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날에 듣는 합창곡
2024년 9월 19일 수요일 예배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란 제목의 설교 영상에 닉네임 별밤지기의 댓글이 달렸다. 그는 우리나라가 제사장 나라의 복을 받고 문화와 군사강국이 된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는 베르디(Giuseppe Verdi)가 작곡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영상으로 올리며 제사장 나라의 복을 잃어버리면 이방 땅에서 망국의 한을 품고 포로가 되어 고향을 그리워하는 디아스포라 이스라엘 민족의 비극을 반복할 수 있다면서 이 곡을 감상하며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했다. 이 영상은 2002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합창단의 공연실황으로 1842년에 초연된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제3막에 나오는 아름다운 노래이다. 나부코(Nabucco)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을 이탈리아어로 나부코도노소르(Nabucodonosor)의 줄임말이다.
하나님은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이끄시면서 제사장 나라의 비전을 보여주셨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6). 제사장 나라는 두 가지의 복이 약속되어 있는데 하나는 경제부국이고 또 군사강국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이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너는 통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신명기 15:6). 돈을 꾸어주는 나라(경제부국), 통치하는 나라(군사강국)의 백성이 적국의 포로가 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되지 못한다면 돈을 꾸어야 하는 빈곤국가로, 지배를 받아야 하는 약소국가로 전락하고 온 국민은 포로처럼 살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진정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가 되도록 다윗시대 군사 강국의 복을, 솔로몬 시대 경제 부국의 복을 주셨다. 그런데 솔로몬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경제적 이득을 위하여 이방 나라의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면서 사실상 우상숭배를 허용했다. 그 후 솔로몬 왕이 죽자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되었는데 이것이 제사장 나라의 비전을 포기한 나라가 망국으로 가는 오페라의 서막이 될 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 제국에게, 남유다는 주전 587년에 바벨론 제국에게 망했다. 그때 유다 민족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벨론으로 끌려갔다가 70년 후에 다시 돌아와야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을 믿지 않고 도망가다가 모두 죽었고 오직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만 살아서 주전 534년경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을 안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포로의 생활은 매우 고단하고 절망적이다. 포로로 끌려온 그 백성들은 바벨론 강변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다(시 137:1). 버드나무에 수금을 걸고 지배자들이 노래를 시켰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조국을 잊고 노래나 부르며 그들을 기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멸망의 땅 바벨론에게 보복하는 사람, 그들의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사람의 복을 노래했다(시 137:8~9). 이처럼 포로로 연명하며 고통의 세월을 보냈으니 이 얼마나 처참하고 슬픈 역사였던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바벨론 강변에서 고향의 산들바람 내음을 그리워하며 울부짖음 뿐이었다.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포기한 이스라엘은 히브리 노예가 되어 이렇게 슬픈 노래만 부르는 게 전부였던 것이다.
오페라 「나부코」는 이 시편의 배경처럼 힘을 잃고 나라 잃은 민족의 아픔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1막에는 히브리인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의 신앙과 고난을 서술한 후 3막에서 바벨론 왕 나부코는 자신의 힘을 믿고 교만하게 행동하다가 하나님의 벌을 받고 회개하면서 오페라는 막을 내린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알려진 “가라 그리움이여, 황금빛 날개를 타고”(Va, Pensiero Sull’ali dorate)는 이 오페라의 주제를 잘 나타냈다. 이 곡은 초반부에 서정적 멜로디가 흐른다. 히브리 노예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감정적으로 잘 표현했다.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선율이지만 강렬한 울림이 전달된다.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멜로디는 고향의 그리움과 고통스러운 포로 생활을 부각시키고 청중들의 심령으로 녹아들어 간다. 합창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가 애절한 희망을 자아낸다. 이 곡이 초연될 당시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어서 온 국민은 독립에 대한 강한 열망을 품고 있었다. 베르디는 약소국의 비참한 현실, 나라 잃고 절망의 나락에 빠져 있지만 조국의 독립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과거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민족의 처지에 비유했던 것이다. 억압받는 히브리 노예들의 자유를 향한 갈망, 더 나가서 포로로 전락하는 비참한 국운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조건 강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이 아름다운 합창 속에 진한 여운으로 남는다.
지난 우리나라 역사는 어떠했는가? 삼국시대부터 이방종교의 영향 아래 있었던 우리 역사는 고려를 거치고 조선에 들어와서는 우상숭배의 극치를 보였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백성을 찾을 수 없었고 제사장 나라의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나 약소국가로서 외세의 침략을 받으며 노예처럼 살아온 이 역사의 강물에 한국교회 140년 세월의 물줄기가 합류되면서 어느새 대한민국은 제사(예배)가 있는 제사장 나라로, 거룩하게 살려는 백성(그리스도인)으로의 발전적 변화를 이루어냈다. 지금 그 약속이 이루어져 우리나라는 세계 최빈국의 오명을 씻고 경제부국으로 발돋움했고, 세계 최약체국의 불명예를 벗고 세계 5위의 군사강국의 위엄을 달성했다. 그 옛날 다윗과 솔로몬 시대 이스라엘이 받은 복 그대로다. 만일 이것을 우연으로 생각하고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의 삶을 등한시한다면 히브리 백성들처럼 우리 역시 망국의 한을 안고 한강 어느 강변에서 슬프게 노래하는 신세로 전락 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2024년 건군 제76주년을 맞이하며 세계 최강 군대로 거듭난 대한민국 국군의 날에 다시 듣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이 민족과 한국교회가 나가야 할 길을 생각하게 한다. “멸망할 땅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시편 137:8).
아버지 다윗 왕의 군사 강국을 계승하고 경제 부국의 꿈을 이루어낸 솔로몬 왕을 알현하는 시바의 여왕
솔로몬 시대의 부국의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예루살렘 성
주전 587년에 남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의 강력한 군주 나부코 왕(느부갓넷살 왕)
바벨론 강변에서 포로생활의 고달픔을 안고 고향을 그리워 하는 유대백성들
2002년 뉴욕의 메드로폴리탄 오페라단이 연주한 히브리노예들의 합창, 히브리 노예로 분장한 합창단원들의 명연기가 압권이다.
합창 연주하고 있는 메트로폴리탄 합창단원들의 연주 장면이 한편의 액자 그림같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곡 원제목 “가라 그리움이여 황금빛 날개를 타고”(Va, Pensiero, Sull’ali dorate)
마치 히브리 노예들처럼 바벨론 포로로 시달리고 있는 그 백성을 사실적으로 연기하며 노래를 부르는 합창단원들
아름다운 하모니가 생명인 합창단원들이지만 그들은 목소리만이 아니라 표정까지 그대로 묘사하고 있어서 이 합창곡 연주자들 가운데 이들을 능가할 합창단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