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 한옥마을이야기
1)남승월 할머니 81세 ,영동 삼도봉 밑이 고향
아버지가 처가 살이, 외가는 서울과 영동에 연고를 두고 외할아버지가 독립운동
그러다 잡히어 몰매 맞고 너무 통제가 심해 4살때 만주로 이사
여기서 대종교, 단군신을 모시게 되었다
아버지는 징용되어 일본에 가서 비행장 건설에 참가 , 그러다 전쟁터에 나가면 죽을 것 같아 꾀를 내어 똥통에 빠져 죽는 쉬늉하여 머리에 가위로 상처도 냄 .
요행히도 귀국하게 되고 반면에 만주에 올라간 외할아버지는 계속되는 일본군과 경찰의 추적을 받으며 결국 또 체포되어 북한의 세포로 들어감
갔는데 일본인 몇이 살고 있고 전라도에서 1가구 경상도 문경에서 1가구 황해에서 1가구등이 붙들려 들어와 일본인 농장에서 노동을 하게 됨
그런데 워낙 잘살아 없는 것이 없고 동물도 다양하게 있어 살기좋아좋았다(어린 할머니 생각~ㅜㅜ)
한 2년 살았는데 해방되어 다시 영동으로 돌아 왔으나 살기 힘들어 46년도에 서울로 올라와 저동에 살았다
외가댁인 영동에 있을때 삼도봉 밑인데 인민군이 수없이 밤이면 이동해 갔다
정말 그들은 나쁜짓 안했다
내 위에 16살먹은 언니는 숨어서 지냈고 나는 12살이라 나와서 지냈다
그들이 후퇴해 갈 때 밥을 해달라고 해 집에서 밥을 먹고 떠나가기도 했다
신발이 다 달아 발바닥이 보이기도 하는데 입 ㄹ 홋창을 뜯어가 발에 감싸고 떠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날 19살 먹은 인민군이 가기싫다고 하며 숨겨 달라고 해서 얼마를 숨겨주었는데 인민군이 다 올라갈 무렵 혹시라도 아군이 오면 누가 고자질해서 죽을수도 있기 때문에 외삼촌이 산속으로 데리고 들어가 죽였다~ㅜ
아버지는 이때 북한군에 끌려가 생사를 모른다. 전쟁 끝나고 서울에 왔는데 어린나이라 뭔지도 모르고 외할아버지 집에서 살았다
그러다 이곳 남산 밑으로 들어왔는데 그때는 몇가구 없었다
★못 살아서 죽어 있는 것은 문제도 아니였다
고아원 자리라든가 당시 야산에는 전쟁 흔적이 있었겠지만 이야기만 들었다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없다
한옥마을 자리는 수경사인가 헌병도 있었고 전쟁후에도 국군영화촬영소가 있었다
★마을에 땅을 파다보면 뭐가 나오기도 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처리 되었는지 모른다
2) 000 88세 참전용사님, 의성이 고향
처음에는 피난갔다
그러다 군에 입대하여 6사단 7연대 박격포대에 있었다고 하신다
많이 죽고 다친 곳은 화천 위 금성천에서란다
얼마나 죽었는지 어디서 죽었는지도 모른단다
다만 휴전말엽에 가장 많이 죽었고 어떻게 된지도 모른단다
" 허허 벌판 같은 곳에서 당했지, 아이고 기억도 못해~~!"
~~~~~//^^~~~~
동국대 서쪽문으로 나와 청학동천이라는 필동 주변과 남산 북쪽지맥을 보았다
많은 인쇄소 업체들이 들어와 있고 집이 빽빽히 들어서 이제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한옥마을도 일부는 그때모습대로 있지만 대부분 새로 조성되어 6.25전쟁 흔적은 안보인다
"용사님은 어디 계실까, 어느 아저씨 이야기가 과거에야 여러 흔적들, 수류탄 탄피등이 있었고 집을 짓다가 시체도 나와 당시 남산 자락에 묻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때사람 없고 흔적도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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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필동 한옥마을 이야기
이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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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2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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