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의 대상이 그렇지만 그건 월드컵보다 더 대단한 쾌거였다.
현 선수의 테니스 4강 진출이 그랬다.
강력한 우승후보와의 준결승전, 그는 발바닥 통증때문에 포기한다고 했다.
엉간히 아푸면 참고 했으면 하던 아쉬움속에 그 여름날이 떠올랐다.
칠월의 태양처럼 젊음도 뜨거운 계절이었다.
시흥에 있는 물항저수지를 출발하여 해상훈련장인 제부도까지 행군으로 이동하고
모래언덕에 천막을 치고 숙영지를 편성했다.
내무반을 벗어난 군인들은 훈련이라기보다 캠핑나온 친구들처럼 들떠있었다.
기본적인 통제와 백사장에서의 반복되는 PT체조는 지겨웠지만
얼룩무뉘 반바지 하나만으로 훈련은 놀이처럼 즐거웠다.
소대별 고무보트 경기, 사람이 든 보트를 머리에 이고 달리는 경기도 했다.
밥도 소대별로 자체취사, 영락없는 캠핑이었다.
훈련이 끝나면 반합을 들고 갯벌로 나갔다.
그물을 들추거나 돌을 들어올리면 박하지(민꽃게)들이 싸우자고 덤벼들었지만
비겁하게 우회하여 반합에 집어넣었다.
군대된장이면 모든 게 해결이었다,
콩으로 발효시킨 것이 아닌 밀로 발효하여 박스로 분배되었다.
단순하게 군대된장으로 박하지 매운탕을 끓이면 그 맛이 일품이었다.
2주간의 훈련이 끝나면서 까맣게 그을은 몸으로 부대로 복귀해야 했다.
제부도에서 안양 박달동 주둔지까지 행군거리는 얼마나 되었던지 기억하지 못한다.
태양은 지상에 가까워져 너무 뜨거웠다.
바다가 그리웠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완전군장으로 팔월의 뜨거운 태양에 일부 병사들이 뒤쳐지거나 주저앉기 시작했다.
나도 뜨겁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거칠게 그 병사들을 독려하고 압박을 가했다.
한 병사가 거친 채근에도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 병사의 군화를 벗겼다.
양말까지 벗겼을 때 그 병사의 발바닥은 너무나 처참했다.
피에 엉겨 양발이 벗겨지지도 않았다.
평발이었던 그 병사의 발바닥은 전체가 세 구역으로 나뉘어 떠있었다.
발가락 사이 작은 물집 하나에도 옮기는 걸음마다 바늘로 찌르는 통증이 머리로 올라오곤 하는건데,
그 병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때로 적지에 침투하여 임무를 수행할 수도 있는 부대였기에
행군 중 낙오하면 묻고 갈거라고 엄포를 쏘기도 하였지만
지금도 황망하던 그 여름날이 부끄럽게 다가오곤 했다.
현 선수의 발바닥을 보며 그 박일병을 만나면 발도 한 번 꼭 씻겨주고
그 부끄러웠던 여름날을 참회하고 싶다.