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25-31
보혜사 성령 받은 자의 특징
지금 이 세상은 온통 혼돈 속에 빠져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고,
사람이 사람을 부담스러워합니다.
사람들에게는 평안이 없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코로나19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런 현상이 심화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령의 지배를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심판의 시대에도
구원 받습니다.
지난 주간에 미국 대선이 있었지요
아마도 민주당의 바이든이 당선될 것 같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기독교인
트럼프가 재선되길 원했겠지요.
그러나 인본주의자 바이든이 당선된 것도
하나님의 뜻인지 모릅니다.
미국과 인류 역사는 결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악이 관영한 심판의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바이든은 낙태 찬성자이고, 공립학교에서
이슬람교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는 대척점에 서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계속 대책 없이 쇠락할 것입니다.
성경의 원리와 너무나 동떨어진 채
교회 성장 지상주의, 교회 이기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구원 받은 알곡 신자만
남겨 놓으실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려는 자만
끝까지 남겨 놓으실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마치 교인도 없고 교회도 없는
영국교회처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인간의 생각처럼
그리 간단하게 끝나지 않습니다.
이런 환경일수록 우리는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진리 가운데 거해야 구원 받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구원의 진리입니다(요한복음 14:6).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천국복음이 진리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진리가운데로 이끄십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서 거하면 죄와 사망은 물론
세상의 모든 고통 가운데에서도 자유를 얻게 됩니다.
본문이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25-26절을 읽겠습니다.
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예수님은 성령님이시고 성령님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셨습니다.
대신 이 세상에 오셔서 예수님의 교훈을
생각나게 하시고 가르치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은혜 받지요.
누구 때문입니까?
성령님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말씀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령님이 역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가장 먼저 말씀으로
은혜를 받습니다.
여기 나오는 ‘보혜사’는 삼위일체 하나님 중의
한 분이십니다.
변호자, 중재자, 협조자, 대변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히브리 원어로는 ‘파라클레이토스’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받은 자는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이 나를 변호하신다는 것을
확신하며 삽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주님이 나를 곤란한 환경에서도
중재하신다는 것을 알고 담대합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주님께서 나의 일에
협력하신다는 것을 알고 외로워하지 않습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주님께서 나를 대변하신다는 것을
알고 담대히 복음을 증거 합니다.
지난주에 매우 감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흥왕교회 췌장암 치유 간증 집회에서
어느 권사님이 안수 기도를 통해 병이
나았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역하고 있는 치유 사역이 결코 저
혼자만이 아니라, 성령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종을 왜 죽음의 병에서 살려 주셨는지,
왜 코로나19를 온 세상에 퍼뜨리셨는지,
왜 유튜브 글로벌 치유 간증 전도 사역,
유튜브 글로벌 치유 기도 사역을
하게 하셨는지 더 명확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요, 계획이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통해서 사람의 생각은 한없이 짧고,
하나님의 생각은 한없이 깊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말이 아무리 옳게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틀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성령의 지배를 받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이 무엇인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관찰하고 있어야 합니다.
본문 27-28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라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평안입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을 초월하는 평안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자는 늘 평안하고 늘 기뻐합니다.
분명합니다.
누구든지 이 평안과 기쁨이 없이 진심으로
예수를 믿는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코로나19가 아무리 우리를 힘들고 고통스럽게 해도
성령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으로
거뜬히 이겨 나가는 사람이 성령 받은 사람이요,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로마제국 시대 당시 전염병이 돌아 큰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안토닌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로마 인구의 4/1이
목숨을 잃을 판국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전염병이 두려워서 큰 두려움과 혼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소수의 기독교인들은 전염병이 돌아도
너무나 평안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들에게 천국의 내세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기독교인들은 전염병으로 쓰러진
병자들을 희생적으로 돌보았습니다.
아무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 병자들을 위해
온 정성과 사랑을 다해 돌보았습니다.
이미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들은 공동묘지에
고이 묻어 주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기독교인 중에서도 한 사람도
전염병에 감염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로마인들은 기독교인들을 보고
크게 감동했습니다.
이로 인해 기독교가 더욱 확산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역사는 이렇게 이루어집니다.
코로나19 시대에 우리가 불신자들처럼
같이 무서워하고, 떨고, 두려워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님이 주시는 이 놀라운 평안과 기쁨을
내 이웃에게 나눠줘야 합니다.
성령 받은 사람, 구원받은 사람은
이런 모습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시편 60:1입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하나님께서 코로나19를 통하여 죄악이 가득한
사람들을 흩어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노하신 결과입니다.
코로나19로도 사람들을 흩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악을 회개하며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누구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다시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유언 설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평안입니다.
그리고 이 평안이 곧 행복의 원천입니다.
평안 없는 행복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 유언 설교를 통해
이 평안을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처럼 성령님은 우리를 평안과 기쁨으로
세워주십니다.
요즘 가정마다 부부관계의 어려움이 많습니다.
서로 세워 주는 사명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흔히 부부는 나이에 따라 사는 패턴이
다르다고 합니다.
20대에는 서로 신이 나서 살고,
30대에는 서로 환멸을 참으면서 살고,
40대에는 서로 체념하면서 살고,
50대에는 서로 가엾어서 살고,
60대에는 서로 필요해서 살고,
70대에는 서로 고마워서 산다고 합니다.
부부관계에서도 사람이 철이 들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부부라도, 아무리 교회를 다녀도 서로
세워 주고, 격려하고, 위로하지 않으면
평안과 기쁨과 행복이 없습니다.
이 참된 평안과 기쁨은 성령님이 주십니다.
그러므로 가정생활도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평안해 집니다.
교회는 어떨까요?
성령님의 역사를 따라 서로 세워 주는 교회가
되어야 평안하고, 기쁘고, 행복합니다.
교회도 연약한 사람들끼리 모인 곳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더 많이 성령 충만을 갈구해야 합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서로를 세워 주는 교회가 됩니다.
교회는 인간의 이성과 경험과 주장과 계획으로
움직여지는 곳이 아닙니다.
온전히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나아가는 곳입니다.
여러분, 영적인 관점으로 분별력 있게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새벽에도 성령님께서 제게 찾아오셔서
하늘의 위로와 지시를 주셨습니다.
너는 염려하지 말고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신기해서 사모에게도 자세히 얘기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지난주일 설교에서도 말씀드렸지요.
그때도 성령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조용기 목사처럼 세계의 영혼들을 향해
복음을 전파하거라.”
어떻게 제가 조용기 목사님과 비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두 가지 생각이 주어졌습니다.
이제 조용기 목사님은 연로하여 은퇴를
하셨습니다.
또한 코로나19가 온 세계에 창궐하고 있습니다.
더는 세계에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기가 힘듭니다.
그리고 이제는 옛날과 달리 막강한 SNS시대입니다.
여러 가지 인터넷 포털이나, 유튜브나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할 수가 있습니다.
특히 유튜브는 이 세상을 신경망처럼
엮어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이 방법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복음 전도의 문이 꽉 막혀 있는 코로나19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요즘 제가 젊은 시절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많이 듣습니다.
가슴이 뛰고 눈물이 흐릅니다.
성령님이 저를 성령의 사람으로 바꾸십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가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교회는 성령을 추구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조용기 목사님을 통해
성령의 사람으로 이끌어 가신다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도 방언 기도를 하면서 병자를 고쳤습니다.
수천수만 명의 사람들을 모아 놓고
구원의 복음을 외쳤습니다.
그분은 폐병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살려 주셔서
세계의 영혼을 위한 복음 전도자로 쓰임 받았습니다.
저를 죽음의 췌장암에서 살려 주신 하나님께서
세계의 영혼들을 향해 복음의 씨앗을
뿌리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1:8에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우리 모두 예수님의 유언적 설교에
귀를 기울여 성령을 충만히 받읍시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성령 충만함을 받읍시다.
성령의 지배를 받아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살다가
천국에 가기를 소원합니다.
설교 성시를 묵상하고 마치겠습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시면>
예수님이 유언 설교를 하셨네.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완전히 떠나는 게 아니라고.
다시 오시는 성령.
그분이 진리를 가르쳐 주신다네.
성령은 구원의 나침반.
성령은 평안의 우물.
벌컥벌컥 마시는 자.
영적 갈증은 해소되고
근심도 두려움도 사라지네.
내 마음의 밭고랑에 들어오는
성령의 물줄기.
시원하고 상쾌한 인생 되리.
그래서 세상을 거뜬히 이기고...
세상은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을 알게 된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