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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어원
'개나리'와 '진달래'의 어원
'개나리'와 '진달래'의 '개-'와 '진-'이 접두사임을 아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으실 것입니다. '개나리'는 '나리'에 접두사 '개-'가 붙은 것이고 '진달래'는 '달래'에 접두사 '진-'이 붙은 것입니다.
나리꽃은 나리꽃인데, 그보다도 작고 좋지 않은 꽃이라고 해서 '나리'에 '개-'를 붙인 것이고, 달래꽃은 달래꽃인데 그보다는 더 좋은 꽃이라고 해서 '진-'을 붙인 것입니다.
원래 '나리'꽃은 '백합'꽃을 일컫던 단어였습니다. '백합'꽃과 '개나리'꽃을 비교해 보세요. '나리'꽃과 '달래'꽃을 아시는 분은 아마도 고개를 끄덕이실 것입니다.
이처럼 좋은 것에는 접두사 '진-'을, 좋지 않은 것에는 접두사 '개-'를 붙인 단어가 우리 국어에는 무척 많지요. 이러한 것의 전형적인 것을 들어 보일까요?
'개꽃'과 '참꽃'을 아시는 분이 계신가요? 그렇다면, 그 분은 아마도 대전과 군산을 잇는 경계선 아래에 고향을 두신 분입니다. 즉 이 단어는 영남과 호남의 일부 지방에서만 사용되는 방언입니다. 그 북쪽이 고향이신 분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꽃은 '참꽃'이고 먹을 수 없는 꽃은 '개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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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 설명]
개나리와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봄이 온 것이다. ‘개나리’가 ‘개-’와 ‘나리’로 분석될 수 있을 단어라는 것쯤은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라는 동요를 부를 때부터 이미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개나리’는 15세기 문헌에서부터 등장한다. 그 형태도 오늘날과 동일한 형태다.
개나릿 불휘 디허 즙을 므레 프러 머그며 <구급간이방(1489년)>
그러나 ‘개나리 뿌리’는 약용으로 쓰이어 왔기 때문에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이전에도 ‘개나리’는 향약명이 나타나는 여러 문헌에 등장한다. 모두 한자를 빌어 쓴 차자표기 형태로 보인다.
犬伊那里根<향약구급방(1417년)>
犬乃里花<향약구급방(1417년)>
犬伊日<향약채취월령(1431년)>
‘犬伊那里(根)’, ‘犬乃里(花)’, ‘犬伊日’는 각각 ‘가히나리불휘’, ‘가히나리곶’, ‘가히날’을 표기한 것이다. ‘犬’과 ‘日’은 각각 한자의 훈으로 읽어서 ‘가히’와 ‘날’로, ‘伊’와 ‘那’와 ‘里’와 ‘乃’는 각각 음으로 읽어서 ‘ㅣ’, ‘나’, ‘리’, ‘나’로 해독된다. 그래서 앞의 두 개는 ‘가히나리’로, 그리고 맨 뒤의 것은 ‘나리’가 축약한 ‘가히날’로 해독할 수 있다. ‘犬伊’(‘伊’는 말음 첨기 표기), ‘犬’은 모두 동물의 하나인 ‘개’를, ‘那里’와 ‘乃里’는 각각 꽃 이름인 ‘나리’로 그리고 ‘日’은 마찬가지인 ‘나리’의 축약형인 ‘날’로 해독할 수 있다. ‘犬’을 ‘개’가 아닌 ‘가히’로 해독한 것은 15세기에 오늘날의 ‘개’는 그 형태가 ‘가히’였기 때문이다.
각시 가온 가히 엇게옌 얌 여 앒 뒤헨 아 할미러니 <월인천강지곡(1447년)>
狗 가히라 <월인석보(1459년)>
세 罪器옛 막다히와 매와 얌과 일히와 가히와 방하와 매와 <월인석보(1459년)>
가히 구(狗), 큰가히 오(獒), 가히 견(犬) 더펄가히 (厖) <훈몽자회(1527년)>
‘가히’가 ‘개’로 변화한 시기는 대개 16세기로 알려져 있다.
쇼과 과 양과 돋과 개과 서 뎐염병을 고툐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1541년)>
개 견(犬), 개 구(狗) <신증유합(1576년)>
개며 게 니 러도 다 그리홀 거시온 며 사 애녀 <소학언해(1586년)>
尊 손의 앏 개 구짓디 아니며 <소학언해(1586년)>
그러나 실제로 ‘가히’가 ‘개’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기는 15세기이다. 그렇지만 ‘가히’와 ‘개’의 출현 환경은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독립하여 쓰인 ‘가히’(犬)는 16세기에 가서야 ‘개’로 변하지만 파생어로 쓰인 ‘가히’는 15세기에 이미 ‘개’로 변화하고 있는 현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예문을 보면 그러한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집의 가히 삿기 나코 밥 어더 먹으라 나갓거 기와 그 개삿기 머규 흘 딕조 벌에며 개야미를 주 머기니 <번역소학(1517년)>
‘집의 개가 새끼를 낳고’의 뜻인 ‘집의 가히 삿기 나코’는 ‘가히’로 표기되면서, ‘개새끼’(강아지)의 뜻인 ‘개삿기’는 ‘가히삿기’가 아닌 ‘개삿기’로 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15세기의 ‘가히나리’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즉 15세기에 ‘개’(犬)의 뜻인 ‘가히’는 단독으로 쓰일 때에는 ‘가히’였지만, ‘가히+나리’의 파생 과정을 거치면 ‘개나리’로 변화하여 ‘개’가 ‘가히’로 쓰이던 시기에 ‘가히나리’는 이미 ‘개나리’로 변화하여 쓰이는 것이다. 15세기에 ‘가히나리’가 이미 ‘개나리’로 변화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접두사인 ‘가히-’나 ‘개-’는 어기인 ‘나리’에 그 의미를 첨가하여 ‘야생 상태의’ 또는 ‘질이 떨어지는’의 의미를 첨가시켜 준다. 따라서 ‘개나리’는 ‘질이 떨어지는 나리’를 말하는 셈이다. 어기인 ‘나리’는 오늘날의 ‘참나리’인 ‘백합’을 말하는 것이었다.
들에 나리츨 헴라 엇더케 자며 입부지도 안코 방적도 안이되 <예수셩교젼셔(1887년)>
‘참나리’의 꽃과 ‘개나리’의 꽃을 비교하여 본 사람이면 두 꽃이 색깔은 다르지만 그 모습은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결국 ‘참나리’에 비해 질이 떨어지는 꽃을 ‘개나리’라고 한 셈이다. 이 ‘개나리’는 ‘개리, 나리, 개너리’ 등의 다양한 표기가 보이지만, 오늘날에는 모두 ‘개나리’로 통일되었다.
개너리곳(捲丹花) <역어유해(1690년)> 개리곳(辛夷花) <방언유석(1778년)> 나리 <한불자전(1880년)>
아처럼 ‘참’과 ‘개’가 대립되어 사용되는 어휘가 제법 있어서 ‘참꽃’ 대 ‘개꽃’, ‘참두릅’대 ‘개두릅’, ‘참가죽’ 대 ‘개가죽’ 등이 있다.
'고독'의 본래 뜻
여러분! 고독할 때가 많습니까? 그래서 '고독'을 씹는다는 말을 곧잘 하지요?
이 '孤獨'은 물론 한자말입니다. '외로울 고, 홀로 독'이지요. 그러나 어느 때가 외로울 때고, 어느 때가 홀로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고독한 사람은 부모를 여의고, 짝을 잃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고아(孤兒)'니 '독신(獨身)'이니 하는 말을 하지요.
정말로 '고아'와 '독신'을 겸하였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때가 진실로 고독한 때입니다.
그러니 함부로 '고독하다'고 말씀하시지 마십시요. 그리고 고독한 척도 하지 마십시요. 물론 오늘날에는 그 뜻이 바뀌었지만 말입니다.
'마땅하다'의 어원
'마땅하다'는 "잘 어울리다, 알맞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따위의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우리가 많이 사용하고 있고, 또 그 어감이 꼭 우리 고유어인 것처럼 생각되어서, 이 단어에 한자가 있다고 한다면, 도무지 믿을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마'가 한자일까? '땅'이 한자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말과 그 표기법이 큰 변화를 겪어 왔기 때문에 수긍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의 예들에 대한 설명을 들어 보시면 수긍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마땅하다'는 원래 '맛당하다'로 또는 '맛당하다'로 표기되었습니다. 이것은 '맞다'의 어간 '맞-'에다가 이 '맞다'와 같은 뜻을 가진 한자 '當(마땅 당)'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말입니다. 우리 고유어에다가 같은 뜻을 가진 한자를 붙여서 만든 단어이지요.
이처럼 우리 고유어에 한자가 붙어서 된 단어는 꽤나 있습니다. '굳건하다, 튼실하다, 익숙하다' 등이 그러한 예들입니다. '굳건하다'는 고유어인 '굳다'의 어간 '굳-'에 한자 '健'(굳셀 건)이 합쳐진 단어이고요, '튼실하다'는 '튼튼하다'의 '튼'에 한자 '實'(열매 실)이 합쳐져서 된 말이지요. 그리고 '익숙하다'도 '익다'의 '익-'에 한자 '熟'(익을 숙)이 합쳐진 말입니다.
이렇게 고유어에 고유어와 뜻을 같이 하는 한자가 붙어서 된 단어를 우리는 동의 중복으로 된 복합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늘 사용하는 단어를 보면 한자어와 고유어를 합쳐서 쓰는 말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우리가 보통 드는 예는 '처가집, 역전앞, 무궁화꽃' 등 정도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만, 실상은 그 이상입니다. 그 예가 무척 많음에 놀라실 것입니다.
다음에 그 일부 예를 들어 보이도록 할 테니까, 하나하나 잘 분석해 보세요. 같은 뜻을 가진 한자와 고유어가 어떻게 섞여 있는지를요.
담장 바람벽 어떤 일미인 두견접동
장림숲 학두루미 옷칠 모래사장
손수건 속내의 새신랑 긴 장대
큰 대문 어린 소녀 젊은 청년 늙은 노인
빈 공간 넓은 광장 같은 동갑 허연 백발
누런 황금 배우는 학도 둘로 양분하다 미리 예습하다
다시 재혼하다 서로 상의하다 스스로 자각하다 배에 승선하다
자리에 착석하다 분가루 일전 한푼 자식새끼
외가집 면도칼 고목나무 진화되다
소급해 올라가다 유언을 남기다 상용하여 써 온다 피 해를 입는다.
'곶감'의 어원
'곶감'에 얽힌 이야기는 무척 많습니다. 호랑이가 자기보다도 무서운 것으로 알았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속담도 많지요.
'곶감이 접 반이라도 입이 쓰다'(마음이 언짢아서 입맛이 쓸 때), '곶감 꼬치에서 곶감 빼먹듯'(알뜰히 모아 둔 것을 힘들이지 않고 하나씩 빼어 먹어 없앤다는 뜻), '곶감죽을 먹고 엿목판에 엎드러졌다'(연달아 좋은 수가 생겼다는 뜻) '곶감 죽을 쑤어 먹었나'(왜 웃느냐고 핀잔 주는 말) '당장 먹기엔 곶감이 달다' 등등.
이 '곶감'의 '감'은 물론 과일의 하나인 '감'이지요. 그리고 '곶'은 '곶다'의 어간 '곶-'입니다. '곶다'는 현대국어에서는 된소리가 되어 '꽂다'로 되었지요. 그래서 일부 방언에서는 '꽂감'이라고도 하지요.
그러니까 '곶감'은 꼬챙이에 꽂아서 말린 감을 말합니다.
'따발총'의 어원
6.25를 겪으신 분은 '따발총'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소련식 기관단총이지요. 이것을 보통 '多發銃'(많을 다, 필 발, 총 총)이라고 해석해서 한자어인 줄로 알고 계신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국어사전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을 정도이니까요.
그래서 '그 사람 말은 따발총 같애.' 라고 말하여 마치 속사포를 일컫는 것으로 이해하여 지금도 사용하고 있지요. 그러나 그것은 잘못 알고 계신 것입니다.
'따발총'을 직접 보신 분이 계신가요? 탄창이 어떻게 생겼던가요? 마치 '또아리'(물동이 등을 머리에 일 때에 머리 위에 얹도록 만든, 짚으로 둥글게 틀어서 만든 물건)처럼 생기지 않았던가요? 이 '또아리'를 함경도 방언에서 '따발'이라고 합니다('또아리'를 '또바리'라고 하는 방언도 있습니다).
함경도에서 소련식 기관단총에 '또아리'와 같은 것이 달렸다고 하여, 이 총을 그 방언에 따라 '따발총'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따발'이 한자의 '다발'과 비슷하니까, '다발총'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지요.
'썰매'의 어원
겨울이 되면 썰매를 타고 놀곤 하던 생각이 나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지금은 시골의 깊은 산촌에나 가야 어쩌다 발견하는 것이어서 젊은 사람들 중에는 이 '썰매'를 구경도 못한 사람이 꽤나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 어느 텔레비젼에서 국민학교 학생에게 '인두'를 보이며 이것이 무엇에 썼던 것인 것 같으냐고 물으니까, 한참 들여다 보다가 '화살촉'이 아니냐고 되묻는 광경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어린이들에게 '썰매'를 보이면, '나무깔판'이 아니냐고 되물을 것 같습니다. '
썰매'는 엉뚱하게도 한자어입니다. 즉 '雪馬'(눈 설, 말 마)의 음이 변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눈 위에서 달리는 말'이란 뜻이지요. 어떻습니까? 그럴 듯하게 이름을 붙였지요? 이렇게 우리 선조들은 슬기롭게 이름을 붙였었습니다.
'우물'의 어원
요즈음이야 참 좋은 세상이지요.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쏟아져 나오니까요. 옛날에야 어디 그런 일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나요? 모두 동네 우물에 가서 물을 동이에 이고 오거나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더군다나 남자가 물을 길어 오는 것은 금물이어서 여자분들이 꽤나 고생을 했었습니다.
'우물'은 어떻게 생겨난 말일까요? '우물'의 '물'은 알겠는데, '우'가 무슨 뜻인지 모르시겠지요? 그런데 그것은 '우'가 아니라 '움'입니다. 그러니까 '움물'이 '우물'이 된 것입니다. '움'에서 나오는 '물'이란 뜻입니다. 지금도 '우물'을 '움물'이라고 하는 방언도 있습니다.
지금도 '움'이란 말은 많이 쓰이는 단어입니다. '움'을 파고 김치독을 묻거나, 움에다가 천으로 가려 집을 만들면 '움막집'이 됩니다.
'원숭이'와 '잔나비'의 어원
우리네 동양 사람들은 천간(天干)을 따져서 나이를 무슨 띠로 말하곤 합니다. 사람의 난 해를 지지(地支;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속성으로 상징하여 말하는 것이지요.
지지 중에 '申' 자가 붙은 해(예컨대 甲申년)에 태어난 사람을 '원숭이 띠'라고 하지만, 이것은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고, 옛날 노인들은 '잔나비 띠'라고 하셨습니다. 왜 원숭이를 '잔나비'라고 했을까요?
우리 말에 옛날에는(17세기까지도) '원숭이'라는 단어가 없었습니다. 18세기에 와서 한자어인 '猿猩이'(원숭이 원, 원숭이 성)가 생겨났고 '성'의 음이 '승'으로 변하여('어'가 '으'로 발음되는 경우는 많지요. '어른'도 '으른'이라고 하지 않나요?) '원승이'가 되고 이것이 또 변하여서 오늘날 '원숭이'가 된 것입니다.
원숭이의 고유어는 '납'이었습니다. 그래서 원숭이를 뜻하는 한자 '猿'의 새김도 '납 원'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재다'(동작이 날쌔고 재빠르다)의 형용사형 '잰'이 붙어서 '잰나비'가 되고 이것이 음운변화를 겪어서 '잔나비'가 된 것입니다. 원숭이가 재빠르긴 재빠르지요 (여기의 '재빠르다'도 '재다'와 '빠르다'가 합쳐진 말이군요). 아직도 방언에서는 원숭이를 '잰나비'라고도 하지요.
* 해설: 홍윤표(연세대 국문학과 교수), 편집: 강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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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국어소식 2002년 9월호에 실린 내용, 필자 윗글과 동일)
우리 동양 사람들은 천간(天干)을 따져서 나이를 띠로 말하곤 한다. 사람이 태어난 해를 지지(地支: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의 속성으로 상징하여 말하는 것이다. 지지 중에 '신(申)' 자가 붙은 해(예컨대 '甲申'년)에 태어난 사람을 '원숭이띠'라고 하지만, 이것은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고 노인들은 '잔나비띠'라고 한다. 동물원에 가서 직접 그 동물을 가리킬 때에는 '원숭이'라고 하면서도, 유독 띠를 따질 때에는 '잔나비'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어 관습일까? 뜻이 다르거나 뜻이 같더라도 사용되는 환경에 따라 달리 사용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원숭이를 '잔나비'라고 했을까?
옛 문헌에는 17세기까지도 '원숭이'라는 단어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 이전에는 원숭이를 '납'이라고 하였다. "훈민정음 해례"(1446)에 '납 爲猿'이라는 기록이 최초의 용례다. '납'은 16세기 말까지 쓰이다가 17세기 초에 와서 '납'은 사라지고 '납'이 등장한다.[한문 진납 <"동의보감"(1613)에서>] '납'에 접미사 '-이'가 붙어 '납이' 또는 '나비'로도 쓰이었는데, 대개 18세기 이후부터이다.
猿 큰 나비 猴兒 나비<"동문유해"(1748)에서>
猢猢 나비<"방언유석"(1778)에서>
獼猴 나비猿 원승이 <"광재물보(?)에서>
여기에서 '납'은 분명히 ''과 '납'('나비' 또는 '납이')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 동사 어간 '-'에 관형형 어미 '-ㄴ'이 통합된 것인지, 아니면 명사 ''에 속격조사 'ㅅ'이 붙은 ''이 그 뒤에 오는 '납'의 'ㄴ' 때문에 동화되어 ''으로 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잰납'은 원숭이를 뜻하는 '납'에, '재빠르다'나 '잽싸다'의 '재'처럼 '민첩하다'는 의미를 가진 '재'의 관형형 '잰'이 붙어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민첩하다'는 뜻을 가진 동사 어간은 '지-'가 아니라 '재-'이어서 그렇게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 오히려 명사 ''에 속격 조사 'ㅅ'이 붙은 것으로 해석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 '지'는 '잿빛'의 '재'로 판단된다. 원숭이의 털 색깔이 '잿빛'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은 '납'이 '납'으로도 나타나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이 '진납'은 17세기 초에 간행된 중간본 두시언해에 나타난다. ''는 '믈, 블, 빗' 등으로 많이 나타나서 이러한 가능성을 높여 준다.
히 그니 나븨소리 섯겟고 <"중간두시언해"(1632)의 권5에서>
이 '나비'가 오늘날 '잔나비'로 굳어졌다. 문세영 선생의 "조선말사전"에도 '잔나비'는 '잣나비'를 찾아가 보라는 표시가 있는 것을 보면, '잔나비'가 된 때는 20세기의 40년대로 보인다.
'원숭이'란 의미를 가진 단어로 옛 문헌에 보이는 형태들은 '원승이', '원이', '원숭이' 등이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원승이'이고, 다음에 '원슁이', '원숭이' 순으로 등장하여서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다. '원승이'가 처음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기는 18세기 말이다. '원이'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나타나는데, 아마도 한자 성(猩)에 견인된 것으로 판단된다. '원숭이'는 20세기에 와서야 보이기 시작한다. '원숭이'는 18세기에 와서 한자어인 '원(猿猩)이'가 생겨났고 '(猩)'의 음이 '승'으로 변하여('초싱'이 '초승달'로 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원승이'가 되고 이것이 또 변하여서 오늘날 '원숭이'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마 나귀 원승이며 비들기와 게우 오리 가디가디 금슈 되야 욕기 즐겨고 <'인과곡'(1796)에서>
猿申 猿狌 원이 <"국한회어"(1895)에서>
猿 원숭이 원 <"부별천자문"(1913)에서>
'원숭이'를 뜻하는 한자에는 '원(猿)', '미(獼)', '후(猴)', '원(猨)', '호(猢)', '손(搎)', '성(猩)' 등이 있는데 그들이 크기에 따라 달리 명칭을 붙인 것인지, 아니면 색깔에 따라 달리 분류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대신 이들을 구분하여 표시한 몇몇 문헌에서는 '성(猩)'은 '성성이'를, '원(猨)'은 '큰 원숭이'를, '후(猴)'는 '보통 원숭이'를, '미후(獼猴)'는 '진나비'라고 하여 '원(猿)'은 '원숭이'라 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 그렇게 정확하게 구분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가게'의 어원
요즈음은 일상생활품을 어디서 사오나요? 옛날에는 '가게'에 가서 사 왔는데, 요즈음은 '슈퍼'에서 사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가게'라고 하는데, 저의 아들들은 꼭 '수퍼'라고 합니다.
한번은 '슈퍼마켓트' 주인이신 할머니를 '수퍼 할머니'라고 해서 저는 어느 초능력을 가진 할머니가 계신 줄 알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옛날의 '가게'는 물건을 널판지로 만든 시렁 위에 임시로 진열하여 놓고 파는 곳을 말합니다. 요즈음도 시골에 가면 가끔 볼 수 있지요.
그런데 본래 '가게'(옛날에는 '가개')란 말은 '상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렁, 선반 또는 차양을 뜻하던 것으로 행인이 앉아 쉬게 하던 평상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임시로 노점과 같은 것이 생기자 이 '가게'가 점차 상점의 의미를 지니게 된 것입니다.
'수저'는 '숟가락'+'젓가락’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 손으로 먹지 않고 도구를 사용합니다. 대표적인 도구가 바로 수저입니다.
그런데 수저라고 하는 단어는 요즘 두 가지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즉 숟가락과 젓가락을 합쳐서 부를 때도 수저라고 하지만 숟가락만을 가리킬 때도 수저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어원을 따져볼 때, 수저는 숟가락을 뜻하는 '술'과 젓가락을 뜻하는 저(箸)가 합쳐져서 생긴 말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원래 뜻은 '숟가락과 젓가락'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숟가락만을 가리킬 때도 수저라고 하게 되었는지 저는, 추측은 할 수 있지만, 아직 확실하게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젓가락'이란 말은 한자어 箸와 '가락'이 합쳐지고 중간에 사이시옷이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나 숟가락은 '수+ㅅ+가락'이 아니라 '술+가락'입니다. 그래서 젓가락은 적을 때 받침에 ㅅ을 쓰지만, 숟가락은 숫가락으로 쓰지 않고 받침에 ㄷ을 쓰게끔 맞춤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술'은 '밥 한 술' 할 때의 그 술입니다.
우리는 밥 외에도 국이나 탕 종류의 음식을 많이 먹습니다. 그래서 식사할 때 젓가락보다 숟가락을 더 많이 쓴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중국이나 일본은 우리와 다른 것 같습니다. 즉 숟가락은 많이 사용하지 않고 젓가락을 주로 사용하여 음식을 먹습니다. 이런 차이가 '수저'라고 말의 의미 변화나 용법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양말'의 어원
여러분이 신고 다니는 '양말'이 한자에서 온 말이라고 하면 깜짝 놀라시겠지요.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한자어입니다. 원래 버선을 한자로 '말'이라고 했습니다. '버선 襪'자이지요. 그런데 서양에서 이 버선과 비슷한 것이 들어 오니까 버선을 뜻하는 '말'에 '양' 자를 붙여서 '양말'이라고 했습니다. 버선하고 양말이 이렇게 해서 달라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서양에서 들어 왔다고 해서 '양(洋)' 자를 붙이거나 '서양'을 붙여 만든 단어들이 꽤나 있습니다. 그 예가 무척 많음에 놀라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뜻도 잘 모르게 변한 것들도 많습니다. 몇 가지를 예를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양철'(또는 '생철')
양철도 '철'에 '양' 자가 붙어서 된 말입니다. 쇠는 쇠인데, 원래 우리가 쓰던 쇠와는 다른 것이 들어오니까 '철'에 '양'자만 붙인 것이지요. 더 재미있는 것은 이 '철'에 '서양'이 붙어서 '서양철'이 되고, 이것이 다시 변화되어서 오늘날에는 그냥 '생철'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2. 양동이
국어에 '동이'라고 하는 것은 물 긷는 데 쓰이는 질그릇의 하나인데, 서양에서 비슷한 것이 들어 오니까 여기에 '양'자를 붙여 '양동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입니다.
3. 양순대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말인데, 서양에서 '소시지'가 들어오니까 '순대'에다가 '양'자를 붙여 '양순대'라고 했는데, 이것을 쓰지 않고 '소시지'라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되살려 쓰고 싶은 단어입니다. 중국의 우리 동포는 이 '소시지'를 '고기순대'라고 하더군요. 너무 잘 지은 이름이 아닌가요?
4. 양은
양은은 '구리, 아연, 니켈을 합금하여 만든 쇠'인데, 그 색깔이 '은'과 유사하니까 '은'에 '양'자를 붙여 '양은'이라고 한 것입니다.
5. 양재기
'양재기'는 원래 '서양 도자기'라는 뜻입니다. 즉 '자기'에 '양'자가 붙어서 '양자기'가 된 것인데, 여기에 '아비'를 '애비'라고 하듯 '이' 모음 역행동화가 이루어져 '양재기'가 된 것입니다.
6. 양회 (洋灰)
이 말도 앞의 '양순대'와 같이 거의 쓰이지 않는 말입니다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세멘트'를 '양회'라고 했습니다. '회'는 회인데 서양에서 들여 온 회라는 뜻이지요. 이 말도 다시 썼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7. 양행 (洋行)
이 말도 오늘날에는 쓰이지 않는 말이지요. 서양에 다닌다는 뜻으로 '다닐 행'자를 붙인 것인데, 이것이 무역회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유한양행'이라는 회사가 그렇게 해서 생긴 것이지요.
이 이외에 '양'자가 붙어서 만든 단어들을 몇 가지 더 들어 보겠습니다.
양복, 양장, 양궁, 양단, 양담배, 양란, 양배추, 양버들, 양식, 양옥, 양장, 양잿물, 양주, 양초, 양코, 양파, 양화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