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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산 눈꽃산행
2008. 12. 20. 명지산 눈꽃산행을 다녀왔습니다. 처음 서울을 출발할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멋진 눈꽃산행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멋진 눈세상을 맛보고 왔지요. 2008년의 마지막 산행, 눈꽃산행을 같이 한 사람들은 저와 ALP 동기들인 백상무와 이상무입니다. 처음 11월 초에 산행계획을 잡았다가 다들 바쁜 일정에 다시 날 잡는다는 것이 이렇게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 주초부터 감기 몸살 기운이 있는데 계속 쉬지를 못하여 백상무에게 넌지시 감기 몸살 얘기를 하니, 백상무 왈, 산에 올라갔다 오면 다 뚫릴 거라고 합니다. 으~음 -_-;; 할 수 없이 출발해야만 하였습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는 비가 오더니 청평을 지나면서는 진눈깨비로 변하고 가평으로 다가서니 완전 눈으로 변하였습니다. 그리고, 경춘가도에서 75번 국도로 갈아타니 길은 완전 눈길로 변하여 조심조심 산행 출발지인 가평군 북면 익근리로 다가가는데 차 한 대는 눈길에 미끄러져 길옆 가로수를 들이박고 서있더군요. 올해 첫 눈길 운전이라 조심조심 운전하여 가니 우리가 산행을 시작할 익근리 계곡이 나타납니다. 이상무는 이 75번 국도를 따라 좀 더 올라가면 석룡산으로 이어지는 일제시대 백백교의 본거지로 유명한 조무락골이 나온다고 합니다.
백백교 하니 사법연수생 시절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백백교 교주 전용해의 머리가 포르말린 용액의 유리병 속에 보관되어 있던 것이 기억나는군요. 1937년 당시에 수많은 신도들을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라 범죄형 머리의 표본으로서 보관해놓았다고 하였었지요. 일제시대부터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관되어 있던 것에는 명월관 기녀의 거시기도 있었습니다. 이 기녀와 잠을 잔 남자들이 이 기녀에게 남자의 정을 모두 빨려 죽을 정도로 이 기녀의 거시기가 그렇게 명기(名器, 속칭 긴자꼬)였다는군요. 그런데, 이 기녀도 명기를 너무 사용하다가 일찍 죽었는데, 이 기녀가 죽은 후 그러한 명기를 그냥 썩어 없어지게 하는 것이 아까웠는지 그 명기 부분만 오려서 마찬가지로 보관하고 있었지요. 명기라는 것이 실제 작동을 해봐야 아는 것이지, 그렇게 보관을 해놓으니 겉으로는 그저 평범한 살조각에 불과하더군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명지산을 바라보니 세상은 온통 눈세상입니다. 몸 아프다고 오지 않았다면 정말 후회할 뻔 하였습니다. 명지산(明智山) - 지혜가 밝게 빛난다고 하여 명지산인가요? 이제 저도 저 산 안으로 들어가면 뭔가 밝게 빛나는 지혜를 얻고 내려올지 모르겠습니다. 9:30부터 산행을 시작했는데 눈이 오고 난 후 저희가 처음 산에 발을 디딛는 것입니다. 아무도 발길을 내지 않은 산길을 걷는 기분 참 좋더군요. 눈꽃산행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무에 눈꽃이 피고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백색의 세계에 들어섰을 때 그 기분 말 안 해도 잘 아시겠지요?
9:30경에 산으로 들어서는데 입장료를 받더군요. 제가 '아니? 국립공원도 입장료를 없앴는데 여긴 왜 입장료를 받지요? 안에 유명한 절이라도 있나요?' 관리직원 왈, "이곳은 가평군 군립공원인데 국립공원처럼 예산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입장료를 받아야 합니다." 말하는 투로 보아 저같이 물어보는 등산객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일일이 답하기 귀찮으면 아예 매표소 앞에 안내문을 붙여놓던가... 갖고 있던 휴대용 GPS를 보니 현재 고도 200m. 명지산의 높이가 1,267m니 이거 수직거리만도 1,067m나 되는 산이라 웬만한 강원도의 산보다 등산 높이는 높다고 할 것입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승천사(昇天寺)라는 절의 일주문이 나오는데, 일주문을 아예 등산로상에 세워 등산객들은 싫든 좋든 일주문을 통과해야 하겠습니다. 이 문을 통과하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나요? 이름은 거창하게 하늘로 올라가는 절인데, 절은 조그만 게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별 볼 것은 없는 절입니다. 그런데, 절 마당에 서 있는 입상(立像)의 미륵불이 눈길을 끕니다. 보관(寶冠)을 머리에 이고 있는 미륵불의 입술이 빨갛습니다. 하얀 몸체에 더군다나 주위의 순백색의 세상에 대조되어 빨간 입술은 더욱 도드라지더군요.
아! 이런 입술을 다른 절에서도 본 적이 있습니다. 안성 칠장사 나한전의 나한들의 입술은 이 부처보다 더 새빨갛지요. 북한산 승가사 약사전의 승가대사의 입술은 또 어떻던가요? 세검정 홍제천변의 옥천암 보도각(普渡閣)의 백불(白佛)도 눈부시게 흰 몸체로 인해 빨간 입술이 더욱 도드라지게 보이지요. 칠장사 나한전의 나한들의 경우 어사 박문수의 전설로 인해 수험생 부모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승가사 약사전의 승가대사상의 경우 세종대왕비 소현왕후가 이곳 승가굴의 석간수(石間水)를 마시고 속병을 고쳤다고 하여 병 고침을 받고자하는 사람들의 기도의 발길이 이어지고, 보도각 백불에게도 이성계가 도읍을 정하면서, 또 고종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기도를 하였다고 하여 유명한데 그러한 유명세를 타고자 이곳 석불도 빨간 루즈를 칠한 것인가요?
하얀 눈들이 소리까지 빨아들였는지 명지산은 조용하기만 합니다. 우리가 지나가는 양옆의 나무와 관목들도 하얀 몸으로 말없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 명지산 눈길에 첫발을 디디고 있다고 흐믓해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발자국이 나타납니다. 이런! 훗!훗! 사람 발자국이 아니라 새 발자국입니다. 등산로를 가로질러 새발자국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녀석! 좋은 날개 두고 왜 여기에 우리보다 앞서 발자국을 내노? 그런데, 더 나아가다 보니 이번에는 더 큰 발자국입니다. 우린 멧돼지 발자국이다, 고라니 발자국이다로 의견이 분분합니다. 녀석들! 눈이 오니 먹이 찾기도 더 힘들겠죠?
명지폭포를 좀 지나 우리는 지금까지의 계곡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틀어 능선을 향해 오릅니다. 완만하던 계곡길을 걷다가 갑자기 가파른 길을 오르니 내 입은 헉헉대며 하얀 김을 내뿜습니다. 눈도 계곡길보다 두터워져 결국 우리는 오르다가 아이젠과 각반(스팻츠)을 꺼내 찹니다.
12:15경 우리는 드디어 능선 위로 올라섰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동안 눈에 묻혀 아늑하고 조용한 눈세상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능선 위로 오르니 건너편 적목리에서부터 싸늘한 바람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올라옵니다. 우리는 서둘러 바람막이 옷을 하나 더 꺼내 입습니다. 저는 두건까지 꺼내 머리에 쓰며 눈과 코만 내놓고, 장갑도 더 두터운 것으로 갈아끼웠습니다. 아까 올라올 때는 괜히 배낭만 무겁게 이것들을 가져왔다고 툴툴댔는데 이거~ 안 가져왔으면 큰일 날 뻔 했네요.
능선에 오르니 당연히 반대편 세상도 보이겠지요? 우리가 차를 타고 왔던 75번 국도 건너편으로 경기도 최고봉 화악산(1468m)이 그 앞에 아우 중봉(1450m)을 앞세우고 그 웅장한 몸체를 우리에게 자랑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포천 이동에서 백운산 능선을 탈 때에 왼편으로 건너다 보던 화악산을 지금은 명지산 능선을 오르며 오른쪽으로 보고 있네요.
이제 이 능선을 따라 1.1km 정도만 오르면 명지산 정상입니다. 그런데, 이 1km 남짓한 거리가 이번 산행에서 제일 힘든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아! 글쎄! 바람이 눈들을 능선 위로 밀어붙여 여태까지의 눈길과는 비교가 안 되게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데, 심한 곳은 허벅지까지 빠집니다. 자연 한발 한발 우리는 느리게 전진하는데, 단지 느리게만 전진하는 것에 그친다면 시간만 좀 더 걸릴 뿐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는데, 발이 푹푹 빠지면서 미끌미끌하며 힘도 많이 듭니다. 제가 이럴진대 러셀한다고 앞에서 먼저 걷는 백상무는 더 힘이 들겠지요.
러셀이라고 하니까 등산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는데, 러셀이 제설차(除雪車)를 발명한 미국인의 이름이라는군요.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정상을 향해 오르는데, 뒤에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까 밑에서 혼자 지팡이도 없이 명지산을 찾아와 지팡이 어디 구할 데 없을까 찾아보던 등산객입니다. 끝내 지팡이 없이 산을 오르고 있군요.
당연히 건너편 화악산과 중봉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남서쪽으로 운악산의 멋진 자태가 들어옵니다. 그런데, 운악산 뒤로 멀리 보이는 산은 무엇입니까? 자세히 보니 산 모양이 북한산과 도봉산입니다. 야~아~ 이 멀리 가평군 북면에서 북한산과 도봉산을 볼 수 있을 줄은 전혀 생각도 못하였습니다.
남동쪽으로는? 이곳으로도 멀리 양평의 용문산이 보입니다. 용문산에서 왼쪽으로 능선을 따라 가다 뾰족 튀어 나온 산은? 보나마나 '한국의 마터호른'이란 별명이 붙은 백운산이지요. 오늘 눈들이 우리를 위해 멋진 눈세상만 연출한 것이 아니라 내리면서 공기중의 먼지까지 안고 내려와 우리에게 이렇게 뜻하지 않게 북한산과 용문산까지 볼 수 있게 해주었군요. 그런데, 이생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한 길수와 소정의 전설로 유명한 연인산(戀人山)은 명지2봉에 가려서인가 어느 것이 연인산인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정상에 계속 머무르려니 불어오는 바람에 몸이 점점 더 식습니다. 아쉽지만 어쩌겠습니까? 우리는 아쉽게 정상과 작별인사를 하고 익근리 계곡에서 곧바로 정상으로 치닫는 길로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이쪽 길도 아무런 발자국이 찍히지 않는 순결의 길인데, 익근리 계곡에서 곧장 정상으로 뻗어올라오는 길이라 매우 가파릅니다.
우린 조금 내려가다 약간 평평한 곳을 발견하고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습니다. 벌써 시간이 1:40경이 되는데 체력을 보충해야 이 가파른 길을 다리로 잘 버티며 내려가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여기서 점심을 먹는다고 하자 우리 뒤따라 내려오던 나홀로 등산객도 지팡이도 없이 혼자 내려가기가 뭐했는지 자기도 우리를 따라 점심 보따리를 풉니다.
저는 낚시꾼들이 많이 쓰는 접이식 의자를 꺼내어 앉습니다. 눈꽃산행 때 어디 앉으려면 이게 최고입니다. 쯧!쯧! 이게 없는 백상무와 이상무, 엉덩이로 직접 차가운 눈의 감촉을 느끼려니 시원하시겠지요? 백상무가 노련하게 버너를 꺼내어 물을 끓입니다. 컵라면 물을 끓이는 것이지요. 겨울산행에 라면 국물, 이거 왓따지요.
그런데, 의자에 계속 앉아있으려니 발이 시려옵니다. 계속되는 눈길에 제 등산화 속으로 물이 침투해 들어온 거죠. 각반은 이상이 없는데 등산화가 방수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백상무가 안 되었다는 눈길로 "방수 등산화 하나 장만하시죠?" 하! 졸지에 방수 등산화 하나 없는 녀석이 되었읍니다그려. 사실 저는 등산화가 4켤레나 됩니다. 여름 경등산화, 릿지화, 복숭아뼈를 덮는 목이 긴 등산화, 그리고 지금 신고 있는 등산화. 저는 이 녀석도 방수가 될 걸로 생각했는데, 녀석이 나를 실망시킬 줄은 몰랐습니다. 목이 긴 등산화를 신고 왔어야 했는데...
이제 점심도 먹었으니 내려가야겠죠? 가파른 길을 내려가면서 여름에 이쪽으로 올라오려면 고생 많이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팡이가 없는 나홀로 등산객은 아까 올라올 때는 달리 잘 내려가지 못합니다. 그렇죠. 눈 덮인 이런 가파른 길을, 더군다나 눈 밑에는 여기 저기 얼음이 도사리고 있는데 지팡이 없이 이런 길을 내려간다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겠지요. 결국 그 나홀로 등산객, 점점 우리와 멀어지더니 시야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길을 내려가다가 백상무가 한번 와장창 엉덩방아를 찧습니다. 저는 그 참에 내가 앞장을 서겠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백상무를 생각한 것이라기보다는 내가 앞장서서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밟고 내려가고픈 생각이었지요. 가파른 길을 내려가자니 내가 파헤치는 눈길에서 튀어나온 조그만 눈덩이가 옆에서 굴러 내려가며 점점 커져갑니다. 아하! 눈덩이처럼 커져간다는 것이 저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겠구나. 요즈음 가파른 환율 상승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환헷지 상품중에 '스노우볼'이란 상품이 있지요? 스노우볼이라고 이름 붙일 때는 눈덩이 불어나는 것처럼 이익을 보라고 이름 붙였을 텐데, 정작 지금 스노우볼에 가입한 기업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에 정신이 없다고 합니다.
한참 내려가는데 앞에서 한 등산객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등산객이 올라오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도 이젠 끝났다는 얘기겠지요? 지금 정상까지 올라가는 것은 무리인데... 드디어 계곡길로 내려와 걷다보니 아까 우리가 능선으로 꺾어 올랐던 길을 다시 만나고, 다시 길을 걷자니 아까 지나쳤던 명지폭포가 나옵니다. 폭포로 향하는 계단길을 내려가면서 내가 '이거 이따가 또 이 길을 올라와야 되는 것 아냐?' 했더니, 이상무는 이렇게 다 내려와서 한번 더 오르막길을 걸어 다리를 풀어주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하긴 이 험한 명지산을 전에 다리에 모래주머니 차고 오른 산사나이였으니 이 정도는 다리 푸는 정도에 불과하겠죠.
명지폭포는 옛날 명주실 한 타래를 모두 풀어도 그 끝이 바닥에 닿지 않았을 정도로 폭포가 깊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것이라고 하네요. 조심조심 폭포로 접근하니 겨울이라 물이 많이 줄었을 텐데도 꽤 깊어 보이네요. 깊은 물이라 물은 얼지 않아 하얀 눈세상에서 혼자 짙은 물색을 드러내고 있는데, 저는 여름날의 웅장한 소리가 사라진 폭포 앞에서 묘한 정밀감(靜謐感)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시금 낑낑대며 계단을 올라와 가던 길을 내려가니, 우리가 내려가는 계곡길 저 앞에 아까 올라갈 때 보았던 서있는 부처님 뒷머리가 보입니다. 고생스럽던 눈길산행도 끝나가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4:30경에 아까 돈을 내고 지나갔던 매표소를 통과하는 순간은 장장 7시간의 산행을 마쳐가는 순간입니다. 원래 등산지도상에는 5시간 20분 걸리는 길을 우리는 눈길에 속도를 내지 못하여 7시간이나 걸렸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우리는 오랫동안 눈꽃세상을 뒹굴다가 내려왔다는 얘기겠지요. 뒤돌아 명지산 정상을 보자 하나 녀석은 계곡 저편으로 살짝 머리를 감추고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2008. 12. 20. 눈부신 눈의 세계에서 뒹굴다 내려온 날. 이 날은 아름다운 눈꽃 산행으로 오랫동안 제 기억에 남는 하루가 되었습니다.
첫댓글 덕분에 등산 잘 했습니다 올해도 건강하셔서 좋은 소식 많이 전해 주세요
변호사님은 국내의 명산 은 다가보신것 같으세요ㅎㅎ혼자만 좋은산행 하시지 말고 어룰사랑 회원님들도 좀 끼워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