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자고, 그만 잊자고, 만약 그래도 잊히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속여서라도 잊자고, 공덕동 산비탈 중간 전봇대가 18도쯤 옆으로 기울어진 그 아래 18번지 대폿집에서, 우리는 아침 거른 빈속에 쉰 막걸리를 부었다
신 김치 한 줄을 통째 손으로 집어 우걱우걱 씹어 꿀꺽 삼기고, 꺼억 트림을 했을 때, 그제 어제 오늘 뭐 먹었나 막걸리가 내장 벽을 샅샅이 뒤지며 요란하게 훑어 내려가다가 명치 어디쯤엔가에서 멈칫, 혀를 쯧쯧 차는 듯한 그 찌릿함ㅡ
어쨌든 이런 종류의 배부름도 죄악이라면, 오냐 그래 잘 됐다, 일찍 죽어 지옥에라도 빨리 가 보자고,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니게 그저 막연한 미련 제집 18대 신줏단지인 양 꼭 그러 앉고 이 세상 다시는 떠돌지 말자고, 술을 부었다
남칠이는 요즘 뭐한다더냐, 야 인마, 내가 지금 뭐 하는지도 잘 모르는데 그놈이 뭐 하는지 내가 알 턱이 있냐, 잊어라, 지금 이 자리에 없는 것은 잊자…… 깨어보니 아무도 없고 잊힌 것 하나 없는 어슴푸레한 저녁나절이다
받을 돈 내 주머니에 없는 거 아는 주인은 저녁 안줏거리 사러 갔는지 보이지 않고, 땟국 줄줄 흐르는 벽에 붙은 깨진 거울 안에는, 봉두난발에 핼쑥한 웬 낯선 놈이 저도 마찬가지로 깨진 채 나를 쳐다보고 있는데,
찬물 한 잔 마시고 밖을 내다보니 나 없었던 세상의 하루가 또 무슨 짓을 했는지, 서편 마루는 온통 피멍으로 벌겋고, 에라 이놈아, 그래도 세상이 궁금하더냐, 모퉁이 짓이겨져 흙이 잔뜩 들어와 앉은 신발을 거꾸로 툭툭 털어보니, 그 안에도 황진이 자욱하다
아아, 이 좁은 신발 안의 세상만 해도 내게는 이토록 감당이 불감당인데, 바깥의 다른 세상은 애당초부터 잊자고, 18 – 1975년 1월 16일 일기 / 寫 김기찬 '골목 안 풍경' 연작 / 音 사비나 야나투 ‘내 작은 아가야, 이제 그만 자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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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잊는다고 잊어지겠는지요? 잊을라고 하면 더 생각나는게 아닌가?
글 속의 저 시간으로부터 근 60년 흐르고나니 이미 저 애도 죽은지 2년이나 지났고, 그러니 이제 잊지 않으면 어쩔 것인감?
내 마음속을 많이 차지한 사람이면 잊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릴테고.
잊고 못잊고는 그사람의 생각차이라 생각합니다.
망각이란 말이 있습니다
때론 그 말이 위안이 될 때가 더러 있을때도 있고요.
망각이나 죽음이 어떤 의미로는 고마운 것이라는 생각이네. 사람이 나이 들면 단순해져야 하는데 그 모든 게 자꾸 생각나면 어쩔 것인가? 죽음도 마찬가지. 내 가진 모든 능력 떨어지고 사회는 그 무엇도 못하게 막아놓는데, 멍하니 힘없이 덧없게 아프면서 오래 살면 그건 참으로 고된 징역잉께, 죽음이 차라리 그걸 면하게 해 주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