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김희선 수필집『잠깐』 /류인혜

[작가회]

서평 / 김희선 수필집『잠깐』

글쓴이 : 류인혜

날짜 : 16-06-20 22:31     조회 : 1138

어머니와 자연에서 배운 용서의 미학

김희선 수필집,『잠깐!』, 북나비, 2016.

류인혜


 김희선님의 수필문단에서의 활동은 활발하고 이력은 길다. 그러나 개인 저서로써는 두 번째로 발간된 아주 귀한 수필집이다. 그동안 교정지를 수개월씩이나 붙잡고 있을 때, 솔직히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기우는 사라지고 책 제목,『잠깐!』을 대하자 가슴은 평온하고, 머릿속에는 별들이 반짝였다. (수필「잠깐!」은 직접 읽어 보라는 뜻으로 여기에서는 거론하지 않는다.)

또 특별한 것은 서문「책을 내면서」를 비롯하여 시로 쓴 수필이 다섯 부분으로 나뉜 장마다 수록되어 있는 점이다. 「목련꽃」,「순수한 마음」,「아름다운 청년 윤동주」,「매연 풍기기」,「새치」가 각기 첫머리에 있다. 그 시의 형식으로 쓴 짧은 수필에서 실린 글의 특성을 짐작하게 된다. 지적 정신의 보물인 사유와 개인의 경험과 생활을 반추한 수필들이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하다. 한여름 무더위에 생수를 들이키는 쾌감을 준다.

대부분의 수필 소재는 그가 평소의 대화에서 즐겨 말하던 내용들이다. 아들의 다리 수술에 얽힌 이웃집 할머니와의 인연을 이야기한「우연과 필연」, 동네 가로수를 베지 못하게 막았던「날개 펴고 자라는 나무」에서는 뜬금없이 천안문 광장에서 탱크 앞에서 시위하던 중국 청년의 의로운 모습을 떠올렸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 가장 압권은 몽골여행에서의 말 타고 나타난 몽골남자를 따라갈 뻔했던 사건이다.

“몽골의 들판, 꽃들의 움직임은 그리움이다. 겔리 있는 뒷동산 언덕배기에 끝없이 펼쳐지는 자연의 화원, 노랑과 보라꽃, 어여쁜 들꽃들이 색을 맞추어 바람에 살랑대면 내 마음도 함께 흔들린다.” 마음속에 그런 설렘이 있었기에 낯선 몽골남자가 멋져서 따라가고 싶었다는 농담처럼「꽃나라 꿈나라」에서 나오는 ‘말을 타고 사라져가는 그리움을 아쉽게 바라보았다던’ 장면은 되풀이해서 들어도 재미있는 멋진 드라마가 아닌가!

작가는 그렇게 겪어내는 일상의 사소한 매듭에서 수필의 소재를 찾아내어 독자의 입맛에 알맞도록 요리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사소함이 특별함으로 변신하는 과정에는 그의 문장력과 좋은 심성이 양념으로 버무려진다. 여러 번 되풀이해서 들어도 들을 때마다 흥미롭던 화제들을 글로 찬찬히 읽으며, 말과 글의 차이를 확연히 느꼈다. 생활의 언어, 구어체가 수필로 쓰는 문학의 언어로 전환되어 글 속에 자리 잡고 편히 앉아 수필의 격을 높이고 있다.

김희선님은 들꽃기행에 정기적으로 참여한 지가 오래다. 그 세월에 따라 만났던 나무와 꽃에 대한 수필이 많다. 남쪽 어느 마을의 500년 노거수 매화나무가 베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까워’를 연발했는데, 잘 자란 소나무, 가시나무들마저 잘라버리고도 무감각한 사람들, 지켜야 될 것을 무참하게 묻어버리는 안타까운 수필은「행복 지키기」다. 이렇게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더 나아가 우리의 전통과 평범하게 살아온 발자취까지도 보존의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수필집에서 가장 주목할 작품은 사람의 대한 작가의 따뜻한 인성과 올바른 도덕관을 나타내주는 수필들이다. “어머니는 우리를 믿어주셨다. 어머니의 부드러움은 생각만 해도 편안하다. 우리는 따스하고 인정이 깃든 뜨락에서 내리는 사랑을 받았다.”「소중한 내 뜨락」에서 만나는 작가의 정서에는 긍정과 사랑이 넘친다.

“내가 성인이 되어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었을 때, 어머니는 나에게 유언처럼 말씀을 남기셨다. 수녀님 은혜를 생각해서 교회보다는 성당에 다니면서 좋은 일을 하라고 부모도 포기해야 하는 현실에서 생명을 치료해 주신 은공. 고마운 일을 모르는 체 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니 어떻게 하든지 보답을 하라고 하셨다.”   
                              -「내가 즐겨 부르는 성가」에서

작가의 어머니께서는 유언처럼 은혜에 보답하는 반듯한 심성과 방법을 알려 주셨다. 그렇기에 어머니의 말씀을 무조건 순종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일은 쉬운 듯하지만 어렵다. 작가는 양심적인 서울양반으로 잘 자라났다. 그래서 ‘용서’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말을 할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어떠한 잘못이 있을 때, 고의적이 아니라면 용서해야 한다. 더구나 골탕을 먹이려고 교묘하게 저지른 잘못이 아니라면 당연하게 용서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 칠십은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도 용서는 늘 의문점이다. 인생살이 편하게 살고 싶어 용서를 하고 보면, 내가 한 단계 올라가는 느낌은 있다. 그러나 찜찜하여 용서가 안 되는 일도 부지기수다. 나 자신이 편하게 사는 길은 자신을 특별하고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이런 점을 비집고 들어오는 야비한 인간들이 있으니, 해충을 보는 듯 섬뜩하다.”
                                                        -「용서라는 단어」에서

그렇지만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인생들은 불쌍하게 여긴다.

“요즘은 목청 큰 자가 이긴다고 하지만, 법치국가이니 인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원한다. 더구나 악인보다는 선한 사람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착한 사람들은 용서를 쉽게 한다. 악인보다 먼저 나서서 용서한다. 더욱 이상한 일은 악인 옆에 바싹 붙어서 악인을 감싸며 너그럽게 용서를 한다. 그래서 왕따가 존재한다. 악인은 사람 다루는 수단이 월등하다. 악인은 혼자 다니지 않는다. 악의 굴레는 변함없이 무리 지어 다닌다. 왕따를 시키는 못된 버릇은 마땅한 응징을 해야 한다. 위대한 글자, ‘용서’는 꼭 필요한 때에 해야만 한다. 헤프면 안 된다. 우리 동네 성당에도 ‘용서’라는 커다란 붓글씨가 있다. 올바른 용서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용틀임을 하듯이 썼다고 한다.”                                        -「용서라는 단어」에서

“모든 일에 친절할 수 없다 해도 어떻게 하든 성깔을 부리는 것도 인격 장애다. 화가 날 때마다 성질을 돋우며 맘껏 부려대는 고약한 인품은, 어미의 뱃속에서부터 태어나는 날에 이미 정해지는 것일까? 평생 고치지 못하는 고약한 마음도 가지가지이다. 양보가 바보짓이 아니라 배려의 미덕이라는 그런 세상을 배려의 미덕이라는 그런 세상을 꿈꾸어 본다.”
                                            -「버스기사와 사람들의 인품」에서

이 수필집에는 사진이 많이 들어가 있다. 작가의 젊은 시절의 사진들과 어머니를 비롯한 여러 가족들의 모습은 매우 정답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담긴 한 장 한 장마다 사진으로 쓰는 수필이 된다. 또 수필집 속에는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이 실려 있다. 많은 꽃 사진, 풍경을 담은 사진의 구도에서 정직함과 순수함이 나타난다. 고희를 맞은 연륜 탓인가, 그만큼 사물을 보는 눈이 안정되어 있다. 커다란 포도송이를 양쪽에 두고 환한 웃음을 지은 얼굴 사진은 또 다른 한 편의 수필을 읽어내게 한다.

한국식물연구회의 부회장으로 활동하는 김희선님은 나무에 대한 감성이 남다르다. 그 나무들을 가족의 어울림에 비유하여 가정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순리를 말하고 있다.

“50년생 나무 곁에는, 또 다른 10년생, 20년생, 30년생의 나무들이 함께 자라나고 있어야, 그게 바로 아름다운 숲이라고 숲 해설가는 일깨워 주고 있었다. 마치 우리네 인구정책도, 부모는 물론이요, 아들 딸, 며느리와 사위, 그리고 손자와 손녀가 함께 있어야 아름다운 것처럼. 아이들이 그 집안의 희망인 것처럼. 큰 나무 곁에는 어린나무도 함께 자라고 있어야만 미래가 있다는 것이다. 숲에도 질서가 있고 살아 숨 쉬는 순리가 흐른다는 것이다.”                            -「하늘 끝까지 자라고 싶어」에서

자연과 더불어 지내온 세월은 나무의 어울림을 보며 사람의 행복과 아름다움, 집안의 희망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 경지에 이른 것이다. 작가가 고희를 맞이하며 인생의 열매처럼 엮어낸 수필집은 그만한 시간들로 알차다.
오래 기다리다 만난 친구처럼 다정한, 김희선 수필집『잠깐!』을 다시 편다. 수필을 읽다가 잠깐! 맑고 드높은 하늘을 본다. 柳
                                                    -『계간 문예』2016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