 학자들의 강연........ 중요하지만 머디 먼 옛날 이야기로 들리는 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