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강의 아름다운 풍광과 조선 후기의 뛰어난 건축미가 조화를 이룬 영남루는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樓閣의 하나로서 전통 누각의 진수를 품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4칸에 팔작지붕을 얹었는데, 아래로 기둥 사이를 넓게 잡고 굵은 기둥으로 누마루를 높여 웅장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을 주는 것이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라는 이름 그대로다. 좌우 부속 건물로 능파각凌波閣과 침류각枕流閣을 날개처럼 거느리고 있다.
영남루嶺南樓라는 이름은 고려 말인 1365년 지밀성군사知密城郡事 김주金湊가 영남사嶺南寺가 있던 절터에 새 누각을 지으면서 붙였다. 조선 시대에는 객사 부속 건물로 쓰였다. 현재의 건물은 1844년 밀양 부사 이인재李寅在가 새로 지었다. 유명한 문인들의 시와 글을 새긴 현판이 한때 300개나 걸려 ‘시문詩文 현판 전시장’으로 불렸다.
북쪽으로 5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천진궁天眞宮은 1665년 객사 부속 건물로 건립됐지만 곧 객사로 활용됐다. 영남루 앞과 천진궁 입구 땅바닥에는 마치 장미나 국화 꽃송이가 촘촘하게 박혀 있는 듯한 돌꽃(石花)이 깔려 있다. 경남 밀양시 중앙로 324 (내일동).
천진궁
천진궁은 단군과 역대 왕조를 세운 시조의 위패를 모셔둔 사당이다. 만덕문을 정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이 얹힌 구조로, 중앙 맨 윗자리에는 단군의 영정과 위패가 있고 동쪽 벽에는 부여·고구려·가야·고려의 시조 위패가 서쪽 벽에는 신라·백제·발해·조선의 시조 위패가 모셔져 있다.
천진궁은 조선 현종 때인 1665년에 객사인 공진관拱辰館의 부속 건물로 세워졌으나 경종 때부터 공진관을 대신해 전패를 모시고 객사로 활용했다. 영조 때에는 불에 타기도 했는데 그 뒤 다시 지어졌다가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위패를 땅에 묻고 헌병대 감옥으로 사용했다.
1952년 단군봉안회가 생기면서 단군과 삼국의 시조왕, 고려 태조 등의 위패를 모시고 이곳을 대덕전大德殿이라 하였다. 1957년에는 건물을 크게 수리하면서 이름을 천진궁으로 바꾸어 지금에 이르렀다. 매년 봄·가을 어천대제와 개천대제를 받들어 행하고 있다.
*능파凌波: 파도 위를 걷는 것 같다는 뜻으로, 미인의 가볍고 아름다운 걸음걸이를 이르는 말.
*침류枕流: 흐르는 물로 베개를 삼다는 뜻.
*객사客舍: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리던 곳으로 사신이나 중앙에서 내려온 관리들의 숙소로도 사용됨.
*전패: 조선시대 지방 관청 객사에 ‘전殿’ 자를 새겨 봉안하던 목패로 왕을 상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