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마음으로
권 덕 봉
천체물리학 국제 공동연구단인 <아이스큐브 연구단>이 남극 얼음 깊숙한 곳에서 운영 중인 「아이스큐브 중성미자 관측소」를 통해 우리은하 내에서 방출되는 고에너지 중성미자 방출원을 처음으로 확인했다는 뉴스가 있다.* 빛, 전파, X선, 감마선, 중력파에 이어 중성미자로도 우주를 관측하고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아 유령입자라고 불리는 중성미자를 통해서도 세상을 보는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텅 비어 보이는 우주에 가득 차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암흑물질을 찾아내는 방법은 아직 모른다. 마찬가지로 사람끼리의 감정 교류, 그중에서도 남녀의 사랑, 그 복잡미묘한 마음의 변화를 정확히 읽을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은 아직 없다.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보고 있겠지.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건 네 손끝으로 본 세상일 거야.” 타마르 반덴 도프가 감독한 영화 <블라인드>에서 개안 수술로 눈을 뜨게 될 루벤을 떠나며 마리가 남긴 편지글 중 일부이다. 시각장애인이 본다는 건 만져본다는 의미이고 그것이 눈으로 본 세상보다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뜻이다. 과연 루벤이 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리는 육안을 사용하여 대상을 본다. 전자기파의 일종인 가시광선이 물체에서 반사되어 우리 눈의 망막에 상을 맺는다. 그러면 우리의 뇌가 그 상과 색을 그려내는 것이다. 가시광선이 전자기파 전체에서 차지하는 범위는 매우 좁다.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가시광선 외의 전자기파를 이용하여 눈으로 보지 못하던 세상도 볼 수 있게 됐다.
가시광선보다 짧은 파장의 전자기파는 자외선, X-선, 감마선이 있고, 긴 파장의 전자기파는 적외선, 마이크로파, 전파가 있다. X-선은 인체 내부의 골격을 살펴보거나 공항 검색대에서 물체를 열지 않고 내부를 보기 위해 사용한다. 감마선처럼 파장이 아주 짧은 고에너지의 전자기파를 이용한 전자현미경으로는 원자의 내부까지 보게 되었다. 적외선을 이용한 열화상 카메라와 야간 투시경도 있다. 전파를 이용한 텔레비전, 레이다, 전파망원경 등은 멀리 있거나 재빨리 움직이는 신호와 정보를 보기 위해 사용된다.
본다는 의미를 조금 넓히면 오감을 사용하여 대상을 탐색하는 행위도 포함된다. 소리로도 볼 수 있다. 잠수함은 초음파를 이용하여 본다. 어선에서는 어군을 탐지하기도 한다. 미각도 대상을 파악하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후각과 촉각으로도 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데 루벤은 냄새와 손의 감각을 익혀 마리를 기억한다. 지금은 지능형 후각 센서를 비롯한 각종 센서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우리의 오감 능력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시력을 회복한 루벤이 눈으로는 마리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나 향(香)으로 마리를 알아채고 자신에게 돌아와 달라고 매달린다. 하지만 동화를 읽어주었던 마리는 ‘사랑은 눈을 멀게 한다. 그러나 나는 동화 같은 건 믿지 않는다’고 하며 그로부터 떠나간다. 루벤은 마리가 돌아와 줄 것을 기대하며 뾰쪽한 얼음으로 자신의 두 눈을 찔러 스스로 다시 못 보게 만든다.
사랑은 때로 자유로운 선택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운명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마리가 사랑에 대해 새로 눈 뜬 것일까? 루벤이 사랑에 눈먼 것일까? 사랑의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그런데 나도 한때 사랑에 들떠 있었건만 그 감정이 먼지처럼 흩어진 지금은 안타깝게도 저 둘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 중성미자는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입자다. 중성자가 양성자와 전자로 붕괴하는 베타붕괴시 발생한다. 약력과 중력만 작용한다. 1930년 파울 리가 이론적으로 예측하고 1956년 코완과 라이너스가 실험으로 검출에 성공했다. 나는 고시바 마사토시 박사가 지하 깊숙이 설치된 <카미오칸데>로 대마젤란은하 내부에서 일어난 초신성폭발로부터 온 중성미자를 검출하였다는 기사를 1987년에 읽고 처음으로 중성미자를 접했다. 지구에 도달하는 중성미자는 대부분 태양의 핵에서 나오며 일 초에 제곱센티미터당 수백억 개다. 물질과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지구를 통과해 그대로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