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잎은 세 가지 끝에 달리니 세 가지 쌈이요|野談集 백가지 나물과 세 가지 쌈
옛날에 찢어지게 가난한 시골처자가 더 가난한 산골총각에게 시집을 갔더란다. 그때 처자의 나이는 겨우 열여섯이었는데, 워낙 가난하니 입을 하나 덜기 위해 서둘러 시집을 보낸 것이란다. 그런데 그 박복한 사람이 그만 시집온 지 네 해 만에 덜컥 신랑이 죽고 말았더란다. 그래도 그 새댁은 낮에는 남의 집 밭일을 하고, 밤에는 꾸벅꾸벅 졸면서 베를 삼아 층층시하 시어른들을 모시고 살았더란다.
그런데 어느 보리흉년 든 해, 땟거리가 없어 그만 부잣집 장기 쌀(봄에 곡식을 빌렸다가 이듬해 갑절로 갚는 고리대)을 내어먹고 말았단다. 다음해 봄이 되어도 땅 한 뙈지기 없으니 추수할 곡식도 없고, 품삯으로는 입에 근근이 풀칠하기도 어려워 도저히 갚을 길이 막막한 거라. 그런데 그 부잣집 영감이 이 새댁을 첩실로 눈독을 들이고 있었는거라.
그 해 겨울에 그 부자영감이 와서는
“한 칠(일주일)후가 내 생일이니 그날 오곡밥에 세 가지 쌈에 백가지 나물을 해다 바치지 않으면 내 집으로 시집을 와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더란 말이지. 시어른들은 ‘너는 아이도 없고 아직 젊으니 그만 팔자를 고쳐라.’며 섭섭한 말을 하는데, 새댁은 아무도 돌볼 사람이 없는 시어른들만 남겨두고 차마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는거라.
일주일이 하루같이 지나고 마침내 영감의 생일이 된거라. 새댁은 새벽에 오곡밥을 해서는 함지박에 이고 부잣집을 찾아갔거든. 부자영감은 입이 귀에 걸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어. 새댁에게 오금을 박기위해 이웃사람들도 이미 불러다 놓았지. 오곡밥은 어떻게 이웃에 얻어서 한다 해도 한겨울에 세 가지 쌈과 백가지 나물을 하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거든.
새댁은 조용히 부자에게 물었어요.
“만약 제가 어르신의 요구대로 생일상을 차린다면 장기 쌀을 탕감해 준다는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암, 그렇다마다.”
새댁은 생일상을 차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상에 오른 것은 오곡밥과 콩이파리 쌈(가을에 따서 된장에 넣어둔 콩잎)과 흰 가지나물이 전부란 말이지. 부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약속을 어겼다. 고 손사래를 쳤지.
새댁은 이웃사람들과 부자영감에게 조용히 말했어요.
“콩 잎은 세 가지 끝에 달리니 세 가지 쌈이요, 흰가지는 백가지라고도 하니 백가지 나물이 아니올지요?”
이웃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부자영감은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했어. 그렇지만 더 이상 고집을 부리다가는 웃음거리만 될 것 같아 결국 새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새댁은 더욱 시어른들을 잘 섬겨서 나라에서 효부상을 내렸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