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자 와인 잔
신춘희
크루즈선 타고 스털링폭포*를 와인 잔에 담는다
단지 건배를 위해 내밀었을 뿐인데
지구의 시간을 발효시킨
마지막 빙하기 지류가 출렁거린다
오랫동안 푸른 이끼로 덮인 암벽과
빽빽한 숲을 품은 빙하,
어쩌면 산악을 눌러놓은 얼음이 훑고 갔으리라
침식으로 만들어진 U자형 계곡
그 유선형을 대지의 잔이라 부른다
가없이 흐르는 빙식곡氷蝕谷의 깊이는 어느 정도일까
계곡은 무엇을 위해 낙폭을 따르는가
산맥이 물줄기를 담는 목이라면
깎아지른 절벽은 코르크를 빼낸 자국이지 않을까
만년설이 녹아 빙하의 도수로 흘러내리는 동안
13.5%의 취기가 내게도 전해져 온다
계곡물을 와인 잔에 담아 두고 주거니 받거니,
산과 산 사이의 협곡은 U자형
와인 잔의 넓은 볼도 U자형
모두 담아낼 수 있는 곡선을 지녔다
내게도 잔의 목처럼 좁아졌다가
볼의 모양으로 넓어지는 게 있었던가
정체된 생각도 어느 순간에는 트였는지
유리 벽에 맺힌 물방울은 마음의 액체
기울일수록 출렁, 내게로 넘어온다
산허리 돌아 나온 물도 담길 곳 찾아 흐르듯
수천 갈래로 흩어져도 기어이 바다로 돌아가는,
내 안에도 U자형 계곡이 있어
흘러가는 물길을 붙잡고 나는 무엇인가 더 채우려 한다
* 뉴질랜드 남섬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에 위치한 폭포
신춘희 | 2022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 바다문학상 대상(2023),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최우수상(2024)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