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불빛이 하나둘 켜지면 나는 창가에서 악보가 없는 음악을 연주한다 트라이앵글의 흰 뼈에서 흘러나온 음들은 외롭다 사람아
인간은 사랑을 이해하는 데 일생을 바치다 슬픔의 대지에 자신을 가두고 혼자 아파하는 음악이 된다 외로움이란 사랑의 장례를 치르는 시간, 이 세상의 악보들은 가장 투명한 눈물로 쓰여진다 내 어머니는 평생 고독을 연주하다 한 줌 재가 되었다
제 몸속에 잠들어 있는 음악이란 없다 내 생의 안쪽에는 아직 울지 못한 음들이 글썽이며 가득 매달려 있다 슬픔을 달래다 고요를 잃어버린 입술처럼 트라이앵글이 차갑게 떨린다
누군가 아파트 창가에 오래 서 있다 환한 방안에 불 꺼진 전등처럼, 내가 만일 당신이라고 부르면 창문이 온통 은빛으로 출렁일 것 같아 나는 한쪽 끝이 열려 있는 트라이앵글의 텅 빈 내각에 눈물을 한 방울 한 방울 떨어뜨린다
당신의 외로움 위에 내 외로움이 닿을 때까지 나는 밤마다 트라이앵글을 연주한다
[심사평]
새로운 인식과 심미적 표현
해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응모자가 늘어났는데 올 들어 경제 사정 때문인지 응모작이 줄어 들었다. 최종심에 오른 시인은 연지윤, 우길선, 천선필 씨 세 분이었다.
새로운 인식과 상상력, 심미적 언어, 밀도 있는 구성에 초점을 맞추어 보았다. 우길선 「너머의 너」는 풍부한 상상력이 돋보였으나 ‘잡히지 않는 너를 향해 ~ 떠 있는 것들을 잡는 것이 아니라/ 손을 흔들어 주는 것임을 알았을 때, 나는/ 까치발을 내려놓았다’와 같은 인식과 표현의 평이성이 아쉬웠다.
연지윤의 「사각」 , 「사무실을 돌리다」 그리고 반 지하 그늘에서 수도권을 맴돌며 살아가고 있는 영세민들의 고단한 삶의 궤적을 ‘A4용지 두 장에 압착되어’ 나오는 전출입기록에 비유한 「수도권」은 주제 의식과 표현의 참신성 등이 좋았으나 「수도권」에 ‘가팔랐던 언덕배기 길까지/ 기입되기에는 칸이 좁다’, ‘생활이 나아진다는 건/ 꽉 찬 트럭 위에 남은 짐 덧 싣는 것은 아닐 텐데/ 그 때는 왜 덜어내지 못했을까’ 와 같은 애매한 산문이 섞여 있어 안타까웠다.
이에 비해 천선필의 응모작 네 편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본과 경쟁의 심화로 궁지에 내몰린 현대인의 단절감을 ‘트라이앵글의 흰 뼈에서 흘러나온 ~ 악보 없는 음악’ 에 비유, ‘당신의 외로움 위에 내 외로움이 닿을 때까지/ 나는 밤마다 트라이앵글을 연주한다’(「외롭다 사람아」)는 포지티브한 지향성과 ‘내가 만일 당신이라고 부르면 창문이 온통 은빛으로 출렁일 것 같아’라는 유려한 문장을 나직한 율조에 그러나 절절하게 노래하고 있어 이를 당선작으로 선했다.
김동수 시인
[당선 소감]
전라매일신문에서 당선 통보 전화를 받고 풀잎 같은 내 외로움의 피부가 파르르 떨렸습니다. 나는 문득 내 외로움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넵니다. 안녕? 안녕! 공원 의자에 나란히 앉아 외로움의 두 손을 잡아줍니다. 고마웠고 또 미안했다고. 감정의 대지에 홀로 너를 가둬두고 아주 먼 곳을 돌고 돌아 이제야 너를 마주 본다고. 사실 나의 외로움에게 가는 길에는 항상 선택의 갈림길이 있었고, 나는 후회하는 나무의 뒷모습처럼 바람 속에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그곳. 모든 것이 지워지는 그곳. 그래서 한 걸음을 시작할 수 있는 그곳. 그러나 발자국이 없는 그곳. 새들의 날개가 부러지는 그곳. 그래서, 새들이 다시 태어나는 그곳은 나와 외로움이 함께하는 다정의 세계입니다.
시를 통해 이성적 판단에 너무 물들어버린 제 삶과 감정을 순수한 느낌의 세계로 회복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제게 시란 하나의 도구이며 미지의 세계와 끝없이 소통할 수 있는 비밀의 문입니다. 지금까지 작은 공간에서 습작 시를 쓰며 힘들었던 때가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나 자신의 외로움이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었고, 함께 공부한 시냇물 문우들도 많이 고맙습니다. 그리고 제게 나무와 새와 이 세상을 만들어가는 허공의 감정을 알게 해 주신 김두안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문학이란 반드시 극복의 관문을 지나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자유의 눈이기에 제게는 이번 당선 소식이 너무나 기쁩니다. 다시 한번 전라매일신문과 노고를 아끼시지 않은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감사 인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