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강 푸른 물에 반달모양으로 떠있는 남이섬에 발을 디뎠다. 경기도 가평에 위치하나 주소는 강원도 춘천이라는 남이섬에는 아직 찬바람이 가시지 않은 이른 봄인데도 많은 사람들로 박신거렸다. 그중에는 상당수의 외국인도 눈에 띤다. 남이섬이 국내 TV드라마에 등장하여 그 드라마가 외국에서 방영되었기 때문이란다. 2000년대를 전후한 시기부터 한국의 영상, 음악, 문화가 아시아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켜 한류열풍이란 신조어가 생겼다는데 그곳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강 하구의 삼각주처럼 남이섬은 강물에 떠내려 온 흙과 모래가 강폭이 넓고 경사가 완만한 곳에 쌓여 형성된 듯하다. 남이섬이란 이름은 그곳에 조선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등 비범한 능력을 가진 명장으로 26세에 병조판서에 이르렀으나 이를 시기한 일파의 모함으로 짧은 생애를 마친 남이장군의 묘가 있어 얻게 되었다고 한다.
청서(靑鼠)가 노니는 잣나무산책길 전경이 한 폭의 그림이다. 일직선으로 심겨진 나무들에서 자칫 자연미를 잃을 수도 있었지만 청서의 탐스런 꼬리털은 그 흐릿한 인공의 잔상을 털어 저 멀리 날려버렸다. 잣나무를 오르내리는 청서가 없었더라면 그토록 아름다운 산책길도 생동감을 잃고 쓸쓸한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잣 수확이 목적이라면 청서가 반가울 리 없다. 잣이 익어갈 무렵이면 잣을 먹어치우는 청서와 한바탕 전쟁을 치르기 일쑤다. 그러나 그 전쟁은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일 뿐 잣이 그들의 먹이인 것을 어찌하랴. 당초 청서가 넓은 강을 어떻게 건너 그곳에서 살게 되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타조와 공작이 산책길을 자유로이 활보하는데 둘 다 짝이 없어 허전해보였다. 우리에 가두지 않고 놓아기른다는 점에서 관리자의 동물에 대한 배려를 엿볼 수 있었으나 짝을 찾아주는 세심함이 아쉽다. 반려(伴侶)가 없어 외로울지니 자유가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제 짝과 함께라면 우리에 갇혀 지낸들 어떠랴.
열댓의 우리 일행은 점심때쯤 남이섬을 나와 춘천인근의 어느 식당으로 들어섰다. 우리를 맞이하는 여종업원의 수더분하고도 상냥한 미소에 그날의 피로가 싹 가시는 듯했다. 차림표를 훑어보니 그곳의 전문음식이 막국수와 함께 춘천의 대표음식이라는 닭갈비란다. 일행들의 의견을 좇아 닭갈비를 주문하고 기다리면서도 처음인지라 어떤 음식인지 궁금하였다. 닭갈비의 양이 얼마나 되기에 그것으로 요리를 한다는 것인지 선뜻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나왔는데 닭갈비라기보다는 닭의 살만을 적당히 얇고 넓게 발라내어 숯불에 구워먹는 음식이었다. 닭갈비와는 거리가 있었으나 숯불에 구운 닭고기가 색다른 맛이 있어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후한서(後漢書) 양수전(楊修傳)의 고사에 나오는 계륵(鷄肋)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조조가 한중을 평정한 후 촉나라 유비를 정벌할까 망설이다가 '먹으려 해도 그다지 먹을 것이 없고 버리기도 아깝다‘는 뜻으로 “계륵일 따름이다”라고 하며 철수하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계륵이란 글자 그대로 닭의 갈비뼈를 말하는데 그다지 쓸모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아쉬운 심정을 비유한 말이다. 하긴 닭갈비라야 겨우 성냥개비만도 못한 크기이니 거기에 붙은 살이 얼마나 되랴.
육류에서 갈비라 함은 흔히 갈비뼈와 거기에 붙어있는 고기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최근 들어 갈비탕이란 것이 있기는 하지만 갈비는 불에 구워먹어야 제 맛이 나며 그 특성상 대개 뼈를 손으로 쥐고 거기에 붙은 고기를 직접 뜯어 먹을 수밖에 없다. 요즘에는 음식을 손으로 쥐고 먹는다는 것이 불편할 뿐 아니라 현대인의 정서에 어울리지 않아서인지 편리하게 먹을 수 있도록 갈비부위의 살만을 발라 놓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예로부터 갈비는 구워먹는 방법이 일반화되어 숯불과는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반면에 닭은 탕을 끓이거나 기름에 튀겨먹기만 할뿐 불에 구워먹는 경우는 드물다. 아마도 춘천의 닭갈비는 닭고기를 얇고 넓게 발라 불에 구워먹는다 하여 불리게 된 모양이다. 닭의 갈비가 아니라 다른 부위에서 발라낸 고기지만 갈비처럼 구워먹는다는데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고 볼 수 있으리라. 닭고기를 구워 먹는다는 색다른 발상으로 개발되어 어느덧 춘천의 대표음식이 된 닭갈비가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음식으로 더욱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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