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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연구소 제16회 학술제(심리치료 (psychotherapy)에서 불교상담의 역할과 과제, 2020.10.23)에서 발표한 원 고를 수정·보완한 것이다
불교수행의 신체 치료적 적용 -신념처 중심으로
Physical therapeutic application of Buddhist practice : Focused on the mindfulness of the body
저 자 ; 변순미
연구분야 ; 응용불교학
발행기관 :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연구소
소장기관 ;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주 제 어 ; 四念處 ; 신념처 ; 감각기관 조절 명상 ; 행위 명상 ; 부정적 생각 끊기 명상 ; 호흡명상 ; four foundations of mindfulness ; mindfulness of the body ;
breathing meditation ; negative thought breaking meditation ; action meditation
불교수행의 신체 치료적 적용 -신념처 중심으로
/ 변 순 미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강사
Ⅰ. 들어가는 말
Ⅱ. 아함에 나타난 신념처설
Ⅲ. 신념처 수행의 현실적용 명상법
Ⅳ. 나아가는 말
초 록
이 연구의 목적은 불교 수행이 현실적인 문제 즉 아(我)의 대표적인 요소인 신체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아함경전을 근거로 四念處 가운데 신념처를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에 있다. 실제, 초기 아함경전을 살펴보면, 수행법 중 四念處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중요성에 비례해 많은 경전에서 언급하고 있다. 四念處는 신념처‧ 수념처‧ 심념처‧ 법념처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네 가지 수행법에 대하여 초기 불교는 신념처 수행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나머지는 역부여시(亦復如是)라 시설하면서 신념처의 용례에 따른다고 언급하고 있다.
四念處의 첫 번째 항목인 신념처는 신체에 의식을 집중하여 마음을 보고 신체로부터의 해탈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초기 불교 붓다의 수행법은 신체, 즉 현실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불교 수행법은 초 현실적인 공과 무아를 말하고, 열반과 해탈을 중시하여 신체는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처럼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초기 붓다 시대의 수행법은 신체에 출발하였으며 신체의 모든 작용을 아는 것에서 출발했다. 불교 수행법도 이와 같아서 목표는 열반과 해탈에 두고 공과 무아의 성취에 두지만, 그 목표와 성취로 나가는 출발점은 현실과 신체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이를 위하여 본고는 초기 불교 수행의 四念處 중 신념처의 위상과 중요성을 한역 아함경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같은 이유로 신념처에 기반하여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현대인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감각기관 조절 명상, 행위 명상, 부정적 생각 끊기 명상, 호흡명상을 제안한다.
Ⅰ. 들어가는 말
붓다는 열반과 해탈을 얻기 위한 많은 교법과 수행법을 시설하였다. 번뇌가 흐르는 세속의 고통을 뛰어넘는 출세간법을 시설하였다. 그러나 열반도 현실의 번뇌를 끊는 것에서 출발하고 해탈도 현실의 문제를 뛰어넘어 탈 윤회계로 진입하는 것이기에 모든 수행법은 현실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無漏(무루)와 無爲(무위)의 출세간법도 현실을 바로 관찰하여 그 허위의 모습을 알아서 열반과 해탈의 세계를 맛보는 것이다. 불교 수행의 목표는 현실에서 벗어나 열반의 세계에 대한 인식과 실천을 담보하는 것이기에 현실과 현실을 벗어난 해탈을 연기적 관계로 설명한다.
그래서 불교 수행은 열반과 해탈의 원대한 목표를 향하여 가되, 현실 문제 즉 아(我)의 대표적인 요소인 신체의 문제를 간과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불교 수행은 현실을 간과하고 공(空)과 무아(無我), 이욕(利欲)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붓다의 최고의 교설인 연기법은 유(有)와 무(無)의 관계성을 중시할 뿐만 아니라, 아(我)와 무아(無我)의 관계성도 중시하기 때문에 有(유)이며 我(아)를 상징하는 신체를 통하여 열반과 해탈의 길에 이른다고 할 수 있다.
불교의 수행은 양극단을 벗어나는 중도의 이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양극단은 고(苦)와 락(樂)과 같이 있음과 없음, 욕심과 무욕, 세간과 출세간, 번뇌와 열반, 업과 해탈 등의 두 체계로써 양극단은 불가 분리하게 연결되어있는 연기법이다. 따라서 양극단의 개념과 존재는 모두 연결되어있는 것이며 어느 하나가 일방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불교 수행법도 이와 같아서 목표는 열반과 해탈에 두고 공과 무아의 성취에 두지만, 그 목표와 성취로 나가는 출발점 98 불교문예연구 16집 은 현실과 신체의 문제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초기 아함경전을 살펴보면, 수행법 중 四念處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중요성에 비례해서 많은 경전에 언급되고 있다. 四念處는 身念處(신념처)‧ 受念處(수념처)‧ 心念處(심념처)‧ 法念處(법념처)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네 가지 수행법에 대하여 초기 불교는 身念處(신념처) 수행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나머지는 역부여시(亦復如是)라 시설하면서 身念處(신념처)의 용례에 따른다고 언급하고 있다.
四念處의 身念處는 신체는 깨끗하지 못하고 몸은 항상 하지 않고 空하며 非我임을 觀하고, 受念處는 즐겨 구하는 樂으로 느끼는 것이 苦의 원인이 되어 苦가 空임을 觀하고, 心念處는 마음의 生滅‧ 無常 등을 구할 수 있는 것이 空想임을 觀하는 것이고, 法念處는 法이 因緣에 의하여 生하는 것으로 自性이 없음을 觀하는 것이다. 결국 초기 불교 붓다의 수행법은 신체, 즉 현실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신‧구‧의(身‧口‧意) 3업 가운데 수행은 身業(신업)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신‧구‧의(身‧口‧ 意) 업을 담고 있는 아(我)에서 출발하여 無我(무아)로 진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왜 신념처인가? 위빠사나, 선정바라밀 등을 수행할 때 마음이 구체적으로 머무는 것은 바로 우리의 신체이다. 불교심리학과 서양 심리학 모두 우리의 몸을 “바로 ‧지금 ‧전체”가 존재하는 방식으로 심리학의 일부로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로이트뿐만 아니라, 융, 라이히는 생명 에너지가 흐르는 통로인 몸에 우리가 다시 거주할 수 있도록 부단한 투쟁을 벌였다. 그들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인간 본능이 지닌 가치에 대해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체적 삶의 근본 동기와 추동력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신체적 삶의 불교수행의 신체 치료적 적용│변순미 99 이러한 복권(復權) 요구는 오랜 시간 지속되어 온 투쟁의 일부였다. 신플라톤주의와 중세 기독교의 유산은 신체와 본능의 가치를 貶下(폄하)하는 동시에 영적인 것과 이성을 우의에 두었다.1)
현대에는 또 다른 사회적환경에 노출되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생활을 위한 기계적 도구로 전락하였고, 따라서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삶과도 단절되고 있다. 계속해서 몸을 간과한다면 만성통증과 스트레스 관련 질병인 궤양, 고혈압, 우울과 불안 등의 병증이 우리에게 그 신호를 보낼 것이다. 이 신호를 바로 지금 전체로 존재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한 방법으로, 본고는 초기 불교 수행의 四念處 중 신념처의 위상과 중요성을 한역 아함경을 중심으로 면밀하게 검토하고자 한다. 물론 신념처는 궁극적으로 無常(무상)과 非我(비아)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충만한 현존과 전체로 존재하는 수행법으로 현대인의 삶에 적극적으로 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건강한 정신신체적 연결을 위한 심신일여의 명상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Ⅱ. 아함에 나타난 신념처설
1. 아함 전반에 나타난 신념처
아함은 열반에 이르는 길을 중시하는데, 길은 세 가지이다. 악취로 나아가는 길이 있고 선취로 나아가는 길이 있으며, 열반으로 나아가는
1) 잭 콘필드(Jack Kornfield)(2020), 172. 참조, 헬레니즘의 心身二元論적 사상이 플라톤 사상에 입각하여 더 정교하게 체계화 되면서 身(신)보다 心(심)을 우위 에 두는 정신주의가 신체를 경시하는 사상을 낳았다. 이러한 사상이 서양사상 사에 큰 영향을 미쳐 신체와 관련되는 모든 것에 금욕주의적 태도를 지니게 했다. 수백 년 동안 금욕적인 기독교 교부들은 육신의 고행을 죄를 사하는 필 수 과정으로 칭송했다.
길이 있다. 악취로 나아가는 길에 접어들면 인자함이 없고 남을 해치는 독의 마음을 품으며, 선취로 나아가는 길에 접어들면 악한 마음으로 중생을 해치지 않으며, 열반으로 나아가는 길에 접어들면 부지런히 신념처를 닦는다.2)
또한 아함은 심해탈과 혜해탈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감각기관으로 행하는 대상에 대한 집착을 끊고 마음은 항상 신체에 의식을 집중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잡아함경은 다문의 성제자는 눈으로 색을 보고 나서 좋다고 여겨지는 대상에 대하여 집착하지 말고, 좋지 않다고 여겨지는 대상에 대하여 화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항상 그 마음을 조섭하여 신념처에 두고 무량하게 마음을 해탈하고 여실하게 혜해탈해야 한다고 한다.3) 눈이 대상을 보는 것과 같이 귀가 소리를, 코가 냄새를, 혀가 맛을, 신체가 접촉을, 의식이 법의 경우도 이와 같다.4)
이와 같이 아함은 열반과 해탈로 나아가는 방법으로 신념처를 닦을 것을 권고한다. 특히 한역 중아함경은 四念處 하나하나에 대하여 수행할 내용을 제시하고 있는데 신념처를 설한 부분은 다른 아함의 신념처와 비교해 보면 매우 체계적이다.
중아함경은 신념처에 대하여 14가지 항목을 설정하여 설명한다. 첫 번째 항목은 신념처의 전체적인 총설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악취로 나아가는 부정적인 생각을 끊는 것을 강조하고 세 번째는 신념처를 수행할 시의 자세에 관하여 기술하고, 네 번째는 입‧출식관 다시 말해 수식관의 수행법을 신체 속에서 체험해야 함을 기술한다. 다섯 번째에서 일곱 번째는 초선에서 4선에 이르는 선정은 신념처의 체험임을
2) 장아함경 권10(T1, 59b).
3) 잡아함경 권9(T2, 64a).
4) 잡아함경 권9(T2, 64a), “如眼及色. 耳聲.鼻香.舌味.身觸.意法. 亦復如 是. ”
기술한다. 여덟 번째는 신념처는 광명상을 닦는 것이라고 기술하며, 아홉 번째는 신념처는 관상법을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열 번째는 신념처는 신체의 구성요소를 하나하나 관찰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부정관법의 내용이기도 하다. 열한 번째는 신체 속에서 6계를 관찰하는 것이라고 하고, 열두 번째는 신념처는 죽은 시신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하고, 열세 번째는 신념처는 백골관을 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열네 번째는 신념처는 분해된 여러 뼈의 모습과 산골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기술한다. 열두 번째부터 열네 번째의 기술은 외부의 시체를 관찰하는 외신 부정관을 몇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 것이다.5)
중아함경에 보이는 신념처의 14가지 모습은 四念處의 나머지에 해당하는 수(受)·심(心)·법(法)의 설명과 비교해 보면 전체 항목 수가 매우 많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수행의 내용과 방법을 담고 있다. 신념처 수행의 내용과 방법을 살펴보면 신체를 내‧외로 관찰하는 부정관법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4가지 항목으로 설정되어 있는 신념처의 내용과 방법은 신념처 행법의 종합적 설명에 해당하는 부분, 자세, 입‧출식관, 4선의 체험, 광명상과 관상법, 6계관, 내‧외의 부정관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초기 불교의 신념처 중심의 신체에 대한 관점을 살펴보도록 한다.
2. 중아함경에 나타난 신념처설
중아함경은 신념처에 대하여 일상에서 행‧주‧좌‧와‧어‧묵‧동‧정의 모든 신체 동작을 관찰할 것을 권고한다. 이는 좌선 위주의 수행이 붓다의 수행법이라는 그간의 인식을 불식한다. 경전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5) 중아함경 권24(T1, 583b-c).
신념처 그대로 신체를 관찰함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비구는 가면 가 는 줄 알고, 머무르면 머무른 줄 알고, 앉으면 앉은 줄 알고, 누우면 누운 줄 알고, 자면 자는 줄 알고, 깨어나면 깨어나는 줄 알고, 잠에서 깨어나면 잠에서 깨어난 줄을 안다. 이와같이 비구는 내부 신체를 신체 상태 그대로 관찰하고, 외부의 신체를 신체 상태 그대로 관찰하며, 앎이 있거나, 견해가 있거나, 명(明)이 있거나, 통달이 있거나 간에 집중을 신체에 둔다. 이를 비구는 신체 그대로 신체 상태를 관찰하는 것이라 한다. 다시 비구는 신체 그대로 신체의 상태를 관찰한다. 비구는 들어오고 나가는 걸 바로 알며, 잘 구분하여 관찰하여 구부렸다 펴며 내리고 올리는 것과 위의 질서와 승 가리와 의발을 잘 두는 것과 가고 머물고 앉고 눕고 자고 깨어나고 말하 고 묵묵히 있음의 모든 경우에 잘 안다. 이와 같은 비구는 내부의 신체를 신체 상태 그대로 관찰하고 외부의 신체를 신체 상태 그대로 관찰하며 앎 이 있거나 견해가 있거나 명(明)이 있거나 통달이 있거나 간에 집중을 신 체에 둔다. 이를 비구는 신체 그대로 신체를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6)
위의 경문을 보면 신체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는 것이 신념처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때그때 신체의 상태에 따라 의식이 따라가면서 어떤 의도도 내지 않고 그 상태를 아는 것이 신념처임을 알 수 있다. 신체에서 일어나는 행‧주‧좌‧와‧어‧묵‧동‧정의 상태를 바로바로 아는 것이 신념처이며, 구부리고 펴는 등의 신체 동작을 아는 것이 신념처이며, 신체 가짐의 의의와 의복과 발우를 간수 하는 일련의 자신 모습을 아는 것이 신념처이다. 이는 신념처의 총설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활 전반에서 나타나는 신체의 움직임과 상태를 그대로 아는 것 다시 말해 인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에는 어떤 의식의 물리적인
6) 중아함경 권24(T1, 582b), “云何觀身如身念處. 比丘者. 行則知行. 住則知 住. 坐則知坐. 臥則知臥. 眠則知眠. 寤則知寤. 眠寤則知眠寤. 如是比丘觀內身如 身. 觀外身如身. 立念在身. 有知有見. 有明有達. 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 比丘 觀身如身. 比丘者. 正知出入. 善觀分別. 屈伸低昂. 儀容庠序. 善著僧伽梨及諸衣 鉢. 行住坐臥. 眠寤語默皆正知之. 如是比丘觀內身如身. 觀外身如身. 立念在身. 有知有見. 有明有達. 是謂比丘觀身如身. ”
작용과 의도는 행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의 신념처를 해설하는 항목에서는 의식의 물리적인 작용과 의도를 기술한다. 악불선법이라고 하는 악의적 생각이 일어날 경우의 대처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마치 목공 스승이 목공 제자에게 새끼줄로 나무를 묶어서 예리한 도끼로 자르고 다듬어 곧게 하는 것과 같이 비구는 악불선법의 생각이 생기면 선법의 생각으로 치유하고 끊어내고 소멸하여 그치게 한다.7) 이는 행‧주‧좌‧와‧어‧묵‧동‧ 정의 신체적 동작을 그대로 알아차리더라도 남을 해치는 등의 악의적이며 부정적인 생각이 일어나면 이를 선한 생각과 긍정적인 생각으로 대처해야 함을 의미한다. 악불선법은 악의적인 의도나 생각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생각이나 긍정적인 생각으로 전환하거나 없애는 등의 적극적인 방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념처는 신체를 중심으로 하는 수행내용과 방법을 다루기 때문에 중아함경은 신체의 자세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윗니와 아랫니를 붙이고 혀를 입천장으로 말아 올리고 마음으로 마음을 치유하여 신체를 치유하고 끊어내고 소멸하여 그치게 하는 것이라고 하기 때문이다.8) 이는 신행(身行)을 따라가면서 하는 신념처의 방법으로 마음의 근심을 끊어내고 선정을 얻으며 진여를 알게 한다.9)
중아함경은 신념처의 방법으로 입‧출식관을 기술하고 이를 내신 관찰이라고 명명한다. 입‧출식관에 관한 경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
7) 중아함경 권24(T1, 582b), “猶木工師.木工弟子. 彼持墨繩. 用絣於木. 則 以利斧斫治令直. 如是比丘生惡不善念. 以善法念治斷滅止. ”
8) 중아함경 권24(T1, 582b), “如是比丘齒齒相著. 舌逼上齶. 以心治心. 治斷 滅止.
9) 중아함경 권20(T1, 555b), “復次. 比丘修習念身. 比丘者. 齒齒相著. 舌逼上 齶. 以心治心. 治斷滅止. 猶二力士捉一羸人. 處處旋捉. 自在打鍛. 如是比丘齒齒 相著. 舌逼上齶. 以心治心. 治斷滅止. 如是比丘隨其身行. 便知上如真. 彼若如是 在遠離獨住. 心無放逸. 修行精勤. 斷心諸患而得定心. 得定心已. 則知上如真. 是 謂比丘修習念身. ”
과 같다.
다음으로 비구는 신체를 신체 상태 그대로 관찰한다. 비구는 입식에 집중 하면 입식에 집중함을 알고, 출식에 집중하면 출식에 집중함을 알며, 입식 이 길면 입식이 긴 줄 알고, 출식이 길면 출식이 긴 줄을 안다. 입식이 짧 으면 입식이 짧은 줄 알고, 출식이 짧으면 출식이 짧은 줄을 안다. 온 신 체로 숨이 들어옴을 느끼고 온 신체에서 숨이 나감을 느낀다. 신행이 그치 고 숨이 들어옴을 느끼며 구행이 그치고 숨이 나감을 느낀다. 이처럼 비구 는 내부의 신체를 신체 상태 그대로 관찰하고 외부의 신체 상태 그대로 관찰한다.10)
위 경문을 보면 입‧출식의 짧고 김을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 신념처의 행법이고, 온 신체에서 숨이 들어오고 나감을 느끼는 것이 신념처의 행법이며, 신행(身行)과 구행(口行)의 그침을 느끼는 것을 신념처의 행법이라고 한다. 이것은 숨이 신체 안에서 작용하는 상태를 의식이 관조하고 있어야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며, 입‧출식관이 신체상의 변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입‧출식관은 수식관이라고도 명명되며 불교사의 전반에서 중시되었고, 대승과 소승 모두 붓다의 대표적인 수행법으로 간주 되어 왔다. 특히 초기불교 경전인 아함의 내용을 살펴보면 입‧출식관이 신체 수행 중심으로 관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숨이 신체 안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그대로의 모습을 의식이 알아차리면서 신체에서 작용하는 숨의 현상을 직시하는 것이 그 내용이다. 수식관은 신‧수‧심‧법의 四念處에 배대되어 四念處 수행법으로 잘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신체를 통과하는 숨의 모습과 작용을 중시한다. 수식관은 신체에서 해탈할
10) 중아함경 권24(T1, 582c), “復次. 比丘觀身如身. 比丘者. 念入息即知念入 息. 念出息即知念出息. 入息長即知入息長. 出息長即知出息長. 入息短即知入息 短. 出息短即知出息短. 覺一切身息入. 覺一切身息出. 覺止身行息入. 覺止口行 息出. 如是比丘觀內身如身. 觀外身如身. ”
수 있는 수행법이기 때문에 신체를 통해서, 다시 말해 신체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수행법임을 밝힌 것이다.
중아함경은 신념처의 수행법으로 입‧출식관을 선보이고, 그다음 초선에서 4선에 이르는 과정을 시설하면서 이 또한 신체를 관찰하는 것이라고 기술한다. 아함은 일반적으로 초선은 이생희락지(離生喜樂地)라고 하고, 제2선은 정생희락지(定生喜樂地)라고 하며, 제3선의 이희생락지(離喜生樂地)라고 하고, 제4선은 사념청정지(捨念淸淨地)라고 한다. 초선의 이생희락지는 오개(五蓋)의 번뇌에서 벗어나서 희락을 맛보는 단계이며, 제2선의 정생희락지는 선정이 생겨서 희락을 맛보는 단계이며, 제3선의 이생생락지는 선정의 기쁨마저도 벗어나 깊은 선정의 즐거움을 맛보는 단계이며, 제4선의 사념청정지는 모든 분별의 생각과 작용이 끊어진 자성청정심이 드러나는 단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4선까지의 단계를 아함은 신체 중심의 신념처의 단계로 설정하는 것이다.11) 그래서 중아함경은 초선을 설명하면서 이생희락으로 신체를 윤택하게 적시고, 신체 속에서 두루 충만하게 하며, 이생희락이 두루 하지 않는 곳이 없다12)라하고, 제2선을 설명하면서, 정생희락은 신체를 윤택하게 적시고, 신체 속에서 두루 충만하게 하며 정생희락이 두루 하지 않는 곳이 없다13)라고 한다. 제3선의 이희생락에 대해서도 같은 설명을 반복한다.14) 제4선의 사념청정에 대해서는 이 신체 속에서 청정심의 뜻을 깨달아 편만하게 성취하여 노닐며, 이 신체 속에 두루 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한다.15) 이를
11) 중아함경 권20(T1. 555b-c).
12) 중아함경 권24(T1, 582c), “復次. 比丘觀身如身. 比丘者. 離生喜樂. 漬身 潤澤. 普遍充滿於此身中. 離生喜樂無處不遍.
13) 중아함경 권24(T1, 582c), “復次. 比丘觀身如身. 比丘者. 定生喜樂. 漬身 潤澤. 普遍充滿於此身中. 定生喜樂無處不遍. ”
14) 중아함경 권24(T1, 583a), “復次. 比丘觀身如身. 比丘者. 無喜生樂. 漬身 潤澤. 普遍充滿於此身中. 無喜生樂無處不遍. ”, 참조.
볼 때 아함은 4선정이 신체관찰을 중심으로 하는 신념처 도정의 선정임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중아함경은 광명상과 관상에 대하여 신념처의 일환으로써 설명한다. 그래서 비구가 광명상에 집중하여 잘 수지하고 집중 한 대로 기억하고, 전과 같이 후도 그렇게 하고, 후와 같이 전도 그렇게 하며, 낮과 밤, 밤과 낮도 이와 같이 하고, 하와 상도, 상과 하도 전도함 없이 하여 마음에 얽힘이 없이 광명심을 닦아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마음은 끝내 어둠에 덮이는 일이 없게 된다고 한다.16) 광명상은 밝은 빛을 승해의 마음으로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인데, 중아함경은 광명상에 대하여 사문과 바라문이 나무 아래나 공한처에 있으면서, 마음을 고요히 하면서 意解(의해)의 마음으로 광명상을 만들면 이는 심해탈과 다름없는 마음의 상태에 이른다고 한다.17) 광명은 밝은 빛을 의미하고 밝은 빛은 물질계를 이루는 마음의 상태이기 때문에 신체 속에서 마음을 닦는 신념처의 수행법에서 설명하는 것이다. 아함의 광명상은 종종 옆구리를 대고 누워서 다리를 포개고 광명상을 닦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광명상에 연이어 중아함경은 신념처의 일환으로써 관상을 권유하고 있는데, 관상은 대상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함은 앉아서 누운 사람을 관찰하고, 누워서 앉아 있는 사람의 모습을 잘 받아서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18) 관상은 결국 대상의 모습을 잘
15) 중아함경 권24(T1, 583a), “復次. 比丘觀身如身. 比丘者. 於此身中. 以清 淨心意解遍滿成就遊. 於此身中. 以清淨心無處不遍. ”, 참조
16) 중아함경 권24(T1, 583a), “比丘者. 念光明想. 善受善持. 善憶所念. 如前 後亦然. 如後前亦然. 如晝夜亦然. 如夜晝亦然. 如下上亦然. 如上下亦然. 如是不 顛倒. 心無有纏. 修光明心. 心終不為闇之所覆. ”
17) 중아함경 권19(T1, 550b), “尊者阿那律陀答曰. 賢者迦旃延. 若有沙門. 梵志在無事處. 或至樹下空安靜處. 依一樹. 意解作光明想成就遊. 心作光明想極 盛. 彼齊限是心解脫不過是. ”
18) 중아함경 권24(T1, 583a), “猶如有人. 坐觀臥人. 臥觀坐人. 如是比丘善受
관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중아함경은 신념처의 대표적인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는 내부의 신체관에 해당하는 부정관을 시설한다. 이를 살펴보면 신체 관찰의 특징이 발견된다. 첫째는 신체 전체를 모두 관찰하는 것인데, 신체의 머리에서부터 시작하여 발끝까지 여러 종류의 부정 물로 꽉 차 있다고 관찰하면서 보는 것이다.19) 둘째는 신체를 구성하는 머리카락과 온갖 털, 손발톱, 이 등과 피부, 살, 장기, 분비물 등을 낱낱이 관찰하는 것이다. 아함은 신체의 머리카락, 몸에 난 털, 손톱, 이, 거칠고 부드러운 피부, 가죽, 살, 근육, 뼈, 심장, 신장, 간장, 폐장, 대장, 소장, 비장, 위장, 똥 덩어리, 뇌, 뇌막, 오줌, 눈물, 땀, 흐르는 눈물, 침, 고름, 피, 기름, 골수, 점액, 쓸개, 소변 등을 거론하면서 이것들을 관찰해야 한다고 한다.20) 몸을 관찰하는 방법으로서 몸의 장기 등등과 몸 밖으로 표출되는 32가지의 부정 물을 관찰한 것을 기술한 것이다. 21)
내부 신체를 관찰하는 내신 부정관 내용은 현대의학에서 설정하는 여러 가지 병증을 유발하는 기관들이 망라되어 있으며 신체의 주요 구성물들이 관찰의 대상으로 설정되어 있다. 경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모든 신체의 기관들에서 병증이 유발되고 괴로움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를 간과한 상태에서 열반과 해탈의 길로 간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내부 신체의 구성물들을 관찰하여 부정함을 인식한 후에 중아함
觀相. 善憶所念. ”, 참조. 19) 중아함경 권24(T1, 583b), “此身隨住. 隨其好惡. 從頭至足. 觀見種種不淨 充滿. ”참조. 20) 중아함경 권24(T1, 583b), “我此身中有髮.髦.爪.齒.麁細薄膚.皮. 肉.筋.骨.心.腎.肝.肺.大腸.小腸.脾.胃.摶糞.腦及腦根.淚. 汗.涕.唾.膿.血.肪.髓.涎.膽.小便. ” 21) 강명희(2012), 13. 108 불교문예연구 16집
경의 신념처의 대상은 요소[界] 관찰로 넘어간다. 신체의 부정 물은 수행 중에는 영상으로 인식되기도 하고 물질의 형태로도 인식되는데, 이는 개인 업과 번뇌의 상태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난다. 이 단계가 끝나면 신체를 관찰하는 신념처는 다음 단계의 수행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6계 관찰이다. 신체 속에서 지계‧ 수계‧ 화계‧ 풍계‧ 공계‧ 식계를 관찰하는 것이다. 아함은 소를 도축하는 사람이 소를 도축하여 껍질을 벗겨 여섯 부위로 분류하듯이, 비구는 신체의 여러 요소들을 자신의 신체 속에서 지계‧ 수계‧ 화계‧ 공계‧ 식계로 관찰한다고 한다.22)
중아함경은 신념처 다음 단계로 죽은 시신을 날짜와 시간의 경과에 따라서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하라고 권고한다. “비구는 하루나 이틀 혹은 칠팔일 지난 죽은 시신을 새와 솔개가 쪼아 먹고, 개와 이리가 뜯어먹고, 불에 태워져 땅에 묻히고, 모두 부패 되어 문드러지고 무너지는 것을 관찰하고 자신의 신체와 비교해 보면서 ‘지금 나의 이 신체도 이와 같겠구나.’”라고 해야 한다고 기술한다.23)
위의 내용은 내부 신체의 여러 형태의 구성물과 장기를 관찰하는 부정관에 이어서 죽은 시신을 관찰하는 것을 기술하고 있는데, 이것은 죽은 시신이 참혹하게 변화하고 없어져 가는 과정을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인도라는 곳은 사후의 세계를 중시하고 이 신체를 떠나면 열반에 들 수 있다고 생각하여 시체를 보면서, 신체에 애착하는 마음에서 해탈하는 방법으로 신체 부정관을 채택한 것이다. 그래서 이 죽은 시신 관찰의 신념처 수행을 갖추게 되면 끝내 이욕을 얻게 된다고 한다.24) 이는 후대에 외신(外身) 부정관, 9 상관으로 발달하게
22) 중아함경 권24(T1, 583b), “剝猶如屠兒殺牛. 剝皮布地於上. 分作六段. 如 是比丘觀身諸界. 我此身中. 地界.水界.火界.風界.空界.識界. ”
23) 중아함경 권24(T1, 583b), “觀彼死屍. 或一.二日. 至六.七日. 烏鵄所 啄. 犲狼所食. 火燒埋地. 悉腐爛壞. 見已自比. 今我此身亦復如是. ”
되는 계기가 된다. 25) 외신 부정관은 신체를 잡고있는 업을 제도하는 방법으로 시행되었고, 음욕에 대한 마음을 끊어내는 방법으로 채택되었다.
붓다는 음욕을 끊어내야 올바른 성도의 길로 들어갈 수 있다고 보았고, 그 일환으로써 신체 내부를 관찰하는 내신 부정관과 시신을 관찰하는 외신 부정관을 시행하였다. 이는 모두 신체를 통하여 신체와 결합하는 물질적 업을 극복하는 수행법이었다. 부정관은 신체를 무시하고 외면하는 수행법이 아니라, 신체를 철저하게 알아서 이를 극복하는 차원의 신념처 수행법이었다. 그래서 신념처 수행법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앎이 있거나, 견해가 있거나, 밝음과 통달이 있거나 간에 의식집중을 신체에 두어야 한다고 동어를 반복하고 있다.
중아함경은 신체관찰의 일환으로써 해골이 변화하는 모습과 시신의 살가죽 그리고 살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힘줄이 서로 얽히고설킨 것을 관찰하라고 한다.26) 이는 외부 신체 부정관 연장선상의 내용이며, 시신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혈도상 등을 기술하는 것이다. 시신의 모습은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하게 변모하는데, 처음에는 색깔이 변하는 청어상의 모습과 물기와 고름이 흘러나오는 농난상의 모습을 보이다가, 새와 짐승이 뜯어먹기도 하고 피 고름이 흘러 내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점차 골절이 분해되면서 여러 가지 뼈들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데, 아함은 발의 뼈부터 해골의 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들을
24) 중아함경 권24(T1, 583b), “俱有此法. 終不得離. ”
25) 강명희(2012), 13.
26) 중아함경 권24(T1, 583b), “復次. 比丘觀身如身. 比丘者. 如本見息道骸骨 青色. 爛腐食半. 骨璅在地. 見已自比. 今我此身亦復如是. 俱有此法. 終不得離. 如是比丘觀內身如身. 觀外身如身. 立念在身. 有知有見. 有明有達. 是謂比丘觀 身如身. 復次. 比丘觀身如身. 比丘者. 如本見息道. 離皮肉血. 唯筋相連. 見已自 比. 今我此身亦復如是. 俱有此法. 終不得離. 如是比丘觀內身如身. 觀外身如身. 立念在身. 有知有見. 有明有達. 是謂比丘觀身如身. ”, 참조.
기록한다.27) 이러한 뼈들의 모습들은 훗날 백골관이라고 하여 독립된 수행법으로 자리 잡기도 한다.
시신의 뼈들을 관찰한 다음에 뼈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개껍데기처럼 하얗게 변화기도 하고 푸르게 또는 붉게 변하면서 가루의 상태에 이르는데, 이 또한 자신과 견주어 보고 나의 신체도 또한 이와 같이 됨을 알아가야 한다고 한다.28)
이를 볼 때 붓다 당대의 신체를 중심으로 하는 신념처 수행법은 살아 있는 신체와 죽어 있는 신체를 내‧외로 철저하게 관찰했음을 알 수 있다. 신체를 통해서만 신체의 속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신체 관찰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다루었던 것이다
Ⅲ. 신념처 수행의 현실적용 명상법
1. 감각기관 조절 명상
앞 장에서 아함에 나타난 신체를 중심으로 한 신념처 수행법을 살펴보았다. 이 중 잡아함경의 6근 조섭과 중아함경의 신념처 수행법의 몇 가지 항목은 일반인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수행법이다. 지면 관계로 몇 가지만 현대인에 적용할 수 있는 명상법을 소개하기로 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 중의 하나는 제안하는 수행의 효과에 관하여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자료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명상 수련이
27) 중아함경 권24(T1, 583c), “復次. 比丘觀身如身. 比丘者. 如本見息道骨節 解散. 散在諸方. 足骨.膞骨.髀骨.髖骨.脊骨.肩骨.頸骨.髑髏骨. 各在異 處. 見已自比. ”
28) 중아함경 권24(T1, 583c), “復次. 比丘觀身如身. 比丘者. 如本見息道骨白 如螺. 青猶鴿色. 赤若血塗. 腐壞碎粖. 見已自比. 今我此身亦復如是. , 참조.
갖는 개인적인 경험의 다양성과 그 경험을 분석하여 기초 자료로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직은 미흡하다. 또한 수련을 시작했다 할지라도 그 효과를 감지하여 실생활에서 응용하고 있음을 자각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명상 수련 시 경험되는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하고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은 이제 과제로 남는다. 불교 상담 심리 치료는 수행과 상담이 동시에 진행 된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성과를 기대 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행하게도 과학자로서 참선 수련을 오랜 시간 수련하면서, 참선 보급에 힘을 쏟으신 박희선 박사의 참선의 과학적 검토 – 참선이 신체에 미치는 생리적 영향, 마음의 동요와 신체의 동요, 뇌파에 의한 참선의 연구, 참선 중의 뇌파 변화, 참선 시의 정신전류현상, 참선 시 뇌의 과학적 특징 등은 귀중한 과학적 자료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박희선 박사가 그동안 저작한 자료를 인용할 것이다.
눈, 귀, 코, 입, 몸, 의식이 각각의 대상인 물질, 소리, 냄새, 맛, 감촉, 생각이 일어날 때 신체에 있는 감각기관은 대상을 파악하는 일차적인 관문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감각기관이 대상을 만났을 때 일어나는 좋고 싫어함의 감정 제어는 쉽지 않다. 감각기관의 제어는 제감(制感)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도의 정통파와 사문파의 수행에서는 첫 단계에서 행해지는 수행이라고 보았다. 감각기관 안에 들어 있는 마음 아뢰야식에 의해서 업이 감정을 일으키고 생각과 행동을 일으키기 때문에, 감각기관 통제는 모든 수행에 있어서 중요한 입문 수행으로 간주 되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얼굴에 있는 네 가지 감각기관과 신체의 행동과 생각을 중심으로 하는 의식작용에 사띠(sa ti)를 집중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수행법이다.
감각기관의 구체적인 현실적용 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눈으로 사물을 보거나, 물질을 대하거나 사람과 환경을 볼 때, 직시하고 있는지 혹은 외면하고 있는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는 물질에 항상 노출되어있는 눈의 마음을 아는 것이며, 현대인에게 권장할 수 있는 명상 수행법 중의 하나이다.
일단, 자신의 감각기관이 하는 모습들에 집중하는 것(sati)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눈으로 대상을 직시하고 있다면, 좋아하는 마음으로 직시하고 있는지 혹은 집착하면서 직시하고 있는지 자신의 마음을 알아본다. 다음으로는 싫은 것을 외면하고 있는 경우에, 싫어하면서 눈을 돌리는지 혹은 전혀 보지 않는지 스스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눈을 깜박대고 있는지, 눈을 감고 있는지, 눈을 돌리고 있는지를 점차 알아가면서 대상을 마주한 스스로의 눈 현상을 알아차림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눈의 현상에 의식을 두고 알아차림을 하면 눈을 통하여 눈 속에 직접 되어 있는 마음에 다다를 수 있다.
귀는 소리를 어떻게 듣고 있는지, 어떤 소리를 듣기 좋아하고 어떤 소리를 거부하는지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소리를 계속 들으면서 귀의 현상에 집중하는 것도 필요하다. 감각기관 코는 입‧출식관을 행하는 기관이기도 하지만 코의 대상인 냄새에 대하여 행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 모든 냄새를 그 상태대로 받아들여야 함에도 코안에 들어있는 마음은 이를 분별하려 하기 때문이다. 코가 냄새에 대하여 싫고 좋은 반응을 예의주시하는 행법은 코를 중심으로 하는 명상의 핵심이다. 혀가 다양한 맛을 보는 것도 명상법으로 채택할 수 있으며, 일정한 맛을 즐기고 거부하는 것을 관찰한다면 맛에 의한 오장도 관찰할 수 있다. 몸은 신체 전반을 의미한다. 이것은 몸이 감촉을 인식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몸에 닿은 여러 가지 접촉을 관찰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면, 피부에 어떤 물질과 대상이 닿게 될 때 마음의 작용을 관찰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신체 속에 마음이 함께 하고 마음은 신체를 통하여 반응하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2. 행위 명상
아함은 행‧주‧좌‧와‧어‧묵‧동‧정과 신체의 여러 가지 행위를 그대로 아는 것을 신념처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기반으로 신체적 치료 목적에 적용해 볼 수 있다. 행선(行禪)의 대표적인 수행법을 경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걸음을 관찰하는 것이다. 한발 한발 옮길 때마다 한 걸음걸음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신체의 모습을 알아차릴 수 있다. 빨리 걷는지, 오른쪽 다리를 높이 올리는지, 좌우 균형이 맞게 걷고 있는지 의식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똑바로 걷는지, 신체의 어떤 부분에 힘이 쏠리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천천히 걸어보기도 하고 보통의 속도로 걸어보기도 하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 보기도 하며, 뛰기도 하면서 신체의 행위를 관찰한다. 행선의 걷기 명상은 일상에서 누구나 하는 걷기이기 때문에 행하기 쉬운 수행법이다. 급한 마음이 있으면 서둘러 걷게 되어 간혹 넘어지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지만, 한 걸음걸음 그 자체를 관찰하는 습관을 들이면 마음도 안정이 되고 자신의 걸음 속에 담긴 마음도 알게 된다.
일정한 속도를 계속 유지하다 보면 걸음에 의해서 유발되는 마음이 보이고, 마음을 보다 보면, 신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반응의 원인에 다가가게 된다. 신체와 마음은 살아있는 동안은 언제나 함께하기 때문에, 신체를 보면 마음이 보이고, 마음을 보면 신체 현상의 원인을 알게 된다.
걷다가 머무르거나, 멈춤의 동작을 관찰하는 주선의 경우도 행선과 같이 관찰할 수 있으며, 눕거나 앉거나, 말을 하거나 묵묵히 있거나,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거나 간에 집중의 사띠를 놓치지 않는다면, 그 신체의 동작 하나하나에 마음 원인을 간파할 수 있다. 움직이고 싶지 않은 게으른 마음은 몸의 동작을 통하여 알 수 있고, 이와 반대로 항상 쉼 없이 움직임을 해야 하는 마음도 빨리 움직이는 신체의 동작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일상에 늘 사용하는 물질의 기계도 너무 많이 쓰면 고장이 나고, 아예 쓰지 않고 놓아만 두어도 고장 나기가 쉽다. 기계도 이럴진대, 신체는 그와 상응한 마음이 불가분리의 관계로 존재하기 때문에, 신체가 하는 모든 일상의 모습에서 그와 상응하는 마음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사띠를 한다면, 움직임을 통하여 현실의 갈등과 고통 그리고 스트레스 등의 원인과 이것을 극복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면서 심‧신의 균형을 찾아갈 수 있다. 다음은 박희선 박사의
2003년 에베레스트 산악 마라톤에 관하여 행위 명상의 실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이 글은 월간지《삶과 꿈》의 원고를 인용한 것이다. “ 2003년 5월 19일 히말라야 고산준령의 42,195km 마라톤 코스를 완 주한 한국의 노인 박희선, 85세의 고령이었기에 이를 지켜본 사람들에게 는 크나큰 충격이었다. 상식과 인간이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죽음을 무 릅쓴 열 시간의 사투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육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정신력으로 극복한 것이다. 그는 기인도 초능력자도 아니었으며, 또한 마 라톤 선수도, 전문적인 산악인도 아니었다. 다만 33년 동안 그가 수행한 ‘생활 참선이 옳은 길이었던가 하는 것을 몸소 확인하면서 인간 모르모트 역할을 담당하는 희생정신으로 이 대회에 참가를 결심 했던 것이다.
이는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2주일간의 고산 적응훈련 그 자체만으로도 보통 사람에게는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 기에 200여명의 고산의 건각들이 참가 신청을 냈지만, 적응훈련에서 140 명이 탈락하고, 5월 19일 현지 오전 7시에서 출발 할 때에 불과 60명의 선수만이 대회에 참가했다. 그중에서도 32명이 완주했는데, 그 32명 중에 한 사람이었다. 박희선 박사는 이번 종주를 통해 새로운 세계관을 갖게 된 것 같다. 그는 평소 원효대사의 一切唯心造에서 一切唯身造라는 새로운 말 을 찾아낸 것 같다. 모든 것이 육체로부터 올 수 있다는 말이며, 결과적으 로 몸과 정신은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진리를 죽음에 이르는 극한 상황 에서 터득한 것 같다.”29)
3. 부정적 생각 끊기 명상
아함은 악불선법이 일어나면 이를 끊어내고 소멸시켜 그치게 해야 한다고 시설한다. 악불선법을 현대적인 입장에서 풀이한다면, 남을 해치려는 악한 생각과 부정적인 인식으로 대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과 그 대상을 외면할 뿐만 아니라 비난하는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으며, 연이은 생각 작용을 일으켜 이것으로 인해 거칠고 부정적인 말과 폭력 등의 행동이 뒤를 따를 수 있다.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범죄의 많은 부분이 이러한 악불선법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보통 일반인들은 부정적인 생각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하는 명상 수행법이 필요하다. 일반인이 일상적인 사회생활 속에서 자신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부정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짧은 좌선 시간 속에서도 스스로 하는 생각의 성향과 생각의 양상 등을 알게 하는 명상법이 필요하다. 이것은 스스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생각은 모든 업의 근원이다. 불교 수행법은 극단적인 두 축의 생각을 내려놓은 것을 중요시한다. 신‧구‧의(身‧口‧意) 3 업 가운데 의업(意業)은 생각으로 짓는 것이기 때문에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다음에는 부정적이고 악의적인 생각을 없애고 끊어내어 좋은 생각으로 돌릴 수 있어야 한다. 중국에서 발생한 선법은 생각을 내려놓고, 생각 속에서 생각 없음을 무념(無念), 생각 속에서 모습이 없는 것을 무상(無
29) 박희선(2006), 61~62.
相)이, 그 무상 속에서 지혜가 드러난다고 하였다. 이를 볼 때 생각을 바라보고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열반이고 일정한 생각에 묶이지 않는 것이 진정한 해탈의 모습일 것이다.
4. 호흡명상
아함의 입‧출식관[數息觀]은 신념처에 해당한다고 하였는데, 입‧출식관은 고대인도의 요가에서 출발하여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수행법에서 가장 많이 시행하고 있는 수행법 중의 하나이다. 고전 요가에서부터 하타 요가에 이르기까지 특히 강조하는 호흡법은 현대에도 그 빛이 바래지 않은 채 여러 분야에서 더 많이 응용 사용하고 있는 수행법이다. 불교의 수식관도 여러 가지 형태로 변화와 발전을 이어왔는데, 초기불교에서는 들어오는 숨의 길고 짧음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알아차리고, 신체 속에서 숨이 돌고 변화하는 들숨과 날숨을 그대로 알아차리라고 시설한다. 불교의 호흡법의 특징은 의도는 내려놓고 오로지 신체와 함께 변화하는 숨의 작용을 인식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입‧출식관을 신체에 적용해 보면 현대인의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현대인들은 오염된 주변의 환경과 공기로 인하여 코막힘, 비염 그리고 아토피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물질에 대한 스트레스와 바쁜 일상 그리고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자신의 호흡을 알아차릴 틈도 없이 수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숨을 능동적으로 알아차리게 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다. 왜냐하면 숨이 들어가는 것을 알아차림 하고, 숨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알아차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게 산소흡입량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산소량이 풍부한 숲속에서 입‧출식관을 수행한다면, 대자연의 파동으로 자연스럽게 호흡이 좋아질 것이다.
초기 불교의 입‧출식관은 숨이 길고 짧은 것과는 상관없이 숨 그대로를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초기의 입‧출식관은 신체에 들고 나는 숨의 현상을 그대로 알아차림 하는 것이지만, 이 알아차림은 초심의 수행자에게 어려운 수행법이기 때문에 숫자를 헤아리는 수식관이 자리 잡게 되었다. 즉 일명 수식관(數息觀)이다. 입‧출식관도 수행자의 근기에 따라서 그 수행법이 다양한데, 숫자를 헤아리는 수식관의 수행법은 누구나 쉽게 행할 수 있어서 첫 번째 수행법의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호흡의 방법은 들숨에 하나의 숫자를 헤아리고, 날숨에 둘이라는 숫자를 헤아리는 것이다. 처음에는 숫자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만, 점차 호흡에 숫자를 붙이다 보면 거친 숨이 미세해지고 마음은 안정되어 간다. 그다음의 단계에 이르면 숨의 현상을 그대로 따라가는 수식(隨息)의 방법을 채용할 수 있다. 처음에는 입출식에 숫자를 붙이고 다음으로 숨의 현상만을 따라가는 수식을 수행한다면, 호흡이 짧아 폐활량이 약한 사람들과 코막힘 그리고 비염 등으로 인하여 입으로 숨을 쉬는 사람들에게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입‧출식관은 앞 장에서 밝힌 행선의 걷기 명상과도 결합하여 시행할 수 있으며, 부정적인 생각을 끊어내는 생각 관찰과도 병행할 수 있다. 걸으면서 들숨과 날숨을 조절하면서 긍정적인 생각은 들숨으로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은 날숨으로 날려 보낼 수도 있다.
붓다의 수행법은 2500년 전에 실수 되었던 수행법이다. 현대와 시간적 공간적 거리감뿐만이 아니라, 생활방식과 문화적 그리고 종교적인 다양성이 공존하는 현대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또한 붓다 당시에는 출가 위주의 무소유와 현실을 벗어난 교단의 목적이 열반에 있었지만, 현대 일반인들의 불교적 수행은 반드시 열반과 해탈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입‧출식관 수행법은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예외 없이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다. 왜냐하면 누구나 숨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양한 병증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신체 치료적 적용에 매우 유리하다 할 수 있다. 요즘 시대는 먹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는데,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시는 물이며, 물보다 더 중요한것은 심‧신에 바로 적용되는 호흡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호흡은 짧은 몇 분간에 생사를 다툴 수 있기도 하지만, 호흡의 알아차림을 통해 심‧신의 건강한 회복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요가 등에서 수행하는 다양하게 알려진 호흡법과 명상을 융합하여 현대인에게 적용한다면 많은 질병과 심리적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음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박희선 박사의 참선과 출장식 호흡에 대한 효과이다.
“참선을 시작하기 전의 50대 전까지(1969) 나는 165cm의 키에 체중 73kg, 혈압 110~170mmHg(고혈압), 게다가 축농증으로 코로 숨을 쉬지 못하였으며, 무릎 관절 신경통으로 하루 1km도 걷지 못했다. 거기에다 눈 은 지독한 노안으로 돋보기를 두 개씩 겹쳐 쓰지 않고는 신문도 읽지 못 했으며, 숨이 차 아래층에서 2층까지도 단숨에 올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게다가 매일같이 독주를 고래같이 마셨으니, 정말 인간치고는 반신불수라 아니할 수 없었다.
마침 그 당시 일본에서 한국을 방문한 내 대학 동기동창인 서창인씨가 집에 왔다가 나를 진찰하여 보고, 관절에 질소화합물이 꽉 찼으니 도저히 구제할 수 없다고 선언한 바 있었다.
그러나 68세인 현재의 키는 165cm 그대로이고, 체중은 62kg, 혈압은 80~85‧ 135~140(정상), 축농증은 말끔하게 나았고, 관절도 회복되었으며, 더군다나 눈은 양쪽 다 1.2로 안경 없이 콘사이스나 전화번호 책을 읽을 수 있다. 이것은 그동안 매년 실시한 국민대학교 신체검사 표나, 3년에 한 번씩 실시하는 내 운전면허증 갱신 시 기록이 증명한다.”30)
30)박희선(1986), 11. 참고로 박희선 박사는 1919년에 출생하여 50 이후에 참선에 입문하였다
이 밖에도 아함은 4선이 신념처를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이 또한 현대인에게 적용할 수 있다. 선정은 번뇌를 끊고 신체의 현상을 통과하여 깊숙한 마음의 세계로 진입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세속적 번뇌를 넘어가는 이욕희락지의 제1선은 신체의 일정한 부분에 의식을 집중해서 들어가는 단계이며, 분별의 양극단이 극복되는 제2 선의 정생희락지는 좋고 싫음의 감정과 생각이 끊어지는 단계에 진입한다. 이 또한 신체의 거친 업이 끊어져 고요한 무분별의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특히 제2 선정은 신체의 현상이 끊어짐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또한 신체를 관조하는 의식의 정점을 맛볼 수 있다. 제3 선정은 의식이 무분별의 세계에 진입하여 고요하게 되면서 이 단계의 기쁨에 머물고 싶어 하는데, 이 또한 신체에 더욱 집중하므로 극복되는 단계이다. 마지막 제4 선정의 사념청정은 신체를 넘어 신체를 완전히 극복한 단계로 마음의 청정한 상태가 드러난 단계이다.
또한 불교의 四念處를 중심으로 하는 신념처 수행법은 광명을 관찰하는 수행과 관상하는 수행 그리고 내부 신체를 관찰하는 내신 부정관, 6계관, 외부의 죽은 시신을 관찰하는 외신 부정관이 있지만, 이에 대한 현실적용에 대한 문제는 다음 연구과제로 남기기로 한다.
Ⅳ. 나아가는 말
지금까지 아함의 신념처 수행법의 실상을 살펴보면서, 이와 상응할 수 있는 현대의 명상법을 제시하였다. 잡아함경에 나타난 6근(根) 이 6경을 만났으며, 호불호를 관찰하는 것은 현대인을 위한 감각기관 관찰 명상에 적용하기에 손색이 없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인도 수행법에 나타나는 제감의 수행법과 일치하며, 감각기관이 제어되어야만 계‧정‧혜 3 학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체 일부를 구성하는 감각기관의 통제와 조섭을 위한 신념처는 마음의 일차적인 관문인 감각기관을 지키는 명상법에 필요한 요소로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해 볼 수 있다.
또한 중아함경에 나타난 신념처의 14가지 항목의 수행법을 현대를 살아가는 일반인들을 위한 명상법으로 적용하는 일도 가능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신념처의 전체적인 총설에 해당하는 행‧주‧좌‧와‧어‧ 묵동‧정 그대로를 알아차림으로 일관되게 해야 한다는 경문은 일상의 모든 신체 행위가 명상법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특히 행선은 걷기 명상으로 응용할 수 있는데, 걷기에 다양한 형태의 직시와 집중의 사띠와 알아차림의 위빠사나를 융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악취로 나아가는 길을 막는 부정적인 생각을 바로 알아차리고 퇴치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생각을 바로바로 끊는 명상은 자기 자신의 생각을 바라보고 변화시켜서 바른 생각에 안주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 아함은 신념처 수행법의 하나로 자세에 관하여 기술하고 있는데, 이 또한 좌선할 때 정신집중과 몸의 위의를 갖출 수 있는 수행법으로 채택될 수 있다. 특히 혀를 입천장에 밀어붙이는 행법은 요가 케짜리 무드라와 매우 흡사하다.
또한 입‧출식관은 아함 뿐 아니라 아비달마와 대승수행법에서도 중요하게 설해지는 신념처 수행법인데, 현대에서도 많은 수행자에게 실시되는 명상 수행법이다. 아함은 16 승행의 전초적 입‧출식관의 수행법을 기술하고 있지만, 대‧소승 경론에서는 수식관의 수행법을 다양하게 시설한다. 이를 참고하여 호흡으로 인한 질병과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는 명상법을 제시할 수 있다. 오늘을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물질에 의해서 많은 부분이 노출되기 때문에 번뇌와 갈등 그리고 스트레스와 관련한 병증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번뇌와 갈등 그리고 스트레스 등은 모두 병인으로 작용하여 심‧ 신의 불균형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삶의 기초가 되는 호흡이 빨라지고 급해지는 원인으로 작용하는데, 이러한 유발 원인을 제거하기 위하여 입‧출식관의 수행법을 기초로 온몸에서 작용하는 호흡을 바라보는 행법은 신체에 쌓인 부정적인 생각과 업 그리고 기억들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 신체와 결합하는 4선정과 광명상, 관상, 내‧외부정관, 6계 관찰도 현대인에게 적용할 수 있는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들은 특히 신체와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수행과정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인도의 정통적 사상과 불교 수행법은 이미 3,000천여 년 전에 전개되었지만,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현대에 더욱 생생하게 살아남아 인류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초기 불교 신념처 수행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본래 몸과 명상은 뗄 수 없는 관계일뿐만 아니라 본래 동양에서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심신일여(心身一如)의 신체관의 회복과도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탈종교의 종교화로 종교적 색채가 엷어진 현대인들에게 명상과 요가 등은 종교, 국적, 인종을 불문하고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그동안 무심하게 지내왔던 자신의 삶을 한 번쯤 돌아 볼 수 있는 기회로 만들기 위하여, 스트레스를 조절하고, 불안과 우울을 치유할 목적으로 또는 장수와 편안한 일상을 꿈꾸면서 명상은 새로운 산업으로 부상하였다. 명상과 관련된 앱 시장은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로 꾸준히 시장을 늘려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 앱 시장에서 소비자의 새로운 요구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바로‘잠’이다. 불교 상담심리학, 불교 명상 등에서는 모두 마음만을 강조할 뿐 마음과 불가분리의 관계인 신체는 아주 드물게 다루고 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불교 수행법은 초 현실적인 공과 무아를 말하고, 열반과 해탈을 중시하여 신체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알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초기 붓다 시대의 수행법은 신체에 출발하였으며, 신체의 모든 작용을 아는 것에서 출발했다. 다시 말해서 색(色)에 해당하는 신체에서 시작하여, 물질인 신체에서 벗어남을 공(空)이라고 했던 것은 아닐까? 현실 속에서 현실을 벗어나고, 신체 속에서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세속에서 출세간으로 향하는 것이 진정한 열반이고 해탈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며, 현실이 바로 정토이며, 불(佛)이 중생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며, 이는 일심의 원리이기도 하며 둘 간의 분별없는 반야지혜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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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佛敎와 精神治療 - 佛敎修行의 身體 治療的 適用 - 身念處 中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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