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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10일 일요일 설악산 가리봉 주걱봉
고인돌 사니조은 님과 함께
자차이용 : 복정역 06:30 – 자양6교 09:10 – 가리봉 14:25 – 주걱봉 정상 17:00 – 하산 갈림길 18:00 – 옥녀1교 하산 20:10 – 택시로 차 위치로 이동 ( 27,000 원)
산행거리 : 약 15 km 산행시간 : 약 11 시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2082588
거리 14.8 km
소요 시간 10h 59m 3s
이동 시간 9h 1m 11s
휴식 시간 1h 57m 52s
평균 속도 1.6 km/h
최고점 1,534 m
총 획득고도 574 m
난이도 보통
설악산 가리봉과 주걱봉은 서부능선을 탈 때 늘 멀찍이 떨어진 채 따라 다니던 산줄기다. 안산에 가서도 가리봉과 주걱봉을 본다. 하지만 입산이 허용되지 않는다. 희귀식물 보호 및 안전문제가 뒤따르기 때문에 점봉산과 마찬가지로 이 가리봉도 사철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
그래도 많은 등산 매니아들은 작은 모임으로 이 금단의 동산에 올라 선악과를 따 먹으며 각자 블로그나 카페 등에 스토리를 올리고 있다. 바위 봉우리가 험준하여 어렵게 올랐다는 이야기도 있고 가리봉 능선에서 바라본 설악의 서부능선이 아름답게 묘사된 이야기도 올라온다. 설악산 귀때기청봉에서 안산까지 이어지는 능선길에서 바라본 가리봉 주걱봉 마루금은 해가 거듭될수록 아련한 그리움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5월 8일 금요일 오후부터 이튿날 토요일까지 촉촉한 봄비가 내리고 원래 계획했던 파라팀의 소백산 꽃 탐방 계획이 취소되었다. 긴급하게 새로운 산행계획을 세우면서 생각한게 바로 내 마음속의 가리봉 주걱봉 산행을 추진하게 되었다. 설악산 국립공원은 본래 5월 15일까지 산불방지 기간으로 탐방이 금지되어 있는데 올해는 그 기간이 길어져서 5월 30일까지 통제된다. 가리봉 주걱봉은 설악산 탐방기간에도 항상 입산이 금지되어 있는 터라 언제나 그렇듯 불법 산행을 감수해야 한다.
설악으로 가는 도로는 막히지 않았다. 홍천 휴게소에서 한 번 그리고 원통 지나 설악 휴게소에 들러 간단하게 김밥과 막걸리를 사 먹고 들머리로 삼은 자양6교에 9시 10분쯤 도착했다. 램블러 앱에서 선답자의 산행경로를 다운받아 놓았고 이를 따라가니 어렵지 않게 산길을 찾을 수 있었다. 가리봉으로 오르는 주 능선은 그런 앱이 없더라도 길을 잃지 않을만치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뚜렷했다.
산길 중간중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연보호구역’이라고 새긴 대리석 기둥을 세워놓았다. 우리가 보호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줄 천연자원이다. 사실 지금 산꾼들이 다니는 이 능선길에서 벗어나면 분명 저 옛날부터 간직해온 원시 천연의 숲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을 것이다. 가끔 나물꾼이나 버섯꾼들이 드나들 수는 있겠으나 그 숫자가 많지 않으니 후손들에게 물려줄 가치가 손상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제일 좋은 것은 국력이 신장되어 이 가리봉 주걱봉 삼형제봉을 잇는 남설악 지역도 사람들이 안전하게 정해진 루트를 걸어갈 수 있도록 정비하고 관리하는 것이리라.
철쭉꽃
산길 초입부터 봄비를 맞은 철쭉이 신선하다. 연분홍 꽃잎이 소담스럽고 앙증맞다. 능선을 따라 오르면서 철쭉은 산의 높이를 가늠해주는 지표(指標)가 된다. 위로 오를수록 활짝 핀 꽃이 점점 줄어들고 대신 꽃 봉오리가 많아지더니 나중에는 그마저도 사라지고 철쭉의 잎망울이 연두빛으로 돋아나는 모습을 보인다.
고도(高度)에 따라 자라나는 양상이 다른 것은 철쭉뿐이 아니다. 단풍취와 금마타리, 단풍나무와 신갈나무, 생강나무와 다릅나무 등 모든 풀나무가 봄을 맞아 새 생명을 세상에 선보이고 있다. 이들 풀나무들은 찬바람이 부는 가을까지 짧은 기간동안 쉼없이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
생강나무
신갈나무
다릅나무
짙은 안개가 마치 이슬비가 내리듯이 산을 적신다. 긴 가뭄 끝에 목이 타는 설악의 풀나무들은 감로수(甘露水)인듯 온몸을 흔들며 열광한다. 어쩌면 설악에는 이런 안개가 수시로 생겨나는 곳이니 이 곳에 사는 풀나무들은 가뭄을 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안개를 보며 산을 오르는 마음이 조금은 착잡하다. 가리봉에 오르는 동안 안개가 걷히고 그 봉우리에 서면 하얀 운해가 계곡에 깔려있는 그런 아름다운 그림을 보고 싶지만 그게 과연 생각대로 될 지 모르겠다.
걸음이 빠른 고인돌 형님이 앞서고 나와 사니조은이 뒤에서 따라가는 형국이다. 늘 그렇듯이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고인돌 형님은 잠시 멈춰서서 어미닭이 병아리에게 모이나 벌레를 찾아주듯이 기다렸다가 우리에게 보여준다. 바위를 가리키며 저게 뭔지 보라고 한다. 석이(石耳)버섯이다. 내가 알기로 석이버섯은 검은색인데 지금 바위에 붙어 있는 것은 쑥색이다. 그러나 뒷면은 검은색이다. 아마 석이버섯도 바위에 붙은 채 탄소동화작용을 통해 에너지를 생성하고 번식하는가보다. 이 석이버섯을 채취하기 위해 바위절벽에 줄을 타고 오르내리다 목숨까지 위태롭게 한다고 하니 귀한 것이라는 생각에 몇 개 따서 배낭에 담는다. 버섯의 가운데 부분이 뿌리처럼 단단하게 바위에 붙어 있어 버섯을 손을 잘 잡아 떼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버섯이 찢어진다.
석이버섯
산길에 여러가지 봄꽃들이 피기 시작한다. 금마타리는 이제 꽃봉오리가 맺힐 듯 말 듯하고 큰앵초 꽃봉오리는 터질 듯 말 듯한다. 배추잎처럼 푸짐한 풀잎 속에 우윳빛 나도옥잠화 꽃대가 올라와 그 끝에 꽃봉오리가 가득 맺혀있다. 하루 이틀 사이에 꽃이 피어날 것 같다. 키 작은 두루미풀은 나무 아래 무리지어 자란다. 간혹 성급한 애들은 벌써 두루미 목처럼 삐쭉 꽃대를 뽑아 꽃을 피울 준비를 다 갖추었다. 일 주일 후에 이 곳은 천상의 화원으로 변해 있을 것 같다.
고인돌 형님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을만치 훨씬 앞서 가고 있나보다.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가끔 앱을 살피면서 걷는데 고인돌 형님이 불쑥 나타나 눈 앞에 화려하게 피어있는 진달래나무를 가리킨다. 아직도 진달래가 남아 있다. 저 낮은 곳에는 벌써 지고도 한참 지났는데 그리고 국망봉에 핀 진달래를 본 것도 벌써 일 주일 전인데 지금 가리봉으로 오르는 산길에 진달래가 만발했다. 진달래는 고도가 높아질수록 더욱 색감이 짙어지더니 더 높은 곳에는 아직도 꽃봉오리만 맺혀있다.
진달래
여전히 짙은 안개 속에서 능선을 따라 걷는데 왼쪽 계곡아래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지도를 보니 우리는 필레계곡 상단부를 왼쪽에 두고 걷고 있다. 조금 더 오르자 우리가 올라온 반대편인 가리산리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하는 삼거리에 도착한다. 오후 1시 상황을 보아하니 가리봉 정상이 가까워오는데 안개가 쉽게 걷힐 것 같지는 않다. 안개속에 정상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는 것은 참 게면쩍은 일이다. 우리가 힘들여서 높은 산의 정상에 서려는 것은 일망부제 끝없이 펼쳐지는 산군을 직접 눈으로 보고 느껴보고자 함인데 이렇게 안개가 시야를 가리다니.
혹시 안개가 옅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우리는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바위 뒤에 앉아 점심을 먹기로 했다. 오늘 두릅을 몇 개 따서 반찬으로 먹을 요량으로 사니조은 님에게 막장을 가져오라고 부탁했는데 챙겨오지 않았다 한다. 두릅을 날로 먹는 것은 상상하지 못하겠다 한다. 대신 김치와 깻잎 그리고 고추볶음 등 푸짐한 반찬으로 거나하게 먹었다. 산에서 먹는 밥은 왜 그리 맛이 좋은지. 후식으로 커피와 카스테라 빵을 또 배불리 먹었다. 오면서 설악 휴게소에서 사온 잣막걸리도 산상주점(山上酒店)의 주메뉴로 인기 만점이다.
얼레지
큰앵초
박새
나도옥잠화
두루미풀
점심식사를 마칠 동안에도 안개는 변함이 없고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에도 체온이 내려가는지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진다. 이제 산상에서 바라보는 아스라한 조망은 포기하고 오늘의 일정을 소화하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가리산에도 만병초가 많이 자란다. 주로 북쪽 사면 크지 않은 나무들 틈에서 넓고 푸른 이파리가 돋보이는 만병초 나무끝에 꽃봉이라가 뾰족하게 올라와 있다. 진달래과 진달래속 상록활엽교목으로 잎과 열매가 만병을 치료하는 약이라 하여 만병초라는 이름을 얻었다. 작년 봄 안면도 휴양림에 갔을 때 이미 다 져 버린 꽃을 아쉬움 속에 본 적이 있지만 아직 자연에서 피어 있는 꽃은 보지 못했다. 철쭉보다도 더 큰 꽃이 마치 동백꽃처럼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았는데 올해는 꼭 설악에 피는 만병초를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가리봉 - 예전에는 추건이라 부르다가 이후 인각산(麟角山)이라 불리던 봉우리다.
가리봉 주변에는 안개가 짙게 끼어 기대했던 조망을 볼 수 없었다.
오후 2시 25분 마침내 가리봉 (加里峯 1518 m) 정상에 올랐다. 남설악의 최고봉이다. 날이 좋으면 주걱봉과 삼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내려다 보이고 맞은편 설악의 서부능선 끝에 있는 안산부터 귀때기청봉 그리고 중청과 대청까지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은 북한땅인 금강산마저 보일 듯 말 듯하다고 하니 지금 이 봉우리 주위를 둘러치고 시야를 가리고 있는 안개가 더욱 야속하기만 하다.
산의 이름이 어찌하여 가리봉(加里峯)으로 불리었는지 짐작할 수 없지만 전국에 있는 비슷한 이름 즉 가리봉과 가리산의 유래는 각각 다르게 전해진다. 포천 신로봉 아래에 있는 가리산은 옛날 구리광산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구리산으로 불리다가 나중에 가리산으로 고쳐 불렀다 한다. 홍천에 있는 가리산은 산정에 있는 바위가 마치 볏가리를 쌓아놓은 모양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또 어떤데는 갈라지는 곳이라는 의미로 쓰인 이두문자라고도 한다.
남설악의 이 가리봉의 유래를 찾아보니 딱히 마땅한 것을 찾을 수 없다. 다만, 몇 개의 블로그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이야기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즉, 어느 학자가 이 산의 이름을 건(힘줄 腱) 또는 추건(쫒아갈趨 하늘乾?)이라 부르다가 인각산(麟角山)이라 고쳐 부르고 산 정상에 혈(구멍穴)자를 새기고 치성을 드리는데 뇌성이 일어 산 이름을 가리산(加里山)으로 바꾸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출처는 모르겠으나 나름대로 새겨 보자면, 이 아래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 산의 의미는 우선 높고 신성하다는 것이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는 산은 상상의 동물인 기린의 뿔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이 산 아래 마을은 기린의 발굽인 인제(麟蹄)다. 그런 성스러운 산에 누군가 묘혈(무덤)을 파고 제사를 올리는데 뇌성벽력이 일어나면서 바위를 깨쳤다. 이에 사람들은 바위가 갈라진 산이라는 뜻으로 가리산이라고 불렀다. 꿈보다 해몽인가? 어쨌든 이렇게 위용이 있는 산이라면 옛날부터 뭇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고 믿음의 대상으로 삼았을 것이라는 것은 미뤄 짐작할만 하겠다.
만병초
만년석송
만년석송
만년석송
안개낀 가리봉 정상에서 잠시 머물면서 어느쪽으로 하산 코스를 잡을까 궁리한다. 올라온 길로 다시 내려가는 것은 산행의 묘미가 사라진다. 더구나 가리봉과 함께 서 있는 주걱봉이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주걱봉 방향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잠시 안가리산리로 내려가는 길로 잘못들어 되돌아 와 금방 주걱봉으로 가는 길을 찾았다. 역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드나든 흔적이 뚜렷하다.
안개 때문에 주변 산세는 볼 수가 없지만 한참 내려가다가 바위 암봉을 돌아서 만난 작은 조망처에서 잠시 쉬어간다. 조금 비탈진 바위에 걸터앉아 담소하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이 바위 뒷면은 깍아지르는 천길 낭떨어지다. 그리고 안개가 없다면 그 건녀편으로 가리봉이 가까이 올려다 보일 듯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바위에 핀 진분홍 진달래만이 안개에 젖어 그 청초함이 더욱 돋보인다.
진달래꽃
갑자기 사니조은 님이 오십견 얘기를 꺼냈다. 고인돌 형님도 오십견을 경험해보았느냐고 물으니 보통 사람들 초로에 겪는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등산을 하다가 미끄러지면서 팔을 짚었는데 어깨에 통증이 왔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부인이 병원에 가 보라는 성화에 정형외과를 찾았는데 병원에서는 엑스레이를 찍어 보더니 좀 더 정밀하게 검사를 해야 하기에 MRI를 찍자고 했단다. 결국 어깨에 아주 작은 힘줄이 하나 끊어졌다는 것을 밝혀냈는데 그냥 두었어도 지장이 없었던 것을 돈만 많이 쓰고 아무런 조치도 받지 않은 채 넘어갔다고 한다. 이야기의 요점은 요즘 병원들이 아주 사소한 ‘꺼리’만 잡아도 그 것을 빌미삼아 환자에게 겁을 주어 큰 돈을 쓰게 한다는 것이다.
내가 당했던 비슷한 ‘사건’이 떠오른다. 2년쯤 전이던가? 갑자기 귀에서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렸다. 괜챦다가도 몸을 움직이던가 머리를 돌리면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귀에서 들리는 것이었다. 예전부터 들리던 이명하고 좀 색다른 것이라 은근히 걱정이 생겼다. 인터넷으로 이명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수서에 있는 한의원에서 이명을 잘 치료한다며 상세하게 소개해 놓았다. 가깝지도 않은 곳이라 전화로 상담을 하렸더니 방문을 해야한다고 한다.
한의원이었지만 현대적인 의료검사장비를 갖추고 얼굴과 손바닥의 열을 감지하고 귀와 눈 등 여러기관을 살펴보는데 나는 속으로 ‘정말 자세하게 검사하는구나’하고 생각하면서도 ‘정말 이명을 고칠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검사를 마치고 의사의 검진을 받는데 처방대로 하면 나을 수 있다고 한다. 그 치료의 핵심은 사십만원짜리 한약이었다. 일시불로 결재하고 집 주소를 알려주었고 한 달간 꾸준히 먹었다. 병원에는 그 뒤로도 서너 번 방문하였으나 별다른 치료는 하지 않고 적외선을 쬐면서 침을 맞았던 것 같다.
귀에서 나는 낙엽 밟는 소리가 없어지지 않아 한의원에 대한 믿음은 의구심으로 바뀌었고 난 더 이상 한의원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 대신 가까운 이과(耳科)를 찾아갔다. 연세가 80은 되어 보이는 의사는 안경을 쓰고 귀 안쪽을 살펴보더니 귓속에 이물질이 들어있는데 그는 눈이 어두워 그 것을 꺼낼 수 없으니 가까운 다른 병원을 찾아가 보라며 강남구청 앞에 있는 다른 이과 병원을 추천했다. 그리고 그 병원의 젊은 의사는 내 귓속에 들어있던 아주 작은 머리카락을 핏셋으로 간단하게 껴냈고 나는 더 이상 귓속에서 낙엽 밟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직업적으로 성공하려고 갖가지 방법을 쓰는데 의료계마저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을 지갑속에 꼬깃꼬깃 접어 넣고 말았나 보다.
고인돌 님과 사니조은 님 - 오십견에 대한 담소에 열중이다.
가리봉에서 주걱봉으로 가는 능선은 몇 개의 암봉이 연결된 회랑과 같은 것이지만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 주걱봉 바로 전 바위벽 중간의 좁은 통로를 지날 때는 위험구간에 로프가 매여 있어 안전을 도모해준다. 그리고 주걱봉 아래에는 촛대봉이라 부르는 아주 갸름한 팽이처럼 생긴 작은 봉우리가 있고 그 촛대봉과 주걱봉 사이는 깊이 파인 계곡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이 안개에 싸여있어 제대로 된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다시 주걱봉 갈림길 안부로 올라서니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앞서 가 기다리던 고인돌 형님은 진달래꽃 사이로 주걱봉을 올려다보고 그냥 하산하시겠다고 한다. 전에 한 번 주걱봉을 오르려다 위험하겠기에 포기했다고 한다. 나는 어떻게 생긴 건지 좀 더 자세히 볼 요량으로 십여미터 다가가니 눈 앞에 끝도 보이지 않는 바위 직벽이 떡 버티고 있다. 윗쪽은 안개가 지나가는지라 흐릿한데 아래에는 십여 미터 길이의 밧줄이 매어져 있다.
주걱봉쪽으로 넘어가는 길
주걱봉과 촛대봉 사이 깊은 협곡
갑자기 안개가 조금 걷히며 맑은 하늘이 비친다. 나는 밧줄을 잡고 당겨보았다. 혹여 오래된 것이라 삮은 것이면 위험할 수 있다. 밧줄은 단단하고 또 손에 미끄러지지 않는 재질로 된 것이다. 밧줄을 당기며 바위를 디뎌보니 미끄럽지 않다. 혹시 비가 내린 후라서 바위가 미끄러울까 염려했는데 바위 표면이 거칠어서 등산화에 착 붙는다. 그리고 손을 잡거나 발로 디딜 홈이나 홀드가 적당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모처럼 별러서 찾아온 주걱봉인데 그냥 보내기에는 섭섭했던 모양이다.
주걱봉 아래에서 올려다 본 모습 - 안개가 조금 걷힌다.
주걱봉 중간쯤 - 눈향나무, 백리향 등 잡목이 우거졌다.
주걱봉 정상 부위에 핀 진달래
주걱봉에서 내려다본 풍경 - 왼쪽 아래 뾰족한 암봉이 촛대봉이다.
가리봉은 구름에 덮여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정상에 작은 돌탑을 쌓아 놓았다.
가리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이 구름과 함께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삼분지 일쯤 올랐는데 갈림길 안부에서 기다리던 사니조은 님이 그냥 내려오라고 소리쳐 부른다. 나는 속으로 금방 올라갔다가 내려가면 되겠거니 생각하고 이리저리 오를 수 있는 길을 찾아본다. 비가 내린 탓에 흙은 물러 미끄럽다. 흙이 있는 곳에는 눈향나무가 우거졌고 향나무 군락 가장자리에는 백리향이 자란다. 눈보라에 온몸을 드러낸 채 혹독한 겨울을 지낸 식생들이 봄을 맞아 살아있슴을 마음껏 과시한다. 진달래 꽃 빛깔은 또 얼마나 고운지 안개속에서도 환하게 비친다.
눈향나무 등걸이나 바위 등 손에 잡히는대로 부여잡고 한 발 한 발 오르다보니 중간쯤 올랐나보다. 그 다음부터는 경사가 완만하고 오름이 편안하다. 마음속으로 은근히 내려갈 일이 걱정되기도 하나 기왕 올라온 것이니 눈앞에 보이는 주걱봉의 모습을 감상하는데 열중한다.
바람에 안개가 휘날린다. 주걱봉과 촛대봉 사이의 좁은 협곡이 바람골인 모양이다. 그리고 힘들게 올라온 산꾼에게 아량을 베풀어주려는지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바닷빛보다도 더 푸른 빛을 보여준다. 그리고 발 아래 까마득한 절벽 앞에 놓인 촛대봉을 온전하게 보여준다. 신비한 모습이다. 안개에 살짝 가려진 가리봉 능선과 촛대봉을 정신없이 바라보며 주걱봉 산신령이 베푸는 아량에 감사한다.
잠깐잠깐 트이는 조망에 취해 사진을 찍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사니조은 님이 걱정된다며 조심해서 내려오라 당부한다. 이제 더 머물러 있을 일도 없슴에 주위를 다시 한 번 휘 둘러보고 진달래 만발한 주걱봉과 작별한다.
주걱봉 정상은 꽤 널찍한 작은 숲이다. 주로 진달래 같은 관목이지만 오래된 분비나무 고목도 더러 보인다. 이런 거친 바위 봉우리에도 끈질기게 생명체가 자리잡고 산다는 것이 신기하다.
내리막길은 좀 여유를 갖고 살피면서 내려오니 올라갈 때보다 수월하다. 로프가 매어있는 안부와 연결된 부분을 제외한 부분은 거의 직벽에 가까운 암벽으로 빙 둘러쳐져 있다. 밧줄을 타고 무사히 내려가 안부에 이르니 그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사니조은 님이 추위에 떨면서 나의 무사 생환을 축하해 준다. “박대감보다 내가 더 무서웠다구요. 중간에 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기만 바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구요.” 하는 소리에 마음 속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밀려온다.
나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 노심초사하며 기다리는 사니조은 님
진달래가 안개비를 맞아 더욱 선명한 빛을 발한다.
멀리 삼형제봉이 보이는 안부에서 우리는 오른쪽 계곡을 타고 하산한다.
그 사이 어디까지 가셨는지 고인돌 형님은 그림자도 안보인다. 산길은 제법 뚜렷하니 달리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내리막 길에 가끔 너덜겅도 지나고 길이 잘 보이지 않는 구간도 나온다. 소리질러 고인돌 형님을 부르니 한참 아래에서 대답이 울린다.
오후 5시 50분 삼형제봉으로 향하는 길이 오름을 시작하는 안부에서 고인돌형님을 만났다. 삼형제봉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은 듯 보이나 우리가 차를 세워둔 한계령쪽으로 가려면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7시면 날이 어두워질 테니 서둘러 내려가기로 작정하고 안부에서 오른쪽 계곡으로 발을 내딛는다.
계곡쪽으로 내려서자마자 내 발목을 잡는 것이 있었다. 두릅이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두릅을 딸 생각으로 장갑까지 챙겨 왔으나 능선길 두릅 군락지는 우리보다 한 발 앞서간 다른 산꾼이 알뜰하게 챙겨간 탓에 우리는 거의 빈 손이었다. 그런데 이 계곡으로 내려가는 산자락에 아무런 손도 타지 않은 두릅이 촘촘이 자라고 있었다. 두 분은 먼저 내려가고 난 눈에 보이는 두릅을 한 주먹 가득 따고나서 서둘러 따라 내려갔다.
계곡에는 큰 돌들이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어 이리저리 뛰면서 내려간다. 걱정한 것보다 돌이 미끄럽지 않아 힘들지는 않지만 가끔씩 돌 아래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가야 하는 일이 생가다보니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옆의 작은 계곡과 합쳐지면서 계곡은 점점 넓어지는데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계곡을 계속 타고 내려가기에는 부담스럽다. 오른쪽 산비탈로 나섰다가 다시 계곡으로 들어온다. 고도가 낮아지니 안개가 엷어지고 계곡 너머로 설악산 서부능선 산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계곡길에서는 멀리 안산이 마주보인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자연의 생태계.
해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그림자만 남긴다.
산 중턱 아래에는 이제 봄의 향연이 무르익어 간다.
한참 내려가니 고인돌 형님이 계곡 왼쪽으로 어렴풋이 난 산길을 찾았다. 길을 따라가니 걸음이 빨라진다. 그러나 길은 없어졌다 나타나길 반복하며 다시 계곡으로 내려섰다가 숲길로 이어진다. 해가 지고도 한참 시간이 흘렀는지 주변이 어둑어둑하여 그나마 길도 보이지 않는다. 난 배낭에 챙겨둔 랜턴을 꺼냈다. 그렇게 조금 더 내려가니 비로소 한계령으로 올라가는 도로가 나타난다.
밤 8시 산행을 마무리하고 마침내 도로에 내려섰다.
8시 옥녀1교 위 도로에 올라섰다. 사방이 깜깜한데 앞서 내려온 두 분이 미리 상의를 했는지 택시를 불러야 한다고 한다. 대략 짐작으로는 이 도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면 주차한 장소까지 갈 수 있을텐데 알고보니 그 거리가 9 km로 만만치 않다. 결국 원통 택시를 불러 차를 회수하고 서울로 내달렸다. 11시 좀 넘으면 전철이 끊기기에 복정역에 10시 30분쯤 도착하여 복정동 순대국밥집에 들러 빠른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