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지 만들기 2
정진명(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활을 몇 순 쏘면 손가락이 깍지에 눌려서 작아지고, 깍지가 헐거워집니다. 그러면 발시되는 순간이 간발의 차이로 지연됩니다. 바로 이 문제가 암깍지의 가장 큰 문제이고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깍지 공부의 완성입니다.
2019년 봄에 강연원(무성궁술회) 회장이 도축장에서 쇠뿔을 구해왔습니다. 그것을 삶으니 속심이 빠지고 뿔만 남습니다. 그것을 쇠톱으로 켜서 깍지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이상열 접장의 영향이 큽니다. 이 접장이 연마기와 드릴을 활터에 갖다 놓은 것입니다. 결국 깍지 만들기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깍지는 반지를 생각하면 쉽습니다. 실제로 중국의 깍지는 반지와 똑같습니다. 엄지가락에 끼우고서 반지에 시위를 걸어서 당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시위가 엄지손가락의 바닥을 훑습니다. 아프죠. 그렇지만 오래 적응되면 군살이 배겨서 견딜 만합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이 우리 깍지입니다. 시위가 훑고 나가는 엄지 바닥을 뿔로 덮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쇠뿔을 깎아서 반지를 만드는데, 반지의 한쪽을 길게 늘여 손바닥을 덮도록 혀를 만든 것입니다.
활을 몇 순 내면 시위의 압력 때문에 쇠뿔 깍지에 밀려서 손가락이 가늘어지고 깍지는 헐거워집니다. 그래서 발시되는 순간이 점차 늦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막으려면 깍지의 혓바닥과 반대되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헐거워져도 깍지가 앞으로 밀려 나가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깍지의 혓바닥과 고리의 경사면에 각도를 주는 것입니다. 깍지의 혓바닥 반대쪽 끝을 뿔(정수리)이라고 하는데, 둥글지 않고 약간 뾰족하게 솟아서 그렇게 부릅니다. 말하자면 가운데 부분을 표시하느라고 삼각형의 모서리처럼 돋운 것인데, 요즘은 이게 귀찮으니까 쓱 밀어버려서 어디가 중심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옛날의 깍지는 모두 이 가운데 표시인 뿔(정수리)의 자취가 있고, 조선시대의 유물로 발굴되는 깍지는 더욱 또렷합니다.
사람들에게 깍지를 어떻게 만드느냐고 물었더니, 쇠뿔의 끝부분을 구멍 내어 그곳으로 엄지를 집어넣도록 만들고 주변을 깎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소 1마리에 깍지 2개가 나오는 셈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용달 사범에게 받은 깍지를 자세히 살펴보니 무늬와 결이 깍지의 경사면을 따라 구부러졌습니다. 짐작컨대 이것은 깍지의 재료인 뿔을 휘었을 때 나오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쇠뿔을 반으로 쪼개어 네모나게 다듬은 다음에 불을 은근히 보여서 45도 정도로 구부렸습니다. 그리고 꺾인 부분에 구멍을 뚫고 손가락 굵기만큼 뚫은 다음에 바깥을 깍지 모양으로 다듬어서 만들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하면 뿔을 어떻게 쪼개느냐에 따라 뿔 하나로 깍지를 4개까지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만들어본 깍지가 70여 개 됩니다. 실패한 것들이 많습니다만 갈수록 시간과 공정이 단축되어 이제는 20분이면 1개를 만들 수 있습니다. 구멍 뚫는 방향과 각도에 따라서 발시 순간에 깍지가 벗겨지는 시간을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습니다. 뜯기게도 할 수 있고 빨리 빠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옆에서 본 이상열 접장이 한마디 합니다.
“교두님, 이제 깍지에 관한 논문 한 편 나오겠네요?”
한마디 더 하겠습니다. 사말이 방금 전에 쇠뿔을 휘어서 깍지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사말이 지금까지 알기론, 깍지 장사 중에 이렇게 깎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만의 비법을 공개한 것인데, 나중에 꼭 이런 놈이 생깁니다. 마치 자기가 처음 고안했다거나, 세상은 모르는 자기만의 스승에게 전수 받았다고 떠드는 놈 말입니다. 정말 재수 없죠. 활터에서 이런 놈들을 너무나 많이 봐와서, 이제는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저를 볼 때마다 지난 30여년간 저를 이렇게 길들여준 활터가 원망스럽습니다만, 그게 활터의 현실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충고합니다.
첫댓글 참ㆍ 이쁘고 잘빠짓네요ᆢ우리 교두님은 머시든지 나날이 완벽하게 발전합미더ᆢ부럽슴미더ㆍ(아부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